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화
인턴 유선우
유선우는 정신을 차리자 조금 쪽팔려졌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떠나서 그림이 굉장히 유치했다.
1시간 만에 만든 조각상 부쉈다고 애를 때리다니. 동갑이었다면 개뿔도 미안하지 않았겠다만 한강은 연하였다.
‘선혜보다 어린 애를….’
미안함이 치밀었다. 속 시원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힘 조절을 실수했는지 한강이 울기 시작했다는 거다.
“히끅! 흐이잉….”
그런데 토를 얼마나 해댔으면 목소리가 다 칼칼하다. 유선우도 안쓰럽게 여기기는 했다. 안쓰럽긴 한데 토 냄새 때문에 근처에 있고 싶지 않았다.
‘더럽게 왜 이래.’
죄책감은 옅어지고 의문이 들었다. 당최 무슨 일인지 주위에 시큼한 냄새가 가득하다.
토악질해댄 사람은 한강뿐만이 아닌 모양. 환풍기가 없었다면 진즉에 뛰쳐나갔으리라.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유선우가 점점 표정을 구겨갔다. 그를 올려다본 한강이 머리를 부여잡고 울먹거렸다.
“머리…. 아빠한테도 안 맞아봤는데, 흐윽!”
“저는 니 아빠가 아니라서요.”
“오빠잖아요.”
“남매는 자주 싸우잖아요. 미안한데 좀 떨어져 봐요, 진짜.”
유선우는 혹여나 토사물이 묻을까 황급히 물러났다. 그는 힝힝 우는 한강을 두고는 박아연에게 달려갔다.
박아연은 다가오는 유선우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꾹 눌러 참았다.
오늘의 유선우는 한층 강하니까. 이성결과 한강 다음의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박아연 씨. 저분들 다 왜 저래요? 더럽게시리.”
유선우가 봉투를 붙잡고 헐떡이는 교육생들을 가리켰다. 그가 몰랐을 뿐이지 능력훈련 시간에는 흔한 장면이었다.
“원래 저래요. 마나 쥐어짜다 보면 다른 게 나오거든요. 선우 씨는 괜찮아요?”
“조금 어지럽긴 한데 그보다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아요.”
“금방 적응되니까 참아요.”
“적응되기 싫은데요. 휴식 같은 거 없어요?”
“회사에 휴식은 무슨. 눈치껏 알아서 쉬는 거죠.”
박아연은 대꾸하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빠르기는 한지 어느덧 3시 반. 이번 훈련도 끝날 때가 다 되었다.
“이제 슬슬 끝날 시간이에요. 다음은 아마 이론이었던가.”
“이론이요? 아, 처음에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경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몬스터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프로게이머 학원도 있다는데 헌터 지망생이면 몬스터 공부 정도는 해야죠.”
“무슨 말인지 알아요.”
몬스터 공부. 어감이 이상하긴 해도 중요성은 실전훈련 못지않다.
전투에 필요한 정보와 추적에 필요한 정보.
그밖에도 여러 가지 지식이 생존에 직결된다.
유선우는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를 자르고 굽고 먹어왔다. 그렇기에 지식도 백과사전이 따로 없는 수준. 그간의 경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감 없이 발휘되었다.
***
훈련이 끝나고 교육생들은 시청각실로 향했다. 시청각실의 구조는 대학 강의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까와는 달리 단상에 선 것은 이성결 한 명뿐. 강사가 많아봤자 복잡할 뿐이니 박아연은 사무실로 올라갔다.
‘대학도 가보고 싶긴 하네.’
유선우는 중졸인 만큼 대학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학생 기분을 만끽하며 아무 자리에나 착석했다.
옆자리에 앉은 것은 30분 전 손찌검을 당한 한강. 그새 서운함이 풀렸는지 그녀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오빠. 대학교 온 거 같지 않아요?”
“같은 생각 했다는 게 좀 창피하네요.”
“히잉.”
“장난이에요. 근데 나이가 어떻게 돼요?”
연하라는 건 유선우도 알았다. 한강이 유선혜를 언니라고 불렀으니까. 외모도 고등학생 같아 연상이었으면 꽤 충격적이었을 터다.
“스무 살이에요. 아까 말했는데!”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안 들었거든요.”
“못 들은 거랑 안 들은 거랑은 틀린 건데? 오빠 국어 못했나 봐요.”
“안 들은 거 맞는데요. 이건 다른 거고요. 한강 씨 머리가 틀렸겠죠.”
“히이잉.”
“장난이에요. 혹시 말 편하게 해도 괜찮아요?”
