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64화 (164/173)

<꼭 돌아올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출발할 수 있는 상태.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 앞서 몇 가지 미련이 남았다.

까닭에 동료들에게도 며칠간의 여유를 갖자고 말했다.

☆ ☆ ☆

칼콘은 잠시 카즈가쉬 클랜에 다녀온다고 말했다. 차로 이동하기에는 2달 이상 걸리는 거리였기에, 아마 모아놨던 예금을 써서 포탈을 탈 생각인 것 같았다.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까닭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테지만, 아마 그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으리라.

“갑자기 고향이라니, 뜬금없지 않아?”

이유를 묻자 칼콘이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카즈가쉬의 이름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거기에 내 소중한 사람이 있어.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아들도 거기 있고.”

언젠가 여자 이름을 웅얼거린 적이 있던 칼콘이었다.

아마 그 사람이겠지.

“죽을지도 모르니까, 한 번 다녀와야겠다 싶어. 조금 늦을지도 몰라. 미안해, 지훈.”

“괜찮다. 만약 가다가 생각이 바뀌면 전화나 해. 꼭 가야 한다고 강요는 하지 않는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고 보니까,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냐?”

문득 떠오른 옛날 생각을 시작으로, 둘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잠시. 칼콘이 속 깊은 얘기를 꺼내놨다.

“있잖아, 내가 왜 카즈가쉬 클랜을 떠났나 얘기했던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얘기였다. 클랜 얘기만 나오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던 칼콘이었다.

마음속 제일 깊은 곳에 있던 얘기인지라 힘들면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칼콘은 고개를 저었다.

“계속 도망칠 순 없잖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어야지.”

칼콘은 몬스터 브레이크 당시 서울로 침공했었다. 그는 군인이었기에 명령에 따라 인간들을 사살했다.

“그렇게 군인을 뚫고 나니까, 민간인이 나타났어. 근데 지휘관이 모두 죽이라고 하더라?”

인간의 총은 굉장히 위협적이어서, 방아쇠만 당길 수 있다면 아이던 여자던 모두 쏠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는 이종족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요소였기에, 반드시 배제해야 했다.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죽이다가 한 가족을 만났어. 애 아빠가 몸을 던져서 막더라? 어쩔 수 없이 죽였어. 그러고 나니까 애 엄마가 자기한테는 뭐든 다 해도 되는데, 애만 죽이지 말라고 그랬어.”

결과야 뻔했다. 당시 칼콘은 잘 벼려진 군인이었다.

전시에 명령 불복종은 곧 즉결처형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여자를 죽였다. 칼로 찌르니 맥없이 쓰러졌다.

고통에 익숙지 않은 현대인으로서는 당연했다. 하지만… 여자는 죽기 직전까지 칼콘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애를 죽이려고 칼을 들었는데, 뭐 하고 있나 싶더라. 그래서 도망쳤어. 탈영했지. 나는 민간인을 죽이려고 군인이 된 게 아니었어.”

결국 클랜에서 쫓겨남은 물론, 인간 사회에서도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이 됐다. 지훈은 문득 저 얘기가 민우에게 들었던 얘기와 굉장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두기로 했다.

가끔은 덮어두는 게 더 좋기도 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하러 가는 건가?”

“뭐… 그렇지. 다녀올게.”

칼콘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너는 잘못한 거 없다. 죄는 전쟁이, 전쟁을 결정한 늙은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거야. 네가 떠안을 필요 없다.”

칼콘은 이에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했다.

☆ ☆ ☆

민우는 부모님이 계신 납골당에 다녀온다고 말했다.

세드에서 살아온지라 자주 못 갔지만, 이번에 오지 않으면 영영 못 올 수도 있다는 걸 내심 생각한 모양이었다.

“같이 다녀오자. 어차피 나도 한 번 가야 했다.”

지현 포함, 셋이 함께 지구로 향했다.

목적지는 신사동 가로수길이었다.

과거 신사동 가로수길이라 함은 엄청난 번화가로 패션을 선도하는 장소였으나, 지금은 얘기가 조금 달랐다.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 당시 오크 마법사가 신사동에 말 그대로 운석을 꽂아 버렸고, 반경 10km가 전부 폐허가 됐다.

