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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7화 (17/179)

제 17화

각성자 심사

“미쳤나…….”

심사 결과지를 읽어내린 박아연은 자신의 시력을 의심했다.

불과 며칠 전에 확인했던 항목.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결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Mana Value : 842]

‘이게 말이 되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말문이 막히는 결과다.

비각성자였던 이가 딱 시기적절하게 각성했다는 것이 첫 번째. 최근 측정한 박아연의 수치와 2배나 차이가 난다는 게 두 번째다.

‘이쯤 되니 어이가 없네.’

각성자에게 있어 마나 수치는 화력과 연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그런데 이제 막 각성한 사람의 수치가 B급 헌터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니. 훗날에는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반쯤은 빚이나 갚는다는 셈이었는데.’

한 사람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재검사를 받는다는 것. 그부터가 협회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억지로 밀어붙여 성사시키기는 했지만, 협회 직원의 눈초리가 곱지는 않았다.

‘근데 결과가 중요한 거지.’

박아연이 결과지에서 시선을 떼고 유선우를 쳐다봤다. 휘파람을 불어대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모습. 평소에는 열불 터지게 하던 태도마저도 지금은 예쁘게만 보였다.

당황과 불신감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대신에 기쁨이 차올랐다. 박아연은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협회 공무원에게 눈길을 줬다.

담당자는 저번과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당시 결과는 전해 들었는지 놀란 기색이었다.

“오차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믿기 힘든 수치군요. 큰 행운이 따르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행운인지는 몰라도 일단 고맙습니다. 다음은 뭐예요?”

“방금 과정에서 각성 여부는 판별됐고요. 이후에는 잠재력과 능력의 유용성 등을 종합해 등급을 나누게 됩니다.”

“엥? 헌터도 아닌데요?”

사내는 대답하기에 앞서 박아연을 힐긋거렸다. 비각성자인 자신보단 현직 헌터에게 듣는 게 낫다는 판단. 찰떡같이 알아들은 박아연이 설명을 이어받았다.

“헌터는 실력은 물론이고 실적이나 이미지 등 별별 요소를 다 따져서 등급을 매기거든요. 힘보다는 오히려 영향력 등급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죠.”

“그렇습니다. 반면에 각성자는 철저하게 소질로만 분류되고요.”

“아, 네.”

유선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헌터가 되기 전에도 등급이 나뉜다니.

이는 헌터 협회의 권력이나 다름없다.

심사가 끝난 뒤에 데이터를 처박아두기만 할까.

물론 표면상으론 공평하게 클랜에 결과를 넘겨주게 되어있을 터. 그러나 약간의 시간차 정도야 생길 수 있기 마련이다.

정보의 우위성.

그를 위해 클랜은 평소에 협회에 굽실대야만 한다.

‘그럼 어떻게 할까. 적당히 할 수야 있겠지만…….’

설명으로 미루어보아 실전적인 심사가 이어질 것이다. 청일에 몸을 담기로 마음먹은 이상 과한 관심은 달갑지 못하다.

‘근데 조용히 있기엔 늦었어.’

마나 수치부터가 높다고 하니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모르는 사이에 피하기 힘든 상황이 된 셈이다.

‘하는 김에 장작 좀 태워볼까.’

불씨가 지펴졌다면 탄내도 새어나가는 법. 그렇다면 아예 산불을 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여태 청일에 고분고분하게 군 감이 있긴 하지. 경각심 정도는 들게 해줘야겠어.’

모든 클랜이 하나의 각성자를 주시하게 될 날.

그날이 머지않았다.

***

두 번째 심사는 능력의 타입을 분류하는 절차였다. 원거리와 근거리 중 어느 쪽에 특화되어 있는지. 또 보조에 적합한지, 직접적인 전투에 적합한지.

능력이 원체 다양한지라 세부 사항 역시 수두룩했다. 하지만 유선우가 신경 쓸 몫은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허수아비처럼 생긴 과녁을 패주면 되는 일.

‘음.’

유선우는 과녁을 바라보면서 고민에 잠겼다. 시원하게 주먹질을 해도 괜찮을 터.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정도일 뿐이고 재미는 없다. 구경꾼들에게 볼거리쯤은 던져줘야지.

꽈아아악!

유선우는 허수아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겼다. 마치 다 마신 음료수 캔을 찌부러뜨리듯이. 그러자 유리 너머로 심사를 지켜보던 이들이 탄식했다.

