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던전 방송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볼락 사막]
- 던전 난이도 : A Rank
- 클리어 목표 : 사막 평정
- 클리어 조건
1. 던전 내 잔존 정예 몬스터 5체 이하
2. 던전 내 7할 이상의 집단 해산
잔여 입장 시간 : 00:15:31
게이트를 넘자마자 던전 정보가 나타났다. 메시지를 읽어내린 유선우가 혀를 찼다.
‘이러니까 실패했지.’
정보는 충분히 주어졌다.
집단의 해산이라는 말과 갖은 종류의 몬스터들.
무엇보다 언뜻 보기에도 광활한 사막.
몇 가지의 공략법이 유선우의 뇌리를 스쳤다.
우선 버티기. 놈들이 서로 물어뜯어 공멸할 때를 기다린다. 굉장히 오래 걸리겠지만 적극적으로 유인하면 기간은 단축된다. 아니면 싸우는 놈들을 찾아서 어부지리라도 노리거나.
애초에 단기 결전이 성공할 수 없는 던전이다. 물론 고만고만한 헌터들에 한해서.
유선우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폐로 스며드는 공기가 상쾌하다. 마력은 희박한 편이지만 테러 때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 이것으로 일말의 걱정마저도 덜어냈다.
“현석아, 이거 되게 귀찮을 거 같지 않냐.”
“입 말고 손, 손! 손쓰라고!”
“꺄아아아악!”
태평한 유선우와는 달리 최현석은 죽을 맛이었다. 수십의 몬스터가 게이트로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자칫하다가는 시작부터 차량이 찌그러질 판이다.
“아, 미안. 차 세워.”
유선우는 몸을 비틀어 차창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래부터 반쯤 나간 상태였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무리한 자세였기에 모랫바닥에 뒹구는 건 별수 없었지만.
“다음엔 오픈카로다가 가져오자, 제발!”
소리친 유선우가 주위로 눈알을 굴렸다.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즐비하고 폰이 둥둥 떠다닌다. 언덕 너머에는 만신창이인 토벌대까지 보인다.
“콜록! 아오, 초장부터 옷 버렸네.”
유선우가 먼지와 모래를 뱉어내며 마력을 퍼뜨렸다. 강대한 마력에 노출된 몬스터들이 주춤거렸다. 놈들의 울음소리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묻어나왔다.
쿵!
발을 구르자 유선우의 발밑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마력이 먼저 길을 뚫고, 마나가 뒤를 쫓는다. 부족한 마나 총량을 마력을 사용해 보충하는 것이다.
푸욱!
빙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솟아난 송곳이 몬스터들을 찔렀다. 시뻘건 피가 푸른색의 얼음을 적셔 색의 대비를 만들어냈다. 처참하게 꿰인 시체들과 백색 모래 위에 서리가 내렸다.
‘익숙해지긴 했어.’
각성자 심사 때와는 천양지차. 훈련의 성과가 눈에 띄었다. 몸 역시도 마나에 적응했는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만족한 유선우는 어느새 정차한 벤츠로 눈을 돌렸다.
“강아, 잘 찍었지?”
“눈 감고 있어서 모르겠어요!”
유선우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차에 도로 올라탈 때까지도 한강은 눈을 감고 있었다.
“됐어. 눈 떠.”
한강의 볼을 잡아당기면서 모니터링용 스마트폰을 쥐었다. 채팅창을 확인해보니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뭐라는 거야?’
채팅이 하도 확확 올라가 제대로 읽기도 힘들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누군가가 후원했다는 메시지뿐.
‘제대로 찍었나 보네.’
돈 벌기가 이렇게도 쉽다.
유선우가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었다.
한편 운전석에서는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 허허. 더럽게 세네.”
최현석은 몬스터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헌터 협회장이 유선우보다 강할까.
무의미한 의문이다. 서로 싸우지는 않을 테니. 하지만 무심코 상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현석이 경악에 차 있을 때, 모래언덕 너머에서 토벌대가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량을 곁눈질하면서도 헐레벌떡 게이트로 달려갔다.
유선우는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관심을 거뒀다. 그저 패잔병일 뿐이니 신경을 기울일 이유는 없었다.
