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52화 (152/173)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끔찍한 사건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지훈은 상황이 파악되자마자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시연이나 지현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어디까지나 양지에 사는 사람이었고, 걸음 하나에 생과 사가 갈리는 음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고, 또한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내 소중한 사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까드드득!

이빨과 이빨이 어긋나 섬뜩한 선율을 내뱉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감정은 오로지 분노와 증오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칼콘을 불러냈다. 올 때 무장을 하라고 전했던 까닭에, 온몸에 갑옷을 입은 상태였다.

“지훈, 갑자기 무슨 일이야? 누구 죽여야 할 사람 있어?”

누구 죽여야 할 사람이 있어?

이유 없이 칼콘을 불렀을 때 묻는 말이었다.

과거에는 실제로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에, 그랬지만… 헌팅을 시작하면서부터 몇 번 듣지 못한 말이었다.

“그래.”

짧게 긍정하자, 칼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 따위 묻지 않았다. 그저 지훈이 죽인다고 말하면 그를 도와줄 뿐인 칼콘이었다.

“요즘 잘 지내냐?”

“응. 푹 쉬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어. 체력 단련도 열심히 하고, 여자도 잔뜩 안았지.”

아마 내색은 않더라도, 칼콘도 정신 감응 후유증으로 많이 고생한 모양이었다.

뭘 봤든 간에 상관없었다.

현실과 이상이 어그러지는 경험을 한 이상, 현실감각이 옅어졌을 게 분명했다. 지금 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꿈이 아니라고 느끼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경험을 찾았으리라.

“너무 민우 미워하지 마라. 걔도 원해서 한 건 아니잖냐.”

“응, 이해해. 녀석도 이제 멋진 전사가 됐네.”

어깨를 다독이며 담배를 권했다. 칼콘이 손을 흔들어 거절하고는, 품에서 연초를 꺼냈다. 예의 그 물건이었다.

“줄까?”

담배를 내려다봤다. 분명 인간의 몸을 생각해 적당한 수준의 니코틴과 타르를 제공하는 좋은 물건이었으나…

지금 당장은 그딴 것 상관없이 강한 녀석이 필요했다.

화륵.

둘 다 말없이 연초만 태우기도 잠시.

“미래에 다녀왔다.”

겪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에이, 거짓말이죠? 농담도 참.’ 하고 넘어갔을 얘기였지만, 칼콘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어떻게?”

“정확하게는 아쵸프무자가 과거로 돌려줬다.”

아쵸프무자이자, 반지 제작자.

칼콘도 아는 이름이었기에 납득하는 듯했다.

사람을 각성시켜 주는 반지를 만든 존재인데, 그 정도는 못할까 싶었던 모양이다.

“가 봤던 미래는 어땠어?”

콰 - 앙.

머릿속에 커다란 폭음이 재생됐다. 짜증이 밀려왔기에, 한동안 연초 연기와 함께 한숨만 내뱉었다.

“죽었다. 너, 나 그리고 민우, 가벡 심지어 내 동생과 시연이까지 죽었어.”

칼콘이 제 손으로 얼굴을 슥 쓸었다.

손이 지나가자 평소의 부드러운 칼콘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살인귀의 모습이 나타났다.

“스읍 - 하아. 스읍 - 누구? 어떤 새끼?”

“네 왼쪽 팔과 왼쪽 다리를 날려 먹은 흑인.”

칼콘은 제 오른손을 매만지고는 이빨을 앞뒤로 갈았다.

까각, 까각!

“정말 좋은 팔이긴 한데 말이야… 가끔 이게 내 팔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이 손으로 밥을 먹어도, 여자를 안아도, 방패를 들어도 말이야. 언제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아직도 힘들어.”

일종의 환통이었다. 분명 팔이 붙어 있음에도 칼콘은 간혹가다 절단됐던 부분이 끔찍하게 아파 왔다.

“그 녀석 어디 있어?”

“나도 아직 모른다. 이제부터 찾아야지.”

“찾아서 어떡할 거야?”

“…죽일 거다. 고통스럽게. 이 세상을 저주할 만큼.”

“도와줄게. 아니, 도와주게 해 줘.”

말은 짧아도 그 안에 있는 뜻은 무거웠다. 서로 눈을 마주쳐 그 무거운 뜻을 파악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을 아는 사람을 안다.”

언젠가, 흑인의 정보를 물었을 때 석중이 말했었다.

- 그거랑 비슷한 아 중에, 내 아는 쓰애끼가 있긴 하디.

당시에는 무슨 이유에서든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조건 그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 ☆ ☆

오래간만에 석중의 가게를 찾았다. 평소 가벼운 차림이 아닌, 갑옷에 총까지 전부 든 상태였기 때문일까?

가게로 가는 길목마다 방해꾼이 나타났다.

“뒈지기 싫으면 비켜. 지금 기분 안 좋다.”

방해꾼. 아니 정확하게는 석중의 부하가 눈을 아래로 깔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침묵 속 날카로운 대치가 이어지자 칼콘이 쳐다봤다.

