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화
A급 게이트
이머전시는 무슨. 유선우의 표정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저 감성뽕 오지게 차올라 있었는데.”
“장난칠 때 아닙니다. 한강 씨, 최현석 씨!”
깡, 깡!
어디서 가져왔는지 쇠막대기로 냄비를 후려친다. 난데없는 소란에 한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뒤척거렸다.
“우응….”
한강은 남정네 텐트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여분의 텐트는 있었는데, 본인이 한사코 거절했다. 게이트 앞에서 혼자 있기는 무섭다나 뭐라나. 최현석이 난색을 내비쳤으나 그녀는 완고했다.
반면에 유선우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한강을 여자로 보기가 힘들었다.
‘잠버릇이 왜 저래.’
뒤척이다가 매끈한 복부가 드러났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따뜻하게 잘 자라고 이불이나 덮어주고 싶을 따름이다.
“끄응. 왜 하필 새벽에 지랄이야.”
아침에 약한 최현석이 좀비처럼 흐느적대며 일어났다. 그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더니 웬 손거울을 꺼냈다.
“7시인데 새벽은 무슨. 아침부터 뭐해?”
“눈곱은 떼야지. 겸사겸사 머리 정리도 하고.”
“얼굴값 하네.”
“내 재산이야. 스크류바 먹어도 기사 나오는데 조심해야지.”
태평한 분위기에 조승우는 할 말을 잃었다. 이렇다 할 경험이 없는 교육생들은 둘째치고, 최현석마저 외모 관리나 하고 자빠졌으니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아니지. 괜히 앞에서 설치는 것보다는 낫겠다.’
조승우는 셋을 전력으로 세지 않았다. 실력을 의심한다기보다는 손님을 대하는 감각이었다.
“전 먼저 가 있을게요. 한강 씨는 맡기겠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고생은 이제 하는 거죠.”
유선우는 등을 돌린 조승우를 눈으로 배웅하고 하품을 뱉었다. 그는 한강을 깨우지는 않았다. 업어 가도 안 깨어날지 궁금해서. 또 반 정도는 좀만 더 자라는 배려도 있었다.
준비를 끝마친 최현석이 제 뺨을 두어 번 두들겼다. 그는 거울을 대충 집어넣고는 유선우를 응시했다.
“야.”
“안 물어봐도 잘생겼어. 좀 짜증 나게.”
“그게 아니라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 같거든? 그만둘 생각 없어?”
최현석에게 이번 일은 과장 없이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여기까지 오기는 왔다만, 막상 때가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선우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침대에 웬 여자가 발가벗고 누워 있다고 치자. 근데 얼굴은 오지게 예쁘고 몸매도 좋아. 가만히 있을 거야?”
“집에 데려다주나?”
“아오, 씹선비. 말이 안 통하네.”
최현석은 자기가 더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면서 번호도 받고 줄 만들어 놔야 오래오래 만나지.”
“…대단한 건지 등신인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런 얘기야.”
“무슨 소린지는 알겠어. 믿을게.”
마음을 다잡았는지 최현석이 히죽 웃었다. 그는 먼저 텐트를 나서서 CHC 명의의 벤츠에 탑승했다.
유선우도 한강을 업은 채 뒤를 따랐다. 좌석에 앉을 때까지도 한강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는 얼음을 만들어 그녀의 등에 집어넣었다.
“꺄악!”
효과는 직방이었다. 한강이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엄한 상상이라도 했는지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저 납치 된 거예요? 저 맛없어요. 집에 돈도 없고요….”
“응. 카메라만 잘 들면 풀어줄게.”
한강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운전석에서 스마트폰을 조작하던 최현석이 물었다.
“바로 시작하면 돼? 나도 이건 처음이라서.”
“줘봐. 어그로 좀 끌어줘야지.”
폰을 넘겨받은 유선우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제목을 설정했다.
