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화
상황이 끝난 후
그 뒤로도 수차례 지시가 이어졌다.
손들고 머리 잡아라, 뒤 돌고 인질 풀어줘라.
유선우로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의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으니까. 하필이면 피가 빨간색인 몬스터들밖에 없었다.
오해가 풀린 것은 생존자들이 변호를 나서준 뒤였다.
“헌터분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내부 상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돌입한 인원은 아직 없는 낌새. 하기야 테러 자체가 장시간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특공대가 바로 올 거리도 아니고. 당장 출동 가능한 인력이란 이 정도다.
‘아, 이거….’
문득 드는 예감에 유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굉장히 귀찮아질 것만 같아서. 그래도 다행히 이럴 때 써먹으려 만들어둔 빚이 있었다.
질문에 대충 대답하면서 박아연에게 연락을 넣었다. 위치를 적어두고 ‘살려주세요’ 다섯 글자만 추가하면 충분하다.
그녀가 근무하는 청일 용인 지부는 이곳에서 가까운 편. 메시지를 보면 죽어라 달려올 터다.
박아연을 기다리는 동안 유선우는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차피 알려질 것이라면 밝히고. 위험한 쪽은 거르고.
경찰이 원하는 정보를 주지는 못했다. 예를 들자면 테러가 발생한 정확한 시각.
게임이나 하던 와중에 휘말린 유선우가 알 리가 만무했다. 상황에 대한 건 다른 생존자들에게 듣는 편이 나았다.
이후엔 경찰들이 생존자를 수습하고 주변을 통제했다.
그동안 30여 명의 경찰특공대가 도착했다. 익히 알려진 대테러부대. 각성자의 비율은 해봐야 1할을 밑도는 수준이었다.
이는 각성자들이 대부분 헌터를 지망하기 때문. 동시에 범죄 진압엔 특수한 능력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각성자가 범죄를 저질러봤자 어차피 인간이다. 몬스터가 아니고서야 총알 박히면 죽기 마련.
총이 가장 적합하니 각성자를 잘 써먹지도 않는 편이다. 현장에서 활용하기에 편리한 능력이라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유선우는 특공대의 돌입을 관람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와, 멋있네.’
무릇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광경. 수천수만의 군대가 진군하는 것도 봤지만 그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그때 장년의 남자 하나가 유선우에게 접근했다.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저요?”
“예. 경기남부경찰청 경감 신성호라고 합니다.”
부하에게 정황을 전해 들은 신성호는 유선우에게 흥미를 품었다.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상당한 위험을 초래하기 마련.
어지간해서는 참혹한 결과를 일으킬 뿐인데 유선우는 훌륭한 성과를 거둬냈다. 친분을 만들어둬서 나쁠 게 없는 인재라는 뜻이다.
“상황은 전해 들었습니다. 대단히 고생하셨겠습니다.”
“놀라기는 했죠. 살면서 할 고생 다 겪은 줄 알았는데 죽기 전까지는 안 끝나려나 봅니다.”
최소 환갑은 넘어야 설득력이 생길 발언. 새파랗게 젊은이의 말인데도 신성호는 가벼이 여기지 못했다. 이유 모를 깊이와 진한 짜증이 묻어 있었다.
“당연히 놀라셨겠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본인이 아니고서야 이해 못 할걸요. 게임 하다가 갑자기 팍!”
“팍?”
“정전이요. 카운터 찾아가니까 알바가 전 여자친구고. 도망가려니까 위에서 쾅쾅거리고. 내려가니까 몬스터까지 있고.”
“그거 참… 큰일이셨겠습니다. 하하.”
농담인지 진담인지 당최 알아듣기가 힘들다. 신성호가 어색하게 웃자 유선우가 말을 돌렸다.
“근데 용건 있으세요? 아는 건 다 말씀드렸는데.”
“예. 협조 감사드립니다. 딱히 취조하려는 건 아니고요. 우선 사안이 사안인지라 몇 번 연락이 갈 수도 있고, 저희 측에서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아, 네. 죄송한데 명함이 없어서. 번호만 드리면 되죠?”
신성호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소속이 어떻게 되십니까?”
“지금은 딱히 없네요. 예정은 있는데 이제 각성자 등록 마친 참이라서.”
“그러십니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군요.”
모든 진상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눈부신 행보임은 명확했다. 소속이 없다는 말도 신성호에게는 달갑게만 들렸다.
현직 헌터라면 협회나 소속 클랜 소관으로 들어가기에 접촉이 어렵다. 그러나 계약한 단체가 없다면 연줄을 대기엔 이상적인 신분이다.
이후로는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가 이어졌다.
유선우가 귀찮음을 호소할 즈음 때마침 박아연이 도착했다. 경찰들은 그녀를 제지하다가도 직함에 마지못해 물러났다.
