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53화 (153/173)

<찾을 것이다. 찾아서, 죽여버릴 것이다.>

시체 구덩이.

이른 오후에 찾은 까닭일까?

아무런 손님 없이 스프리건 홀로 창가에서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일행을 보자 빠른 속도로 후드를 눌러썼다.

스프리건을 보러 온 건 아니었기에, 관심 끄고 바로 주인에게 향했다.

“지훈 안녕~ 우리 그이 오늘은 또 무슨 일?”

경쾌하게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빠른 속도로 둘을 훑었다.

‘웬일로 무장을 하고 왔네?’

시체구덩이는 석중의 가게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비무장지대 역할을 했다.

서구에는 과거 레니게이드가 판을 치고 있었고, 동구에는 석중 및 기타 연합이 있었기에 그 완충지대였던 것.

게다가 주인 역시 두 세력의 조정역을 맡고 있었기에,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시체 구덩이에 무장하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혹 있는 그런 미친놈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 시체 구덩이로 들어갔다.

“짧게 말하지. 파이로의 정보를 원한다.”

파이로라는 말이 나오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저 이름이 나왔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는 뜻. 둘러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가게에서 쌈박질할 수도 없었다.

주인, 아니 스토커는 난처해 했다.

좋아하는 이가 시체 구덩이로 들어가려 하는데 거짓말을 할 수도, 둘러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으려나.’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하려는 순간…

창가에 있던 스프리건이 움직였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인간의 동체 시력으로는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리볼버를 꺼내 지훈의 머리에…

“잠깐…!”

탕 -

☆ ☆ ☆

빠아아앙 -

뒤차가 요란하게 클락션을 울렸다.

“야 이 새끼야, 신호 바뀌었잖아! 뭐해!”

욕이 들려오자 칼콘이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로드 레이지를 잔뜩 뿜던 뒤차 운전자가 입을 다물었다.

괜한 시비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싶진 않을 테니 아주 당연한 결과였다. 칼콘은 창문을 올리며 물었다.

“지훈, 뭐해? 출발해야지.”

“아, 어. 그래.”

멍했던 정신을 차리고 엑셀에 발을 올렸다.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아 찝찝하던 차에…

- 12,551 od Teiseks surma. (12,551번째 사망)

창문에 글자가 떠올랐다.

그 순간 모든 일이 떠올랐다.

‘미친 나무 새끼가!’

이를 으드득 갈고 있자니, 칼콘이 화들짝 놀랐다.

“지훈, 설마….”

“그래. 스프리건한테 죽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스프리건이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이능 발동, 가속.’

채 발각되기 전에 이능을 발동, 바로 달렸다.

턱, 턱, 턱, 턱!

온 힘을 다해 달리자, 나무로 된 바닥이 발 궤적에 따라 모조리 박살 나며 공중에 떠올랐다.

“까각!?”

스프리건이 이쪽을 발견, 리볼버를 꺼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속을 켠 상태에선 지훈이 더 빨랐다.

뻑!

총을 뽑을 것도 없이, 그대로 얼굴을 후려쳤다.

뚜각!

있는 힘껏 치자 스프리건의 머리가 그대로 뜯겨 나갔다. 머리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투명한 체액을 잔뜩 뿌리는가 싶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지, 지훈! 지금 뭐하는 거야!”

주인이 놀라서 소리쳤다.

“복수하는 거니까 가만히 있어. 정당방위다.”

이능을 풀고는, 스프리건에게 다가가 머리를 짓밟았다.

“식물 새끼가 사람한테 총 겨누는 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앞으로 조심해라. 알간?”

“까각.. 깍….”

마음 같아선 그대로 불에 태워버리고 싶었으나 참았다. 제아무리 복수라고 한들, 이번 시간대에선 정당방위가 아닌 일방적인 폭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뜯긴 머리를 몸통에 대고는, 덕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아마 이틀 정도 햇볕에 놔두면 도로 붙을 게 분명했다.

덤으로 도대체 뭐에 맞았길래 한 방에 죽은 건가 싶어 리볼버를 확인하니, 그 안에는 리볼버용 대구경 MN탄이 들어있었다.

‘개 또라이 새끼….’

후처리를 마치고 주인에게 다가갔다.

“자, 이제 방해꾼 없어졌군. 파이로 어딨어.”

파이로라는 말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머리 뒤로 스프리건이 까각대며 ‘죽여야 한다, 간부를 알고 있다! 없애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어?”

“다른 사람 얘기 필요 없고, 위치 말해.”

당장에라도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음은 물론, 필요하다면 고문까지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아무리 시체 구덩이에 언더 파이터 포함 상주하는 각성자가 많다고 한들, 개 중 대부분이 E등급 이하인 피라미였다.

