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54화 (154/173)

<인간과 괴물 그 경계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큰 변화였지만, 일단 자리를 옮겼다.

해체된 파이로 때문에 주변에 피가 흥건했기 때문이었다. 비위가 강하긴 했지만, 저걸 옆에 두고 일 처리할 만큼은 아니었다.

대문 밖으로 나와서 약 3초 정도 집을 쳐다봤다.

“지훈, 아쉬운 거야? 너무 쉽게 죽였나? 좀 더 괴롭힐걸.”

칼콘은 아쉬운 듯 입을 쩝쩝 다셨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모습에서, 토끼를 산채로 뜯어먹는 멧돼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이유는 뭘까.

“아니. 그냥.”

복잡한 심정도 잠시.

“Ilutulestik. (불꽃.)”

손끝에 솟아난 작은 불덩어리를 기름에 털어버렸다.

마력이 끊김에 따라 불덩이가 급격히 작아졌지만, 그 정도로도 기름에 불을 붙이기에는 충분했다.

화르르륵!

뿌려놓은 기름을 따라 불이 붙는가 싶더니, 이내 쾅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파이로의 은신처가 폭발했다. 불 때문에 안에 있던 화약 및 기타 폭탄 재료들이 발화한 까닭이었다.

복수 끝에 얻은 화끈하고 달콤한 불꽃놀이도 잠시.

등을 돌렸다.

“가자.”

주택가 한가운데에서 싸웠기 때문일까?

C4 폭파와 동시에 신고가 들어갔는지, 귀가 중 경찰 부대와 마주쳤다. 장갑차에서 무장 경찰들이 내렸다.

그냥 지나갈 법도 했지만, 현재 지훈 일행은 전부 완전 무장에 온통 피범벅을 한 상태에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옷차림.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무기 내려놓고 엎드려! 불응 시 발포하겠다.”

칼콘과 가벡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강행 돌파할지, 아니면 투항할지를 묻는 모양이다.

딱히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마지막 경고다! 멈춰!”

쏘겠다는 말이 들렸으나 무시했다.

어차피 한국 개척지 경찰의 기본 무장은 일반탄이었다. 이제 일반탄은 안구에 직격 하지 않는 이상 장난감과 다를 바 없었다.

탕 -

팅!

분명 사람 몸에 맞았는데 총알이 도탄 됐다. 저게 무슨 뜻인지 알았기에, 경찰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경찰 중 누군가가 무전기를 들어 가디언에 지원 요청을 하려는 순간…

푝!

아스발로 무전기를 날려버렸다.

이후 라이트 안으로 들어가 경찰들에게 얼굴을 보여줬다.

일반적인 범죄 상황이라면 나 잡아줍쇼 하는 미친 짓이었으나, 지훈은 얘기가 달랐다.

“박경훈, 동구 1동 4번가 21번 길. 딸 아이가 동구 2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마누라는 식당을 하지. 너, 무장경찰. 이름 송경욱, 동구 12동. 쌍둥이 아빠, 부인은 사별. 그리고….”

과거 뒷골목 시절에 외워뒀던 정보를 줄줄이 읊자, 경찰들이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가디언? 불러 봐, 개새끼들아. 가디언이 빠를까, 아니면 내가 너희 가족 만나는 게 빠를까?”

말할 것도 없이 지훈이 더 빨랐다.

옳은 일 하고 있는 공무원 일가족을 죄다 저승으로 밀어 넣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협박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가끔 뒷골목. 특히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유유히 빠져나가려면, 짐승의 탈을 써야 하는 법이었다.

“누군가 그랬지. 사람은 멍청해서 하루에도 여러 가지를 잊는다고. 오늘 봤던 거 하나쯤은 더 잊어도 되지 않겠냐?”

쐐기를 박듯 얘기하자, 경찰 중 그나마 계급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총을 집어넣고는 차에 올라탔다.

“뭐해, 새끼들아! 지금 무고한 시민 붙잡고 이러고 있을 때야!? 빨리 사건 현장으로 가야 할 거 아냐!”

경찰이 지훈 일행을 투명인간 취급하곤 사라졌다. 멀어져 가는 경찰차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 ☆ ☆

다행히 늦은 새벽인지라 지현은 자고 있었다.

피칠갑을 한 모습을 봤다간 트라우마에 걸려 다시는 제 오빠에게 말을 못 걸 수도 있었기에, 잘 된 일이었다.

