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이불 밖은 위험하다
차세정은 머뭇머뭇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예상과는 딴판인 광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조각품처럼 얼어붙은 채로 널브러진 짐승들. 일하면서 엿보던 게임 화면보다도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참았던 숨을 토해내자 입김마저 호호 떠다녔다.
“너, 너 무슨… 네가 한 거야?”
“응. 아까 누가 밥벌레라 하더라고.”
유선우는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어 상념에 빠졌다.
‘게이트도 없이 헬하운드가 왜 나와?’
몸놀림이 재빠르면서 화력도 강한 몬스터. 일반적인 오크쯤은 단숨에 숯덩이로 만들 수 있는 놈이다.개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등급을 따지면 B급은 되지 않을까.
지구가 걸레짝이 됐다는 건 익히 아는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냥 나가려고 했더니만. 알아보긴 해야겠네.’
성가시고 귀찮아 입맛을 다실 때였다. 뒤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헌터잖아. 사, 살았다….”
“왜 이제 온 거야!”
“왜, 왜 둘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경찰은요?”
안도와 불안. 의존에 원망까지.
불안정한 감정 실린 말들이 유선우를 향했다. 정작 유선우는 귓등으로 흘려들을 뿐이었다.
그는 전장에선 언제나 선봉에 서곤 했다. 과도한 기대가 부담되어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남들의 갈 곳 잃은 원망 때문에 밤새 울어보기도 했다.
유선우의 정신은 시선과 손가락질에 깎이고 깎였다. 지금에 이르러서 그의 울타리는 한없이 좁아져 있었다. 이 자리에서 울타리에 속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딱 붙어 있어.”
“……응.”
차세정은 짧게 대답하곤 입을 닫았다. 그녀는 의문이 넘실거렸으나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꼬치꼬치 캐물을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선우의 무덤덤한 표정이 낯설었다. 차세정이 알던 유선우는 바보 같을 정도로 밝은 사람이었다.
‘달라졌다고는 생각했는데.’
줄곧 이어지던 위화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만약 입을 열었다가 저 눈초리가 자신을 향하게 된다면.
‘절대 싫어.’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만큼 끔찍했다.
***
‘뭐가 이렇게 많아?’
4층으로 내려온 유선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띄는 몬스터만 열댓 마리. 리저드맨에 헬하운드, 베어울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하나같이 오크보다는 윗줄에 자리한 몬스터들. 민간인을 찢어발기는 데는 차고 넘치는 병력이다. 그런데도 아직 생존자가 몇몇 남아 있었다.
“살려, 살려줘어어!”
“끄으으으!”
“지, 진수야. 진철아! 아아악!”
멀쩡한 이는 해봐야 서너 명. 그마저도 운이나 본인의 능력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단지 가지고 놀 장난감으로 선택됐을 뿐.
‘하는 짓은 다 똑같네.’
유선우는 이러한 몬스터의 습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생존자들을 번갈아 본 그가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발이 닿은 자리가 바뀌었다. 도주하는 중년 사내를 뒤쫓던 리저드맨이 유선우의 손에 붙잡혔다. 놈은 아등바등 팔다리를 휘적거리면서 울부짖었다.
“키에에엑!”
“으. 냄새.”
유선우가 지독한 악취에 질색하며 악력을 가했다. 공허한 소리와 함께 골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를 잃은 리저드맨의 몸뚱어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유선우는 리저드맨이 놓친 창을 그대로 잡아챘다. 지구에 돌아와서 실제 창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 몇 번 써먹었던 마력창은 단순한 마력의 집합체. 효율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기술이다.
쌓아온 숙련도가 있으니 물리적으론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것. 하지만 마력으로 간섭받으면 손쉽게 파훼 되고 만다.
창을 꼬나쥔 유선우는 머릿속으로 최단의 동선을 짜냈다. 그가 발을 굴러 헬하운드 세 마리에게 돌진했다.
“그르르르!”
놈들의 입안에서 불길이 들끓었다. 머금은 화염이 뿜어지기 직전에 창이 뻗어졌다.
