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끝>
- 그워워워어!
온몸을 마비시킬 듯 날카로운 맹성!
적이었을 때는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지만, 아군이 되자 그 무엇보다 든든한 존재. 바로 칼날 정글의 주인이었다.
정글 주인은 현재 주먹에 올텅과, 올텅이 안고 있는 FS 유적 최상위 관리자를 품어놓은 상태!
- 내 아이를 돌려줘!
정글 주인이 섬뜩한 비명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올텅과 관리자를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에게 집어 던져 버렸다.
슈우우욱 - 콰앙!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내장이 곤죽이 됐을 충격이었지만, 다행히도 올텅과 최상위 관리자는 기계였다.
“아쵸프무자님과 그 사자님의 명령에 따라, 적을 배제합니다. 배제 프로토콜 실행. 최상위 관리자님께 제어 권한을 넘깁니다.”
올텅은 말을 끝마치자마자 품에 안고 있던 커다란 원통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위이이이잉 -
그러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사람 몸통만한 원통이 개방. 그 안에 있던 최상위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See on väljastpoolt näha, kui kaua aega! (이 얼마나 오래간만에 보는 바깥인가!)
최상위 관리자는 사람이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 때부터, 우주까지 날아갈 때까지 유적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었다. 그 설움을 깨는 한 마디였으나, 저 말 그 어디에도 기쁨이나 환희는 존재하지 않았다.
- Kas süüdlane hätta lõputu needus mind? (너희가 내게 끝없는 저주를 내리게 한 원흉이냐?)
분노와 증오. 최상위 관리자의 목소리에 들어있는 감정은 오로지 저 두 개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머지않아 광분으로 치환됐다.
- 위잉.
- 그즈즈즈즈즞!
강철도 그냥 녹여버리는 굵은 레이저가 순식간에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을 훑고 지나갔다.
저들 역시 만만한 존재들은 아니었기에, 양단되지는 않았으나 외골격에 옅은 상처가 남았다.
“Võimsus rünnak. (전원 공격.)”
이에 인섹토이드가 눈살을 찌푸린 뒤, 나머지 하수인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뱉었다.
☆ ☆ ☆
드드드드드드드 -
같은 시각.
사막 200m 상공.
민우는 헬기 위에서 망원경으로 서로 얽히고설키는 정글 주인과 최상위 관리자를 내려다봤다.
‘난전이다. 다행히 작전대로 되어가고 있어.’
민우는 정신을 집중해 지훈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동시에 지훈의 마음을 읽어, 다음엔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내려야 할지 파악했다.
- 제일 멀리 떨어진 녀석에게 헬기로 미사일 꽂고, 엘프들한테 범위 마법 전개하라고 지시해.
- 잠시만요. 그럼 정글의 주인하고 최상위 관리자는요?
미사일이야 어떻게 조심하면 안 맞을 수 있다지만, 범위 마법의 경우 무조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지훈의 대답은 간단했다.
- 맞아봐야 별 피해 없을 거다. 그냥 날려.
정글 주인의 경우 핵을 10발 이상 맞고도 살아남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고, 최상위 관리자는 유적(으로 만든 케이스) 안에만 있다면 무한으로 재생할 수 있었다.
괜히 지훈이 상대하지 않고 도망간 게 아니듯, 이는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에게도 동시에 적용됐다.
엄청난 저항을 가진 녀석과 지구전을 벌이던가, 무한히 재생하는 적과 술래잡기를 하던가.
물론 그 어느 선택을 하던 아군에게는 이득이었다.
민우는 지훈의 명령에 따라, 엘프들과 헬기 조종사에게 동시에 정신 감응을 시도했다.
“알겠다, 꽉 잡아.”
조종사가 짧게 대답하고는, 곡예비행을 시작했다.
우위이이이잉 -
헬기가 기울어지며 순식간에 측면으로 돌아갔다.
이후 헬기 조종사는 조심스럽게 측면을 겨눈 뒤, 바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 발사. 후폭풍 주의.”
민우는 눈을 꼭 감고 귀를 막았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잠시 덜컹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슈우우우우 - 콰앙!
