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화
집이 망했다
띵동.
막상 누르고 보니 웃음이 실실 비집어 나왔다. 어느덧 가슴 속에는 걱정근심 대신 기대감이 차올라 있었다.
‘많이 변했으려나.’
가족들의 얼굴을 그려보며 기다리기를 십여 초. 기다려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어 초인종을 또 한 번 눌렀다.
띵동.
다시 십여 초의 시간이 흘러서.
뒤늦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선혜야, 나가 봐라!
- 아빠가 나가요!
- 어디 여자가 남자 TV 보는데 이래라 저래라야!
- 아, 그럼 됐어요. 알아서 가겠지.
인터폰이 아니라 현관문 너머에서.
[만년설의 수호자가 당신을 가여워합니다.]
‘가여워하지 마…….’
기껏 차올랐던 감성이 얼음물 부은 듯 식어버렸다. 유선우는 착잡함 반 오기 반으로 벨을 연달아 눌러댔다. 한참이 지나서야 인터폰에서 짜증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 하, 진짜. 누구세요?
그리운 목소리다. 정말 너무 그립기는 했는데. 처음부터 현관문 너머가 아니라 인터폰으로 듣고 싶었다.
“나야.”
- 그러시구나. 안녕히 가세요.
“나라고. 네 오빠라고.”
그리 말하자 뚝 하고 연결이 끊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모양이다.
쿵쿵쿵!
- 이놈 새끼야! 몇 살인데 집에서 뛰어다녀!
바닥을 밟는 소리와 어머니의 호통이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내 벌컥 문이 열리고, 앳된 얼굴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혜야?”
기억하던 것보다는 훨씬 성숙해진 얼굴. 그렇다 한들 몰라보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5년이 더 지난 후에 길거리에서 만났어도 알아봤으리라.
20년까지는 자신 없고.
“…유선우?”
많이도 놀랐는지 음성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하기야 그럴 법도 했다. 몇 년이나 전에 실종돼서 장례식마저 치렀다니까.
“선혜야, 오랜만-”
“너 뭐 하는 놈이야. 한동안 없더니 또 쳐왔네.”
“…뭐 인마?”
얼빠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돌아오자마자 가족한테 욕을 먹나?
그가 멍하니 있자 유선혜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뭐 하는 놈이냐고. 도플갱어?”
“무슨 뭐? 도플라밍고?”
“진짜로 진짜 같네. 하여간 세상에 별 미친놈 많아. 옷은 이게 뭐야?”
툭툭.
멱살을 붙잡고는 얼굴까지 두드려댄다. 당연하게도 아프지는 않았다. 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더럽다.
‘말하는 본새가….’
유선우의 기억에 있는 여동생은 애교 많은 성격이었다. 남매싸움이야 자주 했었어도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지는 않았었다.
‘이 년이 진짜.’
살짝 꼭지가 돌았다.
“윽, 냄새. 웬 오크 누린내가 나냐.”
“적당히 하자?”
“적당히? 야. 너야말로 할 장난이 있고 못 할 장난이… 어?”
한참을 노려보던 유선혜가 고장 난 장난감처럼 정지했다. 그녀의 동공이 점차 확장되면서 표정이 눈에 띄게 무너져갔다.
“…진짜 오빠야?”
유선혜가 곧바로 믿지 못한 것은 몇 번인가 사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를 어느 각도로 봐도 유선우 본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아빠야?”
유선우가 기대했던 재회와는 180도 달랐다. 동생이 이런 왈가닥이 되어있을 줄도 몰랐고. 돌아오고 나서부터 충격의 연속이다.
“진짜 오빠구나.”
와락!
유선혜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꽉 안겨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닿은 유선우의 어깨가 축축한 물기로 젖어갔다.
온도 차가 극명한 재회. 유선우는 허탈해하다가도 금세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오빠, 진짜, 씨….”
유선혜는 쉴 새 없이 훌쩍이면서 의미 없는 말들을 반복했다. 감정은 북받치는데도 목놓아 울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너 인마, 누구여! 어디 남의 딸을…!”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을 때 아버지가 뛰쳐나왔다. 사람 다리라도 부러뜨릴 것 같던 태도가 유선우를 보자 혼란스레 변했다.