입을 열고 불을 토해내는 동작 사이의 빈틈. 찰나일 뿐이지만 유선우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푸욱!
창끝으로 풍선을 터뜨리듯 입안을 찌른다. 두 번을 더 반복하고 종횡무진으로 주위를 누빈다.
스쳐 지나가며 베어울프의 몸을 창대로 후려치고 난 뒤. 마지막 하나가 남자 리저드맨의 창을 집어 던졌다.
“손맛 좋고.”
머리에 창이 꽂히는 소리와 함께 전투는 끝이 났다. 정말로 어지간해선 몬스터로 고생할 일이 없다. 고위 마족이 잡몹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은.
“뭐야, 씨.”
일을 마친 뒤에야 불쾌감이 느껴졌다. 창을 쥐었던 손바닥이 미끈거린다. 리자드맨의 점액은 언제 만져도 기분이 더럽다.
질색하는 유선우에게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도망치던 중년 사내였다.
“너, 너 이 새끼!”
“저요?”
“뭘 처하다가 이제 온 거야! 죽을 뻔한 거 안 보이냐고!”
“보여서 도와드렸겠죠?”
유선우는 손바닥을 바짓단에 문지르며 대꾸했다. 대수롭지 않아 하는 모습이 신경을 긁었을까. 사내가 험악하게 눈을 부라린 채 말했다.
“도와줘? 그냥 네 일을 한 거지. 족보도 프로의식도 없는 놈들이 헌터랍시고 으스대니까 이 모양 이 꼴이 나는 거 아니야!”
“5년도 안 된 직업에다 무슨 족보요?”
“나랏돈 처먹는 놈들이… 너희한테 드는 세금이 얼마인지는 알아?”
“글쎄요.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잘.”
변명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이 사내가 소리쳤다.
“하여간 빌어먹을 것들. 내 돈으로 한다는 일이 고작 이거지.”
“받은 적 없다니까요. 커피 한 잔도 돈 아까워서 못 사먹었구만.”
툴툴거리자 사내가 손가락을 뻗었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몸이 뜯어먹힌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저게 다 너 때문이다. 제시간에만 왔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냐고!”
“당연한 소리 하시네. 어쩌다가 범죄자 근처에 경찰이 있으면 피해자도 거의 안 생길 건데. 이게 다 PC방이 위층에 있어서 그래요.”
“뭐, 뭐? PC방? 사람 같지도 않은 놈….”
유선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에겐 익숙하다면 익숙한 말이었다.
“너희가 대체 몬스터랑 뭐가 달라! 괴물 새끼들끼리 싸우다가 콱 뒈져버려야…!”
짝!
통통한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손을 올린 것은 다름 아닌 차세정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내는 멍한 표정으로 얻어맞은 뺨을 매만졌다. 곧 그의 낯빛이 홍시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짜악!
다시 한번 불벼락이 떨어졌다. 관람하던 유선우마저도 표정을 찡그렸다. 어쩐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그도 차세정에게 찔리는 구석이 몇 있었다.
“지, 지금 누구한테 손 올리고 지랄이야!”
“닥쳐요. 당신 같은 사람 내가 잘 알아. 술 처먹고 노는 돈은 안 아깝고 헌터 월급 주는 건 아깝나 보죠?”
“이거 비각성자 폭행이야. 감방 들어가고 싶어?”
“나도 비각성자예요. 각성했으면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진작 이민 갔지. 나이 먹고 쪽팔리지도 않아요?”
사내는 숨넘어갈 듯이 씩씩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는 참기는커녕 끝에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유선우가 끼어들어 사내의 손목을 잡아챘다.
“적당히 합시다. 남들 보잖아요.”
유선우가 에스컬레이터를 눈짓하며 말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했는지 사내가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망할 연놈들… 퉷!”
가래침을 뱉고는 생존자의 대열로 걸어간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유선우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괴물이니 뭐니 들었지만 눈곱만큼의 타격도 없었다. 비슷한 타입을 몇 번이고 봐왔으니까.
