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공익이라고?
혼란 속에서 어영부영 상황이 정리된 후.
박아연은 뒷좌석에 유선우를 태운 채 차를 몰고 있었다.
힐긋.
후방거울을 곁눈질하니 잔뜩 심통이 난 유선우가 보였다. 그 언짢아하는 표정이 그녀로선 두렵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미쳐 날뛰면서 차를 부수지 않을까 싶어서.
‘진짜 왜 저래?’
정말로 위험한 곳에서는 세상 당당하더니.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로 계속 저 모양이다.
‘말도 못 걸겠네.’
입맛을 다신 박아연은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역풍을 맞을까 우려되었다.
남은 모를 일이지만 유선우가 화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이유란 다름 아닌, 그의 눈앞에 떠다니는 메시지.
[만년설의 수호자가 미안하다며 싹싹 빕니다.]
‘이 새끼가 진짜….’
지구로 돌아왔음에도 메시지가 뜨는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이 틀린 게 아니라 이놈이 지구의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야 자진 신고를 안 했으니까.
그냥 누가 흐뭇해한다, 누가 지켜본다. 가끔은 아예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일방적인 소통에 익숙해져 그러려니 하고 있던 상황에, 비로소 자신을 타 차원으로 보낸 놈이 특정되었다.
죽도록 구르고 굴러서 돌아왔더니만 지구는 개판이고. 막 돌아왔을 때는 다시 홀로 남겨진 기분에 어찌나 심란했었던지. 본인 코가 석 자인데 남의 차원에다가 보내고 자빠졌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침울해합니다.]
[화해하시겠습니까?]
[Yes / No]
화해는 개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눈가를 적십니다.]
[위로하시겠습니까?]
[Yes / No]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네? 무슨 말 하셨어요?”
“아니요.”
유선우는 No를 누르고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이렇게 몸이라도 편히 있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관리자만 아니었어도 백배는 더 좋았을 텐데. 눈을 감아버리자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자연스레 미소가 나왔다.
‘혹시 조울증인가?’
유선우의 표정변화를 본 박아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현병이면 몰라도 조울증 정도면 특이하지도 않다. 요즘 시대에 정신병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분위기가 풀어진 틈을 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선우 씨.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에요?”
“글쎄요. 일단 생각해둔 건 있는데 확실하진 않네요.”
나름대로 고민이 깊어 보이는 어조. 마른침을 삼킨 박아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클랜에 소속돼 있다거나 그러세요?”
“아뇨. 제가 잘 몰라서 묻는데, 대충 클랜 위에 협회가 있다고 보면 되는 거죠? 박아연 씨는 거 어디냐. 청 뭐시기 소속이시고.”
박아연은 소속이 없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리라 판단했다. 유선우의 실력이라면 애당초 이름을 날렸어야 옳다.
그런데도 아직 무명이라는 것. 정식으로 헌터 딱지를 달지는 않았다는 증거다. 그를 영입하기만 한다면 클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리라.
“청일이에요. 저, 그럼 혹시….”
“무슨 말 하시는 건지는 알겠고요. 백수니까 소속은 걱정하실 필요 없고요. 던전에서 영상 찍으신 이유도 알고요.”
귀찮다는 투에 박아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한데요?”
유선우는 툴툴거리면서도 자그마한 쾌감을 느꼈다. 뭐가 미안하냐는 말. 살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뭐랄까, 이용하려는 거 같아서.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감사해야 할 입장인데.”
“박아연 씨. 하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되죠?”
“하나 아니어도 괜찮아요.”
유선우가 뚱한 표정을 풀고는 히죽거렸다.
“평소에 호구 소리 많이 듣죠? 딱 봐도 그럴 거 같은데.”
“네?”
“이용은 다들 하는 거고, 서로 잘 이용하면 윈윈인 거고요. 박아연 씨가 뭐 해달라 하면 제가 예에, 하고 다 해줄 거 같아요?”
“그거야… 절대 안 그러시겠죠?”
“만약 도와준다 쳐도 저한테 이득이 되니까 돕는 겁니다. 그리고 감사할 입장은 무슨. 제가 끌고 간 거나 마찬가진데.”
차까지 태워주는 사람이 왜 시무룩해져 있는지. 나름 사회생활 좀 한 듯한데 아직도 때가 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박아연의 태도는 여전했다.