하즈무포카의 전갈 하수인 몸통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전갈 녀석은 꼬리가 잘렸으나, 아직 움직일 수 있는지 버둥거렸다. 그런 녀석의 머리 위에 미사일 다음으로 불 소나기가 쏟아졌다. 엘프들의 범위 마법이었다.
솨아아아아아 -
굉장한 화력 덕분에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얻어맞았지만, 화력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관포 발사.”
헬기에 달린 발칸포가 빙글빙글 돌며 20mm ‘포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였다면 탄환을 발사해야 했지만, 기술의 발전은 포탄을 발칸으로 발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폭음과 함께 화마가 치밀었다.
미사일과 마법으로 곤죽이 된 전갈과 거미 그리고 뱀은 초당 5발씩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포탄들에 죽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아군 진입에 따라 다시 관측 포지션으로 돌아간다.”
헬기는 탄환을 전부 토해낸 뒤 다시 상공으로 올라갔다.
민우는 서서히 높아지는 고도 사이로, 장갑차가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 ☆ ☆
장갑차 7대가 진입과 동시에 기관총을 갈겨댔다.
안에 들어있는 건 겨우 OTN탄이었지만, 12.7mm짜리 탄두들이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을 두드렸다.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정도로 약했으나, 중요한 건, 움직임을 잡아둔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갑옷을 입은 사람이 BB탄에 다치지 않는다 한들, 그게 기관총 수준으로 계속 날아오면 움직이기 힘든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안에 타고 있던 인원 중 제일 먼저 행동한 사람은 바로 스토커였다. 그는 차 위에 엎드려 모신나강을 겨눴다.
‘이능 발동, 등속유지.’
스토커의 이능은 간단했다.
쏜 총알이 그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반응하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가는 능력. 1km까지는 중력도 무시하기에 쏘는 순간 명중이라고 봐야 옳았다.
게다가 현재 장전된 탄환은 CR.
A등급도 관통하는 인류 최강의 탄환.
제아무리 강화 외골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CR이라면 관통까지는 못해도 몸에 박힐 건 분명했다.
‘딱 열 발밖에 없는 건데 말이지.’
타앙 -
어깨가 나갈 것 같은 반동과 함께 초록색 탄두가 바람을 찢고 날아갔다. 결과는 명중. 전갈이 초록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그 총성을 시작으로, 지훈 일행, 겐피, MES, 차원 여행자가 동시에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현재 정글 주인과 최상위 관리자가 하나씩 붙잡고 있었기에, 남아있는 하수인은 셋.
정확하게 세 팀으로 나눠서 달려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전투 중 교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민우가 계속해서 지훈의 생각을 모두에게 전달해 주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 ☆ ☆
전갈에게 겐피와 MES가 달려들었다.
겐피와 MES. 서로 합을 맞춰본 적이 없었으나, 어차피 둘 다 싸움에는 도가 튼 달인들이었다.
키이이잉 - 키이잉!
MES가 돌진하자, 전갈이 손을 들어 막을 자세를 취했다. 이에 MES도 힘 싸움에 응했고, 서로가 손을 맞잡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겐피와 그의 하수인들이 전갈에게 달려들었다.
비록 그들이 가진 무기로는 전갈에게 피해를 줄 수 없을 게 분명했으나, 다행히도 전갈에겐 포격과 마법 그리고 저격으로 인한 상처가 많았다.
‘이능 발동, 강화.’
겐피의 능력은 전투 능력치 3개(근력, 민첩, 저항)를 각 1등급씩 올려주는 거였다. 이렇게 높아진 신체 능력치를 바탕, 겐피는 다이너마이트로 손을 뻗었다.
원래라면 현대 폭탄에 밀려, 외지에 사는 부족들만 사용하는 물건.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절륜했다.
차작!
허리띠에서 꺼내 들자, 미리 장치해 둔 장치와 마찰을 일으키며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이후 겐피는 그 폭탄을 전갈의 몸에 꽂아 넣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쳤다.
퍼엉 -
저항 능력치 A.
미사일에 직격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외부 충격에 특화된 단단한 ‘외골격’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장을 최소화해 충격에도 금방 회복할 수 있고, 심지어는 뼈까지 퇴화시켜 오로지 근육으로만 신체 전부를 다룰 만큼 근밀도가 높고 강력했으나, 만약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뚫려, 내부 충격을 허용하는 순간…
퍽!
