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프롤로그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남에게 푸념할 때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위로라곤 개뿔도 되지 않기는 해도 마냥 틀린 소리도 아니다. 처지가 어려워 밥조차 제대로 못 먹는 사람도 수두룩하니까.
유선우는 그 한마디를 떠올릴 때면 본인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고는 했다.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은 있겠지.
하지만 나보다 이상하게 사는 사람은 없을 거다.
18살까지만 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문제는커녕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아온 편이었다.
인생이 틀어진 날은 2013년 7월 17일.
그날, 유선우는 평소처럼 하교 후에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BJ가 흔한지는 둘째치고서 그에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우입니다.”
- ㅎㅇ 요즘 좀 늦는다?
- 초심 잃었죠? 돈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ㄷㄷ
유선우는 유명하진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아는 BJ였다. 인기의 비결은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애초에 포부 없이 시작했던 일이라 따로 컨셉을 잡지도 않았다. 해봐야 동시 시청자 500명 이하 수준이라 큰 부담이 되지도 않았고.
“그럼 돈 주지 말든가. 하여튼 지각은 죄송합니다. 내일도 늦을 수 있어요. 솔직히 변비는 인정해줘야지.”
- 하악! 선우! 하아악!
- 지금 옴. 오늘은 뭐해요?
- 오빠 팬티 무슨 색이에요?
- 언냐 오늘은 까만 거!
방송은 여느 때처럼 평탄하게 흘러갔다.
시청자들의 인사를 받아준 뒤 게임 좀 하고.
휴식 겸 볼 만한 영상도 몇 개 찾아보고.
특이한 점은 없었다.
딱 하나만 제외하고는.
끼긱.
끼이익.
칠판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으나 차츰차츰 커지는 것이 아닌가. 30분째가 되어서는 시청자들에게도 들릴 정도가 되었다.
“더럽게 거슬리네. 대체 뭐야?”
음악도 계속 틀어두면 질리는데 하물며 혐오음은 어떨까. 유선우도 시청자도 신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 정의구현 ㄱㄱ 지금 아무것도 안 하잖아
- 저런 써글, 놈들~~~ 이러니까, 개.진국 소리 듣는 것이다
방송 흐름이 끊길까 싶어 내버려 두고 있었건만. 어떤 놈인지 상판이라도 봐야 할 듯해 몸을 일으켰다.
“아오, 현기증-”
콰앙!
유선우가 이마를 짚은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요란한 폭발음이 이어지고 심지어 비명까지 간간이 섞였다. 모르긴 몰라도 예삿일은 아니었다.
“뭐야, 전쟁 터졌어? 여기 경기도 한복판인데?”
유선우가 다급하게 베란다를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카메라의 범위를 벗어나기 직전.
스르르.
환상처럼 그의 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화면에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가 비칠 뿐이었다.
- ????? 지금 뭐인?
- 응 안 믿어~ 주작 ㅅㄱ
실종 컨텐츠 무엇 ㅋㅋㅋㅋㅋ
***
5년 후.
유선우는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72악마의 군주, 바알을 처치하셨습니다.]
[당신의 노고로 431-9 차원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여정을 끝마친 당신, 지구로 귀환하시겠습니까?]
[Yes / No]
“하.”
한숨을 내쉬곤 주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꺼멓고 붉은 피와 살덩어리가 가득한 평원. 시체의 산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지저분하다고 느껴질 따름.
‘5년이라. 짧으면 짧… 기는 개뿔.’
유선우는 시간 빠르다는 말을 5년간 입에 올리지 않았다. 1분 1초를 낭비 없이 소중하게 사용했다. 5년을 50년처럼 보냈기에 고향의 기억이 희미해졌을 지경이었다.
이럴 때는 클리셰가 있기 마련.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고뇌에 빠지면 딱이다.
안 돌아가도 되잖아.
나랑… 같이 있어 줄래?
다시는 못 만나는 거야?
우리 애가 아빠 없다는 소리 듣고 자랐으면 좋겠어?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애초에 같이 온 동료도 없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같이 다녔었다만 어찌나 답답하던지. 허구한 날 자기들끼리 치고받아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머저리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동행하기를 수년.
어느 순간 생각이 미쳤다.
이놈들 데리고 있다간 평생 여기서 썩겠구나.
유선우가 단독행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고작 반년 만에 모든 게 끝났다.
그가 이곳에 와서 내린 판단 중 가장 올발랐던 것이었다.
‘시작만 좋았어도 훨씬 빨리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문제가 무엇이었느냐.
소환되었던 당시 유선우는 알몸이었다.
황족 앞에서 덜렁거리다가 목이 잘릴 뻔했었다.
그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터. 차원 이동 멀미라도 있는지 알현실에 김치전까지 부쳤었다.
‘지금 생각해도 열 받네.’
시작을 잘못 끊은 탓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황자는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매일같이 비웃고.
황제도 눈만 마주치면 왠지 표정이 묘해지더라.
황녀 중 하나는 말만 걸어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지금이야 여러모로 달라졌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아, 맞아.’
귀환하려던 차에 무언가가 유선우의 뇌리를 스쳤다. 그에겐 돌아가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황족들을 한 대씩만 때리는 것.
그런데 사람 마음이 변덕스럽기는 한 모양이다. 막상 귀환할 때가 되자 생각이 달라지니 말이다.
‘두 대씩만 때리고 가자.’
유선우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Yes 버튼을 눌렀다.
[작품후기]
2019. 5. 23 수정 시작.
출판으로 인해 19금 씬이 빠지고, 여러모로 편집될 예정입니다.
읽으시는 도중에 회수가 변경될 수 있으니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