“어쨌건 헌터 현실이 어떤지 알면서도 권유하고 있는 거니까요.”
“어떤데요?”
“까고 보면 암담한 편이죠. 선망받는 동시에 괴물 취급도 당하고, 욕도 많이 먹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그래도 봉급은 세지 않아요?”
“그게 다 생명 수당이에요. 이 일 오래 한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 한 명도 없어요. 평생 시달릴 PTSD는 기본이고 팔다리 날아간 사람도 많죠.”
한탄하듯 말하고는 숨을 고른다.
“단점만 골라 꼽아놓고 말하자니 우습긴 한데, 전 당신이 헌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클랜으로 데려가고 싶어서?”
무덤덤한 물음에 그녀가 가벼이 웃었다.
“기왕이면 저희 클랜으로 오시면 좋겠죠. 믿으실지는 몰라도 거품 싹 빼고 말해도 제법 괜찮거든요.”
“근데 방금 제가 그러지 않았어요? 미필이라고. 영입하셔봤자 곧 군대 갈 텐데.”
입대를 들먹이자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각성자가 군대를 왜 가죠? 부대 다 터뜨릴 일 있나?”
“……네?”
***
유선우는 박아연에게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름 아닌 각성자의 의무에 대한 것.
각성자는 헌터 협회 등의 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교육 기간은 6개월. 마냥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횡포 아니에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근데 능력만 안 쓰고 살면 끌려갈 일도 없어요. 구별을 못 하거든요.”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점은 지닌바 능력뿐.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정부에선 여론을 교묘하게 이끌었다. 미검증 각성자는 예비 범죄자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각성자를 둘로 분류한 거예요.”
각성자로서 살고 싶은 각성자.
그리고 일반인으로 살고 싶은 각성자.
전자는 교육을 받고 합법적으로 능력을 써라.
후자는 그냥 일반인인 척 조용히 살아라.
이 시점에서 유선우는 의문을 느꼈다.
“능력 안 쓰면 답답하다더니.”
“답답하죠. 담배 같은 거예요.”
“조용히 사는 게 돼요?”
“담배도 안 피우면 중독은 안 되잖아요.”
능력은 쓰면 쓸수록 끊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능력 사용을 자제하다 보면 딱히 욕구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비율은 전자가 압도적으로 크다. 애초에 사람은 능력이 생기면 쓰고 싶어 하니까. 정말로 인생에 MSG가 필요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흔치는 않다.
“군대는 뭐, 몬스터 화제가 겹쳐지니 상황이 바뀐 거죠.”
박아연이 핸들을 잡은 채 설명을 이었다.
“요즘 군대에서 무슨 훈련하는지 알아요?”
“총이나 쏘겠죠.”
“맞아요.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 죽이려고. 어차피 목적은 똑같은데 각성자가 군대 가서 뭐 하겠어요?”
유선우가 이해했다는 양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군필자들은 어땠어요?”
“당연히 난리 났었죠. 한국 남자가 군대 안 가는 게 말이나 되냐고.”
“근데 어떻게 통과됐대.”
단순히 필요에 의해 반발하는 이도 있을 터. 하지만 태반은 똑같이 굴러야 한다는 심정일 거다. 자기도 고생했는데 남은 면제 받으면 기분이 더러우니까.
“교육 마친 각성자들은 대부분이 헌터 같은 직종에 종사하거든요.”
“그래서요?”
“군대 전역한 남자가 말뚝 박는 비율이랑은 비교도 안 되죠. 순직률도 세상 어떤 직업보다 높고요.”
그러니 찍소리도 못할 수밖에. 박아연이 덧붙였다.
“클랜들이 다 협회 밑으로 들어간 것도 커요. 실질적으로 공기업이 된 거죠.”
“그럼 헌터들은 다 공무원이라는 거네요.”
“그렇다고 보면 돼요. 교육은 견습 기간이나 마찬가지죠.”
헌터가 되고 싶다면 헌터 협회에다 신청을 넣고. 경찰이 되고 싶다면 해당 기관에 신청을 넣고. 통념적으로 의무교육이 인턴 기간이 된 셈이다.
하지만 유선우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6개월간 공익.
그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헌터 지망은 헌터 협회에서 일하는 거예요?”
