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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39화 (39/179)

제 39화

A급 게이트

- ……예?

“들으셨으면서 뭘. 제가 간다고요.”

-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오히려 자리 안 내주시면 서운할지도 모르죠.”

계약은 이미 끝냈다지만 김정수를 휘두를 패는 남아 있다. 월급 루팡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아무리 능력이 넘치더라도 일을 안 하면 청일에는 쥐뿔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 혹시 교육생이라 좀 힘든가요?”

- 글쎄요. 불가능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짜요? 바로 다음 주인데?”

- 선조치 후보고라는 말이 있죠. 뒷감당할 시간은 많습니다. 토벌대 참여도 아니니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겁니다.

파격적인 발언에 유선우가 키득거렸다.

“말이 좀 통하시네.”

- 반대해도 가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에이, 제가 그렇게 막 나가기는 해요.”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진 뒤에 덧붙였다.

“어쨌든 부탁드릴게요. 이거 무단결근 아니죠?”

- 물론입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사는 데는 자극도 좀 있어야 하거든요.”

유선우는 정기적으로 지랄해줘야 성이 차는 인간. 자극받기에는 이만한 무대가 따로 없다.

- 알겠습니다. 아마 수요일부터 대기하셔야 할 텐데, 그때 그쪽으로 인원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고생하세요.”

김정수와의 통화는 끝났으나 볼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선우는 파티원으로 점찍어둔 인물에게 연락을 넣었다.

통화는 길고도 험악했다. 고성이 몇 번이나 터져 나왔고, 유선우는 끊임없이 설득했다. 그는 고생 끝에 겨우겨우 긍정적인 대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준비는 다 됐고.’

이제는 자신의 훈련에 집중할 때.

그는 들뜬 발걸음으로 모의전투실을 향했다.

***

이성결은 제3 모의전투실을 미친 듯이 누비고 있었다. 훈련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지 않았건만 그의 몸에는 땀방울이, 마음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깝치지 말걸!’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와중에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달리는 도중, 문득 오싹함이 스쳤다.

다리 근처에서 미세히게 한기가 느껴졌다.

부웅!

이성결은 확인조차 않고 척수 반사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허벅지 아래를 한 번 휩쓸자 때마침 바닥에서 얼음이 튀어나왔다.

순수한 마나만으로 생성된 원기둥형의 얼음. 완벽한 타이밍으로 휘둘러진 창은 얼음을 깔끔하게 부숴냈다.

이성결이 쥔 무기는 목창이 아닌 헌터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애창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 산 만큼 값을 하기는 했다. 무른 놈이었다면 진즉에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리라.

다급한 이성결과는 반대로 유선우의 목소리는 태평했다.

“맞으니까 늘긴 하나 보네요. 5분 전까지만 해도 다 맞아주더니.”

“허억, 허억!”

“페이스 좀 올립니다. 조심해요.”

“살려, 허억! 제발, 허어억!”

이성결은 분비물을 뚝뚝 흘리다가 변화를 감지했다. 대체 언제부터인지 발밑이 스케이트장처럼 미끄러웠다.

이상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 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추진력을 멈추지 못한 그가 저공비행을 시작했다.

“어, 어어어어!”

얼굴과 바닥이 랑데부하기 직전.

이성결은 순간 세상이 느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본래 그의 성취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극한에 이른 집중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기물 파손 X 까!’

콰직!

이성결이 이를 악물고 창을 지면에 꽂았다.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몸을 지탱해내곤 한쪽 무릎을 꿇는다. 겨우겨우 엎어지는 것을 면한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 며칠간 뼈에 사무치게 배우게 된 것이 있다. 무에 관련된 깨달음이 아니라 유선우의 성격에 대해서. 저 악마가 휴식 시간 따위를 줄 리가 없다.

삐걱거리는 몸을 가눈 이성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는 수십의 얼음덩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 미친…….”

이내 얼음덩이가 쏘아지기 시작했다. 일제히 쏘아졌다면 그나마 편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유선우는 고통을 주는 데 있어선 둘도 없는 프로였다. 얼음덩이들은 교묘하게 시간차를 두고 날아들었다.

‘빠르지는 않아.’

문제는 달려서 피하려니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겁에 질려 거북이처럼 웅크린다?

남자에게는 줘도 안 가질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그는 두려움에 굴복해 꼴사납게 쭈그리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이성결은 결사의 각오로 빙판에서 창을 뽑아냈다.

얼음덩이가 눈앞으로 닥쳐온 찰나.

붕 뜬 감각이 그의 몸과 정신을 지배했다.

