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59화 (159/173)

<악연의 끝.>

다음날 오후 4시, 한국 개척지 북쪽 150km 부근 구릉.

구릉이라기보다는 풀 한 포기 없는 흙산이라고 봐야 옳을 공간에, 거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오래 걸리는군.’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오후 4시 20분 정도 됐을까?

‘혹시 도망간 건가?’

없지 않은 경우였다. 지구에서 그렇게 묵사발을 내놨으니, 공포에 질려 도망갔을지도 몰랐다.

거인은 잠시 짝다리를 짚으며,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끄집어와야 하나 고민했다.

‘가서 직접 끌고 오면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도망가지 못할 거다. 역시 그 겁쟁이 같은 녀석을 믿는 게 아니었어!’

정정당당한 승부. 그리고 그 승부에서 반지 사용자와 동료들을 꺾어 명성을 얻음은 물론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어째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변이, 하체 역관절.’

꾸드득, 뜩, 찌직!

뼈가 어긋나고 살이 찢어지는 기괴한 소리. 그 소리가 끝났을 때쯤엔 거인의 다리에 오로지 달리기에만 특화된 생명체의 다리로 변해 있었다.

숨을 잔뜩 들이 마시고 달리려는 찰나… 거인은 문득 뭔가 날아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뭐지? 날아서 오는 건가? 듣기로 비행 능력은 없었다. 설마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온 건가?’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자, 상공에 경비행기가 하나 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기다리면 되겠군.’

슈 - 우 - 우 - 우…

다시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기다리기도 잠시.

분명 비행기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도, 날아오는 소리는 도리어 더 커지기만 했다.

이상했다.

‘뭐지?’

비행기는 이미 거인을 지나 더 북쪽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분명 내리려면 이미 고도를 낮췄어야 하는 상황.

설마 싶어 하늘을 훑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아주 자그마한 물체가 날아오고 있었다.

미사일이었다.

‘같잖은 수를 쓰는군.’

거인은 인간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저 조그마한 탄두가 꽤 강력한 마법만큼 위력을 낸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변이. 경량화, 날개.’

아무리 강한 일격이라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회피였다. 거인은 저깟 원거리 무기 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그대로 도움닫기를 시도했다.

타타타탓 - 펄럭, 펄럭, 펄럭!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도 잠시. 날개를 펄럭이며 점프하자, 엄청나게 커다란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원래대로라면 저 덩치로 날기란 불가능한 얘기였으나, 경량화를 통해 뼈와 내장의 무게를 최소화했기 때문이었다.

‘그깟 강철로 만든 장난감으로 도망가 봐야 소용없다. 내가 직접 따라가서 떨어뜨려 주마.’

땅에서 직접 죽여주려고 했거늘, 이미 저쪽이 수를 쓴 상황에서 더는 사정 봐줄 필요 없었다.

후우우우우 -

거인과 미사일이 서로를 작살 낼 듯 가까워졌다.

‘저딴 직선 무기로 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반지 사용자!’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굉장한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후 그 수치심을 짓누르기 위해, 스치듯 피해 적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리라 결심했다.

후우우우우웅 - !

이제 남은 거리는 1km 남짓!

거인은 슬쩍 방향을 틀어 스쳐 지나갈 준비를 했다.

방향을 오른쪽 아주 조금만 틀어도 빗나갈 게 분명했다.

아니, 분명해야 했다.

슈우우욱 - 슈육, 슉!

거인이 방향을 틀자 미사일도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허!? 설마, 우연이겠지.’

지구면 모를까 세드에는 위성도 떠 있질 않았다.

하지만 가끔 필연은 우연을 가장해 찾아오는 법이었다.

거인은 이번엔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미사일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빌어먹을!’

거인이 급하게 날개짓을 멈춰 고도를 낮췄지만, 미사일도 그대로 고도를 낮춰 추격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 -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저런 무식한 물건에 직격했다간 분명 치명상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하늘에 날아오르기 위해 경량화한 상태!

가죽, 뼈, 내장 등 모두 취약해져 있었다.

‘아, 안 돼!’

이미 보란 듯이 피해서 좌절감과 절망을 안겨주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그저 등 뒤로 들려오는 죽음의 소리에 최선을 다해 도망쳤을 뿐이었다.

☆ ☆ ☆

그 시각, 구릉으로부터 남쪽 20km 지점.

지훈은 커다란 구덩이 속에 서 있었다. 마치 2차 세계대전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참호의 모습이었다.

슈우우우우 -

그뿐만 아니라, 옆에는 마법 수정에 거대한 새가 한 마리 투영되어 있었고, 지훈은 손에 게임기 같은 물건을 조작했다.