- 그, 그거 재활용해야 하는데….

다음은 원거리 측정. 벽에 붙은 다트판 다섯 개를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얼핏 보니 재질은 방금 구긴 깡통과 동일한 모양이었다.

유선우는 거리를 가늠해보면서 느긋이 물었다.

“벽 부숴도 됩니까?”

- 절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흔한 치기라고 생각했는지 비웃는 기색이다. 허수아비를 구긴 탓에 근거리 특화라고 여긴 듯했다.

‘좀 기분 나쁘네.’

이계 활동 3년 차였던가. 그때부터 실력에 대한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오기가 생긴 유선우는 어깨를 돌려 몸을 풀었다.

우우우웅!

유선우의 몸에서 웅혼한 마력이 뿜어졌다. 공기에 압력이 더해지고 짙푸른 연기가 일렁였다.

어느새 그의 손에 나타난 마력의 창이 예기를 뿜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창끝을 따라서 허공에 궤적이 그려졌다.

끼기긱!

수십 걸음이 떨어져 있음에도 과녁이 잘려나간다. 다섯 개가 전부 갈라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서질 일 없다던 벽에도 금이 그어졌다.

‘설마 돈 물어내는 거 아니겠지?’

막상 저지르고 나니 손해배상 걱정이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불평은 들려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말해뒀기에 자기들도 할 말은 없는 듯했다.

이후로도 별의별 심사가 다 이어졌다.

단거리 달리기에 멀리 뛰기에 점프력 테스트.

10분간 나타나는 과녁을 꾸준히 부수는 것까지.

체력장을 연상시키는 과정이었다.

‘은근히 재밌는데?’

테스트를 거듭할수록 지치기는커녕 탄력이 붙어갔다. 유선우는 힘을 이런 용도로 써먹어 본 적이 없었다. 잔뜩 들떠 창던지기에다 창대높이뛰기까지 선보였다.

결과는 당연히 최상.

반응도 바로바로 터지니 스포츠 스타라도 된 기분이었다. 헌터를 안 했으면 올림픽에 나가지 않았을까.

정신적인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적당한 타이밍에 마지막 심사란 말이 들려왔다.

- 협회 소속 헌터와의 모의 전투가 있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내부 사정 탓에 잠시간 대기하셔야 할 겁니다.

“되게 고전적이네요? 하기야 실전이 중요하지.”

유선우는 알아서 납득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스마트폰도 맡겨둔 터라 잠이라도 자기로 했다.

한편 협회의 심사원들 사이에는 비상벨이 울렸다.

“도, 도망쳤다고!?”

“예. 그렇다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

각성자 심사의 마지막 절차를 담당하는 헌터. 그들 역시 정확한 심사를 위해 과정을 지켜본다.

모의 전투라 하면 길어봐야 5분 안에 끝날 법한 과정. 하지만 실상은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테스트다.

각성자라 해봤자 본래는 일반인이기 때문. 갑자기 사람과 싸우라고 해도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은 곤란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문제는 이번 각성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 하는 것마다 월드 클래스인데 전투는 개뿔. 유선우를 담당했어야 할 B급 헌터는 진작 탈주해버렸다.

상황을 전해 들은 과장이 머리를 감쌌다.

“전화는 해봤고?”

“설득은 해봤는데 다시 전화하면 고소하겠다면서 그냥 끊어버렸습니다.”

“아오, 이번에 제대로 항의해야겠어. 이게 무슨 영화야? 각성자들끼리 싸움을 왜 붙여!”

“그래도 지금은 필수 절차이잖습니까. 어떻게 할까요?”

과장은 끙끙거리며 고뇌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장철우 씨 불러.”

“…맡으려고 하실까요? 아무리 그분이라도.”

“무조건 맡겠지. 헌터 협회의 ‘그 사람’ 몰라?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어.”

과장의 말에 부하 직원이 떠름하게 수긍했다. 그는 별수 없이 장철우에게 연락을 넣었다.

헌터 협회의 ‘그 사람’.

묘한 소문이 파다한 장철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유선우 씨?”

유선우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건장한 사내가 눈앞에 서 있었다. 요즘 무뎌지기는 했는지 언제 왔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협회 소속 장철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턱에 흐른 침을 닦고 장철우를 바라봤다.

‘솔직히 좀 불쌍한데.’

