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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1화 (11/179)

제 11화

관리자

귀환 첫날의 고요한 밤.

유선우는 거실 바닥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안타깝게도 그가 쓸 여분의 침대는 없었다. 소파야 있었지만 자다가 내려앉을까 누울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야.’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노숙을 했었으니. 돌바닥과 비교하면 침대나 얇은 이불이나 호화스럽긴 매한가지다.

‘내가 진짜로 돌아오긴 했구나.’

유선우는 오늘의 일을 회상했다. 던전은 그렇다 치고 가족과의 시간은 정겹고도 온화했다. 어머니는 무리한 티가 나는 상을 차려줬고, 아버지도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동생과는 몇 시간씩이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눴다. 자기가 유망주 C급 헌터라면서 자랑을 하더라. 신나 보이기에 “우와아아” 하고 감탄하면서 콧대를 단단히 세워줬다.

‘컴퓨터가 없는 게 좀 아쉽네. 오랜만에 게임이나 하고 싶었는데.’

유선혜의 노트북을 쓸까 싶었다만 자제했다. 5년 만에 돌아온 오빠가 자기 노트북으로 게임이나 처하면 반가움도 옅어질 테니까.

‘미안해서 못해.’

유선혜는 이 집안의 유일한 소득자다. 어린 나이에도 한 몸 바쳐 집안을 떠받치는 기둥. 뒤늦게 돌아온 장남이 막 나갈 수는 없었다.

‘내가 잘해야지.’

5년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

‘뭐야.’

유선우는 생소한 장소에서 눈을 떴다.

왼쪽도 오른쪽도 전부 새하얀, 원근감이 희미해지는 공간. 며칠만 머물러도 정신이 돌아버릴 듯한 곳이었다.

눈에 띄는 사물이라곤 셋뿐이었다.

둥그렇고 작은 탁자와 앤틱 스타일의 컵.

마지막으로 웬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나무 의자.

여자의 인상은 덧없고도 가녀렸다. 길게 늘어뜨린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푸른 눈과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

유선우는 그 이질적인 미모를 보자마자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놈이 아니라 년이었네.”

그토록 찾던 지구의 관리자. 던전에서 돌아온 후로 내내 촐싹거리던 만년설의 수호자였다.

“의외로 놀라지 않는구나.”

“그야 뭐. 금방 보게 될 거라곤 생각했으니까.”

이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다가 걸리니 말이 많아지더라. 물론 던전에서 돌아온 뒤에 잠적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그런데 관리자는 구태여 메시지를 띄워 본인을 드러냈다. 이젠 숨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자, 원하는 바가 있다는 소리다.

‘숨는 것보다는 낫긴 한데.’

유선우가 짜증스레 입매를 비틀었다. 상대의 지위가 까마득하게 높음을 앎에도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

“예끼, 이년아! 뭘 잘했다고 다리 꼬고 처앉아 있어!”

난데없이 날아드는 호통. 예상 밖의 반응에 관리자의 낯이 어리벙벙해졌다. 그녀는 잠깐 귀를 의심했다가 가소롭다는 양 코웃음 쳤다.

“몇 번이나 사과하지 않았더냐. 네가 무시했을 뿐이지.”

“화해하시겠습니까, 위로하시겠습니까? 그걸 사과라고 했다고?”

“그렇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했거늘. 쫄보 마냥 초인종도 못 누르길래 도와주기까지 했다.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구나.”

진심인지 조롱인지 자기가 더 어이없다는 태도다. 유선우는 열불이 치밀어 목을 빳빳이 세웠다.

‘좀 빡치네.’

비슷한 인종을 수도 없이 만나봤다. 사죄하면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

본래 사죄란 가해자가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다. 받아들일지 말지는 오로지 피해자가 결정할 일.

그런데 안 받아준다고 역으로 짜증을 낸다?

이런 놈들은 다 재수가 없다는 게 오피셜이다.

“의자.”

“음?”

“의자 달라고.”

고압적으로 말하자 관리자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곧 그녀의 맞은편에 빛무리가 몰려들더니 의자 하나가 만들어졌다.

신비한 현상에도 유선우는 놀라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의자를 끌어다 앉는 그를 보면서 관리자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뭘 웃어. 좋냐?”

“으음. 이렇게 보니 썩 반갑도다.”

선물 받은 아이처럼 들뜬 음색. 마냥 내숭은 아닌 듯해 유선우는 욕 대신 한숨만 뱉었다.

“왜 불렀는지 말해봐.”

“그게 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아니. 그 전에 커피부터 내와.”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서는 거만하게 지시한다. 불손한 태도에 관리자가 샐쭉 입술을 내밀었다.

“알아서 타 먹거라.”

“진짜?”

“…설탕 두 스푼 맞나?”

“뭐야. 어떻게 알았어?”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너에 관해서는 네 가족보다도 빠삭하다.”

“아.”

유선우가 똥 싸는 모습마저 지켜봤으니 입맛도 꿰고 있을 수밖에. 커피와 비슷한 기호품은 431-9 차원에도 있었다.

관리자는 재차 손가락을 맞부딪혀 커피와 잔을 꺼냈다. 그래놓고 커피는 손수 탔는데, 그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었다.