추격전이 약 2분.

곧 피탄 될 것 같았기에, 옆에 있던 무전기를 만졌다.

- 치직.

“곧 피탄한다, 조심해라.”

- 치직.

- 알겠습니다, 형님. 일단 칼날 정글 주변에 세울게요.

무전기 너머로 칼콘이 ‘지훈, 우리까지 날려버리면 안 돼!’ 하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원하는 건 딱 저 거인 새끼 하나다.’

딸각, 딸각, 딸각.

게임기 같은 물건을 몇 번 더 만지작거리자, 머지않아 수정에 거인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명중이라는 뜻이었기에, 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눈은 감고, 귀는 막았으며, 입은 쩍 벌렸다. 소닉붐에 내장이 상할 수도 있었기에 대비한 것이었다.

… … … … 콰아------!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쳤다. 구덩이 안에 엎드려 있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휩쓸렸으리라.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으으으으으읍 - 후우우우우우!

폭발로 인해 전부 사라졌던 공기가, 진공을 채우기 위해 다시 돌아오며 다시 한 번 폭풍이 몰아쳤다.

태풍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강력한 광풍!

얌전히 구덩이 안에 엎드려 기다린 후, 모든 폭풍이 잠들었을 때쯤 옆에 세워뒀던 오토바이를 밖으로 꺼냈다.

부르웅 - 우웅 - 웅!

바이크가 거친 짐승마냥 울어 재꼈다.

‘오래간만에 타는군.’

예전에 사람을 암살하기 위해서 몇 번 타긴 했지만, 각성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타질 않았었다.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장비]

[오토바이]

[지훈]

무기.

AS VAL (VGC탄 20발, MN탄 10발. 모든 탄 마력부여)

글록19 (폭발탄환 15발)

업을 짊어지는 자 (B+ 등급 외날 곡도)

방어구.

습작 954번 (B등급, 마법 물품)

아쵸프무자의 증표 (A+ 등급, 마법 물품)

알케로스 체인셔츠 (C등급)

고공 점프 부츠 (E등급, 마법 물품)

AMP (반지, 내부 삽입물)

기타.

전술핵 원격 조종 장비 (소모함, 파이로에게 노획)

할리 데이빗 바이크 (탈것)

BREE (파이로에게 노획)

쌍안경

[경비행기]

[민우]

경비행기 (정신 조종으로 탈취)

[칼콘]

휴대용 핵미사일 발사장치 (소모함, 파이로에게 노획)

[가벡]

알 수 없는 부부검 (A등급)

“악연의 끝을 보러 가겠군.”

엑셀을 당겼다.

부아아아앙 -

☆ ☆ ☆

그라운드 제로.

원래대로라면 핵이 바닥에 꽂히고 난 뒤 2km 정도의 크레이터가 생겨야 했지만, 공중에서 터졌던 만큼 그 지름이 작았다. 그럼에도 500M나 되는 거대한 구덩이였다.

거인은 그 구덩이 중앙에 있었다. 마치 폭풍의 눈처럼, 죽은 듯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으으 - 응…

오토바이에서 내려, 쌍안경으로 거인의 상태를 살폈다.

온몸에 화상이 가득했음은 물론 돋아났던 두 날개는 찢어졌으며, 양팔이 어디 갔는지 전부 사라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의 중상이었으나, 그럼에도 거인은 숨이 끊어져 있질 않았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지훈에게 달려올 듯, 숨을 쉴 때마다 그 거대한 몸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아직 살아있군.’

거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크레이터 아래로 내려갔다. 원형으로 파여있던 만큼 걷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슈아아아 -

워커를 따라 작은 흙먼지를 내며 내려가기도 잠시. 거인이 AS VAL 사거리 안에 들어왔다.

이는 곧 거인 역시 지훈을 발견했다는 것.

총을 겨누는 사이 반지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 변이계 이능 감지.

공격적인 이능은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사격했다.

‘이능 사용, 주문 주입. purustatud(파쇄), 주문 변형. 피탄 후 0.5초 후 작동.’

purustatud(파쇄)는 원하는 물건을 여러 갈래로 쪼개는 마법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사격과 동시에 총알이 갈라지며 총열이 전부 망가져야 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우으으응 -

AMP와 더불어 아쵸프무자의 증표가 진동했다. 주문 변형이란 주문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주문을 다룰 수 있는 소수의 축복받은 존재 혹은 종족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아쵸프무자의 증표가 그걸 가능하게끔 만들어줬다.

준비가 모조리 끝났기에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주문 주입까지 걸린 시간이 겨우 0.5초.