특히 어린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지는 성향이다. 하루만 더 빨리 왔으면 엄마가, 아빠가. 코흘리개에게 원망을 받는 건 참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엔 미치도록 힘들어 구토를 셀 수 없이 했었다. 그런데 강렬한 만큼이나 무뎌지는 것도 금방이더라. 지금에 와서는 욕먹으면서 잠도 잘 자신이 있었다.
‘근데 이렇게 화내줄 줄이야.’
유선우는 기특하게 보여 차세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이 대신 화내주는 건 그에겐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안 그래도 됐는데.”
“…별로.”
살짝 물기 젖은 음성. 손까지 잘게 떨린다. 뒤늦게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째선가 웃음이 터졌다. 유선우가 손을 잡아주자 차세정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으으! 손에 뭐야!?”
“도마뱀액?”
“…반대쪽 줘. 내 머리 만진 거 그 손 아니지?”
“아, 미안.”
유선우는 장난치면서도 별 이상한 애가 다 있다 싶었다. 이런 때에도 장단 맞춰주는 사람이 몇 되지는 않던데. 최현석도 나름 진지충이라 해봤자 김광수 정도일까.
뜨뜻한 기류가 흐르는 와중에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생존자들이 노골적으로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방금은 욕하던 사내가 그 행렬의 중앙에 끼어 있기까지. 위에서는 쾅쾅거리니 뒤는 불안하고 앞은 몬스터 때문에 무서운 모양이다.
‘사람이 저렇게 알기 쉬울 수가.’
사람들의 겁 질린 모습에 유선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혹이 붙은 기분이지만 굳이 떼어낼 생각은 없었다. 그리 인성이 되바라지지도 않았고 그러기도 귀찮았다.
‘따라오든 말든.’
그러려니 넘기고는 이동을 재개했다. 멈춘 에스컬레이터에는 시체가 몇이나 쓰러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놓인 사람의 팔다리도 간간이 보였다.
유선우를 뒤따르는 사람들은 구토하거나 눈을 돌렸다. 차세정 역시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그뿐. 토하든 울든 본인의 안전부터 찾고 난 뒤에 할 일이다.
도달한 3층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체를 원 없이 뜯어먹는 몬스터들로만 가득했다.
유선우는 기계처럼 담담하게 몬스터를 도륙했다. 머리와 심장을 찌르고 배와 목을 갈라내고. 구석구석 확인할 여유는 없어 보이는 적들만 치워냈다.
2층은 여태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시체는 어쨌든 몬스터의 수가 위층보다 배는 많았다. 경악에 찬 목소리로 뒤편이 시끌시끌해지는 가운데, 유선우는 한 방향에 시선을 집중했다.
얼핏 보기에도 서른은 족히 넘는 몬스터. 그리고 활짝 열려 있는 자그마한 게이트. 그 앞에는 마른 체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길거리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는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 흔한 외견임에도 상황이 상황이니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저건 또 뭐 하는 놈이야.’
갖가지 추측이 유선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간형 몬스터부터, 몬스터가 사로잡은 인질까지. 그러나 아무리 봐도 순수한 인간이었다. 몬스터가 적대시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고.
의문만이 깊어갈 즈음.
남자의 눈알이 인파를 몰고 온 유선우를 향했다. 남자가 머리를 갸우뚱 기울이더니 태평하게 물었다.
“누구세요?”
초면에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이름을 밝히면 ‘그게 누군데요?’ 소리가 나올 터. 유선우는 대답이 곤란해 그대로 질문으로 돌려줬다.
“그쪽은요?”
“네? 어, 음….”
말문이 막힌 남자를 본 유선우는 통쾌함을 느꼈다. 무어라 놀리려다가 아무래도 아닌 듯해 참아냈다. 안 그래도 분위기는 점점 싸해지고 있었으니까.
“하하. 할 말이 없네.”
남자가 메마른 웃음을 흘리는 순간이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분노합니다!]
[긴급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앞에 있는 괴인을 살해하십시오.]
뜻밖의 메시지가 유선우의 눈앞을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