말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는 기색. 아버지는 몇 번을 입만 달싹이다가 가까스로 말을 자아냈다.
“서, 선우냐?”
유선우의 기억보다 야윈 얼굴이었다. 지구가 개판이 되어버린 지금, 수많은 가장의 모습이 이러할 터다.
유선우는 죄송함과 반가움을 가득 담아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뱉는 한마디가 더없이도 무겁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인지 그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놈아. 대체 뭐하다가 이제 왔냐!”
“음… 이것저것요. 들어가도 돼요?”
“그, 그래. 어여 들어와라. 선혜야, 가서 네 엄마 불러와!”
“아빠가, 흑! 아빠가 가요. 흐윽!”
“들어가자. 동네 사람들 다 나오겠다.”
유선우가 유선혜의 등을 토닥였다. 매미처럼 매달려 있던 그녀도 끄덕이며 실내로 들어갔다.
‘느낌 이상하네.’
새로운 집의 신발장을 넘고 내부를 훑어봤다.
익숙하지 못한 구조와 기억에 없는 가구들.
자신이 외부인이 된 감각에 씁쓸함이 치밀었다.
“여보, 여보! 누구 왔는지 좀 봐봐!”
아버지의 목소리에 쓴웃음을 짓다가 문득 눈이 돌아갔다. 유선우의 시선을 끈 것은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였다.
2018년 9월 4일 화요일.
오후 3시 56분.
‘어라?’
화요일 4시에 집에 있는 아버지라니.
싸한 위화감이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아니, 선혜랑 휴가 맞추신 거겠지.’
그는 애써 불안을 떨쳐내고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투덜대며 거실로 나오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들?”
“예. 다녀왔습니다.”
“우리 아들이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
쏘아지는 의심 가득한 시선. 분위기가 묘해지기 전에 아버지가 언성을 높였다.
“이 여편네가. 그게 아들 앞에서 할 소리야!”
“소리는 왜 지르고 그래!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니까 아주 살판 났구만.”
“이, 이 사람이 진짜!”
아버지는 뼈라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유선우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가 집에 있는 이유는 휴가가 아니었다.
“엄마, 아빠! 오늘까지 이럴 거예요? 한 마디만 더 해봐. 확 오빠랑 집 나가서 살 거야.”
묵직한 독립 선언에 아버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반면 당사자인 유선우는 시큰둥할 따름이었다. 집 두고 어딜 나가서 사나 싶어서. 그래도 동생이 가족 중에선 가장 반겨주는 듯해서 웃음만 나왔다.
“그, 그래. 아들, 한 번 안아보자.”
어머니가 다가와 유선우를 꽉 껴안았다. 이 와중에도 아직 믿기지 않는지 이곳저곳을 더듬는다.
“어머니. 다녀왔어요.”
5년 만에 듣는 아들의 목소리. 드디어 현실을 받아들인 어머니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선우야, 어디 갔다 인제 왔어. 밥은, 밥은 잘 먹고 다녔고?”
“이곳저곳요. 못 먹고 다니진 않았어요.”
“아이고, 못 먹지 않았기는 무슨! 아주 삐쩍 말랐….”
어머니가 몸을 떼고 눈가를 닦더니 의아하게 말했다.
“어머나, 근육질이 다 됐네. 진짜 잘 먹고 다녔나 봐. 선우 맞니?”
유선우의 낯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어떻게 순수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물론 환영은커녕 욕을 먹더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미묘하니 되레 불편할 뿐이었다.
‘집도 영 허전한데.’
이리저리 헤져 있는 가구들.
눈에 띄지 않는 아버지의 소장품들.
한차례 둘러보니 오히려 평범한 가정집보다도 가난해 보였다.
“그보다 집이 왜 이래요? 싫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마시고요.”
“그게 말이다. 아니지, 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봐라.”
삐걱!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앉자 소파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거 다리 부러지는 거 아니에요?”
“부러지기는 무슨. 3개월은 거뜬해.”
“당장 지금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데….”
의류보단 가구에 신경을 쓰던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유선우의 표정에 의아함이 어리자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걱정할 거 없어! 그냥 별 건 아니고….”
“크흠!”
아버지의 부자연스러운 헛기침에 뒤이어.
유선혜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진상을 알렸다.
“집 망했어.”
그 말에 유선우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도 봤어.’
