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50화 (150/173)

<생각지 못한 위기>

대학 병원.

민우가 알몸에 환자복만 걸친 채 한숨을 내뱉었다.

“아, 형님. 진짜 이럴 필요….”

“있어. 너 그러다 진짜 훅 간다.”

민우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지훈과 칼콘은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능력이었고, 뭐든 간에 큰 변화에는 강력한 반작용이 생기는 법이었다.

지훈이 신진대사 때문에 식사량이 증가하거나, 장기가 망가지는 부작용이 있다면 민우의 영우는 바로 종족 변화였다.

일반인의 몸으로 FS 유적에 있던 만년도 더 된 물건을 집어먹으니 DNA가 재배열 됐던 것이었다.

물론 지훈과 가벡은 각성자였던 까닭에 전혀 문제가 없었으므로, 종족 변이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도대체 왜 변하게 된 걸까요?”

민우는 제 몸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었다. 부드러운 피부에, 바늘로 콕 찌르면 피도 나왔고, 체온도 정상이었다.

근데 인간은 아니다.

텔레파시도 할 수 없고, 투시도 할 수 없으며, 사람을 일그러진 꿈동산으로 데려갈 수도 없다.

‘기분이 이상하네. 내가 인간이 아니라니.’

엄밀히 따지면 인간이 아니라고 한들, 외모가 인간이고 본인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인간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었다.

사회가 없으면 인간의 정체성 역시 형성되지도, 발달하지도 않는다는 가설도 있듯 사람은 그 정체성을 타인과의 교류로 형성한다.

‘난 인간이야. 괴물도, 이종족도 아닌 인간.’

민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어디서 뭐 이상한 징조 같은 거 없었어?”

“당연히 없죠, 아무것도 없… 잠깐만요, 보사에서 전화 왔었어요. 몸에 이상 없냐고.”

보사라는 말에 지훈과 칼콘의 얼굴이 삽시간이 똥 씹은 것 마냥 접혔다.

“보사? 너 뭐했길래 거기서 전화가 와?”

병문안 올 때 따라왔던 지현이 끼어들었다.

원래는 집에만 있는 걸 좋아했지만, 아무래도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기에 살펴보러 온 듯싶었다.

“FS 유적 다녀오고 나서였어요. 보사에 가면 답을 알 수 있을까요?”

민우는 허락을 구하듯 지훈과 칼콘을 번갈아 봤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였으나, 본인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는 데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고 싶으면 가. 어차피 녀석들이 알고 있었으면 러시아 개척지 들어가는 순간 일 터졌어. 아마 모를 거다.”

지현이 있었기에 단어를 에둘러 말했다.

“그럼 나중에 혼자 가서 확인해 볼게요.”

결정에 존중해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문안 선물로 가져온 닭튀김을 뜯어 먹고 있자니 병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들어왔다.

민우가 물었다.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경우는 거의 겪어 본 적이 없는지라,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약을 썼다가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고요.”

절레절레 젓는 고개가 일행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종족이 변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뭐가 변하는 건가요?”

“DNA가 변했을 정도면 이미 변이가 나타나야 했을 텐데,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거로 봐서 외적인 변화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의사는 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봤다.

지훈이 ‘대신 뭐?’ 하고 꼬리를 물자 그제야 말을 이었다.

“환자분은 앞으로… 성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에? 뭐요?”

어이가 없어져 되묻자, 의사는 결심을 굳히고 대답했다.

“고자가 됐다, 이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의사 선생님! 제가 고자라뇨!”

고자가 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민우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이미 한 번 뽑고(?) 왔기 때문이었다.

제 기능을 모조리 하고, 뽑은 물건(??)의 양, 색깔, 냄새 전혀 문제가 없는데 어찌 고자가 됐단 말인가?

민우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자, 의사는 일행을 쳐다봤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현을 오래 봤다.

“제 보호자니까 그냥 말씀하세요.”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분은 사정은 할 수는 있지만, 수정이 되질 않습니다. 곧 아이를 만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병실 안에 침묵이 감돌자 의사가 자리를 떴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그 누구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굳어있는 와중에, 칼콘이 애써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 하하하… 민우야. 좋게 생각해. 콘돔도 필요 없고, 원치 않는 임신 걱정도 없잖아! 힘차고 강한 교미!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교미! 얼마나 좋아!”

농 섞인 위로였지만, 안타깝게도 제 기능을 하질 못했다.

인간과 오크의 문화가 퍽 다른 까닭에 도리어 분위기만 더 얼어붙었을 뿐이었다.

이에 지현이 슬쩍 거들었다.