“네에.”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한강이 헤실헤실 웃었다. 유선우로서도 그녀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큰 잘못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다 잊어줄 것 같아.’
비슷한 타입을 만나본 적은 있으나 근본적으론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둔한 척하면서도 속으로 끙끙거리곤 했으니까.
반면에 한강만큼은 진심으로 속이 편해 보였다.
둘이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성결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최소 한 달간은 오늘과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되실 겁니다. 그 후에는 이곳에서 2시간 동안 강의를 받으실 거고요. 앞서 받으셨던 두 훈련이 각성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이 강의는 헌터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딱히 관심이 없던 유선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조각에 심혈을 기울인 탓인지 하품이 절로 나왔다.
한편 의욕 넘치는 교육생, 하민성은 눈을 반짝거렸다. 여타 교육생들과는 다르게 그는 훈련에 별 유감이 없었다.
헬스장에서 운동해라, 쉘터 같은 곳에서 능력을 써라. 하민성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본인 일은 본인이 찾아서 해야지.’
무슨 학생도 아니고. 회사에서 불평불만 다 꺼내봤자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다.
반면에 동기 중 한 명만큼은 하민성이 보기에도 대단했다. 그가 눈알을 굴려 화제의 교육생을 곁눈질했다.
‘대체 뭐하던 사람일까.’
처음부터 낙하산이니 뭐니 시끄러웠는데 점점 화제가 불어갔다.
교관을 구타한 끝에 제자로 삼지를 않나.
마나 운용 훈련하라니까 조각을 하질 않나.
‘동기 사이에서 평판은 안 좋지만….’
하민성은 유선우에게 경쟁심을 느꼈다. 그는 뽕이 차오른 상태로 수업에 집중했다.
“OT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이대로 퇴근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만, 할 일은 해야겠죠.”
말을 끝맺은 이성결이 A4용지 몇 장을 들었다. 교육생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며 목소리를 키워 묻는다.
“자, 헌터가 가장 자주 접하는 몬스터가 뭔지 아시는 분?”
“고블린이나 오크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체 그 개 같은 것들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동 요청받아 가면 고블린에 고블린에 고블린에 쒸이뿔….”
“교관님?”
이성결이 흠칫하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 고블린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짚고 갈 생각입니다. 일단 유인물을….”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유선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교관님, 내용이 좀 틀린 것 같은데요.”
“어느 부분이죠?”
“처음이요. ‘고블린은 요정과에 속하는 육식성 몬스터로, 녹색 피부를 가지며 집단생활을 한다’라고 적혀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문제 될 부분은 없어 보이는군요.”
무슨 소리를 하려나 걱정하던 이성결은 속을 쓸어내렸다. 기본적인 정보인 만큼 틀린 구석이 없기 때문.
하지만 유선우가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착각 많이들 하시던데, 걔네도 사람이랑 똑같아요. 알비노 고블린도 있고 채식하는 고블린도 있고요. 이게 다 편견이라 이겁니다.”
“채식은 몰라도 알비노는 확인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럼 어디다 적어두세요. 돌연변이 외에도 사는 환경에 따라 피부색이 조금씩 달라지거든요. 게다가 E~D급으로 분류된다는데, 인간형 몬스터한테 이런 분류는 좀 의미가 없어요.”
“개체별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범위에서 벗어나는 고블린은 여태까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이성결이 데이터를 근거로 삼아 반박했다. 그러자 유선우가 옆에 앉은 한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강은 영문을 몰랐지만 친근한 감이 들어서 좋다고 웃었다.
“그러다가 훅 가요. 걔네들 입장에서는 아인슈타인이랑 얘가 똑같이 E~D급에 분류된다, 이 소리랑 똑같거든요. 겉보기에 평범한 고블린이 소드 마스터일 수도 있고.”
“혹시 저 욕한 거예요?”
“무슨 소리야. 아인슈타인이랑 비교한 건데 당연히 칭찬한 거지.”
“으음….”
한강은 생각에 잠겼다. 듣고 보면 칭찬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가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칭찬이라 여기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고민에 빠져 있던 이성결이 끙끙거렸다.
시시각각 새로운 정보가 갱신되면서, 동시에 기존 정보가 정정되기도 하는 게 몬스터 분야.
달마다 업데이트되니 사소한 오류야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가능성을 따지게 되면 분류가 모호해집니다. 막말로 고블린만 나오는 게이트에 보험 삼아 A급 헌터를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예외를 신경 쓰면 끝이 없죠. 그냥 고블린이라 뭉뚱그려 적지 말고 일반적인 고블린은 이렇다, 이런 식으로 적어두셔야 그나마 혼란이 없어지는 거고요.”
