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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26화 (26/179)

제 26화

인턴 유선우

얼이 빠진 유선혜가 입을 헤 벌렸다.

그나마 박아연은 슬슬 유선우에게 적응이 되어가는 참. 반면에 유선혜는 오빠의 기행이 아직 익숙지 않았다.

누가 교육생이고 누가 책임자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저 구도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맞고 있는 이성결의 표정도 어딘가 비장하게 보였다.

유선혜가 정신을 놓고 있는 와중에도 교육은 계속됐다.

부웅!

이성결이 맹렬한 기세로 목창을 내질렀다. 창끝이 유선우의 복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일반인의 동체 시력으로는 좇기도 힘든 속도였다. 얼핏 보아도 능력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선혜는 차마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적어도 교육생에게 할 짓은 절대 아니었다. 사달이 나기 전에 알아서 멈추겠지만, 걸리면 잘려도 찍소리 못하는 짓거리다.

걱정과는 달리 유선우는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한심하다는 눈초리였다.

‘하, 이 사람 진짜.’

유선우에겐 이성결이 힘만 센 머저리로 보였다. 그는 창대의 중간을 잡고는 궤적에 끼어들었다.

힘의 방향대로 휘저어주자 그것만으로도 공격이 파훼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학생도 가능할 법한 동작.

하지만 이성결은 유선우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그는 마법에 홀린 듯했으나 재빨리 정신을 다잡았다.

사람은 학습하는 동물.

공격이 실패하는 순간, 곧바로 맞는다.

이성결은 잽싸게 창을 회수했다.

그런데 대체 언제 맞은 건지.

별안간 허벅지가 뜨거워졌다.

“아흐윽!”

“야, 야! 허리 쓰라고오! 창 쓸 줄 안다며!”

“쓰고 있잖습니까!”

“그따위로 쓸 거면 쓰지 마세요. 주먹이 더 세! 봐!”

창에서 손을 놓은 유선우가 잽 자세를 취했다. 이성결은 얼굴만큼은 사수하고자 눈을 부릅떴다.

뻐억!

“악!”

예측으로 목을 꺾어 피하려던 이성결은 코가 깨질 뻔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떻게 잔상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신기하게도 유선우의 자세는 방금과 똑같았다. 이성결은 이쯤 되니 의심마저 들었다. 몰래 능력을 써서 때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인정해 안 해. 이게 더 아프죠?”

“이, 인정합니다. 주먹이 더 아픕니다!”

“주먹으로 더 세게 때렸으니까 더 아프지! 박수 한 번 치면 허공에 찌르기. 실시!”

“실시!”

짝 소리에 이어 부웅.

열 번은 할 것처럼 말하더니 두 번 만에 박수가 멈췄다. 유선우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빽 소리쳤다.

“그 X 같은 능력 좀 쓰지 말라고요! 자기가 뭐 하는지는 눈에 보여요?”

“자, 잘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쥐꼬리만큼도 안 늘지. 팔이 빠르면 뭐해? 지가 창을 쓰는지, 쟁기를, 쓰는지! 개뿔도, 모르는데!”

딱, 따닥, 딱, 따악!

악센트에 맞춰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어찌나 시원하게 때리는지. 박아연은 듣기만 했는데도 목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어허억….”

바퀴벌레 이성결마저도 이제는 새하얗게 불탔다. 그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제야 유선우가 콧김을 내뿜고 창을 내려놓았다.

“아오, 스트레스. 이 교관님. 혹시 중학생한테 배우셨어요? 개소리 다 집어치우고 첫 타는 무조건 빠르고 정확하게.”

“페이크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지 손도 못 보는 사람이 페이크는 씹.”

유선우는 한 대 더 때리려다가 참았다. 그는 범재의 고민을 눈곱만치도 이해하지 못했다.

“딱 보니까 피지컬은 나쁘지 않아요. 근데 주먹질로도 몬스터 잡을 사람이 왜 서커스를 합니까? 창질 잘하고 싶긴 해요?”

