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70화 (170/173)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Vihma sajab tema viis südame mädaniku lõputusse oodata, see haguna magusam kui tahes hõrgutisi. Tule, O magus surm! (무한한 기다림 속에 썩어가던 마음에 내리는 비는, 그 어떠한 산해진미보다 달콤하구나.)”

올텅. 아니 정확하게는, 올텅이 들고 있던 케이스 안에 들어있던 최상위 관리자가 부르짖었다.

지훈 포함, 여섯의 반지 사용자가 지나갈 동안 3만 년을 기다렸다. 그에게 있어선 아무리 끔찍한 전투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부패시키는 지독한 외로움보다는 달콤했다.

- 그즈즈즈즈즞!

- 타타타타타탕!

이미 평소 상태의 구 모양이 아닌, 레이저 광학 렌즈와 기관총 그리고 레일건까지 모두 꺼내놓은 터렛의 모습.

최상위 관리자에게서 쉴 새 없이 레이저, 기관총 탄환, 그리고 금속 탄자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양이 많았던 만큼 각자의 위력은 약했으나, 쏟아지는 화마에 하즈무포카의 개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방어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개중 몇몇은 화망을 우회해 최상위 관리자를 지나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 ☆ ☆

최상위 관리자를 지나 늑대를 닮은 영장류가 달려왔다.

온몸에 은빛 털이 나 있고, 눈에는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꼴이 꼭 전설에 나오는 웨어울프 같아 보였다.

“그르르르륵!”

늑대가 왼팔을 방패 삼아 돌진을 시도했다. 태클로 넘어뜨린 뒤 주둥이와 손톱을 이용해 마무리하려는 심보리라.

“칼콘! 하나 온다, 준비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콘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양손으로 버텼다. 그 뒤로 가벡이 칼콘의 등을 밀어 힘을 더했다.

“Puujuure. Tellimus muutmist, liikumise ja vabastamise korraga. (나무뿌리. 주문 변형, 움직임과 동시에 마법 해제.)”

마법을 시전하자, 굵은 뿌리가 칼콘과 가벡의 다리를 휘감았다. 원래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마법이었으나, 쓰기에 따라서는 방어를 견고하게 해주기도 했다.

쿵!

늑대가 방패에 부딪힘에 따라 방패가 크게 휘청거렸지만, 서로 힘을 합친 까닭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Sitt! (젠장!)”

늑대는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벗어난 뒤 그냥 지나치기 위해 우회했지만… 가벡이 뛰쳐나가 가로막았다.

“여긴 못 지나간다.”

“Trivia on midagi halvem rass! (하찮은 종족 따위가!)”

늑대가 부르짖으며 가벡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가벡의 동체 시력과 육체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속도. 원래대로였다면 바로 육편이 되야했지만, 지훈이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이능 발동, 집중.’

집중이 발동됨에 따라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 그 사이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꺼냈다. 시연이 살아 돌아오라며 챙겨줬던 물건이자, 인류의 모든 과학력이 들어간 물건이었다.

- 외부 아티펙트에서 마력 감응 감지. 저항할까요?

‘하지 마. 이능 발동, 주문 주입. 분해(lagunemine).’

방아쇠를 당기자 몸 안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초록색 탄두가 날아갔다.

CR(크릴 나이트).

가장 강력한 탄두인 만큼,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까지 모두 국제적 감시를 받는 물건이었다. 암시장에서 구하려면 발당 4~20억.

아파트 한 채가 우스운 만큼 그 위력은 발군이었다.

퍼억! 퍼서서서석!

가벡을 덮치려던 늑대 몸통에 탄환이 꽂히는가 싶더니, 커다란 마력 반응과 함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꺽!”

심장, 폐, 위, 간, 장. 생명체로써 생존에 필수적인 내장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원래는 쇼크에 즉사해야 정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늑대는 버둥거리며 살아남으려 애썼다.

“죽어라. 싸구려 늑대.”

그 위로 가벡의 두 칼이 떨어졌다.

늑대를 끝내자 다음으로 토끼와 소를 섞어놓은 것 같은 녀석이 다가왔다. 다리는 토끼 같은 역관절에, 머리에는 커다란 귀와 더불어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었다.

거리 500M.

‘오기도 전에 끝내주마.’

탕!

저격을 시도했지만, 녀석이 그 총알을 피해버렸다.

‘미친?’

총알의 속도는 약 초속 945M. 시속으로 따지면 3,402KM였다.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은 속도다.

우연이라 생각하고 한 발 더 쐈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설마… 보고 피했다고?’

한 번 더 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뿔 달린 녀석이 돌진해 온다, 막을 준비해!”

원래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듯, 빠른 반사신경을 얻었다면 육체적으로 뭔가 하자가 있을 터.

방패로 막고 나서 육탄전에 돌입하면 됐다. 총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업을 짊어지는 자를 꺼냈다.

“곧 충돌한다, 버텨!”

