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던전
“뭐하십니까? 빨리 선우 씨 따라가죠.”
멍하니 있는 박아연에게 김광수 하사가 말을 걸었다.
“…아, 네. 근데 되게 침착하시네요.”
“처음에는 까무러치게 놀랐습니다.”
“지금은요?”
“저 같은 사람도 있으면 선우 씨 같은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니 받아들이면 인생이 편해집니다.”
낙천적인 건지 둔한 건지 헷갈리는 가치관. 유선우만큼은 아니지만 김광수도 평범하진 않은 듯했다.
‘하긴. 정상인이었으면 겁도 없이 게이트를 넘지도 않았겠지. 착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지만.’
박아연은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광수가 돌연 목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박아연 씨 같은 예쁜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살아 돌아가면 저랑-”
“미안해요. 생리적으로 좀.”
“…예.”
박아연은 미소를 지우지도 않은 채 비수를 꽂았다. 그녀는 김광수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유선우에게 따라붙었다.
“선우 씨. 각성한 지는 얼마나 지났어요?”
“각성 안 했어요.”
“안 하기는. 그거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더 궁금한 것도 그냥 참고 있는데. 저는 알려달라는 거 다 알려줬잖아요.”
남이 보기에 유선우는 은거기인 같은 존재였다. 수련을 끝내고 하산한 무인이라고나 할까. 각성자가 아니라 여기기엔 그의 힘이 너무도 불가사의했다.
“각성 안 했다니까 글쎄. 내기할까요? 쫄리면 뒈지시든가.”
“하! 그러든가요. 조사하면 다 나오는데 무슨. 만약에 아니면 해달라는 거 다 해주죠, 뭐.”
본인 생각에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기색. 유선우는 공수표를 던지는 박아연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뭐라 말해도 안 믿겠네.’
조금 성가신 감도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구 꼴을 보면 몬스터나 뭐나 다 상식일 터. 그걸 장단에 어울려주듯이 알려준 건 명백한 선의였다.
선의에는 선의로, 불의에는 불의로.
평소엔 의식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말이다.
‘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기도 하고.’
각성은 안 했지만 원하는 대답쯤이야 들려줄 수 있었다.
“5년 됐어요.”
“뭐예요? 내기하자더니 김새게.”
“역시 초기 각성자이신가 봅니다.”
“그건 또 뭐래. 무슨 암이에요? 초기 중기 말기 나누게.”
생소한 용어에 의문을 표하자 박아연이 설명을 덧붙였다.
“댁처럼 5년 묵은 각성자요. 당연히 케바케이긴 한데 대부분 강한 편이죠. S급도 여덟 중 여섯이 초기 각성자고.”
“오, 그래요?”
말 그대로 초기에 각성해서 초기 각성자란다. 그보다는 S급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수많은 헌터 중에 가장 뛰어난 8명. 확신은 못 해도 상당한 강자이지 않을까.
“혹시 S급 본 적 있어요?”
“실제로 본 건 두 명 밖에요. 헌터 협회장이랑 소피아 테일러.”
“소피아 진짜 보셨습니까?”
“엄청 멀리서이긴 해도 보긴 봤죠.”
어째선지 김광수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실물은 어떻고 성격은 어떤지. 또 사진 찍은 건 없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모습으로 보아 팬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평생 말도 섞을 일 없을 텐데.’
유선우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인종이었다. 팬심을 품는 건 본인 자유이니 말로 뱉진 않았지만.
‘그나저나 헌터 협회라.’
헌터 사회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헌터 협회. 공적 기관의 냄새가 풍기는 이름. S급이라는 사람이 수장을 맡고 있으니 지닌 권한도 클 터다.
박아연의 명함에 적혀 있던 클랜이라는 단체.
그리고 협회를 싫어하던 태도까지.
아마 클랜을 협회에서 관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됐다.’
이보다 더 깊은 사정은 당장 알 필요도 없다.
고개를 가로저은 유선우는 더욱 깊은 곳으로 발을 뻗었다. 여태까지 걸어온 거리가 제법 됨에도 동굴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넓네.’
처음엔 여기저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오크야 익히 아는 그대로였던 반면 광물들은 생소한 게 많았다. 많은 곳을 여행한 탓에 이 분야에선 고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잠깐은 호기심이 동했으나 보다 보니 금방 질려버렸다.
‘내가 무슨 고고학자는 아니니까.’
그런고로 지금은 쉼 없이 쓱싹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주거공간도 봤고 오크 핵가족도 봤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략하기엔 이틀은 필요할 터. 박아연이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이동하다 보니 오크 세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발소리나 말소리를 들었는지 냄새를 맡았는지. 불청객을 찾아 직접 걸어온 모양이었다.
크후흡!
놈들의 눈동자에선 진득한 투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삼시 세끼 밥보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오크다운 모습.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유선우는 영 시큰둥했다.
‘개귀찮아.’
벌레 쫓는 것도 하다 보면 열 받듯이 슬슬 피곤해졌다. 투창이나 던질까 싶던 차에 의외로 박아연이 나섰다.
“이번엔 제가 할게요. 헌터가 버스만 타서는 체면이 안 살아서.”
“차릴 체면이 남으셨나 보네.”
“닥쳐요. 김광수 하사님?”
“예?”
졸지에 호명된 김광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알아서 엄호해줘요.”
“꼭 해야 합니까? 저 총 쏘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참나. 그러면 군인은 왜 되셨대.”
“전 여자친구가 군복 페티시였습니다. 아, 갑자기 감성뽕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박아연이 작게 헛기침했다.
“그래도 군인인데 계속 버스만 타고 싶어요?”
