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69화 (169/173)

<기괴한 정글 속에서>

거대한 문이 열렸고, 다시 한 번 문을 넘었다.

늪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눈앞에 정글이 나타났다.

인간의 손 따위는 단 한 번도 닿지 않은 원시림. 지구나 세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괴한 식물들이 가득했다.

분명 뿌리와 가지 전부 다 기존의 나무인데, 나뭇잎 대신 사람 뇌처럼 보이는 물건이 달려 있었다. 조금 다를 게 있다면 색깔이 보랏빛이라는 것 정도일까.

그 외에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식물들이 널려있었다.

칼콘이 식물들을 보고 있다가 방패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나무 위에 열려있는 뇌 모양 나뭇잎이 퍼서석 소리와 함께 접혀버렸다. 민우는 그 모습을 보고 토악질을 해댔다.

‘독!?’

현재 지훈의 슈트에는 방독면이 장착되어 있어 괜찮았지만, 혹시 독이 있을 경우 모래 폭풍과는 비교도 안 될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괜찮아?”

“어우… 비위가 너무 상하는데요.”

칼콘이 민우의 등을 두드렸다.

다행히 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환경 파악을 위해 잠시 이동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하즈무포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프히학! 재밌구나, 재밌어.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발버둥을 쳐 봐라. 어차피 머지않아 다 죽게 되겠지만, 어떤 모습으로 죽어갈지 궁금하구나!

광기가 섞인 목소리가 정글 안에 울리다가 사라졌다.

짜증을 참으며 반드시 죽여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자니, 옆에 아쵸프무자가 나타났다.

“여기는 하즈무포카의 정원이야. 그 녀석의 정신 나간 성향이 잘 드러나 있지. 저것뿐만이 아니라, 하수인도 많이 있을 테니까 조심해. 그리고 내가 알기엔 이게 마지막이야. 여기만 넘으면 하즈무포카에게 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은 정글 가운데에 길이 나 있다는 거였다.

그 모습이 마치 ‘이리로 오세요.’ 하는 것 같아 함정의 냄새가 났지만, 그렇다고 나무와 관목으로 가득한 길로 갈 수는 없었다.

현재 일행의 주 이동수단은 장갑차.

정글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내려야 했다. 그럼 그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들고 가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럴만한 인력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길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쿵, 쿵, 쿵, 쿵.

부르르르 -

정글 주인을 선두로 그 뒤를 장갑차 저속으로 7대가 뒤따랐다. 이제 헬기도, MES도, 전차도 모두 없어진 까닭에 퍽 조촐해진 행렬이었다.

약 100km 정도 이동한 뒤 휴식을 취했다. 인원이 줄어들어 다행히 전원 모두 장갑차 안에서 쉴 수 있었다.

식사는 석중이 챙겨 준 MRE로 해결했다. 불행 중 다행은 식량을 싣고 있던 차량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식량이 제일 먼저 없어졌다면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굶어 죽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휴식 중 습격은 없었다.

200km쯤 이동했을 때…

비틀, 쿠웅 -

칼날 정글의 주인이 쓰러졌다.

크기가 너무 커 여태껏 상태를 한 번도 체크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쓰러진 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이봐, 괜찮나?”

얼굴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걸자, 지훈 머리보다도 큰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며 열렸다. 그 모습이 꼭 금방이라도 생기가 꺼질 것 같이 서글펐다.

눈동자가 지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예전에는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온몸이 칼에 꿰뚫리는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거늘, 지금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시선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자니, 머릿속에 정글 주인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 내 새끼… 드디어 만났구나… 고향을 떠나, 멀고 먼 곳까지 와서야… 드디어 만났구나. 잘 지냈니?

사경을 헤매고 있다가 환각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신 차려!”

얼굴에 난 털을 붙잡고 흔들며 깨워보려 했지만, 칼날 정글 주인의 눈동자는 서서히 생기만 잃어갈 뿐이었다.

그 사이 엘프가 허겁지겁 달려와 칼날 정글 주인의 몸을 조사했으나, 힘없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된 거지?”

“영양실조에 내출혈입니다. 거기다가 뇌 속에도 개미 몇 마리가 들어갔던 모양이에요… 이미….”

“마법으로 치료할 수는 없나?”

