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귀환자 유선우
귀환은 맥 빠질 정도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눈 한 번 깜빡이고 보니 딱딱한 아스팔트 위. 유선우는 도로에 뺨을 비비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생각해보면 좀 열 받네.’
5년간 귀환을 보상으로 여기며 달려왔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냥 병 받고 약 받았을 뿐. 여태껏 겪어온 고생들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다 뭐야.’
주변을 훑어본 결과 길거리의 모습이 상당히 이상했다. 길의 구조 자체는 눈에 익었다. 5년 만에 매일 등교했었던 길을 잊어먹지는 않았으니까.
문제는 건물들의 상태였다.
죄다 유리가 깨져있질 않나. 문짝이 반파되어 있질 않나. 어디를 둘러봐도 멀쩡한 건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음.”
유선우는 제대로 확인하기 전에 숨을 들이마셨다. 탁한 도시 공기가 폐부에 차오름과 동시에 느낌이 왔다.
“구웨에에엑!”
그의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져 지면에 끼얹어졌다. 위액 위에는 덜 소화된 음식물이 죽 건더기처럼 떠다녔다.
“웁, 우웨엑, 우웨에엑!”
속을 게워내기를 잇달아 세 번. 목구멍이 따가워질 때가 되어서야 울렁거림이 가라앉았다.
“아오, 멀미 진짜.”
5년 전과는 달리 이번엔 김치전은 아니었다. 몸이 단련된 만큼 괜찮을 거라 예상했건만. 아무래도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앞으로 키미테 붙여야겠어.’
차원 이동을 다시 경험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유비무환이라.
유선우는 입가를 닦으며 다시금 눈알을 굴렸다. 착각이 아니었는지 두 번 봐도 똑같았다. 처참한 광경이 더 자세하게 드러났을 뿐.
‘어벤저스라도 왔다 갔나.’
일단 시간이 흘렀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씁쓸하긴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계와 시간축이 같다면, 나이 든 자신의 외견을 남들이 자연스레 받아들일 테니까.
‘그런데 영 실감이 안 나네.’
유선우는 멋쩍게 볼을 긁적거렸다. 그가 꿈꿔오던 귀환과는 여러모로 판이했다.
인파가 바글거려야 할 사거리는 새벽처럼 적막할 뿐. 보행자는커녕 주차된 차량조차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온 것 같긴 해도… 그러면 뭐해. 반쯤 망했는데.’
귀환하자마자 앞길이 막막해졌다.
동네 상태로 미루어보아 집도 온전하지는 않을 터. 돌아왔는데 돌아갈 집이 없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진짜.”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며 도로를 배회했다.
터덜터덜 걷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던 발소리에 이질적인 음이 섞였다.
- 구웨에에에엑!
내장까지 뱉어낼 기세로 구토하는, 명백하게 사람이 내는 소리. 유선우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 방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어라. 웬 정장이야.’
도착한 장소엔 정장을 빼입은 여성이 있었다. 여성은 한창 남의 집 앞 전신주에다 전을 부치는 중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하아, 하아…….”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여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저기요. 제 말 안 들려요?”
“죽겠네. 쓰읍.”
비틀거리는 몸과 목을 긁는 음성.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 모로 봐도 숙취다.
“말 안 들리냐고요!”
“아오, 머리 울리잖아! 닥쳐봐 좀!”
***
26세 박아연은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다.
사람이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다!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떠보니 기분은 더럽고 머리가 깨질 듯했다.
그래도 무단결근할 수는 없어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어 담당 순찰 구역에 도착했다. 다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일을 똑바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또 술 먹으면 개다, 개. 다시는 먹나 봐라.’
몇 번째인지도 모를 다짐을 되새기기를 한참.
웬 놈팡이까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이게 괜찮아 보이세요오?
하도 짜증이 나서 소리까지 질러버렸더랬다.
실례했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챌 수는 있었다.
‘여기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곳, 역북동은 이미 오래전에 인적 없는 동네가 되었다. 몬스터가 심심하면 기어 나오는데 누가 살고 싶어 할까. 드나드는 사람은 해봐야 헌터나 군인이 전부였다.
‘뭐 하는 사람이지?’
박아연은 소매로 입가를 문지르며 청년을 위아래로 살펴봤다. 옷차림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죽옷. 현대의 배경과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았다.
“저기, 누구시죠?”
“초면에 누구냐니요.”
대답이랍시고 하는 말도 영 이상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인가?’
박아연은 순간 자기가 잘못한 줄 알았다. 청년의 말투가 워낙 뻔뻔해서. 그녀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가라앉히면서 재차 물었다.
“누구시냐고요. 죄송한데, 여긴 민간인이 들어올 데가 아니에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들어왔대? 검문 안 받았어요?”
“검문이요? 네. 뭐.”
“안 받았다는 거죠?”
“받은 기억은 없는데요.”
태연한 대답에 박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짓말을 하는 낌새가 없다는 것이 더욱 수상했다.
‘분위기는 어째 기러기 아빠 느낌인데… 말투는 애 같네.’