- [강남역 A급 게이트 실황][CHC A급 헌터 최현석]
벤츠 타고 던전 갑니다^^7
뭐라고 싸질러도 어그로는 끌린다. 최현석의 이름만 있다면.
“창문 좀 열어줘.”
“아, 그래.”
“강아. 입장하면 폰 넘길 테니까 창문 밖으로 띄워.”
“네, 네?”
“어른이잖아.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요!”
“좋아.”
유선우는 한강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 방송을 확인했다. 최현석의 인기가 대단하긴 한지 시청자가 모여들고 있었다.
- 제목 무엇ㅋㅋ 현석이 어딨누
- 사칭이죠. 우리 오빠가 왜 이런 저급한 방송을 ㅡㅡ
-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길에 봅니다^^
‘진짜 오랜만이네.’
무려 5년 만의 방송이다. 플랫폼도 다르고 자신의 이름을 걸지도 않았지만 상관은 없다.
30분. 딱 30분만 지나도 이들 모두가 환호하게 될 테니까.
유선우가 좌석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카메라를 운전석으로 내밀자 최현석의 표정이 급변했다.
경직되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더니,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돌변한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와. 방송인이긴 한가 보다. 표정이 확 바뀌네.”
“무슨 소리야. 하하.”
최현석이 시치미를 뚝 뗐다. 그의 얼굴이 찍히자 채팅창이 달아올랐다.
- 앗, 아앗...
- 탁탁! 탁탁탁탁!
- 미친 쉒ㅋㅋㅋ 얘 남자다
- 앞뒤가 무슨 상관이지?
한국에는 왜곡된 성욕을 가진 사람이 많은 듯했다. 이딴 관심은 줘도 안 갖겠다. 쩝 입맛을 다신 유선우가 작게 소곤거렸다.
“인터넷.”
[만년설의 수호자가 말투가 불손하다고 말합니다.]
[공손하게 부탁하시겠습니까?]
[Yes / Yes]
“닥치고 연결해. 안 할 거면 앞으로 나 볼 생각하지 마.”
강짜를 부리자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났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침울해합니다.]
[Loading 0%]
드디어 됐구나. 유선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최현석에게 폰을 넘겨주곤 자신과 한강을 화면에 담게 했다.
“게스트 유선우입니다. 청일 소속이고요. 강아?”
“어? 지금 방송하는 거예요?”
“…아니, 몇 번을 말했는데.”
“장난인 줄 알았어요.”
한강이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도 방송 자체엔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강이에요! 그 뭐더라. 카메라 드는 사람?”
“카메라맨.”
“저 맨 아닌데….”
“카메라우먼 하든가.”
“네, 그거예요. 헤헤.”
최현석이 채팅을 눈으로 읽어내리면서 실실거렸다. 불평하는 의견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반응 되게 좋다. 귀엽고 잘생겼대.”
“뭘 좀 아시네. 말은 이거면 됐고, 슬슬 시작하자. 강아?”
“네!”
이리저리 옮겨가던 폰은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았다. 한강이 차창 밖으로 폰을 띄우고 안정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녀는 세밀한 조작이 특기이기도 했고, 유선우의 폰으로 모니터링도 하니 어렵지는 않았다.
“이야. 사람 잘 뽑았네.”
한강이 띄운 폰은 흔들리지도 않고 주위의 모습을 담아냈다. 게이트를 둘러싼 헌터들. 각각 무기를 쥐고 있기 때문인지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 이거 안 잘려? 근데 개멋있네
- 나 현직 헌터인데 스쿼드 미쳤다; A급이 몇 명이야 ㄷㄷ
- ㄴ인증 없으면 뭐다??
성질 급한 몇몇은 재촉하기도 했지만 그뿐. 재촉한다고 게이트가 빨리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자 수는 네 자리를 가뿐하게 돌파했다. 최현석을 위주로 토크만 해도 시청자를 잡아둘 수는 있었다.
방송을 시작한 지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전방에서 굵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준비하세요!”
하도 우렁차 후방에 있는 차량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한강과 최현석은 눈조차 깜빡 않고 게이트를 주시했다.