이를 드러내며 고개만 살짝 왼쪽으로 기울였다.

- 죽여?

몸에 비틀린 살기가 가득 뿜어져 나왔기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패를 쓸 것도 없이 왼손을 내지르기만 해도 비각성자는 몸이 관통될 게 분명했다.

손만 들어 제지하고는 말을 걸었다.

“이유가 뭐냐.”

“형님, 여기는 무장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지훈이 하는 행동은 무력시위였다.

알려주기 싫어?

마음대로 해, 알려주지 않고는 못 배기고 해줄 테니까.

그저 무장한 채로 찾아갔을 뿐인데도, 수완 좋은 석중은 저 내용을 전부 다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마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알고 있으리라.

“개 좆같은 새끼가 어디라고 입에서 똥을 내뱉어. 혓바닥 길다고 아무 말이나 찍찍 내뱉으면 그게 다 말인 줄 아냐?”

“아닙니다.”

“만나러 간다. 비켜.”

“죄송합니다.”

방해꾼이 고개를 숙였으나, 비켜주진 않았다.

미친 사냥개. 뒷골목에서 소문이 자자한 해결사였으나, 저 방해꾼에게 실제로 돈을 쥐여주는 사람은 석중이었다.

죽더라도 가족을 챙겨준다는 확신이 있으니 이렇게 강하게 길을 막고 있는 거리라.

“그래, 네 입장 잘 알겠다. 너도 명분이 필요하다, 이거지? 내가 하나 제대로 만들어 줄게, 이 개새끼야!”

뻑!

아스발 개머리판으로 후려치자, 방해꾼이 쓰러졌다. 어느 정도 힘을 줘서 때렸기에 골절된 듯 바닥에서 끙끙거렸다.

지훈은 그런 녀석을 한 번 더 걷어찼다.

“이해해라,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다. 너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씨발놈아.”

이후 주변 건물들을 슥 훑어보며 소리쳤다.

“할배! 나요, 김지후이. 우리 사이에 괜히 피 보지 말고, 직접 나와서 얘기 하입시다. 내 할배 조지러 온 게 아이고, 뭐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요! 엉!?”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들었을 게 분명했기에 바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4인으로 이뤄진 방해꾼들이, 진압 방패로 길을 막고 서있었다. 지나갈 틈 따윈 없었다.

“거 씨발. 존나 귀찮게 구네, 진짜. 칼콘, 뚫어.”

굳이 몸에 흙 묻힐 거 없이 칼콘을 보냈다.

“후읍 - 하!”

숨을 들이마시기도 잠시.

쿵쿵쿵쿵!

멧돼지같이 돌진해서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앙!

진압 방패벽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쓰러진 녀석들은 저항했으나 칼콘의 주먹에 무참히 쓰러졌다.

그렇게 다섯 번이나 뚫자 가게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중도 남은 애들 전부 반병신 만들어 놓고 싶진 않았는지, 더는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뚜벅, 뚜벅, 뚜벅.

퀘퀘한 곰팡내와 비릿한 C4 화약 냄새 그리고 언제 말라붙었는지 모를 핏자국들이 가득했다.

끼이이익.

녹슨 문을 열자 카운터 뒤로 석중의 얼굴이 보였다.

“왔니, 벌그지 쓰애끼야.”

“거 마중은 계집으로 해야지, 좆 달린 애들은 뭐하러 보냈수? 내 후장에 박는 취미는 없어서 전부 거절했는데, 거 무례는 아니었으면 좋겠네.”

대놓고 비꽜지만 석중은 픽 웃을 뿐이었다.

“그래? 거 미안하게 됐디. 다음에는 내 예쁘장한 계집아 여럿 준비해 놓을 테니, 마음껏 씹고 뜯고 즐기라.”

인사가 지나가자 둘 다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석중은 카운터 아래로 C4 격발 스위치만 꽉 쥐고 있었다.

“거 좆같은 C4부터 치우쇼.”

뻐억!

이에 지훈은 화가 나서 C4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점토 덩어리에 주먹 흔적 남듯, 폭탄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내가 방금 폭탄에 뒈지고 와서, 이제 폭탄이라면 지긋지긋하거든? 그러니 애들 장난은 그만합시다, 할배.”

일반인이라면 당장에라도 오줌을 지릴 살기였으나, 석중 역시 오랜 시간 뒷골목에서 살아남았기에 그저 웃기만 했다.

“그래. 뭐가 알고 싶니?”

“화염계 능력자 흑인. 그 새끼 대가리 따야 하니까, 지금 당장 정보 내놓으쇼.”

석중은 흑인이라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병시 쓰애끼가… 각성 좀 했다고,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니 지금 어디다 좆대가리 들이미는지는 알고 그러는 기야?”

“짧게 말하지. 그 새끼가 내 여자친구를 죽였소.”

지금은 되살아났지만, 분명 미래에 죽였었다.

배우자가 죽었다는 뜻이 뭔지 알았기에, 석중 역시 잠시 고민하듯 침음성을 흘렀다. 그럼에도 뜻은 변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철벽같은 태도를 고수했다.