옷을 벗지도 않고 욕조에 들어가 물을 틀었다.

따뜻한 물이 온몸을 적시기도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몸에 묻어있는 피가 흘러나오며 피비린내가 났다. 보고 있자니 그제야 본인이 얼마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사람을 먹었다.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내서,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모욕을 위해서라는 건 명분.

그저 힘을 얻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었다.

‘씨발… 괴물새끼 다 됐네.’

메고 있던 아스발을 들어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고 보면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을 죽였다. 칼로도 죽이고, 폭탄으로도 죽이고, 손으로도 죽였지만 그중 제일 많이 죽여본 방법은 바로 총이었다.

‘인두겁 쓴 괴물새끼들, 사람 잡아먹는 괴물들을 말이지.’

입을 쩍 벌려 총구를 입에 넣은 뒤 이빨로 꽉 고정했다.

현재 조정간은 단발, 탄환은 VGC였다.

방아쇠를 당기면 그대로 죽을 게 분명했다.

‘근데 지금은 내가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됐다.’

먹을 때는 복수심에 휘둘려 그랬거늘, 집에 오니 긴장감이 풀어지며 자괴감과 배덕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당길까?’

그만뒀다.

어차피 죽어 봐야 빌어먹을 아쵸프무자가 다시 살려놓을 게 분명했다.

‘이제 맘대로 뒤지지도 못하는 몸이 됐군, 니미랄.’

몸을 일으켜 옷을 벗어 애벌빨래 한 뒤 몸을 닦아냈다.

‘그래… 내 가족이, 내 여자가, 내 동료가 안전해졌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 다 된 거야… 이제 다 끝났어….’

소중한 사람이라면 괴물, 아니 그 이상도 될 수 있었다.

비록 과거에 그런 자들을 사냥하고, 잡아먹었던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신념도 바꿀 수 있었다.

‘비루한 신념을 버려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면 그딴 싸구려 신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버리자. 아니 그게 당연한 거고, 그게 마땅한 거다.’

거친 숨을 내쉬자 목과 코가 떨리며 그르륵 소리가 났다. 진짜로 맹수가 된 것 같은 불쾌감도 잠시.

정보창을 열어봤다.

[정보]

이름 : 김지훈

종족 : 인간

성향 : 중립 (뉴트럴)

성향 보너스 : 회색 인간

이블 포인트 : 71 (+10)

등급 : A 등급 1티어 (+4)

보너스 포인트 (4)

보너스 이능 포인트 (1)

보너스 변이 포인트 (1)

흡입 선택 (1)

근력 : D 등급 (23)

민첩 : D 등급 (23)

저항 : D 등급 (24)

마력 : C 등급 (16 + 20)

이능 : D 등급 (15+15)

잠재 : S 등급 (?)

신체 변이 -

약한 재생, 화염 속성, 날카로운 감각, 흡수

이능력 -

집중 E(+1)등급, 가속 D(+1)등급, 마력 부여 E(+1)등급, 주문 주입 E(+1)등급, 신체 능력 강화 E(+1)등급.

처음 각성했을 때만 해도 F등급에 이능 하나 없었지만, 지금은 이능만 5개에 변이가 3개나 달린 초인이었다.

‘과연 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흩어버렸다. 저런 문제는 나중에 모든 일이 해결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새로 얻은 능력에 집중했다.

‘민첩과 저항에 2포인트.’

- 반영되었습니다.

민첩 : D 등급 (23) = > D등급 (25)

저항 : D 등급 (24) = > D등급 (26)

이능 포인트는 섣불리 결정해봐야 좋을 거 없었기에, 일단 내버려 두고 다른 걸 살폈다.

‘흡입 선택을 보고 싶군.’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파이로의 이능들이 나타났다.

화염 투사 -

화염을 던집니다. 저등급에선 일반적인 불이지만, 등급이 높아질 경우 완전연소도 가능합니다.

점화 -

원하는 물질을 발화시킵니다. 등급이 높아지면 폭탄 원거리 격발 등 응용이 가능해집니다.

위기 대비 -

위기 상황이 올 시 미리 정해놓은 이능을 발동시킵니다. 사전 등록이 필요합니다.

설명을 보자 파이로의 ‘화염 방패’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무작위로 이런 이능을 얻었다는 게 신기했으나, 어차피 이미 고인이 됐기에 무시하고는 이능을 선택했다.