엄밀히 말하면 범죄 현장은 헌터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 엮이는 경우가 잦아 경찰로선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막기라도 하면 다 족치겠다는 기세가 풍겼다.
“선우 씨!”
장애물을 전부 뚫어낸 박아연이 초조한 얼굴로 달려왔다. 그녀를 발견한 신성호는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배려했다기보단 박아연을 개인적으로 어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선우 씨,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옷에 피는 다 뭐고요!”
“피곤한 거 빼면요. 사람 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아니…!”
박아연은 성질을 내려다가 애써 참았다. 살려달라길래 달려왔더니 이게 무슨 꼴인지. 충격적이었지만 쓴소리를 뱉을 수도 없었다.
“안색이 완전 똥색인데 뭐가 괜찮다고. 병원 갈래요?”
“제가 어디 가서 다칠 사람이에요?”
“그건 아니지만….”
“오해할 문자 보낸 건 미안해요. 하도 급했거든요. 근데 그쪽은 목소리가 왜 그래요?”
“오다가 소리 많이 질렀거든요. 하도 급해서.”
차가 멈출 때마다 경적 울리면서 온갖 욕을 싸질러댔으니. 목소리가 칼칼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아.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전화는 왜 안 받았어요?”
“일단 자리 좀 옮기고 싶은데요. 지금 가도 되는지 모르겠네. 참고인? 그런 신분이라서요.”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고인이 수사 기관에 출석할 법적 의무는 없어요. 도덕적으로는 어쨌든.”
“의외로 별거 다 아시는구나. 차 얻어 타도 괜찮아요?”
“의외는 또 뭐예요. 차는, 음.”
차 시트가 걱정됐지만 박아연은 별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리를 옮기기 전에 경찰에 꼬장을 부려두기로 했다. 슬쩍 훑어보니 눈에 익은 사람도 있었고.
“잠깐 기다려 봐요.”
박아연이 돌아오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화사하게 웃었다.
“꼬우면 청일에다 연락하라 했어요. 이쪽 경찰이 저희한테 빚진 게 많아서.”
“아, 네.”
“차는 저쪽. 따라와요.”
유선우는 자리를 옮기는 박아연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그의 소매가 잡아끌렸다.
눈알을 굴리자 보이는 것은 심각한 표정의 차세정. 하도 조용하기에 까먹고 있었다.
“나도 가.”
“어디 가는 줄 알고. 안 피곤해?”
“몰라도 가. 하나도 안 피곤해.”
오늘 겪은 일은 차세정을 단번에 흔들어 놓았다. 연락처를 받아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거리를 좁힐 수 없을 듯했다.
‘얘가 원래 이랬나?’
필사적인 태도에 유선우가 턱을 긁적였다. 그가 알던 차세정은 맺고 끊음이 칼 같은 사람이었다. 집요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는데, 모르는 새 달라진 모양이다.
***
차세정은 룸미러에 비친 박아연을 힐끔 엿봤다. 전체적으로 샤프한 이미지. 능력 있는 연상이라는 인상이다.
차세정이 고집부린 이유의 반의반쯤은 박아연에게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유선우와 친밀해 보여서.
질투보단 위기감이란 말이 훨씬 적합했다. 예전은 어쨌든 지금 자신과 유선우 사이엔 아무런 연결이 없으니까.
차세정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기를 한참.
운전석에서 한숨 섞인 음성이 흘렀다.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을 건데요? 아무리 그래도 설명은 해줘야지.”
길어진 침묵 탓에 박아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헐레벌떡 달려왔건만 어떻게 설명도 안 해주는지. 뒷좌석 상황이 재밌기는 해도 용건이 먼저다.
“많이 피곤해서요.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유선우는 요점만 정리해 설명했다. 자세한 사정은 차후에 짚을 생각이었다. 몇 번씩이나 같은 설명을 하니 혀는 잘 돌아갔다.
경찰에게 읊었던 말 외에도 하나를 덧붙였다.
어떤 미친놈이 게이트를 열었다는 것.
솔직하게 말한 건 박아연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리자라고 했나. 혼자서 그놈들 씨를 말릴 수는 없겠지.’
알아야 할 사람에게는 알릴 필요가 있다. 차세정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경솔하게 입을 열 사람은 아니었다.
사정을 들은 박아연은 먼저 욕부터 뱉었다.
“아니,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경찰에 말하진 않았겠죠?”
“네. 저도 머리는 있거든요.”
“다행이네요. 아오, 어떻게 조용할 날이 없어.”
심각한 사태라는 건 명확했다. 언론에 알려지면 각성자의 이미지가 곤두박질치고 말리라.
“좀만 더 자세하게 말해줘요. 예를 들어 몬스터 종류나 숫자 같은 거.”
“넘어온 건 헬하운드에 베어울프에 리저드맨에… 대충 오크 윗선에 있는 놈들이요. 숫자는 별로 의미가 없고.”