쪼르륵.

신중하게 물줄기를 흘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인.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을 다소곳이 내밀었다.

“일단 다시 사과하마. 여러모로.”

“본론.”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미 돌아왔는데 무슨 소리인지.

유선우가 눈짓으로 의문을 표하자 관리자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척이나 말하기 힘들다는 듯이 시선까지 피하면서.

“이전에 전했듯이 내가 하위 차원에 실수를 좀 했느니라.”

“그래서?”

“그게 좀… 수습하기 힘들어져서 말이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알게 모르게 재능 있는 인간들을 각 차원에 보냈지.”

모든 일의 발단.

유선우가 이계로 넘어가게 된 계기였다.

의외로 당사자는 화가 나기보단 황당할 따름이었다. 소환 초기에 들었다면 울고불고 생지랄을 했었겠지만, 이젠 남의 일처럼만 들렸다.

“그리고 당시에 네 혼을 거기다가 박아놨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

“호적이 그쪽으로 넘어갔었다는 뜻이니라. 옮겨 다니면서 토악질했던 것도 그 반동이고. 처음엔 잘만 하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긴 했었지만… 솔직히 기대도 안 했었다.”

“뭐 미친년아?”

유선우가 쥔 잔에 금이 갈라졌다. 관리자는 몸을 움찔거리곤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여태껏 너만 한 사람이 없었다. 의미 있는 성과는 거뒀어도 암을 모조리 치워낸 건 네가 유일하지. 남들은 죽은 이를 제외하면 웬만해서는 적당히 애쓰다가 포기하고, 정착해서 잘 살았느니라.”

“하기야… 능력만 있으면 살기는 좋으니까.”

아무리 몬스터 탓에 망해간다지만 평화로운 장소는 있기 마련. 전선에서 벗어나면 한동안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상황에 따라 기간이 달라지기야 하겠다마는.

“당연히 너도 그럴 줄 알고 처음부터 호적을 옮겨뒀었는데, 기쁜 오산이었더구나.”

“이번엔 여기 똥 치워달라고 돌려 보내줬다는 말이네.”

“으음. 말이 그렇게 되나?”

“넌 진짜 쓰레기다.”

멍청이가 힘을 가지니 세상이 이리도 복잡해진다. 지금이라도 때려서 교육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마, 마냥 그뿐만은 아니다. 내가 안 데려왔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으냐?”

“어떻게라니. 그냥 거기서 놀고먹었겠지.”

“멋모르는 소리를. 또 이상한 데 끌려가서 평생 굴러다녔을 거다.”

“…진짜?”

“진짜.”

먹음직한 고기에는 파리가 꼬이기 마련. 관리자들이 유선우에게 과한 관심을 보였던 것도 인재를 돌려쓰기 위함이었다. 아마 흰머리가 세고 허리가 굽더라도 놓아주지 않았을 터다.

“어쨌든 알다시피 지구에 조금 큰 일이 생겼지.”

“누가 봐도 조금이 아닌데. 게이트도 네가 한 건가?”

“설마. 내가 그 정도로 멍청할까.”

“응.”

관리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불평조차 못 뱉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반박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인정했다.

“그래, 내 잘못은 맞다. 내 실수 탓에 담당 차원이 망한 관리자들이 앙심을 품은 것이니라.”

“복수하려고 게이트를 연다?”

“으음.”

날조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불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실책임은 틀림없으니. 그녀는 거짓말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다.

“덕분에 지구가 걸레짝이 다 돼서… 너를 데려오는 데도 부담이 많이 됐지. 앞으로 게이트가 좀 많이 열릴지도 모른다.”

“더럽게 무능하네.”

유선우는 이마를 부여잡고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지구는 이제 답이 없다는 것. 차라리 가족과 지인 데리고 이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야.”

“말이 짧구나.”

“이민 보내줘.”

“무어라?”

“귀먹었나. 이민 보내 달라고. 431-9 거기로.”

진심 담긴 말에 관리자가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진짜?”

“진짜지 그럼. 표정이 왜 그래? 기분 나쁘게.”

“거기 관리자가 누군지 모르는가 보군.”

“내가 어떻게 알아. 너보단 낫겠지.”

“잠깐 기다려 보아라. 이번 기회에 소개해주마.”

새하얀 속눈썹이 내려가고 눈꺼풀이 닫혔다. 유선우는 눈과 입을 닫은 그녀를 보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어떻게 이런 머저리가 다 있지?’

설마 관리자의 특징일까.

아니, 편견을 가지는 건 좋지 않다.

저쪽의 관리자는 인자하고 현명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거기도 나쁘지는 않아.’

오히려 좋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잔당이야 남았겠다만 고인 물은 다 빼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청정 차원인 셈. 문명 수준이 떨어지긴 해도 알고 보면 필요한 건 다 있는 동네다.

애초에 그쪽으로 가면 영웅 취급을 받는다. 지인들 성격이 개차반이라 그렇지. 몇몇 불편함만 감내하면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다.

‘진짜 좋은데?’

타향이라는 관점만 버리면 그만한 장소가 없다. 짐을 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유선우가 입가에 미소를 드리우는 순간.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색욕의 지배자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악하악하악하악하악하악]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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