그나마 강한 게 스토커였지만, 그도 원거리 전투 특화였지 이런 지근거리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진정하고, 얘기로 하자. 응?”

얘기.

평화로운 수단.

참으로 좋고, 또한 모든 일이 그렇게 돼야 했으나…

파이로가 폭탄을 터트리는 순간부터 평화는 이미 깨졌다.

“이봐,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한때 동업자였잖아.”

스토커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허탈한 기분일까.

“그래도 안 돼.”

약간의 과격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칼콘이 피라미들을 제압하는 사이, 지훈은 스토커를 있는 힘껏 후려 팼다.

“어딨지?”

“그거 들으면 지훈 죽어… 난 그이가 죽는 건 싫어.”

주인이 퉤 하고 침을 뱉자, 피와 섞인 어금니가 떨어졌다.

“내가 죽든, 그 새끼가 죽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문제다. 난 더 이상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빨리 끝내지.”

스토커는 거세게 저항했으나, 이빨을 3개 정도 더 뽑자 어쩔 수 없이 정보를 털어놨다.

고문에는 익숙했기에 말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데, 어찌 막겠니.’

정보를 들은 뒤 챙겨왔던 현금다발을 카운터 위에 올려놨다. 혹 돈을 주고 정보를 살 수 있을지 몰라 챙겨 온 거였다.

“미안하다. 이건 치료비 해. 마법으로 치료받으면 아마 이빨도 새로 날 거야.”

때린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지훈은 진심 섞인 사과를 남기곤 시체 구덩이를 벗어났다.

현재 파이로의 은신처는 동구에 있는 폐건물 지하였다.

본인은 스토커의 눈을 피해 숨는다고 한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스토커는 모두 알고 있었다. 단지 괜한 분쟁을 원치 않았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 ☆ ☆

- 경고, 무단 침입을 방지하고자 지뢰 매설.

- 판매. 부동산 130번지. 492-193*

을씨년스러운 건물 옆에 살벌한 경고문과 판매를 위한 광고 팻말이 붙어있었다.

“여기 맞아?”

“확실해.”

중간에 정보가 새어나가면, 새어나갔지 스토커가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들어간다.”

“아아, 그래.”

칼콘이 방패를 앞세워 문을 연 순간 강철 와이어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런 썅!’

끼이이익 -

콰 - 아 - 아 - 앙.

☆ ☆ ☆

‘대문부터 부비트랩인가.’

이번에는 굳이 정보를 캐물어 볼 것도 없이 바로 은신처로 향했다. 칼콘이 경고문과 광고지를 보며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지훈, 이제 들어갈까?”

“아니. 기다려.”

이미 한 번 걸려본 함정에 두 번 걸릴 생각은 없었다.

강철 와이어를 바탕으로 한 함정이었고, 그 트리거는 대문이었다. 아마 문만 내버려 두면 터지지 않으리라.

콰직!

대문 왼편에 사람이 지나다닐만한 구멍을 만들었다.

이후 부비트랩을 건드리지 않고 바로 넘어갔다.

‘마당인가.’

관리를 안 해 풀로 가득한 길이었다.

‘지뢰나 분명 폭발물이 매설되어 있을 거다.’

유심히 살펴가며 움직였으나, 팔자걸음으로 걷던 칼콘이 실수로 수풀 안을 밟았고…

- 쾅!

“칼콘!”

이후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IED가 날아오더니…

- 발현계 이능 감지.

- 콰아아아앙!

☆ ☆ ☆

부비트랩, 파이로의 습격으로 종합 10번 정도 죽었다.

10번이나 죽었음에도, 죽은 숫자는 아직도 약 12,560번. 대충 계산해도 임무 평균 1000번은 죽었다는 얘기였다.

‘미친…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짓거리를 하고 다닌 거야.’

사실 하수구에서 약 520번, FS 유적에서 약 5,600번, 칼날 정글에서 2200번, 연구소에서 3,000번으로 특정 임무에서 집중적으로 죽었지만, 이는 아쵸프무자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방법을 조금 바꿔봤다.

‘바로 IED가 날아온 걸 봤을 때, 녀석은 분명 은신처 안에서 외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에 석중에게 찾아가 EMP 버스터(기계형 EMP, 발동하는 순간 전방 500M 안에 있는 전자기기를 멈춘다.)를 구해왔다.

덤으로 함정에 조예가 깊은 가벡까지 데려왔다.

“이제 가는 거야?”

“기다려. 먼저 EMP부터 때린다.”

꾸욱!

아무런 이펙트도 없었으나, 바로 옆에 있던 집을 시작으로 주변 건물에 불이 모두 꺼졌다.

성공이라는 얘기였다.

“Öönägemis.(야간 시야.)”

EMP 격발 과정에서 나이트 비전도 박살날 게 분명했기에, 챙겨오지 않고 마법으로 대신했다.

