제 43화
던전 방송
“불편해 죽겠네. 천장 깐다?”
“내 차 아니야! 빨리 아무거나 해봐!”
최현석이 울부짖었다. 이미지 관리 따위는 때려치운 지 오래였다. 대답을 듣자마자 유선우가 천장에다 잽을 날렸다.
쾅!
“아니, 미친놈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어흐흐, 개꿀잼인데요!”
“미안. 좀 급했다.”
유선우는 손날을 세우고 마력을 응축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푸른빛의 검기가 그의 손에 맺혔다.
손을 가져다 대자 차 지붕이 종잇장처럼 잘려나갔다. 원형으로 윗부분을 떼어낸 그가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어우야. 이제 살 것 같네.”
강풍에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유선우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천천히 주위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공기가 일그러지더니, 수십의 창이 만들어져 허공을 수놓았다.
신호를 줌과 동시에 창들이 각각 목표를 찾아 날아들었다. 가고일 하나가 달아나려 했으나 추격은 끈질겼다. 창이 놈의 날개를 찢고, 공중에서 반 바퀴 돌면서 머리를 찔렀다.
유사한 광경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졌다. 질긴 가죽이 천처럼 꿰뚫리고 배가 갈라져 내장이 땅에 쏟아졌다.
소란이 잦아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은 잠잠해진 후로도 차량을 호위하듯 주변을 맴돌았다.
벤츠가 지나간 길은 피와 내장으로 질척거렸다.
달리기를 10여 분이 지난 시점에 강창민이 말했다.
“여기서 오른쪽이요. 저기 언덕 넘으면 보일 거예요. 이대로 들어가요?”
유선우가 대답하기 전에 최현석이 의문을 표했다.
“제대로 온 거 맞아? 리저드맨이라며. 여태까지 한 마리도 안 보이던데.”
“여기 맞아요. 왜 트집이세요?”
“야.”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맞아요. 저쪽에 이상한 나무 보이시죠?”
강창민이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생김새가 특이했다. 잎은커녕 수분이 전혀 없이 말라비틀어진 몸체. 광물로 나무를 조각한 듯했다.
“비슷한 게 몇 있거든요. 오아시스도 있고. 지형지물 다 봐가면서 만든 지도예요.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정찰병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안 보이니까 이상하다 싶어서.”
“가보면 되지.”
명쾌한 대답에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들여 언덕을 오르자 밑의 지형이 훤히 드러났다. 길게 이어지는 경사의 끝에는 강창민의 말대로 부락이 있었다.
놓여 있는 사물들로 판단하기에 거주공간은 제법 넓었다. 다만 넓이에 반해 내부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스물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다 어디 갔어?”
“불쌍해요. 다 엄청 말랐어.”
“불쌍한지는 둘째치고 마르긴 했네. 비늘도 푸석푸석하고.”
거주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늙은 개체가 버려진 것일지도. 허탕을 쳤나 싶은 찰나에 강창민이 툭 던지듯 말했다.
“싸우러 갔나 본데요.”
“뭐?”
강창민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부락을 화면에 담았다. 그는 카메라맨 노릇을 하면서 방송에 매료되고 있었다.
“A급 던전이라 그런지 몬스터들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저희도 이런 거 몇 번 봤어요.”
“자세하게.”
“맨날 어디 모여서 박 터지게 싸우고, 산 놈들은 시체 뜯어먹어요. 부락 습격할 때도 있죠.”
“몬스터들끼리?”
최현석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가 아는 몬스터는 원수라도 진 듯 인간에게만 달려들곤 했다.
“먹을 게 없거든요. 돌아다니는 동안 일반적인 동물은 한 마리도 못 봤어요. 저놈들도 쫄쫄 굶고 있는 거죠. 비전투 인원 빼고는 허구한 날 싸우고 다녀요.”
“동물 학대 같아요. 먹을 거 가져다줄까요?”
“그러다가 네가 처먹히니까 가만히 있으시고요. 아, 쟤한테는 반말해도 되죠?”
“본인한테 물어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유선우가 한강의 볼을 잡아당겼다. 찹쌀떡 같은 감촉에 중독될 듯하다. 주물럭거리면서 화제를 돌렸다.
“여기 생태계는 관심 없고. 그래서 어디로 가면 돼?”
“핫플레이스가 두 군데 있는데, 거긴 진짜….”
“왜?”
“그냥 지옥이에요. 토벌 실패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거죠. 숨어 있다가 돌아오는 놈들 잡는 편이 훨씬 나을걸요?”
“귀찮아. 어딘데?”
“가려고요? 모일 때마다 몇백은 우습게 넘는데. 그놈들도 다 죽을 때까지 싸우진 않아요. 어지간해선 식량만 챙기고 돌아가죠.”