칼콘, 가벡과 힘을 합쳐 방패를 밀었지만… 녀석은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앞에서 뛰어넘었다.

휘익 -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 뒤로는 겐피, 민우, 스토커, 엘프들이 있었다. 모두 근접전에는 취약했기에, 단 하나만 접근을 허용해도 끔찍한 피해를 낳을 게 분명했다.

‘이런 썅…!’

☆ ☆ ☆

민우는 지훈의 마음을 살피고 있다가 토끼가 넘어오는 걸 확인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훈 형님의 총을 피했다면, 저격총도 피할 수 있을 거야. 더 빠른 공격이 필요해!’

바로 엘프들에게 정신 감응을 시도했다.

- 차벽 앞에 적 접근! 빠른 마법 필요!

이에 엘프들이 바로 영창을 시작했다.

“Üks, kes on tagasihoidlik esinemine, O karistuse taevasse. (하늘에 계신 분이시여, 미천한 존재에게 징벌을.)”

한 소절짜리 짧은 주문이었으나, 많은 마법사가 동시에 영창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순식간에 공중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젠장, 거의 다 왔는데!’

민우는 속이 타기 시작했다. 빠른 공격을 요구했는데도, 먹구름만 모일 뿐 공격의 기미는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탓!

결국, 토끼가 스토커의 총알을 피하고 겐피를 무시한 뒤 차벽을 건너뛴 순간…!

꽈릉!

먹구름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초속(!) 2,600km짜리 물건이었던 만큼, 결과는 당연히 명중이었다.

토끼가 아무리 날고 기는 반사 신경을 가졌다고 한들 공중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도 없거니와, 혹여 땅에 있더라도 저 벼락은 보고도 못 피했을 게 분명했다.

결국, 토끼는 공중에서 바싹 익어 바닥에 낙법도 없이 꼴사납게 떨어졌다. 그 위로 엘프들이 마법을 난사했고, 결국 머지않아 숨통이 끊어졌다.

☆ ☆ ☆

벌써 제압한 하수인만 일곱.

피해 없이 거의 반이나 제거했기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물을 막던 댐도 아주 조그마한 구멍에 순식간에 무너지듯,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순식간이었다.

편광능력(displacement).

투명화의 하위호환으로 빛을 굴절시켜 본인의 모습을 다른 곳에 투영시키는 능력.

저 능력 하나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

“surema!(죽어라!)”

- 그즈즈즞!

최상위 관리자가 검푸른 표범을 레이저로 긁었지만, 그저 힘없이 통과될 뿐 아무런 영향을 주질 못했다.

최상위 관리자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지만, 현재 그가 붙잡아 놔야 할 적들이 많았기에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켰다.

타타타탓!

검푸른 표범은 늑대나 토끼와는 반대편. 곧 차원 여행자들 측으로 달려 나갔다.

“적 포착. 공간 왜곡으로 제거합시다.”

기토킨이 표범을 보며 말하자, 나머지 차원 여행자들이 동시에 능력을 사용했다.

우으으으응 - 퍽!

순식간에 표범이 있던 공간이 일그러졌지만, 표범은 잠시 일렁거렸을 뿐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어, 어?”

기토킨은 당황하며 다시 공격했지만, 똑같았다.

실체는 다른 곳에 있고, 모습만 저 장소에 보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일대일로 만났다면 그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대응했겠지만, 여기는 전쟁터였다.

다음 적을 대비하기 위해 빠르게 처리하려 했던 까닭에,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 치명적인 실수는 적의 접근을 허용했다.

퍼서서석!

분명 표범은 아직 100M밖에 있음에도 차원 여행자들이 순식간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앞발 한 번 휘둘러서 3명.

10명 죽이기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겨우 5초 남짓이었다.

기토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모습을 쳐다봤으나…

흐릿 -

아주 잠깐 눈앞에 검푸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퍼석.

실제로는 표범에 물린 거였지만, 다른 이가 봤을 땐 그저 허공에 있던 기토킨의 머리가 떨어진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표범은 차원 여행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 바로 차벽 쪽으로 달려갔다. 겐피는 차원 여행자들이 무참히 뜯겨 나가는 것을 보곤 이를 꽉 깨물었다.

본인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짐승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을 벗자, 그 안에는 C4가 잔뜩 붙어있는 조끼가 드러났다.

“미, 미친 새끼! 민우, 내려가! 휘말리면 죽어!”

스토커는 그걸 보자 기겁을 하며 차 벽 아래로 내려갔다. 저게 폭발했다간 폭발에 휩쓸리기 때문이었다.

겐피는 앞에 달려오는 표범을 보며 눈을 감았다.

적이 달려오는데 눈을 감는 건 자살행위였으나, 이미 앞서 당한 차원 여행자들로부터, 저 모습이 허상이라는 걸 꿰뚫어 봤기 때문이었다.

‘와라, 짐승.’