“슬슬 가자. 좀 오래 걸리겠다.”
“어, 어.”
흠칫 놀란 최현석이 재차 운전대를 잡았다. 그를 위축시키던 불안감은 어느덧 연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이동하려 하자 남은 헌터 몇몇이 앞을 가로막았다. 선두에 있던 장민수가 고개를 꾸벅이며 답례를 표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됐어요. 안 왔어도 알아서 돌아갔을 텐데.”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하랑 클랜장 장민수입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청일 클랜 유선우입니다. 아직 명함은 없어요.”
장민수의 낯이 멍해졌다. 최근에 들어본 이름이다. 그는 한 클랜의 수장인 만큼 이슈에는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저, 혹시….”
“그 S급?”
말허리를 끊고 끼어든 것은 강창민이었다. 그는 느닷없이 나타난 강자에게도, 소문이 자자한 S급 각성자에게도 흥미가 있었다. 둘이 동일인물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그런데요.”
“와, 진짜로? 네가 왜 여기 있어?”
“…뭐 인마?”
유선우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강창민의 얼굴은 한강과 어울릴 정도로 앳됐다. 고등학생 같이 생겨서는 초면에 반말 찍찍 까고 있다.
당연히 유선우로선 화가 뻗쳤으나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기색이었다. 심지어는 차 안으로 손을 뻗어 유선우의 어깨를 두드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데서 다 보냐. 게이트만 안 떴어도 회사에서 봤을 건데. 아, 혹시 나 알아?”
“허허. 끝까지 반말하네. 혹시 뒤지고 싶….”
“선우야, 방송 중이다.”
사달이 나기 직전에 최현석이 흐름을 끊었다. 자신이 봐도 싸가지 없어 보이는데 유선우라면 어떨까. 그는 절친의 욱하는 성질을 익히 알고 있었다.
강창민의 돌발 행동에 장민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긴 대화를 할 생각은 없었다지만 분위기가 다 깨졌다.
“김천호 씨. 강창민 씨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죠. 같은 클랜이라 죄송합니다.”
“아니, 왜요? 제가 뭐 했다고.”
닥치라고 대꾸한 김천호가 강창민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유선우는 녀석이 빽빽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제 됐죠? 게이트 닫히기 전에 돌아가세요. 저흰 좀 바빠서.”
자기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 장민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혹시 다른 토벌대라도 편성됐습니까?”
“비슷한 셈이죠.”
“그럼 왜 아무도 안 들어오는지….”
“아, 몰라요. 들어오면 제가 다 조진다 했어요.”
“그게 무슨.”
“저 말고 두 명 더 있잖아요 여기. 셋이면 떡을 치고도 남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됐죠? 수고하세요.”
숫제 짜증까지 내고 있다. 장민수는 다급해져 물고 늘어졌다.
“피,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아오, 됐다니까 진짜!”
“지도라도 가져가시죠!”
“고맙습니다!”
때릴 기세였던 유선우의 태도가 돌변했다. 안 그래도 필드가 넓어 보여서 막막하던 참이었다. 돌아다니는 것도 평화롭고 좋겠다만 시청자는 싫증 낼 테니까.
장민수가 품을 뒤지는 사이 유선우는 반말 싸가지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눈동자에선 호승심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강창민이랬나?’
기억에 있는 이름이다. 이성결에게 들었던가.
하도 답답해서 누구한테 배웠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때 나왔던 이름이 바로 강창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창민의 손에는 창이 쥐어져 있었다. 눈에 차지는 않더라도 나름 때깔 나는 놈. 유선우의 입매가 미세하게 휘어졌다.
“저기요. 장민수 씨?”
“잠깐만 기다려주시죠. 여기 어디 있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필요한 거 더 생겼어요.”
“예?”
유선우가 차창 밖으로 검지를 내밀었다. 장민수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가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아, 창이요.”
“아니요. 저 새끼요. 창도 가져오면 좋고.”
“…예?”
“말 좀 전해주실래요? 보니까 쟤도 좋아할 것 같은데.”
