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A급 게이트
유선우는 며칠간 마나를 운용하는 훈련에 몰두했다. 다른 교육생들이 운동하든 수업을 받든 상관없이.
문제 될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았다.
‘일터는 개척하는 거지.’
이전과는 다르게 동기들의 뒷말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유선우를 두려워하지 않는 하민성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질문까지 해올 정도였다.
다른 변화를 꼽자면 이진철이 아부를 떨게 됐다는 점. 벌벌 떨면서도 간신처럼 웃으면서 말을 붙여오기 일쑤였다. 속이 훤히 보이는 작태였기에 유선우로서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줄타기야. 뒤질라고.’
여러모로 맘에 들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커피를 대령해주니 편하기는 편했지만.
일 외적으로는 가족과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차세정이나 급격히 한가해진 최현석과도 하루가 멀다고 만났다.
CHC는 조용했는데, 이에 대해서 최현석이 하나의 추측을 꺼냈다. 시국이 어수선해 몸을 사린다는 것.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유선우는 잊고 있던 김광수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놀러 다니나 싶었더니 늦게나마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더라. 뭐라고 할지, 자신만큼이나 우여곡절 많은 인생이었다.
이윽고 찾아온 수요일.
단단히 채비를 마친 유선우는 홀로 현관을 나섰다. 평소엔 유선혜와 같이 출근하는 편이지만 그녀는 한창 C급 던전 토벌에 참여하고 있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온 유선우는 돌계단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엉덩이에 닿는 감촉이 서늘하다. 기지개를 켜는 와중에 동네 고양이가 다가오더니 바닥에 배를 까고 드러누웠다.
“날씨 좋고, 공기 좋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아침이다.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맺혔다. 빳빳한 양복만 입다가 편한 후드티 차림으로 나와서 그런지 평화가 새삼스럽다.
적당히 평온을 만끽하고 있자니 봉고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것은 활기찬 인상의 청년이었다. 유선우에게 다가온 청년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승우입니다.”
“축구 할 때 공격수 하시죠? 아니면 골키퍼?”
“아니요. 수비수 하는데요.”
“아깝네. 잘하실 것 같은데.”
“하하. 저도 그분들 좋아해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유선우가 자신을 소개했다.
“다들 좋아하죠. 유선우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A급 게이트가 보통 위험한 게 아닌데.”
“정말로 괜찮으십니다.”
긴장감이 너무 없어 도리어 물어본 사람이 머쓱해졌다. 조승우가 어색하게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봉고차를 가리켰다.
“슬슬 가시죠. 한강 씨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말마따나 차 내부에는 선객이 있었다. 유선우의 부탁으로 미리 픽업해온 것. 당연히 본인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한강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유선우는 오들오들 떠는 그녀의 머리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아침부터 왜 그래.”
“저 안 가면 안 돼요…?”
“응. 안 돼.”
단호하게 퇴로를 막았다. 일류 카메라맨을 놓칠 수는 없다. 오늘을 대비해서 며칠간 연습도 해왔으니 하차하기엔 늦었다.
“진짜…?”
“아니, 왜 그래? 물어봤을 때는 괜찮다더니.”
“지금 보니까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 같이 가주면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구두 약속은 언제나 애들에게 잘 먹히기 마련. 별수 없이 공수표를 던지자 한강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녀가 커진 눈알을 굴리면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진짜?”
“고럼! 오빠 못 믿어?”
“으음….”
한강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껌이네. 속으로 중얼거린 유선우가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차는 우회하는 일 없이 곧장 강남역으로 향했다.
유선우가 짠 파티의 인원은 본인을 포함해 총 셋. 조승우는 제외고, 남은 한 명과는 현지에서 합류할 예정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9시를 넘은 시점이었다. 출입을 통제하는 검문소를 거치느라 조금 시간이 낭비되었다.
차에서 내린 유선우는 어깨를 풀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강남역 1번 출구 근처에는 이미 몇몇 헌터가 자리해 있었다.
무기를 손질하는 이도 있었고, 뚱한 낯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이도 있었다. 전투를 대비하는 헌터들을 본 한강이 탄성을 흘렸다.
“와, 되게 영화 같아요.”
“영화보다는 그냥 캠핑 온 것 같은데.”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나 봐요. 난 막 떨리는데.”
“금방 적응돼.”
뒤이어 차에서 내린 조승우가 트렁크를 열었다. 준비할 장비가 많다 보니 내부가 터질 듯이 가득 차 있었다. 꺼내기는 또 얼마나 귀찮을지. 조승우는 고개만 뒤로 돌려 유선우에게 부탁했다.
“도와주실래요?”
유선우는 양팔의 소매를 걷고 당연하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할게요.”