“버스면 뭐 어떻습니까. 승차감 좋으면 됐지.”
던전에 막 들어왔던 때와는 달리 유선우만큼이나 태평하다. 박아연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부여잡았다.
‘몬스터 앞에서 뭐 하는 거야.’
유선우야 이해하는데 김광수는 도대체 무슨 깡인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정신 상태가 엉망인 듯했다.
박아연은 애써 현재 상황에 집중했다. 여태껏 쭈구리처럼 굴기는 했어도 B급 헌터. 그녀 혼자서도 오크 셋 정도는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퍼엉!
“크어어어!”
손가락을 튕기자 오크 하나의 눈앞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피격당한 놈의 살점과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다른 둘은 다친 동족을 쳐다보지도 않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음 폭발은 오크 두 마리의 귀 옆에서 발생했다. 놈들은 평형감각을 잃어 비틀거리다가 맥없이 쓰러졌다.
“크흐으, 흐으….”
박아연은 바닥에 널브러져 버둥대는 오크들을 노려봤다. 고통에 허덕이느라 한껏 벌려져 있는 놈들의 입. 그 안을 겨냥한 그녀가 손가락을 마찰시켰다.
퍼억!
폭발에 녹색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피와 살점이 옷 군데군데에 튀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짝짝짝!
박아연이 숨을 고르고 있자 유선우와 김광수가 물개박수를 쳤다.
“그 누구야. 머스탱 대령님 같네. 수고요.”
“선우 씨는 대총통님 같으십니다.”
“에헤이. 제가 걔보다 백배는 더 세겠는데.”
박아연의 낯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동물원 온 줄 아나.’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도, 던전을 뭐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던전 공략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특히나 유선우와 김광수는 죽이 잘 맞았다.
유선우가 아는 것은 2013년까지의 지구. 5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의외로 오락은 바뀐 게 없었다.
“2013년은 무슨. 롤 빼고는 그냥 2010년이랑 똑같네요.”
“2013년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요.”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박아연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쩐지 자기만 진지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거북했으나 그녀도 금세 피식피식 웃게 되었다. 그녀도 진지충과는 동떨어진 성격이었다.
박아연은 유선우가 싸우는 장면을 녹화하기도 했다. 물론 본인의 허락 아래에서 행해진 일이다.
의도가 뻔하기는 했지만 아쉬운 쪽이 달아오르는 법. 유선우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져서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죽인 오크의 숫자도 세지 않게 될 즈음.
던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타난 장소는 내리막 경사로부터 이어지는 널따란 공간이었다. 이곳저곳에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천막. 흡사 유목민의 부락과도 같았다.
‘오면서 많이 처리해서 그런가. 생각보단 별로 없구나.’
박아연은 기둥에 숨어 상황을 살폈다. 공간의 면적에 비해서는 머릿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보스로 보이는 놈도 눈에 띄지 않았고.
‘그렇다고 쳐도 서른은 돼.’
예상보다 적을 뿐이지 위협적이기는 마찬가지. 그녀가 마른침을 삼킨 반면, 유선우는 여전히 태평했다.
“뚝딱 처리하고 가죠. 슬슬 배고파서.”
“아무래도 하나씩 잡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숫자가 너무 많아요.”
박아연은 상식을 쉬이 버리지 못했다. 아무리 유선우의 실력이 대단할지라도 지금은 신중하게 행동할 때라고 여겼다.
화목하던 분위기는 급속도로 식어갔다. 산책 온 마냥 떠들고 다니기는 했으나 이곳은 던전. 자칫하면 찍소리도 못하고 훅 가는 수가 있다.
게다가 체력이 상당히 소모된 상태. 내색은 안 했지만 박아연은 슬슬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일단 어디 자리 잡고 쉬기라도 해요. 무턱대고 들어가는 건 그냥 미친 짓이에요. 제 말 알아듣죠? 제발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미친 짓은 제가 전문이죠.”
“이번만큼은 자제해주십시오, 진짜로. 여기까지 왔는데 죽고 싶진 않습니다.”
김광수마저 거들어서 유선우를 제지했다. 간곡한 부탁에 유선우는 멋쩍게 턱을 긁적거렸다.
“한 마리씩 잡으면 된다 이거죠?”
확인하듯 묻자 둘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가 고심하는 낌새를 보이자 둘은 속을 쓸어내렸다.
대놓고 적진으로 들어가는 경우 없는 놈은 아니었구나.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구나. 그리 판단하니 뜻 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이 몇 시간 만에 성장한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성장이 아니다.
원래부터 여지를 남겨뒀던 것일 뿐이지.
“그럼 그러죠 뭐.”
유선우가 말을 끝맺기 무섭게 상황이 급변했다.
퍽!
강풍이 지나가더니 멀찍이서 박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박아연과 김광수의 귀에도 닿았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널따란 부락의 벽에 창과 함께 웬 오크가 처박혀 있었다. 아니, 오크였던 흔적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어느샌가 투창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씁. 힘 조절이 조금 안 되나. 벽에 금 갔네.”
“이런 미친…!”
“하, 하하하. 다 죽었습니다. 흐하하하!”
“됐으니까 보기나 해요.”
연달아 울려 퍼지는 파열음. 박아연은 쉴 새 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눈 감았다 뜨면 오크가 두세 마리씩 부락에서 사라진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현실감이 없었다.
“무, 무슨….”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부락에 난데없이 쏟아지는 창벼락. 오크들은 우왕좌왕하며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금세 잦아들었다.
그렇게 10초가량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때는 이미 오크의 울음소리가 멎어 있었다.
“한 마리씩. 이제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