설명하는 목소리가 무겁다. 당시의 기억은 활기 넘치는 강창민마저도 어둡게 만들었다. 그는 투쟁심이 넘칠지라도 개죽음을 당하는 건 질색이었다.
“잘됐네. 다 쓸어버리면 금방 끝나는 거 아냐.”
“에이, 시청자들도 말리잖아요. 이것 봐.”
웃어넘긴 강창민이 화면을 내밀었다. 방송에는 마침 후원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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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니, 지금 이게 왜 나와. 하여튼 센 척도 적당히 하시라 이거예요.”
“왜. 못 할까 봐?”
담담한 물음에 강창민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유선우의 말이 허세가 아님을 알았다.
만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얄팍한 사이. 하지만 유선우에 대해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자를 숭상하는 강창민에게 있어 유선우는 바라 마지않던 인물이었다.
“알았어요. 따라오세요.”
“오. 네가 운전한다고?”
화색이 돌은 최현석이 물었다. 강창민이 짜게 식은 눈으로 최현석을 쳐다봤다.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분위기 다 식었네. X밥은 조용히….”
“뒤로 올래?”
“죄송합니다. 오른쪽이에요.”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말고 알아서 조심하자. 벼르고 있으니까.”
“시정하겠습니다.”
군기를 잡은 유선우가 반쯤 걸레짝이 된 차 문을 걷어찼다. 그는 바깥으로 나간 뒤에 뻐근한 팔다리를 쭉쭉 뻗었다.
“창민아. 창 들고 따라와. 폰은 강이 주고.”
“어디 가는데요?”
군말 없이 창을 챙겨 나온 강창민이 물었다. 매를 맞아서인지 처음보다는 확연히 협조적이었다.
제자로 써먹으려면 예의는 기본이다. 흡족하게 미소지은 유선우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실력이나 좀 보자.”
소란을 들은 것일까. 삐쩍 마른 리저드맨이 언덕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굶주린 탓에 눈에선 광기에 가까운 감정이 넘실거렸다.
“저거 잡으라고요?”
“쫄려?”
“제가 그 정도로 허접은 아닌….”
“3분 줄게.”
이어진 말에 강창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농담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멍청히 서 있자 유선우가 엉덩이를 걷어찼다.
“늦으면 두고 간다. 뛰어.”
“하하, 형. 카레도 아니고 3분은 좀.”
“10초 지났다.”
“충성충성!”
강창민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미끄러졌다. 그가 보기에 유선우는 한다면 하는 남자였다. 남아일언중천금. 그 말이 그렇게 개 같을 수가 없었다.
파지직!
강창민의 다리에 전류가 흘렀다. 발자국을 새기듯 스파크와 모래알이 튀어 오른다.
조급한 속내와는 달리 발걸음은 안정적이었다. 리저드맨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의 발이 신묘하게 움직였다. 본능만이 남은 짐승들의 눈을 현혹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두 놈의 무기가 허공을 갈랐다. 숙인 머리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 강창민이 창을 옆으로 길게 눕혔다. 창대가 매섭게 휘어졌다.
퍼억!
둘의 몸이 짓뭉개졌다. 강창민은 회전력에 몸을 맡겼다. 힘의 방향대로 한 바퀴를 돌면서, 창을 작살처럼 비스듬하게 쥐었다. 창끝이 좌측을 점한 리저드맨의 복부로 빨려 들어갔다.
강창민은 중심을 유지한 채로 손을 미끄러트렸다. 창을 짧게 잡고 그물을 당기듯 팔을 굽힌다. 뭉툭한 자루가 뒤에서 다가오는 리저드맨의 목을 뚫어냈다.
어느덧 조급함은 씻은 듯이 지워져 있었다. 피가 끓어오르는 생사의 교차점. 강창민은 이 감각이 좋았다. 그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하하!”
창이 생기 없는 피를 머금었다. 노쇠한 데다 아사하기 직전인 놈들. 고전해서야 체면이 살지 않는다. 그는 모래 위에 핏자국을 새기며 종횡무진으로 창을 휘둘렀다.
유선우는 전투를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워하긴커녕 못마땅함에 혀를 찼다.
‘21살 먹고 아직도 중2병 달고 있네.’
허공섭물이고 뭐고 할 때부터 알아챘다.
이성결이 왜 그 꼬라지인지도 이제 알겠고.
‘실력은 괜찮은데 머리가 문제야.’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오른쪽을 곁눈질했다. 둥실 떠다니는 스마트폰이 강창민을 찍고 있었다.
강창민에게 정리를 시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말했던 대로 실력을 보기 위함.
다른 하나는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다.
‘오징어랑 있으면 잘생겨 보이거든.’
