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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23화 (23/179)

제 23화

상황이 끝난 후

유선우와 차세정은 청일에 들러 피 묻은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다음에도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순 없었다. 테러 소식이 전해졌는지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린 까닭이었다.

둘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야 고깃집에 들어가 앉았다. 차세정이 PC방 사장의 전화를 받는 동안 유선우가 밥값을 했다.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졌을 때.

딱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차세정이 돌아왔다.

“뭐라셔?”

“몰라. 그냥 횡설수설 별말 다 하시더라.”

“하기야 멀쩡한 게 더 이상하지.”

“이게 다 무슨 봉변인지. 이제 익숙해졌는데 이 꼴이야.”

차세정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한탄했다. 푸념을 들으니 유선우는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학교는 안 다녀?”

“다니다가 겨울에 휴학했어. 너는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차세정은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몰라 말을 흐렸다.

언제 돌아왔나? 아니면 언제 살아났나?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니 무엇이 맞는 표현인지도 헷갈렸다.

눈치껏 알아들은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이번 달 초에. 연락 안 해서 미안. 몇 번 생각은 해봤는데 혹시 불편해할까 봐.”

“하나도 안 불편해.”

“솔직히 내가 불편해서.”

유선우의 어조는 흐트러짐 없이 담담했다. 명백하게 선을 긋는 발언이었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었고, 차세정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그동안 헌터 일한 거야?”

“일했으면 아침부터 PC방 안 갔지. 아직은 아니고 다음 주부터 인턴으로 일해.”

헌터에 인턴도 있었던가. 아리송해진 차세정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도 금세 말뜻을 알아차린 그녀가 쿡쿡 웃었다.

“아, 인턴. 나도 다른 알바 구해야지. 어휴.”

“이런 일까지 당해놓고?”

“별수 있나. 돈 없으면 다시 학교 다니기도 불편한데.”

하기야 정신적인 문제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법. 유선우는 그러려니 납득하면서 물컵을 홀짝였다.

그때 젓가락 끝으로 고기를 누르던 차세정이 덧붙였다.

“돈이 있어야 너한테 만나자고 연락도 할 거고.”

“쿨럭!”

유선우가 작게 헛기침했다. 노골적인 말투는 둘째치고서 어감이 영 묘하다.

“말이 이상하네. 나 스폰 받는 거야? 무슨 돈 없다고 못 만나게.”

“그냥 공원에서 떠들다 헤어질 순 없잖아. 난 그래도 좋지만.”

“나도 뭐. 쌓인 얘기도 많을 거 아냐.”

입가를 닦으며 대꾸하자 차세정이 생긋 미소지었다.

“응. 근데 너랑 한두 번만 만날 생각은 없어서. 영화를 보든 카페를 가든 게임을 하든 다 하고 싶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도 차세정은 긴장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구애하는 게 강요처럼 느껴질까 봐.

그녀는 평생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 본 적이 없었다. 남이 선을 그으면 넘어가기는커녕 덧칠을 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유선우가 느닷없이 게이트를 넘어갔을 때. 그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다시 사라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쩌나 싶어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천 번을 속으로 되뇌었었다. 가지 말라며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았어야 했다고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솔직하게. 오로지 마음 가는 그대로 유선우를 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삼겹살을 콕콕 찌르며 유선우를 곁눈질했다. 23살이 된 그의 표정은 영 읽기가 힘들었다.

이윽고 유선우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래. 별 상관없어.”

“상관없는 건 또 뭐야.”

“오는 사람은 안 막는 주의라서.”

복잡할 뿐이지 서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긴박한 경험을 공유한지라 불편한 감정도 옅어졌고. 당장 사귀자는 얘기도 아니니 거절하는 것도 우습다.

“근데 우리가 왜 헤어졌더라?”

유선우가 고기를 씹으며 물었다. 안 좋게 헤어졌다는 것밖에 기억나질 않았다. 그의 물음이 어이가 없었는지 차세정이 실소를 흘렸다.

“내가 너무 인기 많아서. 네가 엄청 질투했었잖아.”

“아, 맞다. 네가 내 카톡 보더니 여자들 다 차단하고 막….”

“안 그랬어! 아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집착 오졌었네. 세정아, 이제 정신 차렸니?”

