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66화 (166/173)

<접객실>

여태까지 겪은 차원 이동과 달리,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이어지면 정신병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눈을 뜨자 거대한 저택이 보였다.

“접객 공간이네. 차원의 가장 바깥 부분으로 왔어. 마음 같아서는 정보를 전부 알려주고 싶지만, 나도 공습에 함께한 건 처음이야. 알려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어. 알아 둬.”

접객 공간. 집으로 따지자면 거실로 해당하는 부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말 그대로 끝없이 이어진 거대한 홀이었다.

300이 넘는 숫자에 차량과 헬기, 심지어 크기가 엄청나게 큰 칼날 정글의 주인까지 들어 왔음에도 공간이 남을 거대로 거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홀 천장에는 맑은 밤하늘 같은 우주가 떠 있었고, 길고 긴 복도만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었다.

그 거대한 모습이 미물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강한 이질감이 들었다.

‘여기서 시간을 잡아먹힐 수는 없다. 할 일이 많아.’

전진하려는 찰나 홀에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내 차원에 어서 오너라, 내 주머니 속 미물들이여. 아주 작아 눈을 치켜뜨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녀린 몸부림이라도, 너희는 내게 아주 큰 즐거움을 주는구나.

하즈무포카였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임에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은 내용에 집중해야 했기에 귀를 기울였다.

- 너희가 이런 재미있는 재롱을 준비해 줬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나도 유희를 위해 접객을 준비했으니, 부디 재미있게 즐겨주길 바란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즐거운 연회가 되면 좋겠구나. 크히히히힉!

광기 들린 웃음이 끝남과 동시에, 주르륵 늘어서 있던 갑옷들 심지어는 시계와 탁자 그리고 촛대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한들 현재는 합이 전혀 맞춰져 있지 않은 상태! 이대로 뒀다간 아군 사격 및 범위 공격에 서로 휩쓸릴 수 있었기에 조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훈이 그 방법으로 선택한 건… 바로 민우였다.

“민우! 정신 감응으로 내 말 전달할 수 있어?”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빠르게 물었다.

“300명… 자, 잘은 모르겠지만 해볼게요!”

“칼날 정글의 주인이 제일 앞서 나가고, 그 뒤로 전차와 마법사를 배치해. 무생물이라 총으로는 제압 불가능해. 먼저 대규모 화력으로 숫자를 줄여야 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민우가 눈을 꾹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의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그워어어어!”

성공했던 걸까?

그림자가 드리움과 동시에, 머리 위로 칼날 정글의 주인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단순 도약으로 뭉쳐있던 300명을 그대로 건너뛴 것이다!

이후 쿵 하는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칼날 정글의 주인은 주변에 있던 사물들을 전부 박살 내기 시작했다.

크기만 6M에 달하는 엄청나게 커다란 짐승.

엄청난 부피와 무게만 해도 아득한데, 거기에 피부와 손톱은 모두 낮게 잡아도 B등급 이상. 하찮은 물건들 따위 두부처럼 뭉갤 수 있었다.

그렇게 칼날 정글의 주인이 길을 여는 사이 마법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마법을 준비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3분.

이후 추가로 마법 영창이 2분.

- 마법 영창 시작! 마법은 불소나기! 3소절부터!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노래가사 같은 영창이 시작됐다.

짧은 시간 내에 강력한 화력을 쏟아내는 현대전에는 어울리지 않을 긴 준비 시간이었으나… 그 화력은 감히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2분여 되는 영창 시간이 끝나자, 합창하던 엘프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Ma viipas teile ja see vähendab defitsiit. (당신께서 손짓하시니, 불비가 내리나이다.)

화아아아아아아아 -

엄청난 화염 폭풍이 몰아쳤다!

이미 앞서나간 칼날 정글 주인과의 거리가 1km 남짓이었는데, 그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이 불에 휩쓸려 재로 변했다.

이게 바로 인간이 얕잡아 봤던 이종족의 저력이었고, 또한 인간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던 마법이었다.

“전진! 칼날 주인이 뚫어놓은 길을 이용한다!”

☆ ☆ ☆

얼마나 싸웠는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끝없이 뭉갰고, 마법으로 모조리 쓸어가며 전진했다.

그렇게 싸움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쯤. 끝이 없을 것 같은 홀의 끝에 도착했고, 그 앞에는 계단과 함께 커다란 문이 보였다.

“다음 공간으로 가는 문이야. 저길 건너야 해. 하지만 저 앞에는 수문장이 있으니 주의해.”

아쵸프무자는 계단 위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는 앉는 사람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검과 갑옷으로 잔뜩 뭉쳐진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 의자에는 푸른 안광을 뿜어내는 갑옷이 앉아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 안에 뭔가가 들어있어야 했거늘, 안은 텅 비어있고 그저 검디검은 공간과 푸른 안광만 가득했다.

“저 녀석의 종족은 살아있는 물건(Living Things). 육체를 초탈한 종족으로, 물건에 영혼을 주입할 수 있는 반신이야.”

아마 여태까지 막아섰던 물건 모두 저 녀석이 만들어 놓은 것이리라.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녀석이 일어섰다.

“Kutsumata külaline keelduti. Enneolematu tagasi tööle … (불청객은 사절이다. 여기서 돌아간다면 없던 일…)”

대화 따윈 필요 없었고, 돌아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기에 바로 명령했다.

“각 전차 주포 발포! 목표는 문 앞 갑옷!”

말이 떨어지자마자 민우를 통해 명령이 전달됐고, 대지가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굉음과 함께 탄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다란 포탄이 날아갔다.

콰앙 - 쾅쾅!

결과는 깔끔하게 명중.