그는 의식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본능에 따라 몸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고통 대신에 묵직한 무언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성결은 뒤늦게 자신이 모든 투사체를 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벽 너머를 엿본 그는 환희에 차올랐다.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그를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무아지경의 춤사위에 새로운 동작이 섞였다. 이성결이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일격은 얼음덩이를 가뿐하게 갈라냈다.

이성결은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까마득하던 언덕의 정상에 잠시나마 발을 내딛는 감각.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상황이 이상해졌다.

‘언제 끝나는 거지?’

최소 마흔 개는 피하고 요격했다. 그는 옛적에 한계에 다다라서, 억지로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그런데 도저히 공격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이성결은 죽을 맛이었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애초부터 유선우의 훈련이었으니까.

‘좀 재밌네.’

유선우는 예전부터 마법사를 부러워해 왔다. 멀리서 손만 휘저어대니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각적으로도 훌륭해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더라.

지금에 와서 마법 비스무리한 능력을 얻으니 즐거울 수밖에. 마나 사용에 중독될 우려도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 못 참겠으면 북극 가면 돼.’

지구온난화도 심한데 북극 살면서 빙하 만들어주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선우는 아직도 멀쩡한 이성결을 주시했다.

그는 쓰러지지 않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쓰러뜨리면 더 재밌으니까.

섬뜩하게 히죽거린 유선우가 손을 가볍게 떨쳤다. 마나의 실로 연결된 얼음덩이들이 손의 지휘를 따랐다. 이성결을 포위하듯 둘러싸다가, 허공으로 훌쩍 떠오른다.

“쿨럭, 크허억!”

공격이 멈추자 이성결이 풀썩 주저앉았다. 무리한 동작을 반복한 반동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그만, 그마안! 허어억!”

그는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유선우의 맹공을 자신의 힘으로 견뎌낸 것이다. 절로 입가가 느슨해졌으나 전부 부질없는 착각이었다.

“머리 조심.”

유선우가 마나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지휘에서 벗어난 얼음덩이들은 중력의 지배를 받았다.

퍼버버벅!

“아, 아! 아악, 아!”

이성결은 잔뜩 웅크린 채로 머리를 감쌌다. 고통 앞에서는 자존심도 사라지기 마련. 불과 수십 초 전에 했던 결의가 물거품이 됐다.

얼음벼락이 멈춘 뒤에 유선우가 툭 내뱉었다.

“5분 쉽니다.”

정신이 아득해진 이성결은 새삼 깨달았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

유선우는 게으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가지기란 어려운 법. 그가 살아온 인생은 나태란 말과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에 유선우는 삶의 관성에 따라 휴일을 반납했다. 무려 주말에 출근한 그는 뜻밖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아?”

제3 모의전투실 한복판에는 한강이 서 있었다. 난데없는 목소리에 놀랐는지 움찔거리더니 뒤를 돌아 입구를 바라본다. 유선우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 오빠. 왜 왔어요? 오늘 토요일인데.”

“훈련하러. 너는?”

“저도요. 헤헤.”

그 대답에 유선우는 내심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한강은 성실성이라고는 쥐뿔도 없어 보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까보니 휴일 아침부터 회사에 나와 있다.

‘아니, 이것도 편견이지.’

유선우는 속으로 반성했다. 생각해보니 한강이 농땡이 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훈련 때도 가장 많이 구토하는 인물이 그녀였다. 과식의 지분도 있겠지만 열심히는 한다는 뜻이리라.

“언제 왔어?”

“여기는 지금 왔어요.”

“여기는?”

“네에. 회사에서 잤어요.”

“여기서 잤다고? 아니,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한강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여기 말고 사무실이요. 사무실 엄청 좋아요! 큰 침대도 있고, 플스도 있고, 밖에 풀장도 있어요.”

“사무실은 어떻게 올라갔대.”

“로비에서 졸고 있었더니 교관님이 그러더라고요. 침대에서 자고 가라고.”

구름처럼 가벼운 목소리.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 같은 태도다.

“…그래서?”

“걸리면 안 된다고 얌전히 있으라고 그랬어요. 막 자기만 믿으라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경악에 휩싸인 유선우가 숨을 덜컥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추잡한 상상이 떠올랐다.

‘로리콘 새끼….’

엄밀히 말하면 철컹철컹은 아니다. 한강도 스무 살이니까. 합법적으로 술이든 담배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 그러나 윤리적으로 생각하면 아웃이다.

‘솔직히 얘는 좀 그렇잖아.’

유선우는 생각했다. 한강만큼은 서른까진 미성년자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그는 쉬이 정신을 다잡을 수 없어 입만 달싹거렸다.