“딴 여자 안고 잊으라. 그래도 안 된디.”

“할배, 내 여기서 그 유리 뚫는 데 1초면 충분하오. 폭탄 터지는 게 먼저일지, 유리 깨지는 게 먼저일지 나랑 쇼부 한 판 보고 싶은 거요?”

1초?

아니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도 뚫을 자신이 있었다.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소. 내 죽어가는 거 할배가 다 키워줬고, 살려놓은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싸우지 맙시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새끼 정보 딱 하나요.”

“내는 니가 내한테 위협을 하는 것에 화가 난 게 아니디.”

“그럼 도대체 왜 그러쇼? 뭐가 문젠데?”

“내 아들 같은 벌그지가, 뒈지러 가는 게 싫디. 니 내가 알려주면 바로 가서 쑤실 거 아이니? 맞디. 맞을거디. 내 니를 한두 번 봤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들 같은 녀석이라니.

석중 역시 사랑을 주는 정상적인 방법을 몰랐기에, 자기만의 방법으로 일그러진 사랑을 준 것이리라.

그 어느 누가 제 아들 같은 놈이 사지로 간다는 데 좋아라 쌍수들고 환영하겠는가.

“내 이제 B등급이고, 조금 있으면 A등급이오. 걱정마쇼.”

그 말을 시작으로 갑론을박하길 몇 분.

아들 이기는 부모 없다는 듯, 결국 석중이 백기를 들었다.

“여서 할 얘기는 아니디. 밖에서 기다리라.”

“내 인내심도 점점 더 바닥을 들어내고 있으니,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요.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에 석중이 일순간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었기에,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래. 이 거지발싸개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옆 건물 입구에서 웬 MES가 장갑이 잔뜩 달린 이동식 무언가를 끌고 나왔다.

뭔가 싶어 쳐다보고 있자니, 장갑이 열리며 석중이 모습을 드러냈다.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다리가 얇아서 툭 치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할배,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요?”

“니는 알 거 없다. 산책이나 하자. 와서 의자나 밀라.”

석중은 MES를 물리고는 지훈에게 휠체어를 밀게 했다.

끼릭끼릭,

뚜벅뚜벅.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 지훈과 칼콘의 발걸음 소리와 석중의 휠체어 소리만 울렸다.

“양지 가이 좀 어떻게 살만하드나.”

“거 씨발 다 똑같지. 목숨 걸고 도박질 하는 새끼들 인생이 나아질 게 뭐 있소? 정신과나 다닐까 생각 중이오.”

“푸하하하, 쓰애끼. 팔자 폈구나. 뇌병원이라이.”

예전에는 사람 죽이고도 술만 퍼먹었을 뿐, 병원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거 시궁창은 좀 어떻소?”

“매일 똑같지. 니 보내고 나이 내 얕보고 덤벼든 놈들이 조금 있었디. 기래서 전부 손모가지 날려줘쁬디. 거 싹수없는 놈들은 좆이랑 머리도 날리뿟지.”

과거 석중이 했던 ‘나는 돈 없어서 각성자 못 다룬다.’ 는 지훈을 보내주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실상은 암암리에 조직을 운영함은 물론, MES까지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었다.

“그래, 그 깜둥이가 눈지 알고 싶나.”

“말해보쇼.”

“파이로, A등급 각성자. 이능은 화염 투사, 위기 대비, 발화 이렇게 세 개디. 전부 다 B등급은 되는 것 같고, 부 무장으로 IED를 들고 다닌디.”

전부 다 알고 있는 정보였다.

단지 A등급이라는 사실이 조금 신선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소?”

“내는 거기까지는 모른디. 시체구덩이로 가보라.”

뜬금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설마….”

“그래, 그 쓰애끼 언더 다크 놈이다. 그것도 높은 놈.”

왜 그렇게 정보를 숨겼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대놓고 정보를 누출했다간 지훈은 물론이오, 석중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함구했으리라.

“할배, 고맙소.”

석중은 아무 말 없이 피식 웃었다.

“됐디. 늙은이 헛소리 들어 줬으이 오레 내가 고맙지. 이제 가 보라, 니 할 일 많아 보이는데 늙은이가 잡으면 안 된디.”

보기 드문 석중의 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지훈은 석중을 내버려 두고는 바로 시체구덩이로 향했다.

뒷골목에 홀로 남겨져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훈 일행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골목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석중을 호위했다.

석중은 멀어져가는 지훈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거… 부랄 축 늘어뜨리고 다 뒤지가든 게 어제 같은디, 커도 너무 빨리 큰디… 쓰애끼, 뒤져서 장례식에나 부르지 말라. 그러면 내 가서 시체 모가지를 따 뿔기디. 쯧.”

석중은 조용히 듣고 있던 부하에게 “호로 쓰애끼야, 안 가고 뭐 하니!” 하고 소리쳤다.

뒷골목에 울리는 석중 혀 차는 소리와 휠체어 소리가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이유가 뭘까.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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