“협회에서 각각 클랜에 파견해요. 인원 선별 권한이 그쪽에 있어서 클랜이 협회에 굽실대는 거고요.”
애당초 헌터 협회도 역사가 짧은 기관이다.
헌터를 전부 관리하기엔 인력도 노하우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 그러니 클랜에 인력을 보충해주고, 협회는 그 위에 선다는 말이다.
유선우가 추측했던 선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구조였다. 그에 따른 문제점도 훤히 보이고.
“듣기만 해도 되게 질척거릴 거 같은데. 완전히 비리 판이네요.”
“세상 돌아가는 꼴이 다 그렇죠.”
어쩔 수 없다는 투였지만 박아연도 비리를 불쾌해하는 성격이었다.
“변호하자면 저희 클랜은 조금 특수하긴 해요.”
“애사심 대단하시네.”
“사실이니까요. 헌터 협회보다 먼저 발족해서 하나하나 다 쌓아 올렸으니 이미지가 나쁠 수 없죠.”
유선우가 가늘게 숨을 흘렸다. 그냥저냥 흔한 단체 중 하나인 줄 알았더니 청일이 제법 대단한 모양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시비 거는 사람도 많긴 한데 저희 대표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셔서. 아, 도착했어요.”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가 멈춘 곳은 모로 보나 평범한 아파트의 입구. 의외라면 의외인 장소였다.
유선우의 집안은 재벌가까진 아니어도 부자라고는 불릴 만했다. 돈을 잘 버니 쓰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고. 그런고로 새 집에 대해서 적잖이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결과는 맥이 빠질 정도였다.
그래도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기야 집이 터졌으니까.’
국가에서 보상금을 받기는 했겠지. 하지만 액수가 크지는 않았을 거다. 5년 동안 터진 동네가 역북동 하나뿐인 건 아닐 테니까.
그뿐만 아니라 전사자도 많을 터다. 아마 유가족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으리라.
유선우는 실망은커녕 죄스러운 마음만이 가득했다. 멈칫한 모습이 오해를 샀는지 박아연이 물었다.
“같이 가드릴까요?”
“그건 좀. 즙 터질 건데 부끄러워서.”
머쓱한 대꾸에 그녀가 생긋생긋 미소 지었다. 이상한 줄만 알았더니 나름 귀여운 면도 있다 싶어서.
“903호예요. 잘됐네요. 한동안은 바쁘겠지만.”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진짜 처음에는 웬 미친년인가 싶었는데.”
“…알아요. 욕하는 거 들었거든요.”
“들으라고 했었던 거니까 당연하죠.”
박아연의 웃음이 쩍쩍 갈라졌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쥔 채 애써 화를 다스렸다. 악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박아연 씨 아니었으면 파출소에서 가족들 기다리고 있었겠죠?”
“에이, 설마. 감방 들어가서 면회받으셨을걸요.”
“제가 감방을 왜 가요?”
진심이었지만 통하지는 않았다.
“됐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여튼 정리되면 연락 줘요. 기다릴 테니까. 우리 앞으로 자주 봤으면 좋겠네요.”
“저도요. 근데 몇 살이세요?”
박아연은 나이를 왜 또 묻나 싶어 의아했으나 잠깐뿐이었다.
“맞다. 처음에 대답 안 했었죠. 글쎄, 몇-”
“몇 살 같아 보이냐고 하면 차 부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시고.”
“…26살이에요.”
아무래도 농담 같지가 않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려주었다. 대답을 들은 유선우는 오늘 중 가장 밝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누나시네요.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그와 반대로 박아연은 정색했다.
“싫은데요.”
***
유선우는 들었던 대로 903호를 찾았다. 아무렇지 않게 벨을 누르려 했지만 어째서일까. 무게추가 달린 것처럼 손가락이 무거웠다. 내뿜는 호흡마저 잘게 떨렸다.
외딴곳에서 떨어져 보낸 5년. 고등학생이 어엿한 성인으로 클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죽도록 바라왔던 만남이 지금은 두려웠다.
“하아.”
긴장감에 호흡을 골랐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웬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초인종을 누르시겠습니까?]
[Yes]
‘아니, 분위기 좀 읽어라.’
덕분에 산통이 다 깨졌다. 그래도 긴장은 풀렸는지, 손끝에 매달려 있던 무게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