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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21화 (21/179)

제 21화

이불 밖은 위험하다

‘긴급 퀘스트?’

유선우는 의아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산전수전 다 경험한 그로서도 본 적이 없는 문구.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 살해가 웬 말인지. 보상도 안 줄 거면서 쉽게도 말한다.

하지만 마냥 경시할 수는 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명백하게 이질적이었다. 이계에서 이따금 맞닥뜨렸던 흑마법사와도 비슷한 감각. 오히려 그보다 꺼림칙한 감마저 있었다.

“뒤로 가 있어 봐.”

유선우는 먼저 차세정부터 후방으로 물렸다. 그러고는 심사 때처럼 빙창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때때로 연습했기 때문인지 당시보다는 능숙해진 솜씨. 한기가 손바닥에 닿아 머리를 차갑게 식혀주었다.

적개심을 드러내자 남자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남자의 입에서 뜻 모를 발언이 튀어나왔다.

“아, 당신도 대리자인가 봐요?”

“뭔 개소리야. 대리자요?”

“딱 봐도 평범한 헌터는 아닌 것 같은데. 그쪽한테도 관리자 붙은 거 맞죠? 보자마자 엄청 난리에요. 아주 눈앞이 빽빽해.”

남자의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갔다. 무언가를 읽어내리는 동작이었다.

“누가 붙어?”

관리자라는 말에 유선우는 귀를 의심했다. 알아본 결과 지구에 관리자를 인지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물론 정보력이 부족해 겉핥기 수준의 조사였을 뿐. 그러나 동네 돌아다니다 들을 화제는 결코 아니었다.

반응에 만족한 남자가 물개박수를 쳤다.

“맞네, 맞아. 어쩐지 오지게 갈구더라고요. 이 근방에서 활동하라길래 연습 겸해서 무턱대고 온 건데, 어떻게 한 번에 맞췄네.”

“날 찾고 있었다는 건가?”

“말이 그렇게 되나요?”

유선우의 마음이 단번에 한쪽으로 기울었다. 죽이기 전에 무엇이든 하나라도 알아내기로. 당장 묻어버리기엔 신경 쓰이는 요소가 많았다.

우선 남자의 근처에 있는 소규모의 게이트.

그리고 그곳에서 나왔으리라 여겨지는 몬스터들.

죄다 군침을 흘리고 있지만 어째선지 덮쳐오진 않는다. 이전에 봤던 게이트와 다른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물어보겠는데, 자연 발생한 게이트는 아니지?”

“보시다시피 뭐. 제 작품이죠. 아직은 민망한 수준이긴 해도.”

일반적인 각성자에게는 불가능한 일. 놈의 언행으로 미루어보아 관리자로부터 얻은 능력이리라.

‘내가 아는 흰머리 관리자는 아닐 테고. 다른 놈이 끼어들었구나.’

다른 차원의 관리자가 게이트를 여는 목적은 지구를 뒤엎기 위함. 생각해보면 수단은 게이트 외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그중 하나인 셈. 대리자라는 말과 딱 맞아떨어지는 추론이다.

“이봐요. 머리 그만 굴리시고 제 말이나 들어보시죠.”

남자가 생각에 잠긴 유선우에게 말했다. 그는 벌레를 치우듯 손으로 허공을 휙휙 휘저어댔다.

“자꾸 당신 죽이라고 시끄럽게 구는데… 제 생각은 좀 다르거든요? 그쪽도 그건 싫잖아요. 우리는 인원이 모자라서 고생이고.”

“네 밑으로 들어가라고?”

“에이, 회사도 아닌데 그렇게 딱딱하게 굴진 않고요. 서로 윈윈하자는 거예요. 어떻습니까?”

고개를 흔들거리며 여유롭게 웃는다. 본인이 위험해질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낌새. 유선우는 마주 웃어주고는 창을 고쳐잡았다.

“10초 지나고도 웃을 수 있나 보자.”

유선우가 밀집한 몬스터의 무리를 향해 발을 뻗었다. 하도 발걸음이 느긋해 남자는 순간 정신을 놓았다.

“머리가 돌았나….”

눈앞의 헌터에게 흥미가 있었기에 살려두고 싶었건만. 아무래도 영입은 무산된 모양이었다.

남자는 몬스터에게 걸어둔 제약을 풀었다. 몬스터의 인간을 향한 적대심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끊임없이 억제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뛰쳐나가는 것.