집게손가락으로 머리를 빙빙 꼬는 게 부끄러운 듯싶었다.

“그, 그래. 남자는 콘돔 안 끼고 하는 게 그렇게 좋다며. 나도 안 끼고 하는 게 더 좋고.”

민우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새하얀 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하… 하… 섹스… 잘 됐네… 그래….”

가벡이 말없이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씨 없는 수박을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군. 너도 맛이 좋아졌을 거다.”

별 괴상망측한 개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에게 따끔한 눈총을 쏘아줬다. 정작 본인은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보였기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민우야. 이능 얻었잖아. 변한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게 좋다.”

현재 민우가 가진 이능은 투시와 정신 감응.

인간 중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강력한 이능이었다.

“그래요. 투시랑 정신감응. 둘 다 정말 쓸 만한 이능이죠.”

민우는 애써 웃고는 일행을 슥 훑어봤다. 그리고 마지막엔 지현을 굉장히 오랫동안 쳐다봤다.

10초,

20초,

30초.

“야, 야, 잠깐만. 너 뭘 보고 있는 거야!”

기분이 이상해져서 민우의 고개를 강제로 돌렸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도 아이를 얻을 수 없다.

민우는 그 사실이 서글퍼서 생각에 잠긴 거였거늘, 이상한 오해를 사버렸다.

“내 동생은 안 된다. 여기 간호사들 많아. 걔네로 해.”

민우는 그냥 설명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그래, 차라리 동정 섞인 시선보다 이게 좋네.’

☆ ☆ ☆

지현은 민우가 걱정된다며 병실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둘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흐르던 걸 알았기에 그냥 내버려뒀다.

아무리 여동생을 반쯤은 키웠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남매였지 소유물이 아니었다.

범죄나 기행이 아니라면 말릴 수도 필요도 없었다.

성인이 된 이상 본인의 행동에는 본인이 책임져야 했다.

☆ ☆ ☆

근 한 달 만에 봤기에 시연은 시간 욕심을 많이 냈다.

“조금만 더 있자. 응?”

출근도 하지 않고 시연의 집에서 일주일이나 같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그간 못 봤던 걸 전부 채우고 싶은 욕망일까?

어찌 됐건 지훈 역시 시연이 그리웠기에 함께 보냈다.

정말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에도 이상하게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심이 있었다.

과연 시연이 비인간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을까?

보사 연구원. 그것도 능력이 굉장히 좋은 연구원이다.

회사도 직급이 높아지면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해 옳지 않은 일에 손을 대야 할 경우가 생기듯, 능력 좋은 연구원이라면 분명 몇 번 정도 유혹이 있을 터였다.

칵톨레므를 조종했던 것처럼 인간을 조종하고,

과학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인간을 모르모트로 쓰며,

도덕성 따윈 개나 줘버린 연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씨발, 진짜 미쳐 버리겠네.’

잡생각이 너무 많았던 까닭일까?

근래에 들어 관계 중 사정을 하지 못했다.

미친 듯이 노력해도 못했다. 의심, 공포, 혼란 등이 뒤섞인 감정들이 관계 도중에도 떠나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연에게는 단순히 생각이 많아서라고 둘러댔다.

- 너 사람 가지고 연구한 적 있어?

- 너 하면 안 될 짓 한 적 있어?

- 너 깨끗한 연구만 했어?

- 너…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은 많았지만, 그중 단 하나도 꺼내놓질 못했다. 인간관계에서 의심은 치명적인 독이었다.

품고만 있어도 관계에 금이 쩍쩍 가지만, 그걸 꺼냈을 경우는 관계를 깰 각오를 해야했다.

묻는 건 쉬웠지만 뒷감당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했으면 어쩔 건데?’

헤어질 건가?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지훈에게 있어 시연은 생과 사를 오가는 전장에서 얻은 큰 스트레스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할 배우자였다.

“뭘 그렇게 생각해?”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자기가 뭐가 좋다고 식기 세척기 광고를 그렇게 골똘히 쳐다봐?”

- 사실 네가, 내가 당했던 끔찍한 연구 같은 걸 했을까 생각했어. 각성자를 큰 믹서기에 갈아서 그 추출물을 사람한테 주사하면 티어가 올라. 참 효율적이지만, 비인간적이지. 했어?

말이 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그냥. 지현이 설거지하는 거 힘들까 싶어서.”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매우 서투른 거짓말.

하지만 시연은 제 남자친구가 자기에게 거짓말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자기 착하네.”

시연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도리어 심장이 아려왔다.

‘나는 너한테 차가운 의심을 품고 있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나한테 따뜻한 거야….’

갑자기 자기 자신이 한심해졌다.

