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화
인턴 유선우
혼자라는 말로 쐐기를 3번이나 박았다니. 선의로 했답시고 자랑하는 꼴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유선우는 질색하다가도 결과가 궁금해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교과서로 맞았어요오….”
“세상이 아직 똥통은 아니네요.”
“무슨 소리예요?”
갸웃거리는 한강을 무시하고 설명에 집중했다. 그동안 교육생이 다른 질문을 했는지 이성결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어차피 다 쓰게 될 시설인데 안내받아서 뭐 합니까? 정 궁금하면 시간 남을 때 가보시고, 우선 점심 전까지 운동하세요. 체력이 국력입니다.”
“다짜고짜 그러셔도 저희는 각성자 아닙니까.”
“헌터들 몸매 좋은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돈 받으면서 운동하는 게 싫습니까?”
이성결이 날 선 말을 내뱉었다. 그제야 교육생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입을 다물었다.
“기구 사용법 모르시면 저한테 물어보시고, 빈 캐비닛 아무거나 비밀번호 설정해서 쓰십시오.”
오리엔테이션은 최소한의 사항만 알려주고 끝났다.
점심은 어디서 먹을 예정이다.
탈의실이랑 샤워실은 나가서 잘 찾아보면 있다.
각성자들끼리 엿보다가 건물 터뜨리지 않게 조심해라.
그 말을 끝으로 이성결이 입을 닫았다.
교육생들은 마지못해 운동복을 집어 들었다. 멍하니 있던 그들은 한창 운동 중인 선임들을 곁눈질했다.
짬이라 해봤자 3개월도 차이나지 않을 터. 그런데도 선임들은 굉장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저희도 저렇게 될까요?”
“생각했던 거랑 되게 다르네.”
“그냥 헬스장 온 느낌이에요.”
“하, 근육 키워서 몬스터 잡는 것도 아니고.”
김샜다는 불평이 오가는 가운데.
유선우는 군말 없이 널따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까라면 까는 거지.’
교관 말마따나 돈 받으면서 헬스장 다니는 건데 그마저도 싫으면 다른 건 어떻게 하고 살까. 못마땅하게 혀를 찬 그가 몸풀기를 시작했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팔굽혀펴기 100회.
모래주머니 주렁주렁 달고 스쿼트 100회.
물구나무선 채 손으로 러닝머신 최고속도 30분.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속도로 행해졌다. 자세가 흐트러지기는커녕 호흡조차 가빠지지 않고.
경악으로 가득 찬 시선이 유선우에게 집중됐다.
“미친… 저거 신입 아닌가?”
“그럴걸? 오늘 처음 봤어.”
“신체 강화 계열인가 보지. 싹수 있네.”
“근데 러닝머신을 왜 저따위로 써?”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워밍업이었을 뿐. 유선우에게 유의미한 운동은 몇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창술의 단련. 혹은 마력의 출력을 높여 몸을 터뜨리고 재생시키는 자해행위.
전자는 자칫하면 시설이 날아가 버리고, 후자는 쓸 만한 힐러가 없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농땡이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 유선우는 의미도 없는 운동보단 미뤄뒀던 일에 착수했다. 테러 사건의 교훈을 살릴 때다.
‘일단 마력부터 쭉 빼보자.’
마력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본래 큰 장점이다. 총량이 빠르게 늘어나고, 효율적인 사용법을 터득하게 된다. 심지어 마력이 통하는 근육도 알맞게 압축된다.
혈관에 자양강장제가 흐르는 급.
하지만 이전의 기괴한 차원에서는 맹독과도 같았다. 그러니 이를 제어할 스위치를 만들어둬야 할 터.
먼저 시야를 차단하고 체내의 마력 흐름에 집중했다. 심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줄기. 머리카락 한 올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퍼져있다.
손끝으로 이어진 흐름을 하나하나 끊어봤다.
굵게도 만들어보고 얇게도 만들어보고.
여러 시도를 거듭하길 1분이 넘어 3분이 흘러.