이후 재건 때 정부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납골지구를 만들기로 했고, 이에 신사동이 선택됐다.

과거였다면 땅값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나,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이 정확히 강남대로에서 터지면서 이미 강남 주변 땅값이 바닥까지 떨어진 후였다.

결국 납골지구 건설 사업이 진행됐고, 신사동 가로수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꼭 거대한 묘비가 잔뜩 늘어서 있는 것 같네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전국에서 900만 명. 이후 개척전쟁에서 10만 명. 종족 전쟁에서 90만 명이 추가로 죽었다.

숫자로 보면 겨우 1,000이지만… 실제로 따져본다면 대한민국 인구의 1/5이 줄어든 거였다. 그중 대부분이 실질적인 노동과 경제의 주체인 20~40대였다.

애초에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

지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처음에는 그저 돈을 위해서였고, 더 나아가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하즈무포카를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어떤 일을 벌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쵸프무자의 말대로 핵전쟁이 일어나고, 그 청소를 위해 주머니 차원을 갈아 버린다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게 분명했다.

‘막아야 한다. 그 미친 새끼를 막아야 해.’

속으로 다짐하고 있자니, 민우가 말을 걸어왔다.

“형님. 저는 64번 빌딩이라,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끝나고 여기서 만나자.”

지현과 둘이서 부모님의 납골당을 찾았다.

‘잘 계셨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못난 아들놈 굉장히 오래간만에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조용히 큰절을 두 번 하고, 한동안 묵념하고 있다가 나왔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민우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다가왔다.

“어… 예. 일찍 오셨네요. 킁.”

훌쩍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감정이 뭉클거린 걸까?

문득 지현이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오빠, 나 갑자기 엄마 보고 싶어…. 나 이제 엄마랑 아빠 얼굴이 기억나질 않아… 예전에 엄마, 아빠랑 맨날 같이 아침밥 챙겨 먹었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지? 나 이상한가 봐… 치매도 아닌데… 밥이 어떤 맛이었는지, 엄마랑 아빠 목소리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 엄마….”

홀로서기 한 지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속으로 왜 사진 한 장 찍어놓지 않았을까, 왜 동영상 하나 남겨놓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치밀었다. 항상 옆에 계실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영원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포탈이 열렸고, 몬스터가 쏟아졌다.

그때 지훈은 고등학생. 용돈 더 달라고 애꿎은 화나 내며, 방에 막 들어오지 말라고 짜증이나 부렸을 나이.

홀로서기엔 너무 어렸고, 세상도 몰랐다. 그저 부모님의 품 안에서만 살았기에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개 같은 하즈무포카… 이게 전부 다 그 새끼 때문이다….’

가슴 속에서 검은 증오가 들끓었으나, 일단은 앞에 있는 지현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아직 오빠가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그 손길에 안심됐는지 지현은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숨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우는 지현을, 민우가 가까이 다가가 꽉 안아줬다.

“괜찮아요, 지현 씨. 괜찮아… 지금은 다 같이 있잖아요.”

지금은 이라는 단어가, 나중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내포하고 있었기에 굉장히 씁쓸하게 들려왔다.

‘내가 죽으면 이제 지현이 혼자 남는다.’

벌어놓은 돈이 있고, 지현도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은 아닌지라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속으로는 꼭 이기고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있잖아… 오빠도, 민우 씨도… 갑자기 떠나지 않을 거지? 나 진짜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살기 싫을 것 같아.”

울먹이며 쳐다보는 동생에게, 굳은 다짐을 담아 “응.” 이라고 대답해줬다. 민우 역시 “약속할게요.” 라고 말했다.

☆ ☆ ☆

가벡은 남은 시간 동안 본인이 모시는 신에게 참배했다.

“발쿠할에 가고 싶은 모양이지?”

“당연하다. 죽어서도 그분과 함께 싸울 수 있다면, 무한한 영광이지. 나는 그분의 칼이며, 또한 방패이니라.”

“수고해라.”

딱히 공감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에,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곤 밖으로 나왔다.

본인이 열렬히 신도이면서 다른 신을 죽이려고 하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행동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란 있을 수 없는 법이었다.

☆ ☆ ☆

마지막으로 시연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반대였다.