박아연은 청년이 마냥 평범한 사람은 아니리라 확신했다. 머리를 굴려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보기를 잠시. 경험을 통해 가장 그럴듯한 추측을 떠올렸다.
“아, 아아아아. 누군지 알겠네. 협회에서 오셨나 봐요? 쯧. 못 볼 꼴 보여드렸네.”
정부에서 운영하는 헌터 협회.
협회에서는 사사건건 참견질을 해오곤 했다. 인력 차출까지 시작해서 헌터 개개인에 대한 징계까지. 여러 가지 특혜를 당근 삼아 행하는 폭거였다.
특히 치고 올라오는 클랜이 있으면 견제하기 일쑤. 덕분에 박아연도 그러한 정치질에 지겹도록 휘말려 왔다.
“협회는 또 뭐예요?”
청년의 물음에 박아연의 표정이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야 요즘은 초등학생도 협회가 뭔지는 아니까.
“당신들은 왜 다 그 모양이세요? 그냥 인정하면 안 되나. 자기 소속이 쪽팔려요?”
“뭐라는 거야. 알려주기 싫으면 됐어요. 죄송한데, 폰 좀 빌려주실래요? 진짜 급해서 그러는데.”
“뭐 징계 요청이라도 하시게요? 그러시든가. 근데 할 거면 당신 걸로 하시죠. 폰 잃어버렸거든요.”
오해가 끼어 있으니 대화도 헛돌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내 청년이 짜증스럽게 혀를 차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별 미친년이 다 있네.”
목소리가 마냥 작지만은 않아 박아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화를 참아냈다.
‘참자, 참아. 똥은 피하자.’
서로에게 불쾌할 뿐인 만남. 당장 자리를 뜨려고 하자 청년의 말이 발목을 붙잡았다.
“저기요.”
“네. 또 뭐요.”
“혹시 저희 집 왜 저 꼴인지 아세요?”
청년이 검지를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박아연은 시선을 돌려 손가락을 따라가 봤다.
보이는 것은 단독주택.
반쪽이 날아가 내부가 훤히 보이는 건물이었다.
“…누구 집이라고요?”
“저희 집이요. 엄밀히 따지자면 아버지 명의고요.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
“음, 중요하진 않죠.”
박아연이 얼빠진 목소리를 흘렸다.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저게 자기 집이라고?’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뇌까린다는 낌새는 아니었다. 듣고 보니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나눴던 가시 돋친 말들마저 군데군데가 이상했다.
“진짜 당신 집이라고요?”
“다 무너진 집 가지고 왜 거짓말하겠어요. 돈도 안 되는 거.”
박아연은 그제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협회고 나발이고 지레짐작이었다는 것.
그동안 피해의식이 얼마나 심했으면, 가엾은 청년을 협회 공무원으로 착각해버렸다.
“오랜만에 와보니 동네는 이 모양 이 꼴이고, 집 앞에서는 누가 토하고 있고. 어이가 없네요. 북한이라도 쳐들어왔나.”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몬스터가 했죠.”
요즘 시대엔 드문 일도 아니다. 도시에 오크 하나만 나타나도 건물 몇 채는 무너진다. 분명 상식인데도 청년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푸흡.”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실실 웃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난데없는 질문마저 던져왔다.
“실례지만 혹시 나이가?”
“몇 살 먹었냐고요? 갑자기?”
“아니, 드실 대로 드신 것 같은데 한다는 말이 좀… 그렇잖아요. 중학생도 아니고.”
오해가 해소되어도 사람 신경 긁는 성격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박아연은 이번에도 화를 꾹 눌러 참았다.
“그럼 직접 말해보시죠. 몬스터 아니면 뭔데요? 북한이 땅굴 파서 들어왔게? 누가 테러라도 했을까 봐요?”
한바탕 쏘아붙이자 청년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처럼.
“몬스터라니, 예를 들면요?”
“몰라서 물어요?”
“저 그 말 진짜 싫어해요. 당연히 모르니까 묻죠.”
“이 경우는 어지간해선 오크겠죠. 그놈들은 심심하면 다 때려 부수거든요.”
말할수록 청년의 표정은 어리둥절하게 변해갔다. 절망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것에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박아연은 신경이 쓰이기야 했다만 캐묻지는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점이 있었으므로. 그녀는 청년이 가리켰던 잔해를 다시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선혜 집 맞는데.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이잖아.’
부하의 집 사정을 떠올렸다. 5년 전에 자기 오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던가. 순찰 중에 지나칠 때마다 들었기에 기억이 생생했다.
‘아니, 설마.’
박아연은 의심의 눈초리로 청년을 응시했다. 나눴던 대화까지도 기억나는 대로 되짚어봤다.
상식의 부재와 거지 같은 차림새.
결정적으로 오랜만에 왔다는 말까지.
‘진짠가?’
박아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동생 있지 않으세요?”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청년이 씁쓸하게 웃었다.
“선혜라고 하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도 못 봤네요.”
복잡한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음성. 박아연은 익숙한 이름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는 감각을 느꼈다.
“세상에….”
진짜 이런 일이 있기는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