몇 발은 빗나가 문에 처박혔으나, 저 중 한 발만 직격 해도 엄청난 피해를 받을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먼지가 걷히자 수문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걸레 조각이 된 철편만 나뒹굴 뿐이었다.

‘끝났나?’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쉬웠다.

‘거인한테는 핵을 직격으로 꽂았는데도 살아있었다. 이렇게 쉽게 끝난다고?’

말이 되질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아쵸프무자가 힘들게 다섯 번이나 공습을 올 필요도 없이, FS의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거리 무기만 잔뜩 꽂아 넣으면 됐다.

- Esineb keha on seotud triviaalne, kanda kisendama terror. (하찮은 육체에 묶여있는 존재들이여, 공포에 부르짖으라.)

구구구구구구…!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저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젠장! 설마, 이 저택 자체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물건. 만약 육체에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굳이 인간의 형상을 띨 필요가 없었다. 아마 갑옷은 접객 및 대화를 위한 인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

“전 부대한테 전해! 이 저택 전체가 저 녀석의 본체다!”

“으허어!? 그, 그게 무슨!”

민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진정하고는 전 부대에 얘기를 전했다.

하지만 저택이 쑥 꺼지는 게 빨랐기에,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후방에 있던 전차들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 - 콰앙…

작게 들리는 폭발음만 전차 부대가 끝장났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빌어먹을, 어떻게 해야 하지!”

실시간으로 부대가 궤멸당하는 중이었다.

만약 이 저택 자체가 수문장의 본체라면, 애초에 녀석의 배 속에 들어있는 꼴이었다.

오히려 생명체의 배속이라면 내장이라도 공격해 반항할 수 있었지만, 상대방은 무생물이었다.

이 거대한 저택을 먼지 하나 남기고 박살 낼 수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달려! 이탈한다! 목표는 문!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지훈 일행 포함 병력 대부분이 타고 있는 장갑차 20대가 일제히 달렸고, 엘프 마법사들은 날아서 이동했으며, 차원 여행자들은 단거리 도약으로 빠르게 이탈했다.

우으으으으 - 콰직!

아무리 재빨리 이동한다고 한들, 바닥이 울렁거리는 곳을 뚫기는 쉬운 곳이 아니었다.

차량 행렬의 몸통이 갑자기 튀어나온 벽에 부딪히는 것을 시작, 2차, 3차 추돌까지 나며 많은 병력이 손실됐다.

백미러를 통해 차량들이 박살나는 걸 보니 속이 쓰려 왔지만, 여기서 멈췄다가는 모두 죽는 꼴이었다.

“계속 달려! 그리고 엘프 마법사들은 계단 앞에 빗면 만들어! 차량이 통과해야 한다!”

“Annie luua silla minna, kui sa tahad seda.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만들지어니.)”

계단 옆에서 갑자기 흙더미들이 올라오더니, 차량이 이동할 수 있게끔 계단을 모조리 덮어버렸다.

쾅 - 드드드드드!

차량이 계단 위에 올라가자 거세게 흔들렸지만, 다행히 전복되는 일 없이 모두 올라갈 수 있었다.

“지훈! 전방에 문, 어떡해!”

운전하던 칼콘이 물어봤다.

어차피 멈추면 죽는다. 대답은 하나였다.

“들이받아!”

칼콘은 눈을 질끈 감고 엑셀을 꾹 눌렀다.

부르르릉 - 콰아아 - … … ..

뭔가에 부딪히는 느낌과 함께 장갑차에 타고 있던 인원의 몸이 전부 공중에 떠올랐지만…

우응 -

그나마도 잠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훈 일행이 사라지자 남은 병력이 일제히 계단을 지나 문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그 수가 반으로 줄어있었다.

칼날 주인과 최상위 관리자는 차량 행렬과 헬기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지나갔다.

☆ ☆ ☆

첫 이동이 몸 위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불쾌감이었다면, 이번에는 숨이 막힐듯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 되자, 눈꺼풀을 뚫어버릴 듯 뜨거운 빛이 느껴졌다.

‘끝난 건가?’

눈을 뜨니 저택은 어디 갔는지 없고, 앞에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덥다….”

운전석에 있던 칼콘이 갑옷을 흔들며 투덜거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꽉 조여뒀던 오감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묻는 민우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겨우 저택 하나 지나는데 1/3이나 줄어 버렸으니, 슬슬 무서울 법도 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려는 순간, 창문 밖으로 아쵸프무자가 나타났다.

“나도 여긴 잘 모르겠어. 예전에 봤을 때는 없던 곳이었는데…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 같아. 보통 계층은 그 관리자의 능력과 닮았으니, 미리 조심해 둬.”

장갑차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최대한 멀리 쳐다봤지만, 여기저기 널려있는 사구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모래.

그저 모래밖에 없었다.

“일단 이동한다. 계속 기다려 봐야 체력만 떨어진다.”

그렇게 업화의 이동이 시작됐다.

[1차 피해 상황 집계]

전차 5대(그가쉬 클랜과 석중의 물건) 모두 파손.

장갑차 10대 파손 및 탑승 인원 모두 사망

그가쉬 클랜 측 인원 몰살.

언더 다크 한국 지부 인원 1/2 사망

엘프 마법사 부대 1/10 사망.

실질적인 부대 규모가 1/3로 줄어 들음.

[주요 인원 생존 현황]

그가쉬 - 사망 (전차 탑승 중 저택에 잡아먹힘)

지훈 - 생존

칼콘 - 생존

민우 - 생존

가벡 - 생존

스토커 - 생존

스프리건 - 생존

석중의 MES - 생존

에르파차 형제 - 생존

기토킨 - 생존

겐피 - 생존

올텅 - 정상

최상위 관리자 - 정상

칼날 정글 주인 -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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