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61화 (161/173)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

한국 개척지 북쪽에 핵을 꽂은 까닭에, 한국 개척지는 물론, 러시아, 중국, 심지어 티그림까지 난리를 쳐댔다.

그도 그럴 게 핵미사일의 위력 자체는 그럭저럭 이해해 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꽂히는 순간 방사능 때문에 죽음의 땅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러시아, 중국, 티그림은 최대한 빨리 이번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성명을 냈다.

핵에 관련된 정치나 외교 사안은 굉장히 민감했기에 잘못했다간 이웃 개척지끼리 전쟁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 통행 규제만으로도 하루에 나는 경제 피해가 천문학적인데, 전쟁까지 해댔다간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게 없었다.

이미 개척전쟁과 종족전쟁을 겪어온 인류와 이종족은 이미 성숙했고, 더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번 핵미사일 건을 꼬투리 삼아 중국 개척지청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칼날 정글 사건으로 핵 사용 경력이 있는 중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외교 관계는 날로 험악해지기만 했다.

- 핵미사일은 재앙입니다.

TV에서 공익 광고가 흘러나왔다.

핵미사일 EMP로 인해 서구에 있던 사립병원의 전기가 나간 얘기였는데, 이로 인해 수술 및 입원 중이던 환자들이 사망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 우리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동참해 주세요. ARS 모금, 1566 - 15 …

TV를 보던 지현이 도중에 채널을 돌려버렸다.

“저런 거 내봐야, 다들 이상한 놈들 주머니로 들어가잖아. 나라에 도둑놈이 너무 많아.”

맞는 말이긴 했으나, 직접 핵을 꽂은 입장에서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입 다물고 TV만 쳐다봤다.

채널이 돌길 여러 번.

리얼 버라이어티 헌팅 프로그램에서 멈췄다.

지훈은 사실 TV에서 뭐가 나오는지는 전혀 관심 없이, ‘누굴 데려가야 하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 안녕하세요, 저는 폭스 그릴스입니다! 오늘은 한국 개척지 주변에 있는 가시 산맥에서 헌팅을 해볼까 합니다! 아주 위험한 장소죠! 저는 이 산맥의 먹이사슬 제일 아래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폭스 그릴스는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가시 산맥의 관목들은 이름 그대로 가시가 잔뜩 돋아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글도로 잘라가며 이동해야 합니다! 앗, 잠시만요! 앞에 버그베어 부족이 있군요!

낯익은 얼굴 몇몇이 보였다. 그가쉬 클랜이었다.

버그베어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폭스 그릴스에게 위협적인 제스쳐를 취했고, 이에 폭스 그릴스는 위험한 짐승 다루듯 손바닥을 보여주며 ‘워~ 워!’ 했다.

- 버그베어 들입니다! 아주 위험한 종족이죠! 자칫 잘못하면 잡아먹힐 뻔 했습니다!

지현은 저 모습을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오빠, 진짜 저래? 막 이종족 만나면 잡아먹히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부르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 지현이 같은 내용을 한 번 더 물어봤다.

TV로 시선을 돌리니 버그베어들이 옷도 입지 않고, 손에는 나무로 만든 창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저건 또 뭔 병신같은….’

지구만 가봐도, 더 이상 ‘원주민’ 따위는 없었다. 아프리카 부족 전쟁에도 AK 들고 쏴 재끼는 마당에, 세드에 있는 이종족이 저렇게 생활한다고?

개소리도 저런 개소리가 없었다. 의복은 당연했고 K2 밀반입 잔뜩 해서 쏴 재끼는 새끼들인데, 맨몸에 나무 창이라니.

“내가 가봐서 아는데, 저런 놈들 없다. 인간 개척지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장소면 모를까, 전부 다 총 쏜다.”

혹여 만약에라도 진짜로 창 던지는 놈들이 있으면, 오히려 그쪽이 더 위험했다.

인간의 우월한 화기 기술 없이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각성자와 아티펙팅 기술이 뛰어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개척지 내에 있는 리자드맨들의 투창은 최소 D~C등급은 되어 보일 정도로 강력하지 않았던가.

“그럼 저거 다 사기야?”

사기였다. 그것도 순도 100%짜리 개사기.

현재 그가쉬 클랜은 AMP 채굴권을 바탕으로 엄청나게 급성장한 신진 무장 세력이었다.

이제 총기는 기본 지급이고 전차까지 몰고 다니는 놈들인데 원주민은 무슨 똥개가 얼어 죽을 야만 종족인가.

아마 그 탐욕하기 그지없는 그가쉬가 뒷돈 받아먹고 전사 몇 놈 시켜다가 저딴 짓 시킨 모양이다.