원래라면 보이지 않았어야 할 짙은 어둠인데도, 회색빛으로 희미하게나마 전부 구분해 낼 수 있었다.

“간다.”

가벡을 앞세워 함정을 지난 뒤, 이윽고 세이프 볼트로 향하는 철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히 C4를 설치한 뒤 격발했다.

끔찍한 폭음과 함께 문이 날아갔다.

분명 안에 있던 파이로도 반격할 게 분명했기에, 칼콘에게 방패를 펴라고 지시했다.

“Ma vannun Protector(수호자의 맹세)”

칼콘이 시동어를 말하자 커다란 방패가 복도를 전부 가렸고, 까닭에 날아오는 폭탄을 전부 막아낼 수 있었다.

쾅, 콰콰쾅! 쾅!

방패 건너편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화염이 춤을 췄지만, 이쪽은 각성자만 셋이었다.

셋이 힘을 합쳐 견뎌냈고, 이내 방 안까지 진입했다.

방패 너머로 파이로의 욕설이 들려왔다.

“너희 뭐야, 이 애매비도 없는 새끼들아!”

“Kui signaal vallandav kilp. (신호하면 방패 풀어.)”

파이로가 알아듣지 못하게끔 칼콘에게 고대어로 얘기한 뒤 신체 능력 강화와 가속을 발동했다.

스르르릉!

허리에 있는 업을 짊어지는 자를 꺼낸 뒤…

“nüüd! (지금!)”

방패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달려들었다.

인간의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은 맹습!

아무리 파이로가 강하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적당한 거리를 뒀을 때 얘기였다.

밀폐된 공간.

특히 폭탄을 사용할 시 본인까지 폭사할 위험이 있을 정도로 좁은 장소에서는 턱없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비무장으로 쉬고 있는데, 적이 완전 무장으로 들이닥친 꼴이었다.

당연히 저항 따위는 할 수 없었고…

타타타타탓!

미친 듯이 달려, 파이로의 복부에 칼을 꽂아넣었다.

“어, 억….”

위기 대비가 발동에 파이로의 마지막 저항이 겹쳐 지훈의 온몸에 푸른 불꽃이 붙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Tulekindlus(화염 저항) 마법을 미리 걸어놨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내 소중한 사람들을 건드린 대가다.”

파이로의 몸에 박아넣은 칼을 한 바퀴 돌렸다.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개 좆 같은 원숭이 새끼가… 감히… 감히…!”

“아직 죽지 마. 이제 시작이다, 개새끼야.”

지훈이 원했던대로, 파이로는 일행의 끔찍한 고문 속에 세상을 저주하다 숨이 끊어졌다.

분명 충분한 복수였음에도, 지훈은 치료사를 대동해 끝없는 고통을 안겨주지 못한 것에 아쉬워했다.

싸늘하게 식은 파이로를 내려다봤다. 채 식지 않은 분노를 뿜어내고 있으니, 칼콘이 담배를 건넸다.

“고마워, 지훈. 복수해 줘서.”

“아니, 도와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다. 너도.”

가벡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셋이 나란히 담배를 태웠다.

근래에 들어 담배를 피우는 양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다 피우고는 파이로가 마련해 놨던 기름을 집 구석구석에 전부 뿌렸다. 그리고 점화하려는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신체 변이.

흡수 - 각성자의 시체 및 추출물을 흡입할 경우 그 능력과 이능을 일정 부분 흡수합니다. 하지만 이블포인트가 상승하고, 잦은 흡입 시 종족 변이를 가져올 수 있으니 주의해 주십시오.

이는 곧 파이로의 시체를 먹으면 티어를 올릴 수 있음은 물론, 그 이능까지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훈의 눈이 파이로의 시체로 향했다.

식인. 사람을 먹는 행위.

매우 꺼려지는 행위였으나, 시신훼손 및 부관참시는 금기에 속할 만큼 엄청난 모독이었다.

‘죽어서도 편하게 못 가게 해주마. 작살 난 몸으로 영원히 이승을 떠돌아라.’

지훈이 파이로를 먹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칼콘도 덩달아 먹겠다고 끼어들었다. 흡수 변이에 대해서는 몰랐으나, 단순 복수심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였다.

결심이 서자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정성 들여 모독하고, 발라냈다.

그리고 그 고기를 먹은 순간…

- 티어가 올랐습니다.

- 티어가 올랐습니다.

- 티어가 올랐습니다.

- 티어가 올랐습니다.

- 이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해 주세요.

- A등급 진입. 새로운 변이가 가능합니다. 선택해 주세요.

- 식인 행위로 인하여 이블 포인트가 10 올랐습니다. 현재 포인트는 71입니다. 악 성향까지 4포인트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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