둘과는 달리 유선우는 허공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지쳐서 헥헥거립니다.]
[Loading Complete!]
“현석아.”
“후욱, 후욱!”
최현석이 숨을 몰아쉬었다. 불길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는 심각하게 탈주를 고민하다가 끝끝내 각오를 다잡았다.
차에 시동이 걸린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스트리머도 시청자들도 마음을 졸이고 게이트를 응시했다.
이윽고 게이트가 입을 벌렸다. 찢어진 공간에서 온갖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선우는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뱃심으로 소리쳤다.
“가즈아아아아!”
CHC의 벤츠가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활짝 열린 게이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난데없는 돌진에 당황한 헌터들이 자리를 피했다. 맨손으로 트럭을 들어 올리는 초인이라도 태생은 일반인. 차가 지나가면 피하는 게 상식이다.
“뭐야, 저거 누구야!”
“미친 새끼…!”
누군지도 모를 미친놈 탓에 경계가 풀어졌다. 비행 몬스터에게서 시선을 떼버렸다는 것. 한순간의 실책이 끔찍한 결과를 낳을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모두가 패닉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조승우는 애초부터 유선우의 돌발 행동을 우려하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비교적 거리는 멀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가 특색 없이 평범하게 생긴 장궁을 겨눴다.
화살은 없었다. 필요하지도 않다. 활시위를 당기자 황금빛을 내뿜는 형체가 활에 메겨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았다. 쏘아진 빛이 셋으로 갈라져 와이번들의 턱을 관통했다.
조승우는 곧바로 다음 화살을 준비했다. 빛의 화살촉이 벤츠의 타이어를 향했다. 그가 턱 아래까지 당긴 손을 놓으려는 찰나.
“비켜요, 비켜!”
차창 밖으로 반쯤 튀어나온 유선우가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바닥에서 얼음이 솟아났다.
훈련 때와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벤츠를 호위하듯이 양옆으로 치솟는 가파른 빙벽.
조승우가 쏜 화살은 구멍을 뚫는 선에서 그쳤다. 마나에 마력까지 혼합해서 만든 얼음은 미친 내구력을 자랑했다.
‘저게 사람인가?’
어안이 벙벙해진 조승우가 활을 툭 떨어뜨렸다.
그러든 말든 이후로도 유선우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얼음 꼬챙이를 만들어낸 그가 몬스터들을 요리조리 찌르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점은 꼬챙이의 길이가 5m를 훌쩍 넘긴다는 것. 다루기 힘들 텐데도 헛손질은 한 번도 없었다. 급소를 꿰뚫린 몬스터들이 맥없이 땅으로 추락했다.
“이게 대체 뭔.”
조승우는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날아다니는 몬스터가 격추당하는 모습만이 보일 뿐.
점프라도 해서 엿보고 싶었으나 움직이기엔 겁이 났다. 저 꼬챙이가 자신의 목마저 찔러버릴 것만 같았다.
놀란 것은 조승우뿐만이 아니었다. 우연히도 빙벽 사이에 남겨진 여성이 있었다. 이지현은 꼬챙이를 휘두르는 유선우를 보곤 털썩 주저앉았다.
“머, 멋있어…….”
병신 같지만 멋있다.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다 꺼져, 새끼들아!”
유선우가 우렁차게 소리치며 계속해서 손을 휘둘렀다. 뒤이어 나타난 오우거는 함성조차 지르지 못했다. 지구 공기를 마시자마자 꼬챙이가 심장을 찌르고 갈라버린 탓이다.
차량이 이지현을 지나쳐가기 직전. 유선우가 소리쳤다.
“누나, 괜찮아요? 조심해요!”
이지현은 가슴이 조여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 극적인 만남을 기대해왔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아름답게 포장됐다.
“네, 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벤츠는 피가 흩뿌려진 길을 달렸다. 유선우 파티는 한창 몬스터가 뛰쳐나오고 있는 게이트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