“그건 그렇습니다만.”“그리고 말이에요. 고블린은….”
유선우는 모든 오류를 열정적으로 파고들었다. 이성결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걸 어째. 헌터 꿈나무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육생들도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갈수록 느낌이 괜찮은 게 아닌가.
눈앞에서 문제점을 지적해주니 머리에도 쏙쏙 들어오고. 무엇보다 논쟁 형식인지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자칫하면 지루했을 강의가 동적으로 탈바꿈되었다. 이 긍정적인 결과는 모두 유선우의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다.
‘…교관님보다도 대단한 거 아닌가?’
하민성의 경쟁심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졌다. 유선우의 지식은 이성결보다도 폭이 넓고 정확했다.
그뿐만 아니라 B급 헌터를 때려눕히는 체술.
전공자마저도 울고 갈 조각술까지.
‘언더커버 보스 찍는 느낌인데.’
하민성이 홀린 듯한 눈으로 유선우와 이성결을 번갈아 봤다. 유선우는 열과 성을 다해 고블린의 A to Z를 읊는 중이었다.
“숲고블린은 대체적으로 몸놀림이 빠른 편이에요. 태어나기를 다르게 태어난 게 아니라 숲에서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작은 몸집으로 사냥감을 구하려면 빨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적응의 결과가 특징으로 나타난 거예요.”
“아, 그건 흔히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게 구별이 됩니까?”
“못할 것도 없죠. 예를 들어 동굴고블린이랑은 아예 발달 된 근육부터가 다르거든요.”
“호오.”
“그래서 숲고블린을 조질 때는….”
이성결은 어느덧 겸허하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식 면에선 다른 헌터보다 떨어지는 편이었다.
남들은 물론이고 본인 역시도 익히 아는 약점. 하지만 이대로 한 달만 배워도 평가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
주도권은 점차 유선우에게로 흘러갔다.
단상에만 안 섰을 뿐이지 교수가 따로 없었다.
유선우의 강의는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진행되었다. 영화 속 재판처럼 숨쉬기도 힘든 시간. 6시가 되어서야 이성결의 입에서 퇴근이라는 말이 나왔다.
유선우는 가장 먼저 시청각실에서 뛰쳐나갔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딱 한 마디.
그와 함께 교육생이 주도하는 강의가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S급 각성자. 그의 첫 출근은 청일 용인 지부에 파란을 일으켰다.
***
교육생들이 전부 돌아간 후.
이성결은 퇴근하기에 앞서 최상층의 지부장실을 찾았다. 오늘의 일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두어 번 노크하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들려왔다.
- 들어오게.
끼익.
문을 열자 실내의 모습이 이성결의 눈에 들어왔다. 호화로운 가구와 스포츠 스타의 유니폼이 한가득. 언제 봐도 부러운 양반이다.
‘제발 아무 일도 없었기를.’
정작 박민상은 초조함에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대표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았는지. 스트레스가 심각해 머리카락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 성결이. 첫날이라 고생 많았을 텐데 보고까지 시켜서 미안하네.”
“말씀 안 하셨어도 보고는 드렸을 겁니다.”
“음. 그래서 어떻게 됐지? 역시 콧대도 S급이던가?”
“콧대 말입니까?”
이성결은 아리송한 낯으로 곰곰이 떠올려봤다. 유선우가 자신감이 넘치기는 했다. 오전의 대련 때는 폭력만큼이나 지적도 일삼았었고.
하지만 콧대가 높다고 평하기에는 글쎄.
“그냥 세고 똑똑한데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구체적으로 말해봐.”
“예. 그게….”
“아, 잠깐만 기다리게. 두 번 말하기는 귀찮을 테니까.”
제지당한 이성결은 뻘쭘해져 입맛을 다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인물이 지부장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박아연. 그녀는 퇴근 시간이 미뤄져 약간 꽁해져 있었다.
“저 부르셨어요?”
“유선우 씨 일로 불렀네. 이 팀장, 보고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이성결은 오늘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전했다. 교육생한테 맞았다는 게 부끄럽긴 해도 그게 뭐라고. 항상 매를 벌어서 맞고 다니는 그에게 주저는 없었다.
설명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래 보고는 격주에 한 번 정도가 전부. 지금은 해봐야 10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아무리 신기한 일이 있었다 한들 10분도 걸리지 않는 게 맞다.
쿵!
“그게 어딜 봐서 교육생이야…!”
실제로 10분이 지나지 않아 박민상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