겐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가 아쵸프무자와 거래한 것은 바로 부족의 독립. 하지만 그가쉬가 죽은 시점에서 부족의 독립은 확실하게 됐기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나는 내 부족을 위해 내 한 몸. 피 한 방울, 근육 한 조각까지 모조리 바칠 것이다!’

온갖 소음 속에도 겐피의 귀에는 표범 달려오는 소리밖에 들리질 않았다. 이내 그 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C4 기폭 스위치를 눌렀다.

꾹!

콰아아아아앙 -

표범은 C4에 휩쓸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능력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부상. 몇 분 정도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스토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단 한 발의 총성. 그 무엇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는 총알은, 표범의 머리를 시작 온몸을 헤집은 뒤 땅에 틀어박혔다.

철컥, 틱!

노리쇠를 당겨 재장전한 뒤 다음 타겟을 찾으려는 찰나…

“이봐요! 위, 위에! 새!”

스토커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코앞에 거대한 발톱이 무언가를 움켜쥐기 위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스토커는 그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아… 이건 예상 못 했네. 이렇게 끝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큰일 났네, 이러면 나가린데 말이야….’

콰각!

거대한 새가 스토커를 낚아 하늘 위로 올라가더니, 도중에 방향을 바꿔 그대로 바닥에 꽂아버렸다.

꽤 거리가 있음에도 퍽 소리가 크게 났다.

“아, 아….”

차벽 위에 서 있던 민우는 반쯤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늘 다음에는 땅이었다. 차벽 뒤에 있던 땅이 무너지더니, 그 위에 서 있던 엘프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개중 몇몇은 날아서 도망가려 시도했으나, 거대한 혓바닥이 튀어나와 모조리 잡아갔다.

“아, 안돼!”

민우는 애써 정신감응을 시도했으나, 땅밑에 있는 녀석에게 닿기는 무리였다. 절망스러운 눈으로 죽어가는 동료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구멍에 껴 버둥거리는 엘프가 외쳤다.

“다, 당신은 여기서 죽으시면 안 됩니다. 부디… 사자님과 함께 이 성전을 끝내주십시오…! Täpsustada üleminek(지정 전이).”

“자, 잠깐만 내가 도와줄…!”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우의 몸이 사라져버렸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갑작스럽게 나타난 목소리에 등을 돌려보니, 민우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욕을 내뱉고 있었다.

“뭐야, 너 언제 왔어!”

칼콘이 깜짝 놀라 묻자, 민우가 상황을 설명해줬다. 후열 전멸이라는 소식에 일행의 눈에 짙은 좌절이 드리웠다.

‘차원 여행자들도 모두 죽었다. 이제 남은 건 최상위 관리자와 우리밖에 없는 건가….’

현재 남은 하수인은 뒤로 통과한 새와 땅굴 포함 여섯.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숫자였다.

‘젠장,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 건가…!’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최상위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Katta ole, pane mind läbi punkti ring kasutajad. Mine lõpetada see needus. (엄호하지, 나를 두고 지나가라 반지 사용자. 가서 이 저주를 끝내라.)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다.

뜻을 이해한 순간 바로 달렸다.

“달려, 새끼들아! 이탈한다!”

칼콘의 방패를 선두로, 앞에 달려오는 녀석들은 모조리 막으며 돌진했다.

쿵! 쿵! 쿵!

몇몇 하수인들이 지훈 일행을 막으려 달려들었지만, 최상위 관리자의 레일건이 모두 저지했다.

우으으응 -

콰과과과광!

최상위 관리자를 중심으로 360 전방향에 레이저와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오로지 지훈 일행 주변만 잠잠했다.

폭음 속을 달리길 5분.

하즈무포카에게 가는 마지막 문에 당도했다.

“앞에 문!”

“들이받아!”

모두 한마음으로 달렸고, 칼콘의 방패를 시작으로 일행이 전부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올텅이 말했다.

“Puuduvad veel madal. Nüüd ma pean tegema? (남은 탄량이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최상위 관리자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광기를 뿜어냈다.

- Mitte ootama surma. Väga mugav, magus surm. (죽음을 기다려야지. 아주 달콤하고, 편안한 죽음을.)

[2차 전투 결과]

지훈 일행을 제외한 모든 병력 전멸.

[주요 인원 생존 현황]

그가쉬 - 사망 (접객실에서 사망)

에르파차 형제 - 사망 (모래 폭풍에 휩쓸림)

스프리건 - 사망 (모래 폭풍에 휩쓸림)

석중의 MES - (배터리 부족으로 인해 작동 중지)

칼날 정글의 주인 - 내출혈 및 뇌 손상으로 사망

기토킨 - 편광능력 하수인에게 사망

겐피 - C4 폭발로 인한 폭사

스토커 - 추락사

최상위 관리자 - 알 수 없음.

지훈 - 생존

칼콘 - 생존

민우 - 피로

가벡 – 생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