만약 시연이 그런 연구를 했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도 좋다.

그럼에도 좋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이기적이라 해도, 이중잣대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인데, 마음이 그녀를 원하는데 어쩌겠는가.

인정하는 순간 마음속에 미풍이 불었다.

차가운 가슴을, 족쇄를 전부 녹여버리는 미풍이었다.

시연에게 다가가 뒤에서 껴안았다.

“에이~ 나 쿠키 굽고 있잖아. 이따가 침대에서 안아 줘.”

“조금만, 조금만 이대로 있자….”

꾹 감은 눈 사이로 작은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죽음의 공포에서도, 시궁창 절망 속에서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었거늘 시연에게 관련된 일이면 너무나도 쉽게 흘러 버렸다. 그만큼 지훈에게 있어 시연은 소중한 존재였다.

5분 정도 말없이 꽉 안고 있다가 떨어졌다.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뽀뽀!”

아무것도 모르는 시연이 웃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미소에 전염되기라도 한 듯, 지훈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렀다.

서로 쳐다만 보며 웃고 있자니 시연이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며 물었다.

“있잖아… 할래?”

대답할 것도 없이 바로 침대로 향했다.

사정했다.

미안한 마음에 응어리진 눈물 대신 토해내듯, 가득, 몇 번이나 사정했다. 관계가 끝나고 서로 꽉 끌어안고 있다가, 문득 시연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복잡했어?”

“사실 고민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일어나지도 않을 일, 사소한 일. 그런 거였어.”

“응. 해결돼서 다행이다.”

시연의 품으로 파고들어 가슴에 얼굴을 붙였다.

심장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안정됐다.

관계가 끝난 뒤 시연이 오븐을 열며 투덜거렸다.

“따뜻할 때 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괜찮아. 원래 쿠키는 차가울 때 먹어도 맛있잖아.”

“자, 기대하시라~ 두구두구두구! 개봉!”

시연이 낀 채 쿠키를 오븐 플레이트를 꺼냈다.

사람 모양 과자였다.

사람 모양 과자.

과자는 쿠키.

사람은 맨.

쿠키맨.

끔찍했던 기억이 순식간에 뇌를 점령했다.

- 하하하하, 죽어 임마! 죽으라고!

지훈의 눈동자가 등불 앞에 놓은 촛불마냥 흔들리는 것도 모른 채, 시연은 보란 듯이 과자의 팔을 뜯어냈다.

우직!

쿠키맨의 팔에서 진득한 딸기잼이 흘러나왔다.

“이거 봐라~ 안에 쨈도 들어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큰 어지럼증에 속에 있던 물건들을 모조리 게워냈다.

“꺼, 꺽! 거걱! 꺽….”

시연이 깜짝 놀라 플레이트를 떨어뜨리자, 쿠키맨들이 박살 나서 사방으로 흩…

저 장면까지 봤다간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눈을 감고, 그저 뇌에서 강제로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은 욕망을 토악질로 표출했다.

단순 충격에 의한 쇼크였기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시연은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별거 아니라고 금방 다독였다.

‘내가 미쳐가는구나, 미쳐가… 씨발….’

정신이 썩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정신과를 찾거나 기억 제거 시술이라도 받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스쳤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여태까지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살아왔다. 이런 적은 과거 뒷골목 시절에도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지훈은 전부 이겨냈고,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분명 이겨낼 게 분명했다.

아마도.

☆ ☆ ☆

비슷한 시각, 파이로의 은신처.

파이로는 복수심에 점점 더 미쳐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녀석이 누군지 모른다고? 개소리!’

콰앙!

‘병신같은 스토커 새끼가 분명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 게 분명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때마다 푸른 불꽃이 피어났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뭔가를 태우고 싶다.’

당장에라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태워죽이고 싶었지만, 이 은신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만 삭이고 있자니 문득 은신처 문이 열렸다.

“죽고싶냐? 누구….”

파이로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얼굴과 함께 투영됐다.

바로 김지훈이었다.

- 나는 우리가 같은 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누구지?”

파이로가 눈을 들어 쳐다봤다.

거기엔 인간보다는, 인간의 껍질을 쓴 무언가라고 하는 게 어울리는 존재. 하즈무포카의 거인 하수인이었다.

- 그건 알 거 없다. 단지 네게 복수를 할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다.

하즈무포카의 하수인은 말이 끝나자마자 종이 한 장을 툭 던지고는 사라졌다. 파이로는 그 종이를 집어 들고는 광기가 가득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 크히히… 푸히히히힉!”

그 내용엔 지훈과 그 주변인의 정보가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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