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화
인턴 유선우
청일 용인 지부는 총 8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의 두 층에는 헌터들의 훈련을 위한 설비가. 지상의 여섯 층에는 사무실이나 식당 외에도 별의별 편의 시설이 다 들어차 있다.
본사에 버금가는 질 좋은 시설과 인자한 지부장. 덕분에 사내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화기애애한 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오셨습니다!”
정문을 주시하던 안내데스크 직원이 콜을 때렸다. 수화기에서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벌써…!
“그냥 10분 일찍 오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할까요?”- 당장 내려갈 테니까 조금만 시간 끌어봐. 기다리라는 소리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아침 댓바람부터 일이 바쁘게 돌아갔다. 다름 아닌 S급 각성자의 첫 출근 때문.
전속 계약의 여부에 따라 클랜의 미래가 달라질 테니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다.
직원이 분투하는 사이에 지부장 박민상이 냅다 달려왔다. 바짓단에 땀을 닦은 박민상이 유선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지부장 박민상일세. 헌터 등급은 A급이고 슬하에는 딸이 하나 있… 아니, 그보다 말 편하게 해도 괜찮겠나?”
“그러세요. 인턴인데요, 뭐.”
“역시 젊은이가 시원시원하고 좋아.”
박민상은 푸근하게 웃으면서도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머릿속에선 대표에게 들은 전언이 끊임없이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대표 왈, 무슨 수를 써서든 좋은 인상을 주어라.
‘신입한테 굽실거리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좇아야 할 때.
정식 계약서를 쓰진 않았어도 구두계약은 끝냈다고 들었다. 그러니 박민상은 유선우가 변심하지 않도록 힘써야만 했다.
‘지부장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다’ 따위의 얘기가 나오면 좌천으로는 끝나지 않으리라.
“와보니 좀 어떤가?”
“출근한 지 5분도 안 됐는데요. 오기는 저번에도 와봤고.”
“그것도 그렇지. 올라가서 사무실이라도 둘러보겠나?”
“교육생은 지하로 모이라고 들었는데. 변경 사항 있었나요?”
태연한 질문에 박민상이 식은땀을 흘렸다. 안내하는 척하면서 장점을 어필할 심산이었건만. 생각해보니 교육생은 한동안 위층으로 올라갈 일이 없다.
“아닐세. 그냥 시간이 조금 남아서. 질문이나 요청할 건 없고?”
“딱히요. 처음이니까 일찍 가는 게 낫죠.”
“사람이 성실하구만. 그런 자세 좋아. 그럼 지하로 안내하지.”
“어, 바쁘신 거 아녜요?”
“아침부터 바쁘기는 무슨. 따라오게.”
박민상은 발걸음마저 의식하면서 앞장섰다. 유선우는 마음 같아선 아저씨보단 여직원에게 안내받고 싶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고작 한 층이지만 높이가 상당한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문이 열리고 시설이 드러나자 유선우가 감탄사를 흘렸다.
“호옹이.”
“마음에 드나?”
“네, 꽤. 생각보다 되게 크네요.”
“본부보단 못해도 지부 중에선 손꼽히는 편이지.”
통로를 지나가면서 눈에 띄는 명패를 스쳐봤다. 시청각실에 비품창고. 다용도실에 신체단련실. 헌터 클랜답게 모의전투실까지 여럿 있었다.
기대 이상이었는지 유선우의 안색이 밝았다. 박민상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차에 청년 하나가 걸어왔다.
청년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허리를 굽혔다.
“지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성결이, 이번 기수 책임자가 자네였지.”
“예. 반년 동안은 재미 좀 보겠습니다.”
“재미라. 이해는 한다만….”
이성결은 28살에 B급 헌터 딱지를 달은 엘리트다. B급 헌터쯤이면 어디를 가도 꿀리지 않는 위치. 하지만 결코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A급 이상은 엉덩이가 무거워 순찰을 다니지 않는다. 해봐야 이따금 던전의 토벌에나 끼는 정도. 긴급 상황을 위해서 아껴두는 패인 셈이다.
반면에 B급 헌터는 전국 방방곡곡을 싸돌아다닌다. 순찰조를 인솔하고, 토벌대의 믿음직한 일원이 되고. 또 특수 범죄 현장에 지원을 나가기도 하고. 더해서 교육자로도 적절한 게 B급이다.