유선우가 눈을 감은 채로 미간을 팍 찌푸렸다.
‘뭘 어떻게 해야 돼?’
흐름을 인지하고 각각을 제어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그게 끝이라는 점. 근육과 장기를 다 신경 쓰면서 마력의 실을 끊는다?
‘머리 터져버리겠다.’
혈류를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막는 행위나 다름없다. 설령 가능하다고 쳐도 심각한 문제가 따른다.
‘잘못 건드리면 뒈질 것 같은데.’
마력 사용자에게 있어서 마력은 그야말로 생명력. 유선우는 마력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렸다.
태어나기를 머글로 태어났으니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수는 없다.
‘흐름을 얇게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야 본말전도다. 익숙해지면 마력을 부드럽게 사용하기 힘들어질 테니까.
‘답이 없네.’
막막함에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까부터 스토커처럼 쳐다보던 이성결이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유선우인데요. 무슨 일이세요?”
“일까지는 아니고요. 보아하니 몸 쓰는 데는 자신이 있으신 듯한데.”
“몸이면 자신 없지는 않죠.”
“저도 신체 강화 타입이라 말입니다. 동질감도 들고 해서.”
유선우가 눈매를 찌푸렸다. 안 그래도 마음이 답답한데 빙 돌려서 말하니 성가시다. 줄곧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와서 거슬리기도 했고.
“죄송한데 짧게 요약 좀.”
“그런 의미로 한판 어떻습니까?”
“……한판이요?”
유선우가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한판이란 피자나 침대 위 한판밖에 없었다.
몸 쓰는 데 자신 있다, 동질감도 든다.
몸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싶다 이건가?
“설마 그 말 하려고 계속 쳐다보신 겁니까?”
“역시 눈치채셨습니까. 제가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하하.”
“호기심을 묘한 데다 가지셨네.”
“사실 클랜 내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이건 무슨 소린지.
유선우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거 참. 청일이 생각보다도 개방적인 회산가 보네요.”
“저희 클랜이 개방적이라기보다는 거의 모든 클랜에서 주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허이고. 고생 많으시겠어요. 근데 전 그쪽은 좀-”
“S급이 괜히 S급이 아니니 말입니다. 하하.”
“네?”
유선우는 멀뚱멀뚱 눈만 깜빡거렸다.
소문이 그 소문이었구나.
한판은 그 한판이었구나.
‘대련 신청이었네.’
근 2년간 받아보질 못해서 착각해버렸다. 개인적으로 대련은 좋아하는 편이라 꺼릴 것도 없다.
“저랑 싸워보고 싶으시다 이거죠?”
“괜찮으시다면 말이죠. 능력 없이 순수하게 신체로만. 혹시 즐겨 쓰시는 무기라도 있으십니까?”
“창은 조금 쓸 줄 알아요.”
“오, 우연이군요. 한 수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가르쳐 주겠다고?
문득 431-9 차원에 두고 온 제자가 떠올랐다. 그의 기억 속 제자의 몸에는 언제나 멍이 들어 있었다. 악마 새끼니 제발 죽여달라니 시끄러웠었지.
당시를 떠올린 유선우가 입가를 실룩였다.
“나무창 하나만 주세요.”
***
인턴 유선우를 보고자 내려온 지하 1층.
박아연은 평소보다 눈에 띄게 안정되어 있었다.
‘의외로 아무 일도 없네.’
그녀는 주말 내내 불안감에 몸을 떨었었다.
일상적으로 건물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유선우가 첫날부터 회사를 터뜨려버리진 않을까.
첫 한두 시간이 고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까보니 언제나처럼 평온하다.
덕분에 박아연도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사무실도 유선우의 얘기로 왁자지껄했다. 청일에서 영입한 S급 각성자는 그가 최초이니까.
아직 도장을 찍지는 못했지만 반쯤은 기정사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그대로 청일의 품에 안길 터다.
“너는 여기 오는 것도 오랜만이겠네.”