“지는 어땠었는지 기억 안 나나 봐?”

둘이 당시를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 상대가 질투했었다고 주장했으나 양쪽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둘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용모가 빼어나서 이성의 호감을 쉽게 얻는다는 점. 그것이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 원인이었다.

지금 보면 그냥 서툴렀었을 뿐인 얘기다.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마는 거고. 달라진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멀어질 수도 있다.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면 뭐, 결혼이라도 하겠지.

***

유선우와 차세정은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식당을 나섰다.

주소를 묻고 답한 결과 둘의 집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동네 PC방에서 만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길을 걷고 걸어 사거리에서 방향이 엇갈렸다.

“데려다줄까?”

“너도 피곤하잖아. 그건 됐고 번호나 찍어줘.”

“어째 좀 명령조네. 얼마 줄 건데?”

“아까는 스폰 안 받는다더니.”

“스폰이 아니라, 어? 성의를 보이란 말이야.”

유선우는 장난스레 대꾸하면서도 차세정이 건넨 폰을 받았다. 번호를 찍어서 돌려주자 그녀가 작게 투덜거렸다.

“어차피 줄 거면서 꼭 한마디 더 하지.”

“저장해두게 전화나 걸어.”

“다음에 내가 연락할 테니까 그때 해. 가짜번호 준 건 아니지?”

“참나. 내가 연예인이야?”

서로 실실거리다가 차세정이 “그럼 갈게” 하고 말했다. 유선우는 그대로 보내려다 말고 예의상으로 물었다.

“혼자 괜찮겠어?”

“응. 또 무슨 일 생기면 로또 질러야지.”

“당첨되면 나랑 반반해.”

“결혼하든가.”

“또 한마디를 안 지려고….”

무게 실린 농담에 유선우가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세정은 생글생글 웃다가 발을 돌렸다.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시선을 느끼며 걷기를 잠시. 그녀는 골목에 들어가서 속으로 30초를 셌다.

전부 세고도 혹시 몰라서 10초를 더 세고.

그제야 큰길을 향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갔나?’

차세정의 눈알이 바쁘게 굴러갔다. 유선우의 뒷모습을 찾아다니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갔음을 겨우 확신한 차세정이 길거리에 쪼그려 앉았다.

“아으으! 우우, 우으으으!”

차세정이 얼굴을 감싸고는 괴성을 질렀다. 화들짝 놀란 개가 짖어댔으나 그녀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얼굴 뜨거워….’

직접 뱉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쿨해 보였던 유선우와는 다르게 여러모로 질척거렸다.

큰 실수를 안 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안 하던 짓을 하니 얼굴이 터져버릴 지경이다.

‘그래도 이쯤 안 하면 절대 안 넘어와.’

유선우의 마음이 자신만큼 크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차세정은 그것이 못내 서글펐으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학창시절 때와 마찬가지다. 본인이야 눈치채지 못했지만, 당시에도 그녀는 유선우를 얻으려 물밑에서 별의별 수작을 다 부렸었다.

‘한 번 해냈으니까 두 번도 할 수 있어.’

차세정의 가슴 속에 굳은 결의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유선우의 번호가 든 폰을 꽉 쥐고 집으로 달렸다.

***

어느덧 찾아온 10월의 첫날.

오늘은 유선우의 첫 출근 날이었다.

본래라면 설렘과 긴장감을 안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유선우는 짜증만을 내고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상쾌한 아침이 도리어 불만스러웠다. 다름이 아니라 관리자가 잠적해버렸기 때문이다.

테러가 터졌던 날 밤. 유선우는 관리자의 부름을 받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불려가기는커녕 오랜만에 숙면을 취해버린 게 아닌가.

하루 정도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상외의 사건인 만큼 관리자도 바쁠 테니까.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서. 나흘이나 흘러가고 보니 어느새 출근 날이 돼버렸다.

‘한두 대로는 부족하겠어.’

엉덩이에 진한 손자국을 남겨줄 예정이다. 푸른 눈에서 눈물을 쏙 빼주고 말리라.

우우웅.

다짐하고 있을 때 식탁 위에서 진동이 울렸다. 유선우의 폰에 카톡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유선혜는 가자미 뼈를 바르면서 실실 웃었다.

“또 그 언니?”

“밥은 조용히 먹자.”