다행인 점은 교육을 맡으면 대부분의 일에서 열외 된다는 것. 격무에 시달리는 그들에게는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 기수를 6개월간 책임지게 될 헌터, 이성결은 현재 날아가도록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박민상이 신난 이성결에게 다가가 당부했다.
“적당히 하게. 진짜로.”
“예?”
박민상이 대답 대신 눈짓으로 유선우를 가리켰다. 그러나 눈치가 둔한 이성결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S급 있잖아, S급! 그게 쟤라고!”
“아, 그렇습니까?”
이성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얼굴에서부터 드러나는 호승심. 박민상은 괜히 말했나 걱정하면서도 어깨를 두드려줬다.
“제발 잘 부탁하네.”
***
이번 기수의 교육생은 유선우를 포함해 8명이었다. 교육생이 모인 후에 이성결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8명이 팀을 이루어 6개월간 활동하게 된다.
다른 기수 교육생들은 같은 시설만 쓸 뿐.
가끔 합동 훈련을 하는 외에 큰 접점은 없다.
게다가 짬이 되는 교육생들은 외부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 훈련실의 사용은 자유로운 편이다.
한동안 커리큘럼은 체력단련과 마나 운용의 기초, 몬스터에 대한 이론 수업이 주가 된다.
유선우는 설명을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평생 교육생으로 살아도 될 거 같은데.’
훈련도 시켜주고 돈도 준다. 그뿐만 아니라 밥도 먹여주고 공부까지 시켜준다니. 정식 헌터보다도 훨씬 괜찮은 대우로만 보였다.
‘이번 기회에 꿀 제대로 빨아야지.’
이계의 황성에서도 수많은 혜택이 주어졌었지만 만끽하지는 못했었다. 놀고먹기는커녕 잘 시간마저 아껴서 훈련했었으니까.
그때의 한을 풀기 위해 이번만큼은 편하게 지낼 생각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쳐다봐?’
노골적인 시선을 감지한 유선우가 눈매를 좁혔다. 한둘뿐이면 마주 노려봐주겠으나 상황이 조금 묘하다.
이성결은 물론이고 교육생들마저 아닌 척 힐긋힐긋. 언제 친해졌는지 자기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고 있다.
‘할 말 있으면 처하시던가요오~!’
첫날에다 첫 만남인데 왜 이 모양인지. 신경에 거슬려 괜히 발끝으로 바닥만 두드렸다.
“교육생 여러분. 신체단련실로 따라옵니다. 실시.”
브리핑을 마친 이성결이 교육생들을 인솔했다.
유선우는 집요한 눈길을 피하려고 걸음을 늦췄다. 후방으로 떨어진 그에게 교육생 하나가 머뭇머뭇 다가왔다.
“저, 저기요오.”
“저요?”
“네. 혹시 이름이 뭐예요?”
유선우는 대답하기에 앞서 상대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아담한 체구와 어깨 밑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 이목구비는 뚜렷하나 예쁘다기보단 귀여운 강아지상이다.
‘뭔가 학교 후배 같이 생겼네.’
이따금 볼 수 있는 타입이 있다.
잘 따르고 애교도 많아서 금세 가까워지지만, 어째선지 남녀 사이로는 발전하지 않을 사람.
눈앞에 있는 여자의 첫인상이 딱 그 짝이다.
“유선우예요. 그쪽은요?”
“한강이에요.”
“뭐라고요?”
“한강이요. 성이 한이고 이름이 강.”
유선우는 당황했다가 실례임을 깨닫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보기는 드물어도 이상한 이름은 아니다. 오히려 듣고 보니까 울림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 한강 씨. 예쁘네요.”
“네, 네에?”
“이름 예쁘다고요.”
한강이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창피해하는 건지 수줍어하는 건지. 어느 쪽이건 절로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다.
“혹시 저한테 볼 일 있으세요?”
“볼 일은 아니고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짧아도 몇 달은 같이 다닐 거잖아요.”
“아, 그러시구나.”
“아니면 불편하세요?”
“불편하기는요. 저 그렇게 꼬인 사람 아니에요.”