“잘하고 싶습니다!”

“그럼 제 말 들으세요. 어디 가서 벌레 소리는 안 듣게 해줄 수 있으니까. 하, 제자는 거의 안 받는 주의인데.”

“감사합니다!”

대답은 빠릿빠릿하네. 유선우는 화를 가라앉히며 손을 탈탈 털었다.

“아까 누구한테 배웠다고 했죠? 누군진 모르겠지만 손절하세요 진심으로 조언해드리는 겁니다.”

“두 발 걸치면 안 됩니까?”

“문어발 걸쳐도 상관없는데 고놈은 영 아니에요.”

유선우도 스승 문제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전부 헛고생이었지만.

“제가 독학하다 막혀서 스승 찾아다닌 적 있거든요? 어딘가에 하나는 있을 줄 알았죠. 근데 젊은 놈은 꼭 중요한 거 숨기는 능구렁이거나 입만 잘 터는 허접이고, 늙은 사람 밑으로 가면 말이 제자지 그냥 하인 취급이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악물고 혼자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도 저한테 싸우자는 소리 못하게 되더라고요. 오랜만에 들으니 신선했어요.”

“…….”

이성결은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물었다. 직역하자면 ‘너 같은 허접이 깝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교육생이고 뭐고 직함 따윈 이젠 상관없다. 수십 대 두들겨 맞고 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이길 상대. 그렇다면 가르침을 구하는 쪽이 옳은 선택이다.

헌터 사회는 결국 철저한 실력주의.

지금이야 유선우는 피교육자 신세이긴 해도, 1년도 지나지 않아 아득히 높은 위치로 올라가리라.

이성결은 금세 역전될 지위로 거들먹거릴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실질적인 가치로는 지금도 내가 꿀리지.’

앞길 창창한 S급 각성자와 그럭저럭 준수한 B급 헌터. 비교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유선우가 손절하라는 스승도 21살짜리. 연하에게 휘둘리는 건 익숙하다. 새삼스레 자존심을 세워봐야 우스울 뿐이다.

납작 엎드려서라도 강해지는 것이 이성결의 진면목이었다.

***

청일 용인 지부의 구내식당.

유 씨 남매와 박아연, 한강이 자리한 테이블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식사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이는 한강뿐이었다.

‘불편해….’

유선혜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쏘아지는 노골적인 시선 때문. 직급을 불문하고 헌터들 전부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이도 찬 사람들이 실례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건지. 유선혜는 다른 이들처럼 대범하고 담담하게 굴지는 못했다.

본래라면 박아연이 성을 냈겠다만 그녀에겐 여유가 없었다. 고민에 빠진 유선우의 모습이 너무도 불안했기에.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유선우는 신체단련실에서 나온 뒤 침묵을 유지했다. 예외로 몇몇 질문에 간략하게 대답했을 뿐. 밥에 대한 감상이나 이성결에 대한 불평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강은 재잘재잘 잘만 떠들었다. 그녀는 녹아내리는 표정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하아, 닭갈비 진짜…. 선혜 언니, 여기 아침에도 열어요?”

“어? 응. 사내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도 많아서.”

“저도 여기서 살래요! 세끼 다 챙겨 먹어야지.”

“과식은 안 하는 게 좋아요. 특히 교육 기간에는.”

잔뜩 신난 한강에게 박아연이 충고를 건넸다. 마구 먹다가는 1시간 후에 죽도록 후회할 테니까. 유선우만큼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왜요? 혹시 식단 조절도 해야 돼요?”

“오후 되면 먹은 대로 뱉을걸요? 마나 훈련이 원래 그래요.”

“배, 뱉어요?”

“다들 그래요. 저도 그랬었고.”

“그래도 맛있는데. 유선우 씨는… 으음.”

한강은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지 말하다 말고 끙끙댔다. 왼쪽 오른쪽 이리저리 고개를 갸우뚱. 그러다가 눈매를 좁히더니 유선우에게 말했다.