압도적인 모습만 보여주면 오히려 임팩트가 약하다. 평범한 헌터와 비교하면서 봐야 특별함이 와닿는다.
강창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사는 게 원래 이래. X만아.’
***
강창민이 더러워진 창을 털어냈다. 언덕을 오르는 발걸음에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부락을 정리하고 돌아온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3분 안 넘었죠?”
“응? 아, 어어.”
유선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3분이니 뭐니 정해두긴 했지만 세지는 않았다. 그야 가만히 서서 180초나 세고 있기는 싫으니까.
“그게 뭡니까.”
“아니야. 일단 들어가자.”
묘한 반응에 강창민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여태까지의 평가를 뒤집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한마디 더 뱉으려다가 괜히 얻어맞을 듯해 입을 다물었다.
둘은 너덜거리는 벤츠에 탑승했다.
다음으로 향할 장소는 이 던전의 핫플레이스.
강창민이 들뜬 음색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 데서나 막 싸우는 건 아니고요. 보니까 오아시스 근처에 몰리더라고요. 살기 좋으니까 그렇겠죠.”
몬스터의 생태계가 신기했는지 최현석이 흥미를 보였다.
“몬스터나 사람이나 똑같네.”
“그렇게 따지면 개나 고양이도 다 똑같아요. 살기 좋은 곳에 몰려드는 건 당연한 거니까.”
“관심 없고. 얼마나 걸려?”
“글쎄요. 전에는 조심조심 다녔었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애매한데, 차 있으니까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오아시스에 가까워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는 냄새가 실려 있었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코를 스쳤다.
코가 혈향에 익숙해질 즈음, 먼발치에서 늑대 무리가 달려왔다. 수는 어림잡아 서른. 핏물을 뒤집어쓴 외견이 썩 흉측했다.
전체적으로 부상이 심했지만 놈들은 승자였다. 그 증거로 입에는 전리품이 물려 있었다. 리저드맨의 팔, 트롤의 허벅지. 오늘 얻어낸 식량이었다.
만족할 법도 한데 늑대들은 차량을 향해 달려왔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눈에는 생기가 넘쳤다. 무리를 살펴본 유선우가 눈을 빛냈다.
“쟤가 그거 맞지? 정예라는 놈.”
“아마도요? 타이밍 좋은데요.”
선두를 맡은 늑대의 생김새가 특이했다. 큼지막한 덩치와 멋들어진 검은색의 털. 다른 늑대들의 윤기 없는 잿빛 털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길들여서 타고 싶은데… 몬스터는 조련이 안 되니까.’
아쉬워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입맛을 다신 유선우가 문을 박차고 훌쩍 뛰어올랐다. 이번에는 바닥을 구르지 않고 성공적으로 착지할 수 있었다.
“야, 뭐해!?”
최현석이 놀라 소리쳤으나 유선우는 제자리에서 뜀뛰기만 해댔다. 최현석이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순간,
파앗!
뒤처져 있던 유선우가 난데없이 앞에서 나타났다. 그의 신형이 총알처럼 쏘아져 늑대들을 향해 쇄도했다.
“저런 미친…. 다리가 안 보이는데요.”
“진짜 적응 안 되네. 내 친구 맞아?”
벤츠의 안에서는 경악에 찬 탄성이 터졌다. 둘이 속도에 감탄하는 와중에 한강은 다른 부분이 더 신기했다.
저만치도 빠르게 달리는데 먼지조차 일지 않았다. 이렇다 할 소음도 전혀 없어서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크르릉!”
유선우와 늑대의 간격이 줄어들고,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검은 늑대가 사선을 그리며 도약했다. 송곳니는 정확하게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허리를 비틀어 피한 유선우는 늑대의 갈기를 잡아챘다. 거칠게 잡아당기자 놈의 턱이 드러났다. 그가 느슨하게 쥔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늑대의 머리가 속절없이 허공을 날았다. 턱 위가 사라진 몸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놈의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유선우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잔존 정예 몬스터 수 : 27]
‘이런 것까지 알려주네.’
관리자도 아예 날로 먹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속으로 재평가를 내리면서도 몸은 쉬지 않았다.
늑대들은 우두머리를 잃었음에도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종족적인 특징보다도 인간에 대한 적의가 더 강한 듯했다.
간혹 달아나려는 개체도 있었으나 소수뿐. 그마저도 멀리 도망치기도 전에 유선우가 사체에서 뽑아 던진 송곳니에 찔려 죽었다.
늑대들이 전멸한 뒤에도 유선우는 차에 오르지 않았다.
놈들이 달려온 곳. 어렴풋이 보이는 저 너머에서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치열한 투쟁의 소리였다.
달리고 달려서, 유선우는 함성의 근원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