“무슨 소리예요?”
“제가 하도 빡쳐서 게이트 넘어갔거든요? 완전 동물원이던데.”
박아연이 질겁해서는 머리를 확 뒤로 돌렸다.
“미쳤어요!? 거길 왜 들어가?”
“이번은 제 실수 맞더라고요. 조심할게요.”
“…웬일이래. 이러니까 또 어색하네.”
그녀가 큼큼 헛기침하고 핸들을 고쳐잡았다. 항상 제멋대로인 유선우가 반성이라니. 신기한 한편으로는 흐뭇함마저 들었다.
“하여튼 게이트는 절대로 알려지면 안 돼요. 목격자가 골치 아픈데….”
박아연의 눈이 차세정을 향했다.
“선우 씨 친구분? 실례지만 성함이?”
“차세정이에요.”
“그래요. 세정 씨, 이건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 일이 알려지면-”
“같이 손잡고 이민이나 가야겠죠. 저도 알 건 알아요.”
각성자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 나라 전체가 피해를 본다. 괴물이다 뭐다 하지만 몬스터를 잡아주는 건 각성자이니까. 탄압을 받게 된다면 한국의 각성자는 대거 이탈하게 될 터다.
“무시한 건 아니에요. 그 당연한 것도 생각 안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
“이해해요. 조금 전에도 봤거든요.”
“혹시 목격자가 얼마나 있었죠?”
“글쎄요. 열댓 명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 미친.”
절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쯤 되면 소문이 흘러나갈 것은 자명한 일. 확산을 막으려면 그럴싸한 개소리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그래도 내가 할 일은 아니야.’
언론 통제의 전문가는 협회에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재범의 가능성. 이러한 일이 반복해서 터지면 포장도 불가능해진다.
“그 테러범은 어떻게 됐어요?”
박아연의 물음에 유선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정의구현 해줬죠.”
“네?”
“죽였다고요.”
마치 날씨라도 읊는 듯했다. 말뜻에 담긴 무게와는 상반되는 태평한 태도. 박아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게이트 넘어가서 죽였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CCTV는 원래 망가져 있었고. 목격자가 문제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다 죽일 수는 없잖아요.”
무덤덤하기까지 한 음성에 박아연은 당혹감을 느꼈다.
들어본 결과, 확실히 천 번을 죽여도 모자란 놈이다. 언제 어디서 게이트를 열지 모를 극악무도한 범죄자.
박아연 역시 인권이고 뭐고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그녀였더라도 가능하다면 죽였을 것이다. 구속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니까.
그리고 죽도록 힘들어했겠지.
반면에 유선우의 음성은 너무도 무감정했다.
‘사람 죽였다는 소리를 어떻게 저리 쉽게….’
여태까지 봐온 유선우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동시에 박아연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인간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박아연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유선우는 룸미러를 통해 그 반응을 알아봤다.
둘 사이의 전환점이었다. 박아연이 충분히 생각한 후에 받아들이면 그때는 유선우도 선의로 보답할 것이다.
하지만 시선에 꺼림칙함이 섞이게 된다면 그는 그녀를 타인으로 대하기 시작하리라.
차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긴박감이 이어지는 와중에 차세정이 유선우를 건드렸다.
“야.”
“응?”
“배 안 고파? 난 죽겠는데.”
유선우는 어이가 없어 눈만 깜빡였다. 하필이면 지금 산통을 깰 줄이야. 그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결국은 실실 웃었다.
“왜, 사주기라도 하게?”
“다음에 네가 사면.”
자세히 보니 차세정은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시트를 꽉 잡고 있었다. 그녀도 고심 끝에 꺼낸 얘기라는 의미. 유선우는 이리저리 재지 않고 수긍했다.
“그래, 그럼.”
흔쾌히 대답하자 차세정이 입가를 꿈틀거렸다. 웃음을 억누르던 그녀가 갑작스레 아차 하는 소리를 냈다.
“알바 어떡하지? 월급 받을 수는 있나….”
“죽다 살아났는데 돈이 문제야?”
“살았으니까 돈 걱정해야지. 다음 주가 월급날이야. 못 받으면 3주나 무급으로 일한 거잖아.”
“큰일 맞네. 난 PC방 어디 다녀야 하나.”
언제 심각하게 굴었냐는 듯이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떠드는 둘을 곁눈질한 박아연이 입을 우물거리다가 픽 웃었다.
‘아무리 봐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여느 때와 같은 결론이 나왔다. 이상한 사람일 뿐이지 냉혈한이나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단편적인 일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부터가 어리석은 짓. 그래서야 이 세상에 멀쩡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나도 정신 차려야지.’
헌터는 경찰의 요청을 받아 범죄자를 상대하는 일도 잦다.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이 같은 자리에 서 있게 된다면.
적어도 주저하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만큼은 사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