유선우는 답지도 않게 온화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조심스럽던 한강의 낯이 화사하게 펴졌다.
“다행이다. 사실 제가 눈치 없다고 자주 듣거든요.”
“누가 그러는데요?”
“가족이요.”
“가족이야 원래 그렇죠. 착해도 나빠 보이고 예뻐도 못생겨 보이고.”
“그리고 삼촌이랑 선생님, 친구들이랑 선배, 후배……”
빼면 누가 남아?
본인도 말하다가 시무룩해졌는지 목소리가 죽어간다. 유선우는 화제도 돌릴 겸 신경 쓰이던 것을 물어봤다.
“한강 씨. 아까부터 등이 좀 따가워서 그런데.”
“등이요?”
“저분들이요. 계속 쳐다보길래.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앞서가는 교육생들을 가리키며 꺼낸 말. 한강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이유를 알려줬다.
“아, 높으신 분 낙하산이라고 건들지 말래요. 낙하산이에요?”
“진짜 눈치 없네요. 리스트에 회사 동기도 추가해요.”
“물어보셨잖아요오….”
“그건 그렇지만요.”
유선우로서도 빙 돌려 말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취향에 맞았다. 조금 멍청해 보여서 그렇지.
“일단 들어가요. 첫날부터 찍히긴 싫으니까.”
“벌써 찍힌 거 아니에요?”
웃기 힘든 농담을 던진 한강이 유선우에게 가까이 붙었다. 서로의 몸이 닿을락 말락 한 간격. 키 차이가 크다 보니 유선우의 어깨에 한강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유선우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옆으로 몸을 비틀면 바로 얼굴에 어깨빵이다.
그는 장난치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러니까 인성 쓰레기 소리 듣는구나.’
박아연이 매번 소리치는 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내심 반성하면서 이성결과 교육생들을 따라 신체단련실로 들어갔다. 프레스머신에 러닝머신. 익스텐션과 레그컬. 구석구석 살펴볼 필요도 없이 그냥 헬스장이었다.
“첫날이니 화목하게 친목 도모? 그런 거 없습니다. 운동복은 캐비닛 열어보시면 사이즈 별로 비치되어 있으니 알아서 가져가십시오.”
실내 한복판에 멈춰선 이성결이 짐짓 근엄하게 지시했다. 말이 끝나자 교육생 하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뭡니까.”
“예. 아, 일단 호칭은 어떻게 합니까?”
“교육생 신분에는 교관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교관이요?”
묘한 호칭에 교육생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회사에 교육받으러 왔건만 무슨 군인도 아니고.
정작 이성결은 아무렇지 않다는 양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단 사내에선 팀장으로 되어있습니다. 헌터로 구성된 팀은 웬만해서는 해체되는 일이 없어서, 헌터 팀에 한해서는 팀장 같은 직책을 그대로 직위로 사용하죠. 그 밑으로도 당연히 직위는 있습니다만….”
구구절절 말하려던 그는 귀찮아져서 얼버무렸다.
“어차피 같이 몬스터 때려잡다 보면 느슨해지는 게 보통입니다. 어느 정도 격차가 크다 싶으면 알아서 굽히면 되고요. 다들 눈치는 있잖습니까?”
듣자마자 유선우의 눈이 한강에게 돌아갔다. 지부장에게 아저씨라 부르지는 않을 터. 하지만 팀장보고 언니 오빠라 할지도 모른다.
“한강 씨, 그렇다는데요.”
“저 눈치 있거든요. 아까도 유선우 씨 왕따 될까 봐 말 걸었던 거거든요.”
“눈치 없다는 말 자주 듣는다더니.”
“듣기만 한다는 거죠. 저는 전혀 동의 안 해요.”
유선우는 어련하시겠다며 고개만 끄덕여줬다. 어떻게 생각했는지 한강이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웠다.
“흐흥. 제가 말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어요. 혼자 있는 애들 보면 가만히 못 있겠더라고요.”
“한둘씩 있긴 하죠. 그래서요?”
“그래서 친구는 어디 가고 혼자 있냐고~ 혼자 뭐 보는 거냐고~ 밥은 왜 혼자 먹냐고~.”
“…….”
제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