기껏 각성해놓고 햇병아리들 샌드백이나 하고 있으니. 몬스터 잡는 것보다 몸은 편하겠지만 마음고생은 심하지 않을까.

눈초리가 묘하다는 것을 알아봤는지 장철우가 으쓱거렸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 고생 많으시겠다 싶어서요. 이 일 얼마나 하셨어요?”

이상한 얘기라도 들은 듯 장철우의 표정이 멍해졌다. 곧 그가 푸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반년쯤 됐을까요.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하. 사실 이번은 제 차례가 아니긴 합니다만.”

“그럼 왜?”

“유선우 씨를 맡을 예정이었던 헌터가 도망갔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중에선 제가 가장 단단한 편이라 절 부른 것 같고요.”

“…아. 어쩐지 대기 시간이 길더라니. 어째 죄송하네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일단 준비하시죠.”

유선우는 안내를 받으며 장철우와 마주 섰다. 머지않아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신호가 들려왔다.

시, 시작하시면 됩니다.

염려하는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둘 중에 누구를 걱정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하지만 정작 더 곤란한 쪽은 유선우였다.

‘어떻게 해야 돼?’

다 때려 부쉈다간 헌터는커녕 살인자가 될 판. 어떻게든 힘을 조절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야 상대의 맷집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를 못하니까.

‘딱밤 쳤다가 머리 터지면 어떡하냐.’

고민은 길게 이어졌다.

결국은 임팩트를 중요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적당히 위험해 보이면 알아서 튀겠지.’

능력을 얻고 나서 여러모로 구상을 해왔다. 아이디어 하나둘 뽑는 정도야 간단한 일. 그중 하나를 떠올리고는 신체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마력과는 온도와 형태가 다른 이질적인 흐름. 낯선 기운에 집중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이렇게 하는 건가.’

오른손을 느슨하게 쥐고 평소처럼 마력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 올리자 손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쩌저적!

손에서부터 퍼진 얼음이 창대를 덮어갔다. 두껍고 날카로운 고드름이 무분별하게 결합된 형태.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주위를 잠식한다.

‘역시 시간이 좀 걸리네.’

의도적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스스로 보기에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창의 표면을 온전히 마나로 뒤덮어 만들어낸 빙창(氷槍). 깔끔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비주얼 오졌고.’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한 겉모습. 유선우는 이로써 꼬리표를 따놓고 싶었다. B급 헌터가 공방도 나누기 전에 항복했다는 꼬리표를.

그는 무심한 눈초리로 눈앞의 헌터를 바라봤다. 하지만 장철우의 상태는 기대와 전혀 달랐다.

“후욱! 후우욱!”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달뜬 숨소리. 입꼬리마저 실룩이는 모습이 영락없이 변태다. 기겁하긴커녕 잔뜩 흥분한 장철우가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언제까지 가만히 있으실 겁니까. 자, 자!”

“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이 모양이야.”

낯을 찌푸린 유선우가 창을 천천히 휘둘렀다. 동시에 심사장 구석구석에 퍼지는 강대한 마력. 그 위에 냉기를 품은 마나가 올라타자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적!

얼음이 뻗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냉기가 심사장을 잠식하는 속도는 빠르지는 않았다. 마나가 마력의 폭발적인 속력을 따라잡지 못한 탓.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더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유선우는 계속해서 마나를 움직였다. 발이 닿는 지면부터 천장까지 닿도록. 머지않아 심사장 전체가 새파란 빙판으로 변했다.

“후우우.”

전부 얼어붙은 뒤에야 흐름을 끊었다. 두리번거리며 결과를 확인해보니 그럭저럭 낫배드. 실용성은 의심되지만 창질보다야 훨씬 그럴싸했다.

‘으, 현기증.’

마나의 비율을 최대한 낮췄음에도 기가 허하다. 최근에 얻은 힘이니 마력에 비해선 총량이 적을 수밖에. 실전에 써먹으려면 적잖은 훈련이 필요할 듯했다.

“에, 에, 에, 엣취이!”

춥기는 또 뭐가 이렇게 추운지. 불 능력자는 어떻게 헌터 일을 하는지 의문이다.

유선우는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시선을 돌렸다. 눈에 들어온 것은 냉동인간이 된 장철우. 얼어붙어서도 꿈틀거리는 게, 나름 대비를 한 모양이다.

창을 내려놓은 유선우가 스피커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히터 틀어주세요!”

이로써 심사가 끝났다.

한국에 새로운 S급 각성자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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