박아연이 동행 중인 유선혜에게 말했다. 정식 헌터의 훈련 시설이 위치한 곳은 지하 2층. 교육생 딱지를 떼고 나면 이곳엔 올 일이 없는 셈이다.
“오랜만이죠. 처음에는 토도 몇 번 했었는데, 으.”
“나한테 뭐라 했었더라. 개 같은 년, 악마 같은 년?”
“진짜진짜 죄송합니다.”
유선혜가 뜨끔해서 사과하자 박아연이 피식거렸다. 그쯤이야 애교로 받아줄 만했다.
“난 더 심했어. 내 담당이 지부장님이셨는데 아직도 기억하시더라. 이번 기수는 누구였지?”
“이성결 팀장님이요.”
“왜?”
“…왜라뇨?”
“……아무것도 아니야.”
박아연이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제발 선우 씨한테 깝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성결은 사내에서 바퀴벌레라고 불리는 남자다. 매일 같이 A급한테 맞고 다니면서 정신 못 차리는 놈. 거의 입버릇처럼 ‘한 판만 더!’를 외치고 다닌다.
“설마 그 오빠가 말아먹는 건 아니겠지?”
“신체단련 시간에 무슨 큰일이 생기겠어요.”
교육의 대략적인 틀은 클랜 방침을 따른다.
오전 시간은 항상 신체단련.
신입이야 불평하지만 짬이 찰수록 원하게 되는 시간이다. 능력훈련 좀 해보면 운동은 약과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
“하긴. 구경 좀 하다가 점심 같이 먹으면 되겠다.”
“구내식당 가보면 저희 오빠 깜짝 놀라겠죠? 너무 먹어서 이따가 토하면 안 되는데.”
“선우 씨가? 에이.”
들뜬 목소리에 박아연이 말도 안 된다는 양 웃어넘겼다. 유선우의 약한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서. 고작 훈련 정도에 허덕일 사람이 아니었다.
잡담을 나누며 신체단련실의 문을 열었다.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 팀장급은 자주 들리는 장소였다.
“분위기 왜 이래?”
“그러게요. 휴식은 아닌 거 같은데.”
들어가 보니 내부가 시끌벅적했다. 눈에 띄는 인원은 대략 스무 명 안팎. 그들은 하나같이 넋 놓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악!
돌연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원지는 주로 짬이 찬 교육생들이 이용하는 링. 링 위에는 유선우와 이성결이 올라가 있었다.
“똑바로 서라, 핫산.”
“후욱, 후욱!”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요?”
“자,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똑같이 해볼 테니까 짚어 봐요.”
한 발짝 거리를 벌렸린 유선우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손에 쥔 창을 느릿하게 휘둘렀다. 창대가 물 흐르듯이 한 바퀴 회전하더니 곧게 쏘아졌다.
창끝은 이성결의 복부 앞에서 멈췄다. 기교가 몹시도 자연스러워 묘기라도 펼치는 듯했다.
꿀꺽.
또 처맞는 줄 알았네. 이성결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긴장 반 감탄 반으로 감상을 내뱉었다.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진짜 빡대가린가? 창대를 대체 왜 돌리냐고요. 아무리 잘 돌려도 먼저 맞고 죽을 건데.”
“그렇게 배웠습니다!”
따아악!
“아윽!”
대꾸하자마자 유선우의 창이 채찍처럼 휘어졌다. 이성결은 막을 엄두도 못 내고 허벅지를 내어줬다.
“누가, 누가 그랬어! 하여간 겉멋만 가득 차서는. 제발 기본만 합시다. 네?”
“변화무쌍한 공격이…!”
“변화무쌍하게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찌르기만 잘해도 어지간한 놈들은 다 잡는데 뭐요? 연계할 때나 돌리든가 후려치든가 꼴리는 대로 하시고. 다시 한번 해봐요. 하나!”
“하, 하나!”
박아연과 유선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문이 막혔다.
책임자를 때리고 구박하는 교육생.
교육생에게 처맞는 책임자.
링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어이가 없었다.
“저게 뭐 하는 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