엘프는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정글의 ‘주인’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지 않듯, 칼날 정글 주인은 강력한 마법 저항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적대적인 마법과 우호적인 마법을 가리지 않아, 치료마법 역시 제멋대로 저항해 버렸기에 손을 쓸 도리가 전혀 없었다.

- 너무나도 사랑한다, 내 새끼. 네가 태어났을 때,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온 정글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었지. 네가 죽었을 때 또한 온 정글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울었단다….

- 내가 신과 거래해서라도, 너를 되찾고 싶었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만나는구나. 나는 그래도 괜찮단다. 내 옆에 너만 있으면 전부 괜찮아… 이제는, 이제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칼날 정글의 주인은 지훈을 끌어당겨 얼굴에 비비는가 싶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지훈은 잠시 묵념했다가 정글 주인의 커다란 눈꺼풀을 닫아줬다.

한때 적으로 만났을 때는 그 무엇보다 두려웠지만, 아군으로 뒀을 때는 가장 든든했던 존재가 사라졌다.

굳이 전력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항상 앞에서 보호해주던 존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큰 공허감이 느껴졌다.

조용히 있자니 아쵸프무자가 다가왔다.

“원래 대의에는 큰 희생이 필요한 법이야.”

“… 나는 녀석에게 보상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제 성공해도 줄 수 있는 도리가 없군.”

아쵸프무자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만약 우리가 성공한다면 가능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지?”

“시간을 돌릴 거야. 하즈무포카의 방해만 없다면, 전부 기억을 가진 채로도 가능해. 그럼 저 녀석도 그렇게 원하던 제 자식과 만날 수 있겠지. 그건 사라진 모두에게도 똑같아.”

모 아니면 도라는 얘기였다.

성공하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음은 물론, 보상까지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는 순간 모두 물거품이 된다.

어깨 위로 무거운 중압감이 느껴졌지만 애초에 이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다.

“다시 출발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식어가는 칼날 정글의 주인을 뒤로했다.

길 끝에 도착하니 거대한 문과 함께 수문장들이 보였다.

어지간히 얕보이고 있던 모양인지, 아니면 하즈무포카가 기습을 허용하지 않았는지 모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인들의 숫자는 총 열다섯.

다섯을 상대로도 힘들게 이겼는데, 그 세 배의 숫자였다.

게다가 현재로써는 전투 헬기로 화력 지원을 받을 수도 없거니와, 가장 든든했던 칼날 정글의 주인도 사라졌다.

‘이길 수 있을까?’

가슴 속으로 회의감이 떠올랐지만, 흩어버렸다.

어차피 이길 확률이 한 자리 숫자도 되지 않는 것 따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살면서 가끔은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어야 할 때도 있듯, 지훈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마음을 비우고 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전열을 가다듬어. 곧 전투가 시작된다.”

[브리핑]

목표 : 문 앞에 있는 하수인들을 모두 제거하거나, 그들을 피해 문 안으로 진입.

[전력 상황]

지훈 일행 -

김지훈, 칼콘, 민우, 가벡. (피로)

스토커 (정상. 남은 탄환 7발)

겐피 (피로함)

엘프 마법사들. (부상, 탈진)

기토킨을 포함한 차원 여행자들. (피로)

올텅과 FS유적 최상위 관리자. (가벼운 손상)

장갑차 7대. (반파)

[전열]

최상위 관리자 (최전방)

김지훈, 가벡, 칼콘 (전방)

차원 여행자들 (전방)

민우 (후방)

스토커, 겐피 (후방)

엘프 마법사들 (최후방)

[작전 사안]

재생력이 뛰어난 최상위 관리자가 선두로 진입.

지훈 일행과 차원 여행자들이 하수인들을 저지.

장갑차 7대를 이용해 차벽을 만들어 방어막 형성.

겐피는 차벽 앞에서 폭발물을 이용해 저항.

스토커와 민우는 차벽 위에서 저격 및 정신감응 지원.

엘프 마법사들은 차벽 뒤에서 범위마법 지원.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올텅이 최상위 관리자가 들어있는 통을 든 채 느린 속도로 걸어갔다. 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이유였다.

그 뒤로 민우가 빠진 지훈 일행, 그리고 차원 여행자들이 뒤따랐다.