집이 무너진 건 안다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던데. 그가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기도 전에 유선혜가 덧붙였다.
“이사만 3번 했어. 아빠 회사도 망했고.”
“응?”
“그래서 내가 뼈 빠지게 일하고.”
평소에 쌓인 감정이 많은지 목소리가 퉁명스럽다. 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큼, 크허흠! 쿨럭!”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래도 과장이나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어이가 없네.’
이쯤 되면 저주가 아닐까.
아니, 의외로 축복일지도 모른다.
집이 3번이나 무너졌는데도 몸은 멀쩡하니까.
‘어쩐지. 선혜가 헌터 일 한다는 게 이상하긴 했어.’
각성자의 욕구는 둘째치고서 한창 대학에 다닐 나이.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부모님이 극구 반대했을 터다.
‘평소 씀씀이대로 비싼 집 사서 가구 들여놓기 무섭게 망하고. 그걸 반복하니 당연히 이렇게 됐겠지.’
유선우는 금세 전후 사정을 파악했다. 그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어머니가 화제를 돌렸다.
“이렇게 보니 좋아서 말도 잘 안 나오네. 우린 네가 죽은 줄 알고….”
“아, 네. 장례식 얘긴 들었어요.”
“그동안 뭐하다가 이제 왔어.”
“어찌어찌 돌아오긴 했는데, 5년이나 걸렸네요.”
“고생 많았다. 이제 아무 걱정할 거 없어! 너희 아버지도 다시 일 나가실 거야.”
“여보. 그거 말인데….”
어머니가 쏘아보자 무어라 말하려던 아버지가 입을 다물었다.
소파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가 삐걱대는 모양. 예전의 화목하던 가정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유선우에겐 낯선 변화였다.
“하하.”
“오빠?”
“선혜야. 전화 좀 쓰자.”
“아, 응.”
집구석 분위기가 익숙한지 유선혜는 별말 없이 폰을 건네줬다. 유선우는 폰을 받아들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다섯 번 울린 뒤.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여보세요?
“전데요.”
- 아, 선우 씨. 바로 연락할 줄은 몰랐네. 가족이랑은 잘 만났어요?
“그냥 그럭저럭요.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 어떤 건데요?
유선우는 대답하기 전에 부모님을 번갈아 봤다. 둘은 말없이 눈빛으로 부부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공익 헌터는 월급 얼마 받아요?”
***
박아연은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서울로 차를 돌렸다. 다름 아닌 청일 본사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졸려 죽겠는데, 어휴.’
온몸이 지쳐서 보고를 미뤘었으나 일이 생겨버렸다. 자신의 상태 따위는 제쳐두고 착수해야 할 중요한 일이.
그녀는 유선우가 헌터가 된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지간한 A급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터. 그마저도 현재 시점에서 따져봤을 때다.
‘데려오려면 한 고생 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됐네. 사정이야 알겠지만.’
유선혜는 술만 들어가면 푸념을 뱉곤 했다. 친구들은 대학 다니고 노는데 자기는 죽도록 일하고. 그렇게 월급을 받아도 가족 먹여 살리는 데 다 들어간다나.
‘선우 씨는 어쨌든 문제는 그 군인이야.’
김광수가 입만 안 털면 상황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먼저 유선우가 청일과 가계약을 해두고, 청일에서는 그의 파견을 협회에 요청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특정 인물을 지명하는 것이 수상하게 보이기는 할 터. 그러나 다른 각성자도 같이 지명하면 의심은 분산된다.
‘아니, 굳이 복잡하게 나갈 것도 없어.’
어떤 기관도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기울이지는 않을 것이다. 유선우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남자니까. 현재로선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박아연과 김광수뿐이다.
‘알려지면 다들 주시하겠지만… 지금은 안 돼.’
유선우에게도 그쪽이 바람직하다. 관심이란 언제나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법이니까.
누군가가 그의 주변인을 건드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러니 조용히 영입하고 차근차근 실력을 알려 나가는 게 최선이다.
‘미리 입막음해뒀어야 한 건데.’
박아연이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최소한 김광수의 번호라도 받아뒀어야 했거늘. 징그럽게 굴길래 거절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다 마치면 휴가라도 받아야겠어.’
차는 쉼 없이 도로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