대강 설명해 주니 지현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저 개새끼들 보소? 방송료 처먹고 저딴 개사기나 치고 다닌다고? 다 쳐 죽일 놈들이네.”

사실 방송 전에 ‘이 방송은 어느 정도 과장과 출연진의 안전장치가 들어갔기에, 현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나오긴 했다.

그래 봐야 말장난인건 변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설명을 마치고 다시 생각에 잠기려니, 이번엔 전화기가 따르릉 울어대며 사색을 방해했다.

따르릉 - 따르릉 -

전화를 받아보니, 다짜고짜 욕설이 들려왔다.

“야 이 벌그지 쓰애끼야! 니 도대체 뭔 얼척없는 똥을 싸재끼고 다니는 거니!”

독특한 말투.

누구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석중할배였다.

“… 거, 전화하자마자 무슨 욕질이 그렇게 심하오?”

“또라이야, 이 상 또라이야! 내가 그래 사고치고 다니라고 가르쳤나, 이 호로 간나만도 못한 좆같은 쓰애끼야! 어디 좆물에 낀 오줌만도 못한 놈이 자꾸 사건 치고 다니니! 니 그러다 진짜 … … … … ….”

약 1분 넘게 욕이 이어졌기에, 수화기에서 귀를 떼곤 ‘하이고, 다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정정하네.’ 하고 말았다.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전화한 거요?”

“니 안 되겠다. 내 좀 보자. 당장 가게로 달려오라!”

“거 C4 잔뜩 있는 곳에 갔다가, 인생 마침표 화끈하다 못해 뜨거워 죽을 정도로 작살나게 찍을 일 있소? 싫소.”

가서 한 소리 들을 게 싫거나, 귀찮은 건 아니었다.

저번에 찾아가서 부끄럽게 아버지 소리하며 관계를 끝냈는데, 어찌 다시 찾아간단 말인가?

“안 오면 느그 집에 떡 대신 C4 하나 큼지막하이 넣어 줄 터이, 생각 잘 해보라. 딱 2시간 준다, 달리 오라. 알겠니?”

이제 폭탄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기에,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석중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또라이 할배가 진짜! 아오!”

결국, 갈 곳 잃은 분노는 허공에 맴돌다 사라졌다.

옷 안에 갑옷을 껴입고, 비교적 숨기기 쉬운 글록을 챙기고 있자니 지현이 휙 끼어들었다.

“어디 가?”

“할배 보러.”

“역시 그렇지? 이거 가져가. 홈쇼핑에서 산 영양제인데, 젊은 사람보다 늙은 사람한테 효과가 좋대.”

욕 한 사발 하러 가는 사람한테 선물을 들려준다니.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심했다.

“에라 망할 년아. 너는 밖에서 죽을 고생 하는 네 오빠는 안 챙기고, 외간 할배나 챙기냐!?”

“아, 뭐! 왜 짜증이야! 이거 원래 오빠 주려고 산 거거든! 나중에 또 시키려고 했거든!”

“됐어, 나 간다.”

지현을 무시하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길에 지현이 ‘올 때, 까트!’ 하는 말이 들렸기에 ‘꺼져, 이 미친년아!’ 하고 돌려줬다.

☆ ☆ ☆

뒷골목을 지나, 석중의 영역에 성큼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마중을 와있었다.

“소지품 검사 하겠습니다.”

욕 한 사발 해서 불안하긴 했는지, 오자마자 바로 금속 탐지기부터 들이밀었다. 응해 줄 생각 없었기에, 바로 볼에 한 방 꽂아줬다.

뻑 소리가 나며 탐지기를 든 남자가 쓰러졌다. 힘 조절했기에 이빨이 빠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꽤 아팠으리라.

“이번에 EMP 터져서 병원이 참 장사 잘 된다더라. 누구 한번 가보고 싶은 사람 있냐?”

슥 둘러보자 다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내리깔았다.

저번에도 전부 다 쳐부수고 들어갔던 전과가 있었기에, 괜히 까불었다간 진짜 병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미리 말한다. 또 나오면 나발이고 다 죽여버린다.”

피부를 찌를 듯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주고 걸어갔다.

- 잡화. 아티펙트 취급.

다 쓰러져가는 푯말을 지나, 곰팡내와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계단을 걸어 내려가, 열 때마다 끼기긱 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문을 열었다.

“간나 새끼야, 2시간 한참 넘었다!”

“거 할배, 닥치쇼. 폭탄? 씨발, 내가 요즘 폭탄에 아주 넌더리가 나니까 앞으로 그딴 개소리 지껄이면 아가리에 폭탄 싸물게 만들고 내 손으로 직접 터쳐 주겠소. 앙?”