☆ ☆ ☆

민우는 그 모습을 보며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스토커가 그 모습을 보더니 민우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진정해, 꼬마야. 여기 올 때 이미 각오했잖아?”

“그렇긴 한데… 이길 수 있을까요? 열다섯이나 되는데.”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참모 아니고서야 승패는 상관없는 거야. 병사는 그저 열심히 싸우고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거지. 죽지 않기 위해, 그리고 동료가 죽게끔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초등학생을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 화날 법도 했거늘, 민우는 그 얘기에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요, 살아남죠.”

스토커는 씩 웃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목표는 최상위 관리자에게 달려드는 하수인이었다.

타앙 -

☆ ☆ ☆

… 타앙 -

퍼서서서석!

득달같이 달려오던 하수인의 머리에 초록빛 섬광이 꽂히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져 바닥에 얼굴을 갈았다.

이에 올텅은 그 하수인을 밟고 계속 전진했다. 이동 속도가 느린 만큼, 한 번 프로토콜을 실행하면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것. 최대한 적진 깊숙이 이동해야 했다.

그 사이 지훈 일행과 차원 여행자들이 올텅과 최상위 관리자가 이동할 수 있게끔 길을 터줘야 했다.

“Ma vannun Protector(수호자의 맹세)!”

칼콘이 방패를 활성화하곤, 올텅에게 달려드는 네발짐승처럼 생긴 하수인을 들이받았다.

힘으로 따지자면 하수인 쪽이 압승이었지만, 공중에 있었던 탓에 손쉽게 밀려났다.

- 전이계 이능 사용 감지.

- 매우 위험한 이능입니다, 주의하십시오!

머리에 경고가 울리는가 싶더니, 네발짐승이 산탄총에 맞기라도 한 양 몸에 작은 구멍이 잔뜩 생겼다.

차원 여행자들이 공간을 비틀어 버린 거였다.

당장 몸에 구멍이 잔뜩 생긴 것도 치명상이거늘, 차원 여행자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2차 공격을 가했다.

네발짐승은 결국 올텅에 닿지도 못하고 오체분시 됐다.

- 범위 마법 전개 감지.

그 다음으로는 엘프들이었다.

이번에는 불 소나기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저거 떨어지면 날아간다. 칼콘, 버텨!”

칼콘이 방패를 내려놓자마자 가벡과 함께 달라붙어 등을 세게 밀었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지만, 힘을 합치면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콰콰콰콰쾅 - !

충격과 함께 엄청난 후폭풍이 불었지만, 올텅은 그에도 쓰러지지 않고 묵묵히 걸어갔다. 그렇게 하수인들의 중간에 도착했을 때쯤…

“배제 프로토콜 실행.”

- 위이이잉.

- 그즈즈즈즈즞!

동체 시력으로는 쫓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레이저가 주변을 휩쓸었다. 마치 라이트 볼처럼 레이저를 쏟아내길 몇 초.

다음으로는 전기장을 뿜어냈다.

- 파지지지지지지직!

눈에 보일 정도로 시퍼런 전기들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칼콘과 가벡 그리고 차원 여행자. 그 누구도 감히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훈은 스스럼없이 진입했다.

바이저 앞으로 푸른 전류가 보였다. 생명체의 몸을 태우고, 근육까지 비틀어 버리는 죽음의 안무였으나, 오로지 지훈만 그 안을 움직일 수 있었다.

- 전류에도 저항이 있어.

‘고맙다, 시연아.’

이를 꽉 깨물고는 아스발을 들었다. 안에 들어있는 MN 탄환에는 모두 마력을 입혀둔 상태.

‘이능 발동, 주문 주입. plahvatus(폭발). 주문 변형, 피탄과 함께 발동.’

안에 들어있는 탄환은 모두 30발. 가속과 신체 능력 강화를 모두 사용한 뒤, 가까운 녀석부터 모조리 박아 넣었다.

10발에 한 놈씩, 총 3놈 제거하자 전기 충격이 멈췄다.

남은 하수인 총 10마리.

‘최상위 관리자가 3마리 정도는 시간을 끌어 줄 거다. 차원 여행자들이 3마리. 겐피와 스토커가 1마리 정도는 처리해 줄 터. 남은 건 모두 내가 막아야 한다.’

이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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