예상대로 강창민이 잔뜩 들떠서 뛰어왔다. 그는 일주일간 뼈 빠지게 고생했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유선우는 손수 문을 열어주면서 승차를 권했다.
“야, 타.”
“몇 살인데 반말이야?”
“강아. 카메라 잠깐 가려봐.”
“네에.”
버릇없는 놈에겐 매가 약이다. 그는 강창민의 팔을 잡아채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강제적으로 좌석에 앉힌 뒤 머리만 빼고 꽝꽝 얼려줬다.
“개, 개차가워!”
“1시간이야. 반말 나올 때마다 10분 늘어난다.”
“이게 미쳤나. 이거 안 풀어?”
팍!
“악!”
일주일 새 길어진 턱수염을 뜯긴 강창민은 말문이 막혔다. 각성자가 된 이후로 이런 취급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10분 플러스 수염 하나야. 알간?”
“아니, 내 창은….”
팍!
말하자마자 두 번째 수염이 뽑혀나갔다. 눈물을 찔끔 흘린 강창민이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왜요? 반말 안 했는데!”
“내 창이 아니라 제 창. 초딩이야?”
유선우가 혀를 차고 밖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강창민이 끌려오면서 놓친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력을 이용해 염력과 비슷한 현상을 일으킨 것. 그 장면을 목격한 강창민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허, 허공섭물?”
“개소리할 때도 맞는다. 조심해.”
툭 내뱉은 유선우가 차 내부로 창을 끌어당겼다. 휴대성을 의식했는지 창은 세 갈래로 분리되는 놈이었다. 창을 분리해서 문을 닫고 나자, 문득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지도 준다더니 왜 안 줘?”
“내, 아니. 제 주머니에 있어요.”
“그게 왜 너한테 있어?”
“뽀렸거든요.”
유선우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강창민을 바라봤다. 죄책감은커녕 자부심마저 넘치는 표정. 이놈의 학창시절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용인 지부 사람은 왜 하나같이 이상하냐. 몇 살이야?”
“21살인데요.”
“형이라 불러. 딱 한 번만 풀어준다.”
구속을 풀어주자 강창민이 강아지처럼 몸을 털었다.
“어으, 추워.”
“돌아가고 싶으면 가도 돼. 줄 거는 주고.”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재밌어 보이는데.”
유선우는 말없이 강창민의 눈을 들여다봤다. 짧은 대화였지만 대략적이나마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성결보다도 투쟁심과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놈.
‘이런 타입은 잘 알지.’
죽기도 잘 죽지만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타입. 그로서는 꽤 좋아하는 인종이었다.
“그럼 네가 안내해. 제일 가까운 곳부터.”
“쭉 가다 보면 리저드맨 부락 있어요.”
“조수석 가서 앉아. 강이는 카메라 돌리고.”
“네에.”
본격적으로 사막 탐방을 할 때가 되었다.
***
벤츠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사막을 가로질렀다.
넷 중 가장 고생하는 인물은 단연코 운전을 맡은 최현석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망할, 망하알! 다 꺼져어어어!”
“크르릉!”
“키에에엑!”
달리다 보면 아래에서 샌드웜이 튀어나오고. 하늘에서 와이번과 가고일이 낙하하면서 이빨을 내민다. 늑대들까지 차에 달려들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와오. 스릴 미쳤다.”
방송용 폰은 어느덧 강창민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한강의 체력 안배를 위함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수석에서만 찍어도 훌륭한 장면이 나왔다. 대체 누가 시작했는지 채팅창엔 느낌표만이 가득했다.
“오빠, 뒤에도 와요!”
차 유리는 이미 죄다 깨진 상태였다. 깬 것은 몬스터가 아니라 유선우였다. 사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 어어어? 저 새끼 좀 어떻게 해봐!”
뒤이어 최현석이 우는 소리를 냈다. 전방에서는 와이번 하나가 입을 벌린 채 달려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악취가 차 내부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푸욱!
유선우가 집어던진 꼬챙이가 와이번의 목을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절명한 놈의 시체가 차체에 부딪혀 지면을 뒹굴었다.
덜컹!
차가 흔들릴 때마다 최현석이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미쳤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서! 유선우 이 새끼야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