유선우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차세정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해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메시지나 전화보단 직접 만나는 것에 의미를 두는 편이었다. 그저께도 한 번 만나서 초밥집에 다녀왔었고.

가족이 묘한 낌새를 잡아챈 건 유선우의 실책이었다. 식탁이나 소파에 대충 폰을 던져놓는 버릇이 화근이 되었다.

근처에서 알림음이 들려오면 누구라도 힐끔 보기는 하니까. 일반적인 반응인지라 탓하기에도 뭣한 일이었다.

유선우는 폰을 집어넣고는 다시 젓가락을 잡았다. 담담하게 식사를 이어가려는 차에 아버지가 말했다.

“답장은 해라.”

“밥상머리 앞에서 폰 만지는 거 아니라 하실 땐 언제고….”

“말 걸어오는 사람 무시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예.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겠죠.”

유선우는 별수 없이 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인은 당연하게도 유선혜가 말한 그 언니였다.

- 오늘 출근하지?

- 사거리에 탐앤탐즈 있어

- 받아서 인증!

짧게 세 줄에 더해 아메리카노 기프티콘까지.

이모티콘 대신에 기프티콘을 쏘는 여자다.

유선우는 픽 코웃음을 쳤다.

분명 스폰 안 받는다고 도장 콱 찍었거늘.

아무리 커피를 좋아한다지만 속이 다 보인다.

‘이런 걸로 내가 좋아할 줄 알았다면!’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유선우가 주문하면서 종업원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기프티콘 바코드가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넹.”

희희낙락하면서 진동벨을 가져간다. 좋다고 방실방실하는 가족의 모습에 유선혜가 한탄했다.

“어떻게 커피 한 잔에….”

“응?”

“아무것도 아니야.”

유선혜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카페모카를 주문하는 와중에도 내심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내 오빠라지만 좀.’

사람이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싶었다.

물론 기프티콘을 쓰는 것 자체는 부자연스럽지도 않다. 다만 어떤 관계라도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가 깔려 있기 마련.

받기만 하다 보면 상대보다도 목소리가 낮아지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손해가 없어 보여도 말이다.

‘어련히 잘하겠지.’

유선혜는 쓸데없는 참견이다 싶어 걱정을 떨쳐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보단 오빠의 첫 출근이 더 중요하다.

“오빠. 잠깐 입 좀 닫고 있어 봐.”

“이렇게?”

유선우는 의아해하면서도 말은 잘 들었다. 최근엔 유선혜의 언짢음도 거의 풀려가고 있는 기색. 괜히 토를 달아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았다.

유선혜는 입 다문 유선우를 오목조목 뜯어봤다. 본디 남매 사이라면 못생겨 보이기 마련이지만 차려입은 모습이 썩 훌륭하게 보였다.

5년간 떨어져 지내서인지 가족임에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응.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괜찮네.”

“…입 열면 별로다?”

“별로라는 건 아닌데 좀 깨지. 아니, 많이 깨지.”

유선우의 낯이 뚱하게 변했다. 그가 무어라 반박하려 할 때 진동벨이 울렸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모카가 전부 나온 뒤에야 카페를 나섰다.

통근은 유선혜의 차로 함께 하기로 했다. 유선우의 머릿속에서 동생의 평가는 여러모로 높아져 있었다.

‘21살인데 고소득 직장에다 차까지 있다니.’

적어도 상위 3퍼센트에는 들지 않을까. 유선우는 괜히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보면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벨트를 매고 있자니 유선혜가 툭 던지듯이 물었다.

“영수증 받았지?”

“어? 어.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냥 주더라.”

“그 언니한테 찍어서 보내줘.”

“찍으라고?”

의미를 알 수 없어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과연. 웬 자그마하고 동글동글한 글씨로 번호가 적혀있었다. 유선우는 번호보다도 다른 것에 놀랐다.

“와, 이걸 어떻게 알았어? 능력 쓴 건가?”

“척하면 척이지. 나한테는 영수증 필요하냐고 물어봤잖아.”

“그게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유선우는 다시금 감탄하며 유선혜의 말을 따랐다. 아메리카노를 컵홀더에 꽂고 영수증까지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아기자기한 글씨가 눈에 띄도록.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 끝 두 자리는 접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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