거의 찰나라고 해야 옳았다.

푝!

마력을 잔뜩 머금은 9X39mm 짜리 아음속탄이 공기를 찢고 날아간다. 맞는 순간 몸 내부에서 총알이 터져나갈 테니, 위력은 거의 유탄에 필적하리라.

‘죽어라.’

지훈 역시 그걸 기대하고 지켜봤으나…

팅!

안타깝게도 총알이 도탄 됐다. 박힐 거라는 예상과 달리, 붉은 궤적을 그리다 퍽 하고 터져버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화상을 입은 피부는 온데간데없이 피부에 번쩍거리는 비늘이 달려 있었다.

‘아무리 개라고 한들 하즈무포카의 하수인이다, 이건가.’

하지만 거인은 달려들 힘까지는 남아있지 않았는지 그저 방어에만 전력을 다했다. 모습을 보니 몸을 수그리고 몸을 재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어디 이것도 막아봐라.’

품에서 BREE(폭탄 나무 추출액으로 만든 나무, 파이로제)를 꺼내서 집어 던졌다. 원래대로라면 기폭기가 따로 필요했지만, 현재의 지훈에겐 이미 그런 것 따윈 의미가 없었다.

훅 - !

주먹만한 크기로 뭉쳐진 BREE가 시속 100km로 날아가 거인에게 부딪치는 순간…

“Valgustus. (점화.)”

화륵!

콰아아아앙 -

엄청난 화마가 몰아쳤으나, 신경도 쓰질 않았다.

애초에 화염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지게끔 변이되어 있었다. 폭탄에 직격하지만 않으면 간접 폭발 정도는 전부 견뎌낼 수 있었다.

“Vaikne Tuul Kalna. (날카로운 바람.)”

수인을 끝내고 검지와 중지로 거인이 있던 방향을 가리키자, 눈에 보일 만큼 강력한 파동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후으응 - 퍽!

폭발로 인한 먼지 구름이 날아가더니, 그 안에 뼈를 드러낸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륵 – 꺽….”

양팔은 물론, 날개에 피부까지 모조리 작살난 상태였다.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 마무리를 위해 다가갔다.

“arg hundu… (비겁한 새끼…)”

“Ei, ma tark. (아니, 현명한 거다.)”

사실 이번 승부는 거인이 지훈에게 싸울 장소와 시간을 알려 줬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Viimati haletsusväärne rühm. (한심한 최후군.)”

마지막 말과 함께, 바로 이능을 발동했다.

‘이능 발동, 주문 주입. purustatud(파쇄).’

조정간을 연사에 놓고, 그대로 방아쇠를 꾹 눌렀다.

표표표표표푝!

눈 깜짝할 새에 안에 있던 탄환이 모조리 거인의 몸에 틀어박혔고, 연이어 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강력한 저항을 가진 녀석이라고 한들,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에 꽂아 넣으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살 터져나가는 소리만 잠시.

거인이 제 모습을 잃고 서서히 작아지는 듯하더니,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아졌다.

“See on teie arvates? (네 본 모습인가?)”

사람이 발로 밟으면 찍 하고 죽을 정도로 작고 여린 존재.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요정의 모습이었다.

‘작고 연약한 걸 숨기고 싶었던 건가.’

그제야 왜 그렇게 덩치를 불리고, 흉악한 겉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아마 소형종으로 A등급을 찍는 데에 엄청나게 고생했으리라.

그 고행을 숨기고 싶은 무의식이 겉모습이 드러난 것이었으나, 딱히 동정은 가지 않았다.

퍽!

반신의 요건을 갖춘 생명체 중 먹이사슬 최상에 있던 존재가 인간의 발에 짓밟혔다.

“Ma heita minu Näiteks nelja liiki teavet pirukas? (들어보니 네가 내 정보를 파이로에게 흘렸다지?)”

“Jah. Ma tegin. Nii, surm on magus? (그래, 내가 그랬다. 그래서 죽음은 달콤했나?)”

아주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그 안에는 진득한 증오와 조롱이 담겨있었다.

“Ei meeldi perses. Aga nüüd tundub, et see magus kiiresti. (좆같았지. 근데 이제 곧 달콤해지겠군.)”

말이 끝나자마자 발에 무게를 실었다.

꾸우우욱 - 소리가 나기도 잠시.

퍽 하는 느낌과 함께 신발이 쑥 내려갔다.

‘이걸론 부족하지.’

경멸을 담아 발을 비볐다. 이후 담배를 한 개비 피운 뒤, 그 불을 핏덩이에 비벼 껐다.

“아쵸프무자, 끝났다.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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