‘선택, 위기 대비.’

- 추가되었습니다.

총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지훈에게 있어서 발현계 능력은 섞기 어려웠다. 발화는 원거리에서 적의 탄환을 태워 강제로 격발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게 다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위기 대비를 통해 위급상황을 줄이는 게 더 좋았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생명체인 이상 죽음을 경계하는 법이었다.

‘변이 포인트는 뭐지?’

질문하자 반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A등급이 되면 종족 변이 포인트를 얻습니다. 해당 등급에서 얻는 변이는 종의 방향을 결정하는 변이로써, 한 번 선택하고 나면 이후 티어가 오를 때마다 그와 관련된 변이가 무작위 확률로 추가됩니다.

A등급을 찍자마자 각성자가 초인이 되는 이유이자 세간에 알려지지 않고, 오로지 정부와 보사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어이가 없었으나, 일단 슥 훑어봤다.

식물 - 광합성, 신진대사 감소, 질병 면역, 내장 제거

파충류 - 두꺼운 피부, 비늘, 순막, 파충류 시야, 꼬리

조류 - 경량화, 재빠름, 민첩함, 시력 강화, 강한 손톱

어류 - 야간 시야, 강한 이빨, 순막, 수중 호흡, 지느러미

곤충 - 적외선 시야, 복합 눈, 더듬이, 빠른 번식, 외골격

그 외에도 기타 종족 변이로 슬라임, 맹수, 거미, 언데드 등 별 어이없는 종족도 잔뜩 끼어있었다.

‘반지가 없는 자가 A등급이 될 경우는 어떻게 되지?’

- 무작위 종족으로 변이합니다.

과거 중국 박물관에서 봤던 천청운을 떠올렸다.

이상하게 모든 사진에서 화장이라도 한 듯, 피부가 물광마냥 반짝거렸었다. 설마 싶어 슬라임 쪽 변이를 살펴보니, ‘점액질 피부’가 끼어있었다.

해당 변이는 불과 독에 강력한 저항력을 주지만, 몸을 자주 씻지 못하고,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는 단점이 있었다.

‘굳이 나한테 필요한 걸 꼽자면 조류 혹은 맹수인가.’

저 두 계통에 속도와 관련된 변이가 제일 많았다.

‘만약 내가 변이를 선택하게 되면, 인간과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건가?’

- 가능합니다. 인간을 기본으로 약간만 바꾸는 것이기에, 난임이 있긴 하지만 혼혈인간을 잉태할 수 있…

설명이 뚝 끊기는가 싶더니,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욕조에 피칠갑을 해 놓은 상태였기에, 지현이 보면 안 됐으므로 깜짝 놀랐으나… 짙은 그을음 냄새에 안심했다.

아쵸프무자였다.

“섞여. 하지만 네 아이는 그 변이를 그대로 갖고 태어나. 네가 알파가 되는 거야. 너만의 종족을 만들 수 있지.”

아쵸프무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어지간히 뒤틀어졌군. 이것도 네가 만든 건가?”

“아니, 하즈무포카가 녀석은 제 손으로 신세계와 그 세계를 지배할 새로운 신을 만들고 싶어 했어. 그게 그 결과지.”

저 설명을 유추해 보면, 이 ‘각성 시스템’ 역시 하즈무포카가 만들었다는 게 됐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만들었으며,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끝까지 갈 게 확인됐으니, 알아도 상관없겠지.”

이쪽 생각을 읽었는지 아쵸프무자는 혼자 결정하고, 혼자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단 지금 이 세계가 어디 인지부터 설명해야겠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괜찮겠어?”

현재 지훈은 욕조에서 알몸으로 누워있는 상태였다. 긴 얘기를 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Riided kõik, mõõdud 356 (예복, 차원 356번)”

아쵸프무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훈의 몸에 옷이 생겨났다. 어두운 회색 기가 도는 캐주얼 정장이었다. 이어 화장실 벽에 둥근 포탈이 생성되더니, 아쵸프무자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손을 잡은 기념이자 우리가 서로를 더 믿게 될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초대하고 싶은데, 올래?”

“좆이나 까라고 말한다면?”

“그럼 하즈무포카를 죽이는 데 조금 더 어렵게 되겠지.”

“개 같은 년.”

사이좋게 차나 마시며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개미 똥만큼도 없었으나, 정보를 위해서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분해됐다가 도로 조립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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