“장난이에요. 다 꺼내면 되죠?”
트렁크에는 별의별 물건이 다 있었다. 침낭과 소형 텐트에 담요와 랜턴. 스마트폰 충전기와 카메라 삼각대 등등. 전부 꺼낸 뒤에 조승우가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도와주려던 유선우의 근처에 차 한 대가 정차했다. 검은색의 벤츠. 세 번째 파티원, 최현석이 차에서 내렸다.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유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 바꿨어? 원래 하얀색 아니었나.”
“바꾼 건 아니고. 이거 회사 차야.”
“…가져와도 돼?”
“당연히 안 되지. 근데 내 차 쓰긴 아깝잖아.”
앞으로 뭘 할지 알면서도 회사 차를 뽀려왔단다. 유선우는 친구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다가도 결국 웃어넘겼다.
“꼬우면 나한테 오라 그래.”
“그럴 거야.”
잠시간 떠든 뒤에는 최현석에게 한강을 소개했다. 아직은 임시 팀이지만 유선우는 이번 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김정수가 제시한 파이는 나눠 먹어도 배가 찰 만큼 컸다.
최현석이 말을 건네려 할 때 한강의 눈이 빛났다.
“패, 패, 팬티예요!”
“네?”
“아니, 팬이에요오….”
초면부터 실수한 한강이 시무룩해졌다. 연예인을 생전 처음 봐서 말이 헛나와버렸다.
팀끼리 통성명하는 중에 준비를 끝마친 조승우가 끼어들었다.
“어라, 최현석 씨도 오셨네요. 들어가서 쉬고 계시죠.”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배는 무슨. 헌터 판에 선후배가 어딨다고요.”
조승우는 헌터 사회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청일의 현역 A급 중에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 저번 주에는 바빴던 탓에 토벌대에 끼지 못했지만, 자격은 차고 넘쳤다.
‘그냥 운전기사나 매니저는 아니었구나.’
어쩐지 돌아갈 생각을 안 하더라니. 안내 쪽이 덤이고 게이트 정리가 주 업무였던 모양이다. 유선우는 대화를 주고받는 둘을 힐긋 보곤 텐트로 들어갔다.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자 이전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431-9 차원에서는 이럴 때면 항상 창을 손질하곤 했었다.
‘창이 없으니 허전하네.’
놓고 온 국보급의 무구들이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허전함을 달랠 겸, 시간을 죽일 겸 스마트폰을 꺼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기다릴 때.
***
“습격입니다!”
불침번의 외침이 귀를 때린다. 잠들었던 감각이 머리에 찬물을 부은 듯 순식간에 깨어났다.
몸을 일으키던 장민수가 쓰러질 듯이 휘청거렸다. 피로가 축적된 탓이었다.
“괜찮습니까?”
가까이 있던 김천호가 장민수를 부축했다. 장민수는 머리를 끄덕임으로 대답하고 상황을 살폈다.
어딜 봐도 새하얀 모래가 가득하다. 모래는 저 스스로 은은하게 빛나면서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경치. 처음에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감상이 정반대로 변해버렸다. 빛나는 모래 위에서 헌터들은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없었다.
사막을 달리는 잿빛 늑대들은 야영지를 발견하면 교묘하게 포위했다. 하늘을 누비는 가고일들은 이따금 불침번에게 달려들었다. 이외에도 온갖 종족들이 밤낮없이 습격을 가해왔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 와이번 네 마리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새끼인지 여태까지 봐왔던 놈들보다는 체구가 작았다.
‘개 같은 놈들.’
장민수가 입술을 짓씹었다. 아릿한 고통에 정신이 선명해졌다. 둘러보니 헌터들은 전부 깨어난 상태였다. 던전에서 푹 잠들 수 있는 낙천가는 적어도 이곳엔 없었다.
“당장, 콜록! 당장 요격합니다!”
장민수의 외침에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거리 계열이 하늘에 능력을 쏴대고, 근접 계열은 엄호를 맡았다.
바람과 화살이 지나가고 불꽃마저 피어오른다. 장관이긴 했다만 와이번의 급소에 닿은 건 둘뿐이었다. 대부분은 목표를 크게 벗어가거나 다리와 날개를 스쳐 갔다.
첫날과 비교해 명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일주일간 쌓인 피로는 모든 면에서 악영향을 끼쳤다.
와이번 둘이 추락하고 추가로 한 놈의 날개가 찢어졌다. 비교적 멀쩡한 한 놈은 고도를 높이더니 어딘가로 달아났다.
장민수는 와이번의 추락 위치를 계산해 달려갔다. 청일의 두 헌터, 강창민과 김천호가 같은 행동을 보였다. 강창민은 젊음을 자랑하듯 능력까지 써가며 선두를 달렸다.