그는 비호를 받고 있다지만 다른 인간은 아니었다. 굶주린 몬스터들이 군침을 흘리며 유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

찢어지는 포효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던 이들은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본능적인 공포로 인해 절망에 빠져가는 가운데.

차세정은 똑똑히 보았다.

몬스터들은 유선우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발을 떼고 다시 땅을 밟는 사이에도 머리가 터져 나갔다. 유선우를 지나쳐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려는 무리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화려한 장면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찌르고 휘두를 뿐인 지극히 단순한 동작.

그러나 소름이 끼치도록 정확하며 신속했다. 유선우의 창술은 이미 다른 무언가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어, 어? 이게 무슨….”

남자가 얼빠진 목소리를 뱉었다. 대군은 아니었으나 미노타우로스마저 포함된 정예 부대.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 한순간에 고깃덩이로 변했다.

남자의 표정이 무너지자 유선우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누가 붙었는진 모르겠는데, 날 잘 모르는 놈인가 보다? 아니면 네가 고급 인력이 아닌 건가. 대체 뭐 하러 온 건데?”

남자는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거릴 따름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자포자기라도 했는지 한숨을 내쉰다.

“하, 씨. 괜히 힘 빠지네.”

“뭐 인마?”

“어쩐지 메시지 더럽게 많이 뜨더라니. 됐어요, 됐어! 너 다 해먹어! 이만큼 뽑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빽빽 소리치는 꼴이 황당하다. 유선우는 붙잡아서 고문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이미 정보는 얻을 만큼 얻었으니 후환을 없애는 편이 나을 터.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창을 내질렀다.

콰직!

핏물 대신에 투명한 파편이 튀었다. 보호 마법이라도 되는지 파편과 부딪힌 창에 금이 갈라졌다. 물리적인 충격이 아닌 마법적인 간섭이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곧 남자가 중지를 내세워 도발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목적은 단순한 개죽음이 아니었다.

그저 개인플레이를 해봤을 뿐. 그는 내심 반성하면서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유선우는 남자의 머리채를 붙잡고자 손을 뻗었다. 그러나 몸에 닿자 거센 반발력에 손바닥이 튕겨 나갔다.

그가 어리벙벙해 있기를 잠시.

게이트 너머에서 무언가가 빼꼼 튀어나왔다.

길게 뻗은 가운뎃손가락이었다.

“이 새…!”

유선우는 목덜미를 붙잡고 게이트를 노려봤다. 사람 서넛 정도가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 꺼림칙한 감은 있지만, 위기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 판단했다.

‘뚝배기를 깨주마.’

결단은 빨랐다. 유선우는 게이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하스스톰의 마계]

- 던전 난이도 : Ex Rank

- 클리어 목표 : ???

- 클리어 조건 : ???

잔여 입장 시간 : 00:04:43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메시지가 줄줄이 떠올랐다. 심상찮은 정보였으나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난데없는 탈력감이 유선우를 휘감았다. 그가 쓰러질 듯 몸을 휘청거렸다.

‘뭐야.’

온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호흡이 턱 막히고 두통이 머리를 찌른다. 다리에 힘이 빠져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했다.

유선우는 필사적으로 몸을 지탱하며 주위를 살폈다.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삭막한 평원. 어디를 둘러봐도 붉은색이 가득하다. 땅바닥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피로 적신 듯이 붉다.

광활한 대지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개미 떼처럼 무리 지은 몬스터의 대군이었다.

어림잡아 수천의 군세. 비행종이 하늘을 노닐고 레이스가 비명을 내지른다. 드물게도 위기감을 느낀 유선우가 식은땀을 쥐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당장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같은 메시지가 몇 번이나 겹쳐서 나타났다. 평소였으면 짜증을 냈을 터이나 지금만큼은 공감했다.

몬스터의 숫자나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더한 규모의 군세도 얼마든지 상대해봤으니까.

문제는 마력 사용자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환경. 차원의 특성이라도 되는지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빼앗긴 마력을 긁어모으려 해도 사방팔방으로 실처럼 흩어져버린다.

‘이대로는 위험해.’

마력 사용에 숙달되면 생기는 이점.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마력으로 대체하게 되는 것.

덕분에 몇 주쯤은 굶어도 살아갈 수 있으나, 이번만큼은 이점이 반대로 작용했다.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리자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마나는 문제가 없었지만, 유선우의 주된 동력은 마력. 정상적인 전투를 3분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애초부터 이게 노림수였나.’

이제야 이름 모를 관리자의 의도를 잡아챌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승기가 보이지 않으니 유리한 환경으로 끌고 왔음이라.