이내 모의전투실의 문이 열리고, 때마침 한강이 말한 교관이 들어왔다.

“한강 씨?”

익숙한 목소리에 유선우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이성결의 얼굴은 수척하고 홀쭉했다. 마치 어제 격렬하고 힘겨운 무언가를 한 것처럼.

이성결 또한 유선우를 보자마자 전신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휴일에 저 악마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향상심이 넘친다지만 향상심도 쉬는 날은 있기 마련. 게다가 오늘의 유선우는 어째선지 기분이 나빠 보였다.

“유, 유선우 씨? 좋은 아침입니다.”

“저도 좋은 아침일 뻔했네요. 112가 몇 번이죠?”

“예?”

“아니지. 이거는 내 선에서 처리하는 게 맞겠네. 이 교관… 아니, 이성결 씨.”

이름을 불린 이성결은 오금이 저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상황이 심상찮음을 깨달았다.

“저기….”

“제 앞으로 오세요. 와서 머리 박아요.”

“잘못 들었습니다?”

“잘 들었어요. 제가 갈까요, 아니면 직접 올래요?”

이성결이 후다닥 달려가며 대학 시절의 기억을 회상했다. OT에서부터 똥군기를 잡던 개 같은 대학. 그는 체대생이었던 만큼 머리 박기에는 익숙했다.

익숙했지만, 당장 지시에 따르지는 않았다. 최소한 이유는 듣고 싶어서. 양아치 같던 대학 선배들도 이유 정도는 말해줬었다. 얼굴이 짜증 난다고 하면 어떻게든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어젯밤에 뭐 하셨어요?”

“그, 그건 왜 물어보시는지….”

유선우는 대답하기에 앞서 양손으로 한강의 귀를 틀어막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한강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몸부림쳤다.

“오빠? 지금 뭐예요? 무슨 의미예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죠?”

“아무 의미 없어. 이성결 씨, 혹시 강이 데리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신 건 아니겠죠?”“예? 그게 뭔 개소립니까.”

이성결은 드물게도 열 받은 기색으로 눈을 부라렸다. 하기야 범죄자 취급을 받았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거짓말 같지는 않네.’

애초에 과한 비약이었다. 유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강의 귀에서 손을 떼어냈다.

“다행이네요.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러십니까, 진짜.”

“제가 생각이 짧….”

“한강 씨가 제 취향이긴 해도 절대 그런 짓은 안 합니다.”

이어진 말에 분위기가 급격히 묘해졌다.

“저 지금 고백받은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를… 남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아침부터 무슨 지랄인지.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어 유선우는 뒤로 빠져주려 했다. 한 걸음 물러났을 때, 한강이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어, 음.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왜 잡아.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아무 의미 없어요!”

“…….”

떠드는 둘을 번갈아 본 이성결이 땅바닥을 내려다봤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정면을 응시하려 해도 머리가 잘 들어지지 않았다. 돌이라도 내려앉은 듯 목덜미가 무거웠다.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성결은 묘한 여운을 남기고 도로 모의전투실을 나섰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불편한 공기가 감돌았다.

잠깐의 정적이 오간 뒤.

유선우가 헛기침해 분위기를 환기했다.

어색해졌을 때는 훈련이 제격이다. 그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한강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강아. 훈련 도와줄게.”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도와준다. 선심 쓰듯 말하면 상대는 거절하기가 불편해진다. 졸렬한 수법이었지만, 한강은 거절할 생각도 없었는지 좋다고 방긋방긋 웃었다.

“진짜요? 오빠들이 오빠 막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러던데.”

“말 좀 똑바로 할래?”

“민성 오빠가 오빠 칭찬 되게 많이 했거든요. 군기 잡을 줄 안다, 힘도 세고 능력도 잘 쓴다면서 줄 잘 서랬어요.”

“이야, 배우신 분이네. 이름이 뭐라고?”

“하민성 오빠요.”

유선우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놓고 아부했으면 역효과였겠다만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는 머릿속 한구석에 이름을 기억해두고 한강에게 지시했다.

“하여튼 아무거나 띄워서 움직여봐.”

“네에.”

대답이 들려온 뒤에 자그마한 레고가 공중에 떠올랐다. 한강의 능력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염력이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능력이지만 그녀에겐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 무거운 물체는 던지기는커녕 제대로 들지도 못한다는 점.

반면에 세세한 조작에 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능력의 범위도 넓어서 누운 채로 라면을 끓일 수 있다던가.

유선우는 한강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카메라맨 시키면 잘하게 생겼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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