진심으로 한 마디 해주자, 석중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패륜아 쓰애끼. 저번에는 아버지라드이, 이제는 폭탄 입에 물려서 조져 분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아버지라는 말에 하려던 말을 멈추곤, 잠시 심호흡을 하며 화를 삭였다. 몇 번 반복하니 마음이 좀 진정됐다.

“그래서, 왜 불렀소?”

영양제를 카운터 구멍으로 집어 던지며 물었다.

“잠시. 녹음기랑 CCTV 좀 끈디.”

석중이 테이블을 만지자 어디선가 삑 소리가 났다.

“핵. 네가 꽂았지, 병시야?”

부정할까 싶었으나, 어차피 눈치 다 챈 마당에 오리발 내밀어 봐야 병신 소리밖에 들을 게 없었다.

“문제 있소?”

“거 죽으러 간다 하드이, 또라이 새끼가 진짜 황천강 건너고 싶니? 거 핵 누구는 없어서 안 꽂는 줄 아나, 거 꽂으면 공공의 적 된디 병시야! 가디언 붙는다고!”

듣기 귀찮았기에 보란 듯이 귀를 후비적 거렸다.

“미친 쓰애끼. 거 낳은 부모가 눈지, 그 애매비도 분명 상또라일 게 분명하디.”

“그건 할배가 아실 거 없고, 키워 준 부모는 바로 앞에 있는데. 소개라도 시켜 주리오? 내 봤을 때 또라이는 맞는 것 같은데.”

맞불 작전에 석중이 핏대를 세워가며 욕을 내뱉었다. 한동안 개, 소, 돼지 및 온갖 된소리 섞인 과격한 부자상봉이 이뤄졌다.

“됐고, 니 이제 하는 일 때려치고 내 아래서 일하라. 연에 다섯 장 준디.”

“뭔 소리요?”

“5억, 쓰애끼야. 5억!”

연봉 5억!

석중과 함께라면 헌팅에 비해 턱없이 안전한 일일 텐데, 그 정도 일로 5억이라면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거절했다.

“됐소. 할 일이 있소.”

“거 중요한 일이 뭔데 그러니, 핵 꽂고도 아직 만족을 몬했니? 거 작작해라 병시야! 그러다 진짜 훅 가는 기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동료들이야 그나마 아쵸프무자를 알고 있으니 ‘헛소리하지 마라.’는 소리 안 들었지, 석중에게 저딴 얘기를 했다간 욕을 필두로 정신병원에 가라는 걱정을 아주 과격한 방법으로 들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어떻게든 둘러대려 입을 떼려는 찰나…

- Tahad aidata? (도와줄까?)

채 대답 하기도 전에, 출입구를 열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뒷골목에 어울리는 일그러진 왼쪽 얼굴. 아쵸프무자였다.

보통 누군가 들어올 때는 무전으로 연락을 받았기에, 석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만 껌뻑였다.

“… 우리 지후이 찾던 양년이 여는 어인 일이고.”

“할 말이 있어서.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지훈은 이제 본인이 물러서야 할 차례였음을 깨닫고는,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설명과 설득이 이어졌다.

“하… 내 아들 쓰애끼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고?”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석중이 당장이라도 레이저를 뿜을 것 같은 눈으로 이쪽을 쳐다봤기에, 슬쩍 고개를 돌려 상품을 훑었다.

“알겠디. 내는 같이 간디.”

같이 간다는 말에 돌렸던 고개를 복귀하며 말했다.

“할배!”

이 장소엔 ‘설명’을 하러 온 거지 ‘도움’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지훈은 석중이 이 싸움으로부터 안전하길 원했다.

“이건 내 일이오. 빠지쇼.”

“하, 네가 그러지 않았니. 아버지라고. 자식 쓰애끼는 부모한테 개새끼 소새끼 하며 병시짓 하고 다이도, 본디 애비는 제 새끼 못 버리는 법이디.”

석중은 뭔가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가는 건 아이디. 내 호위로 붙어있는 MES 한 기랑 물건 제공해 주겠디. 그거 들고 가라.”

MES와 대량의 장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됐기에, 지훈은 슬쩍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태 몇 번 숙여 본 적 없는 머리였다.

“고맙소, 아버지.”

“됐다, 호로자슥아. 볼 일 다 봤으면 끄지라. 가끔 전화하는 거나 잊지 말고, 병시야.”

석중을 뒤로하는 지훈의 볼에 문득 비 한 방울이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해는 쨍쨍한데 무슨 비가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여우가 변덕이라도 부렸겠지 하고 말았다.

‘재수 없게 비를 맞아도 꼭 이런 데다 맞나, 쯧.’

[현재까지 모인 전력]

김지훈 - 980

칼콘 - 320

민우 - 590

가벡 - 290

석중의 지원(장비 및 물자 포함) - 2500 (!)

아쵸프무자 - ???

총 전력 합 - 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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