“둘이 남매잖아요? 근데 선혜 언니한테는 언니라 하고 유선우 씨한테 유선우 씨라 하니까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러시겠죠.”

“맞죠?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러시든가요.”

“헤헤. 그럼 오빠도….”

“그래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그러시구나.”

“저 시끄러워요?”

“그럼요.”

“조용히 할까요?”

“그러세요.”

“히잉.”

김치볶음밥을 먹던 박아연은 내심 감탄했다. ‘그래’라는 말이 저렇게 다채롭게 변하는구나 싶어서. 어째 유선우는 멍할 때가 가장 똑똑해 보인다.

‘사실 머리 좋은 거 아니야?’

성격에 가려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천재들은 괴팍하다는 말도 있으니까.

한강마저 침몰한 가운데.

유선우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자를 키워야 하나?’

마냥 뜬금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타 차원의 관리자들이 계속 시비를 건다면 어떻게 될까. 사건은 필연적으로 주변에서 터지게 된다.

하지만 유선우의 몸은 하나뿐. 저번처럼 우연히 맞닥뜨릴 가능성은 적고, 혼자서 죄다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게이트로 튀면 넘어가기도 부담스럽고.’

마력 소실 증상의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다만 당시에도 마나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니 마나를 사용하는 제자를 양성하려는 것이다.

만약 용인 지부 헌터들이 죄다 어벤져스 급으로 성장한다면.

‘나는 편하게 꿀 빠는 거지.’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게 다 실적이다. 실적이 되니 위상이 올라가고, 합법적으로 제자들을 부릴 수 있으면 몸도 편해지고.

더없이 바람직한 윈윈이다.

‘잘 가르칠 자신도 있어.’

유선우가 가르친 제자라곤 여태껏 하나뿐이었으나 그녀는 대성해서 세상으로 나갔다.

첫 제자를 훌륭하게 키워냈으니 다음부턴 더 잘 되리라.

‘기본적인 무기술이랑 전투 감각 때려 박아주는 건 쉽지.’

창 외의 무기엔 조예가 없지만 만류귀종이라 했던가. 어떤 무기를 쥐든 어지간한 놈보다는 잘 다룰 수 있다.

고심을 마치자 유선우의 낯이 금세 풀어졌다.

심각할 때는 언제고 닭갈비를 쪽쪽 빨면서 히죽 웃는다. 그의 음흉한 표정을 본 박아연은 불안감에 흠칫거렸다.

“저, 선우 씨?”

“이거 진짜 맛있네요. 살살 녹네. 혹시 싸가도 돼요?”

“…포장은 안 해줄걸요.”

“그럼 지금 많이 먹죠 뭐. 미식 여행 다녔던 거 기억난다.”

거의 흡입하듯이 먹는 모습이 복스럽다. 분위기가 편해지자 한강도 다시금 방긋방긋 웃었다. 그녀가 침울한 감정을 떨쳐내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빠오빠! 같이 아침 점심 저녁 다 여기서 먹어요.”

“제가 왜 니 오빠죠?”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제, 제가 언제 불러도 되, 된다고 했스, 스, 습니까?”

정식 헌터 둘은 등신이라도 들렸나 생각했다. 한편 한강은 까르르 소리를 내며 자지러졌다. 그녀가 최근에 즐겨보는 웹툰 등장인물의 말투였기 때문이다.

“그거 알아요! 오빠 진짜 잘한다.”

“꿀잼이더라고요.”

“저어는 결제해서 보거든요? 다음 화에 석윤이가….”

“뺨 맞을래요?”

“히이잉.”

유선우를 심각하게 지켜보던 박아연이 실소를 흘렸다. 어련히 잘하겠지 싶었다.

‘항상 막 나갈 뿐이지, 막상 일 터지면 본인이 해결하니까.’

어차피 무슨 짓을 할지 예상도 못 할 거. 걱정할수록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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