‘저러다가 훅 가지.’
강창민을 곁눈질한 김천호가 혀를 찼다. 그는 위치가 겹친 탓에 방향을 바꿨다.
셋은 각각 한 놈씩 맡아 뒤처리에 착수했다. 김천호가 담당하게 된 와이번은 제법 팔팔한 상태였다.
“키에에엑!”
“아오, 냄새. 대체 뭘 처먹는 거야?”
김천호는 악취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번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퍽!
김천호가 와이번의 턱을 걷어차고 날갯죽지를 붙잡았다. 마나를 끌어 올리자 와이번의 몸 곳곳이 부글부글 끓어댔다. 이내 놈의 전신이 크게 부풀더니 안쪽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김천호는 냄새가 달라붙은 손을 털면서 야영지로 돌아갔다. 야영지는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한 놈을 놓쳐버린 이상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원군을 불러올 우려가 다분했다.
다른 와이번의 숨통을 끊고 온 장민수는 헌터들을 살펴봤다. 75인이었던 토벌대. 인원은 어느새 40명을 밑돌고 있었다.
‘이미 한계야.’
체력은 물론이고 정신력도 바닥을 치고 있다. 이대로 대규모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절반은 전투 불능이 될 터다.
토벌은 실패했다. 악재가 겹치고 겹쳐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첫날부터 샌드웜에게 기습을 당해 보급 차량이 파괴됐다. 힐러 셋이 사흘 만에 죽었고, 의지하던 염력 사용자마저 나흘째에 죽었다.
애초에 공략의 조건부터가 여타 던전들과는 달랐다. 이곳은 절대 단기로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 아니었다.
장민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짜증스럽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가오는 한 여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징징대고 시비를 걸어서 사기를 죄다 깎아 먹는 골칫덩이.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긴. 앞으로 어쩔 생각이에요?”
“버텨야겠죠. 머지않아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하,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나 모르겠네요.”
“…이러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여자, 김지선이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당신이 역할만 제대로 했어도 이 꼴은 안 났을 거예요. 알아요?”
장민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실책을 저질렀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잘못된 지시로 죽은 사람마저 있고,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연해야 할 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았다.
“시간 없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사죄는 돌아가서 하겠습니다.”
“당신이 전부 책임져요. 토벌 망한 것부터 죽은 사람들 유가족까지. 자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 알죠?”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김지선이 날카롭게 노려보고는 등을 돌렸다.
“뻔뻔한 새끼.”
들으라는 듯 나직한 욕설에 장민수가 이를 악물었다. 이만큼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은 김지선이 유일하다. 다만 노골적이지 않을 뿐이지 원망의 시선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살아 돌아가도 문제겠군.’
이번 기회를 통해 클랜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꼴. 클랜에 피해가 갈 것은 분명했다.
장민수는 눈가를 파들파들 경련하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는 아직 하얀 모래 위에 있었다.
야영지를 정리한 토벌대는 이동을 개시했다. 열 명이었던 짐꾼은 둘로 줄어 있었다. 토벌대보다는 피난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행렬이었다.
그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사막을 돌아다녔다. 일주일간 지도를 작성해왔으나 성과는 썩 좋지 않았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을 향해도 몬스터뿐. 언덕 너머에 그림자가 보일 때마다 숨을 멈춰야만 했다.
잊을 만하면 전투가 벌어졌다. 어느덧 텐트도 펼치지 않게 됐다. 모래에 앉아서 쉬었고, 걸으면서 텁텁한 칼로리바를 씹었다.
게이트 발생만을 기다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먼발치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게이트다. 그 불쾌한 소리가 천상의 음악 같았다. 쥐 죽은 듯 조용하던 행렬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떠, 떴다! 하하하!”
“살았다, 살았다고! 빨리 갑시다!”
“하, 하하. 으흐흑…….”
재촉하는 이는 있었지만 누구도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게이트의 소음에 이끌리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니까. 중요한 순간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었다.
산만한 공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꼴은 엉망일지라도 그들은 하나하나가 이름 높은 헌터였다.
“근처입니다. 신중하게 가죠.”
귀환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
구석에 기대어 앉아 잠들어 있던 유선우가 눈을 떴다. 얕은 잠이었기에 졸음기는 금세 달아났다. 전투 직전이면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는 게 그의 버릇이었다.
‘괜히 옛날 생각나네.’
철의 감촉이 손바닥을. 녹슨 쇠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고동이 빨라지고 시야가 트여간다. 눈꺼풀을 닫고 숨을 고르는 찰나에 텐트의 출입구가 열렸다.
불침번을 맡고 있던 조승우가 텐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머전시입니다. 일어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