도발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언젠간 이곳에 오게 됐을 터. 꾸준히 동네에서 테러를 저지른다면 필연적인 일이다.

머리가 차가워지는 차에 조소가 들려왔다.

“진짜 올 줄은 몰랐네. 병신.”

본래 목표였던 남자에게 시선이 갔다. 상황이 역전됐다고 봤는지 표정이 유들유들하다.

짝!

남자가 난데없이 손뼉을 두어 번 쳤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에 변화가 생겼다.

잔여 입장 시간 : 00:00:11

극도로 단축된 시간과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마력. 유선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선언했다.

“얼굴만 보이면 목을 찢어버리겠어.”

남자가 이죽거렸다.

“보고 있잖아. 지금은 못 하겠지?”

유선우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럴 리가.”

하여간 이 싸가지나 관리자나 자신감이 과하다. 확실히 다리는 후들거리고 말조차 뱉기가 버겁긴 하다.

‘근데 날 너무 X밥으로 봤어.’

유선우의 마력 총량은 터무니없이 방대하다. 흡혈여왕의 피와 요정여왕의 눈물을 얼마나 마셨던가. 더해서 용왕이 수백 년간 보관해온 비약까지 훔쳐먹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최고급 엔진은 이 정도론 부서지지 않는다.

마나를 끌어올려 빙창을 손에 쥐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속이 보이는 투명한 색.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증거다.

한기 서린 창을 으스러지라 움켜잡았다. 그리고 강대한 마력이 체외로 범람했다.

지금껏 마력을 중앙에 두고 마나를 겉면에 둘렀다면 이번엔 반대. 검기가 얼음에 덧씌워지며 선연한 푸른빛이 창을 감쌌다.

바다와도 같은 마력을 압축해낸 창날. 검기가 흐트러지며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이런 미친…! 끌고 오기만 하면 된다더니!”

남자의 낯에서 여유가 지워지고 경악이 차올랐다. 그를 보호하듯이 온몸에 투명한 비늘이 돋아났다.

유선우가 창을 휘둘렀다. 창을 구성하는 얼음이 새끼손가락보다도 작게 으스러졌다.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

무수한 검기가 천지에 해일처럼 쏟아졌다.

콰아아앙!

검기가 대지를 난도질하며 나아갔다. 갈라진 지면에서는 냉기에 적셔진 김이 뿜어져 나왔다.

도망가던 남자도 울부짖던 몬스터의 군세도 육편이 되었다.

“쿨럭!”

찰나의 정적 뒤에 유선우가 마른기침을 뱉었다. 냉정히 따지자면 급소를 찌르기만 하면 될 일. 그럼에도 무리를 한 이유는 하나였다.

단지 자신을 노린 관리자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

“이만큼 찢었으면 목도 찢어졌겠지. 싸가지 없는 새끼.”

[시공의 선지자가 당신을 원망합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찬사를 보냅니다!]

이제 이 개 같은 곳에 볼일은 없다. 메시지를 무시하고 달달 떨리는 다리를 이끌었다.

게이트를 넘자 경치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핏자국이 가득한 시네마 건물의 2층. 유선우는 돌아오자마자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아.”

바닥은 몬스터와 인간의 혈육으로 지저분했다. 찝찝하기 그지없었으나 탈력감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한동안 고생 좀 하겠네.’

유선우는 무릎을 세워 고쳐앉고는 머리를 파묻었다. 목숨이 오가는 위기는 아니었지만 경솔했다는 감은 있다.

‘정신 차려야겠어.’

한동안 위기의식이 결여되어 있기는 했다.

이제는 이전처럼 칼날을 다듬어야 할 때.

최소한 마나 운용 정도는 몸에 익혀야 한다.

탈출한 뒤 머지않아 게이트는 자취를 감췄다. 소리 없이 나타난 게이트는 사라질 때도 조용했다.

상황이 끝났음을 확인한 유선우가 몸을 일으켰다.

‘집에나 가자.’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

***

1층의 상태는 개판이었다.

안경점이며 휴대폰 액세서리 매점이며 다 반파된 모습. 사전에 처리했는지 CCTV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출입구는 웬 점토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별 미친놈들이 다 있어.”

쿵!

짜증이 한계에 달한 유선우가 점토벽을 걷어찼다. 두세 번 반복하니 통로가 뚫리고 바깥이 드러났다.

건물 밖에는 경찰이 한가득. 드디어 끝났다 싶어 활짝 웃고 다가갈 때였다.

경찰들이 유선우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윽박질렀다.

“손들어!”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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