전갈의 몸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만약 헬기, 마법, 저격 지원이 없었다면 겐피와 MES는 무슨 짓을 해도 전갈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원래 전쟁은 일대일로 하는 게 아니듯, 온갖 지원이 더해지자 A등급 7~9티어 쯤 하는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도 손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 ☆ ☆
기토킨과 차원 여행자들.
숫자는 겨우 열이었으나, 그들은 각 개체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Üks mõõde prügikasti, miks nad julgevad üritavad teotada Jumalat! (차원의 쓰레기들이 어찌 감히 신을 모독하려 드는가!)”
뱀은 차원 여행자들을 물리려 했지만, 기토킨은 아무런 변화 없이 굳건히 서 있었다.
“당신이 믿는 신들의 장난에 우리 종족이 너무나도 많이 희생됐습니다. 더 이상은 머리를 숙인 체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뱀은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공기 중에 독 안개를 뿜어냈다. 닿기만 해도 살을 녹여내는 극독이었으나…
웅 -
우으으으으응 -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뱀을 중심으로 지름 3M짜리 반투명한 구가 생겨났다. 뱀은 독이 더는 퍼지지 않자 당황한 듯싶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기토킨의 손짓에 따라 그 구가 작아지는 듯싶더니…
퍽!
뱀이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해버렸다.
☆ ☆ ☆
앞선 두 차례 전투 사이, 지훈 일행은 이미 거미를 반쯤 걸레 조각으로 만들어 놨다. 3쌍이던 팔은 이미 1쌍으로 줄어있었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Kui vana poole…! (어찌 반쪽짜리가…!)”
거미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가벡은 양쪽 손에 든 검으로 교묘하게 흘려버렸다. 쌍수는 방패를 포기한 만큼, 그에 필적하는 방어 수단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기교였다.
병사나 기사 같은 양지에 있는 자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오로지 일격 필살에만 특화된 교묘한 눈속임 기술.
그게 바로 가벡이 사용하는 쌍수였다.
검 좀 다뤄본 사람이나 방진을 이루고 있는 병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이를 모르는 자에겐 굉장히 위협적이게 보였다.
결국, 거미는 가벡에게 신경 팔린 사이 지훈에게 총알을 여러 발 허용. 머지않아 바닥에 축 늘어졌다.
전투를 끝내고 중앙 쪽을 바라보니, 정글 주인의 몸이 새까맣게 변한 게 보였다.
‘저건 또 뭐야?’
색깔이 변하는 능력이라도 있나 싶길 잠시. 자세히 보니 울렁거리는 게 꼭…
‘개미?’
개미였다.
그것도 일반 개미가 아닌, 포미시드.
아무리 정글 주인의 몸짓이 커도 포미시드가 코나 귀로 들어가 내장을 공격하면 저항할 수가 없었다.
빠르게 지원을 가려는 찰나…
- 빌어먹을 개미 새끼!
정글 주인의 손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내 뭔가 퍽 하고 터져버렸다. 높이 7M에서 뭔가 빙글빙글 떨어졌는데, 인섹토이드의 머리였다.
[2차 전투 결과]
장갑차 3대 파손 (모래 폭풍에 휩쓸림).
MES 작동 중지 (전력 부족).
헬기 파손 (연료 부족).
엘프 마법사 부대 1/2 사망.
언더 다크 한국 지부 인원 몰살.
실질적인 부대 규모가 1/2로 줄어 들음.
[주요 인원 생존 현황]
그가쉬 - 사망 (접객실에서 사망)
에르파차 형제 - 사망 (모래 폭풍에 휩쓸림)
스프리건 - 사망 (모래 폭풍에 휩쓸림)
석중의 MES - 작동 중지
지훈 - 생존
칼콘 - 생존
민우 - 피로
가벡 - 생존
스토커 - 생존
기토킨 - 생존
겐피 - 생존
올텅과 최상위 관리자 - 가벼운 손상
칼날 정글의 주인 - 짙은 피로, 내출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