딱 봐도 죽으러 가는 건데,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냥… 그냥 도망치자. 지구로 가면 안전할 거야. 나도 이제 연구 거의 다 끝나가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도망쳐서, 눈 꼭 감고, 귀 꼭 막고 살자… 응?”

“미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을 짧게 담아 사과하자, 시연이 커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너 진짜 못됐어… 사람 마음 이렇게 막 흔들어 놓고… 맨날 위험한 일이나 하고… 나쁜놈아… 난 네가 위험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데… 넌 내 생각도 안 하고….”

“정말 미안하다. 이건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내 손으로 끝내고 싶어.”

“그게 왜 너여야만 해!? 이 세상에 사람은 많잖아! 왜 자기가… 왜 자기가 정의의 사도가 돼야 하냐고. 그냥 나랑 같이 결혼해서, 평범한 애 아빠로 살면 안 돼?”

이기적인 생각이었으나, 또한 당연한 생각이기도 했다.

다들 세상을 구원해 줄 영웅을 원하지만, 그 가시밭길을 본인 혹은 본인의 주변 사람이 가기는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달래고서야 시연이 울음을 그쳤다.

다 부어버린 눈으로 원망을 담은 눈초리만 보내는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연아….”

“왜.”

“돌아오면 나랑 결혼하자. 나 이제 헌팅도, 싸움도 전혀 안 할 테니까… 같이 애 잔뜩 낳아서 살자.”

시연은 간신히 멈췄던 울음을 다시 터트렸다.

“이 개새끼야… 씨발놈아… 그런 말 하면… 독한 마음 먹었는데… 너 안 돌아오면 어떡해… 나 너 기다리다 늙어 죽으면 어떡해… 진짜… 난 이제 너 없으면 안 되는데….”

만난 이래로 시연이 처음으로 욕을 했다.

그만큼 속상했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오질 않는다면, 그저 ‘늦네.’ 하는 심정으로 30대, 40대, 심지어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다리리라. 차라리 기다리는 게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편할 테니까.

“꼭 돌아와… 나 진짜 죽기 직전까지 기다릴 거니까….”

독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연을 꽉 안아줬다. 그걸 신호로 다시 한 번 시연 눈에서 수도꼭지가 터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꽉 안아줬다.

☆ ☆ ☆

마지막으로 지현에게 모든 카드와 통장을 넘기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

“나 안 돌아오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내가 모아둔 돈 조금씩 쓰면서 살아. 보사랑 아이덴티티는 절대 들어가지 말고, 그냥 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라.”

이미 감정교류는 다 끝난 상태였기에, 지현은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헌터라 보험 안 들어뒀지만, 내가 네 이름으로 보험 많이 들어뒀다. 중도 해지하면 돈 안 들어오니까, 꼬박꼬박 내서 환급 타 먹고. 아프면 거기서 돈 받아다가 병원 가거나 치료받아라.”

“알겠어….”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아파 왔다.

“걱정하지 마. 돈 다 떨어지면 석중 할배 찾아가. 아마 잘 챙겨줄 거야.”

아마 욕 몇 마디 하긴 하겠지만, 거친 일 없이 옆에서 커피나 타게 시키며 연봉 1억은 쥐어 주리라. 차라리 그게 괜히 험한 일 하는 것보다 나았다.

“응….”

“아니, 너는 표정이 무슨 꼭 안 돌아올 것 같다? 이 년아, 너는 내가 그냥 콱 나가서 안 들어왔으면 좋겠지?”

너무 우울해 하는 것 같아서 톡 건드리자, 지현이 불같이 화를 냈다.

“아, 쫌! 하나밖에 없는 오빠라는 인간은 진짜 사이코패스인가, 꼭 이런 순간까지 그래야 돼!? 감정이 없지 그냥!?”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내가 없어도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살아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한 법이었다.

☆ ☆ ☆

그렇게 일행과 동료들의 정리가 모두 끝난 뒤 아쵸프무자에게 연락했다.

‘준비는 끝났다. 내일 오전에 출발하지.’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단지 허공에 알겠다는 내용을 담은 고대어만 떠올랐을 뿐이었다.

- Nagu sulle meeldib.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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