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48화 (148/173)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다>

우응 -

눈을 뜨자 익숙한 차량이 보였다.

일행이 타고 왔던 밴이었다.

예고도 없이 전이된 탓에 잠시 기분이 멍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말을 하다 입에 뭔가 쑥 들어온 느낌이었다.

보통 저런 경우 혓바닥으로 내용물을 쓸어 확인부터 해야 옳았지만, 지훈은 그냥 날름 씹어다 삼키고는 말았다.

비상식에 발을 걸쳐서 살다 보니 이젠 하나하나 파악하는 게 지치기도 했고, 정말 큰 일이 아니면 대부분 무덤덤해졌기 때문이다.

“우와, 지훈. 이거 봐! 우리 어떻게 나온 거야?”

반면 칼콘은 이해하지 못한 듯 연신 뭔가 물어봤다.

부상 및 피로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기에 간단히 무시하고는 민우를 건네줬다.

“힘 넘치면 이거나 업고 있어, 새끼야.”

가시 방패가 워낙 무거웠기에 내버려 뒀던 지훈이었다.

지금은 그 무거운 D등급 쇳덩이 갖다 버리고 얇고 가벼운 놈으로 새로 장만했으니, 괜찮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근데 얘 피 많이 흘렸네, 괜찮을까?”

타이어에 잠가뒀던 락을 풀고 있자니 뒤에서 염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쵸프무자의 말에 따르면 민우가 이능 폭주 현상을 일으킨 것 같았다.

종족이 변했다는 것과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내용이 뭘 말하는 건지는 아직 잘 몰랐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건 확실했기에, 일어나면 바로 포션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철컥.

타이어 락을 풀고 차 안에 올라탔다.

차 문도 잠가놓지 않았고 열쇠도 꽂아놓은 상태였기에 아무런 수고 없이 바로 탑승할 수 있었다.

운전석에 앉으려니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운전할 수 있겠어? 지훈 엄청나게 피곤해 보이는데.”

피곤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칼콘은 지쳤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자 휴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솟았으나 꾹 눌러 넣었다.

왜냐하면…

“잘 생각해라. 우리 지금 물이랑 식량 아무것도 없다.”

연구소에서 나올 때 전투에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이동 용품을 전부 놓고 왔던 까닭이었다.

그 말은 곧 신 일본 개척지에 가는 24시간 내내 쫄쫄 굶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칼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 어… 빨리 가자. 이따가 내가 교체해 줄게.”

“그래. 근데 담배 좀 있냐?”

운전하기 전에 담배가 생각났다.

이번에도 큰 부상이나 장애 없이 임무를 완료했다는 생각에 감정이 휘몰아쳤기 때문이었다.

칼콘은 오른쪽 팔목 보호대를 떼어냈다. 그러자 장갑 아래로 담배 몇 개비가 테이프에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도대체 담배를 왜 이딴 데다 넣어 놓냐?”

인간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이었으나, 오크에게 있어서는 매우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현대적인 방어구(방탄복, 강화 의류 등)와 달리 갑옷에는 수납공간이 없이 때문이었다. 괜히 뭔가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가 갈고리에 맞으면 위험했다.

이에 보통은 다리 각반 안쪽이나, 팔목 보호대 안쪽 같은 떼기 쉬운 갑옷 안에 몇 개비 붙여 놓았다.

생명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군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다들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담배뿐만 아니라 초콜렛, 마약(각성류) 등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많이 휴대했다.

그러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면 군인들은 생애 마지막 사치가 될 수도 있는 기호 물품을 소비하며 마음을 달랬다.

지금 팔목 보호대 안에 있는 담배가 그런 물건이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던 담배.

땀과 이름 모를 인간의 피 그리고 갑옷에서 묻어 나온 중금속이 스며들어 악취가 났지만 전부 무시했다.

그저 약을 먹는 환자처럼 담배에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이리와. 힘들어서 마법 한 번만 쓸 거니까 같이 붙여. Ilutulestik.(불꽃.)”

화륵 -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이 솟아났다. 이에 담배를 문 주둥이 두 개가 분주히 움직이더니 쭈웁 공기를 빨아들였다.

파사사삭.

인간의 양담배가 아닌, 오크가 키우는 향이 아주 독한 연초가 필터도 없이 폐 안에 가득 들어왔다가 나갔다.

분명 건강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당장은 몸 안에 있는 것들이 씻겨 나가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뭐야, 이거 맨솔이야?”

“맨솔이 뭔지 모르겠지만, 시원하지?”

“오크 물건이라길래 걱정했는데, 쓸 만하네.”

솔직하게 감상을 털어놓자 칼콘이 으쓱거렸다.

“이런 말이 있지, ‘오크 물건 중 으뜸은 바로 입에 들어가는 모든 물건이다.’ 라고.”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흥을 깨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냥 픽 웃어넘기고는 말았다.

“푸-하.”

깊은 한숨과 함께 연기를 토해내자, 몸 안에 있던 긴장이 하나도 빠짐없이 빠져나가며 노곤해졌다.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한숨을 쉬기 위해 담배를 피운 건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한숨을 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담배 연기 섞인 한숨을 몇 번 내뱉자 속이 개운해졌다. 그게 다였다.

“슬슬 출발하자. 갈 길이 멀다.”

한국 개척지까지 10일.

집으로 가기 위해선 다시 한 번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 ☆ ☆

일본 개척지.

끼니를 때우고 돌아오니 민우가 일어나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수고했다, 잘했어.’ 하고 칭찬을 해줬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 죽어, 전부 다 죽으라고. 씨발!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와 함께 정신이 뒤틀렸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폭주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경계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싸늘한 시선 두 쌍이 내리꽂히자 민우가 당황했다.

뭔가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일단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입을 열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냐는 말에 지훈과 칼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민우는 속으로 ‘하, 한심해 보였나?’ 싶었지만, 실상은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래, 안녕하다. 네 덕분이지.”

평소에 워낙 많이 비꼬며 놀렸던 터라 민우가 퍽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번 임무의 영웅이 왜 벙찐 표정을 짓고 있어?”

“맞아. 뭐 좀 이상하긴 했지만… 너 없었으면 정말 힘든 싸움이 됐을 거야. 심하면 죽었을지도 모르고.”

영웅.

여태껏 찌질하다거나, 약하다는 소리만 들어왔던 민우에게 있어서는 절대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호칭.

동시에 믿고 의지하는 동료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민우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 아… 이게 왜 갑자기….”

여태껏 민우는 본인은 제값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정산금의 1/N을 가져가서 항상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정작 지훈, 칼콘, 가벡 그 누구도 민우가 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전투력’만이 강함의 척도라 생각하는 민우 혼자 그렇게 열등감을 가졌다.

특히 지훈은 저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D등급이 시비를 걸었을 때도 편을 들어줬고, 뭔가 잘한 일이 있다면 콕 짚어서 칭찬함으로 자신감을 북돋워 주려고 했다.

반면 민우는 지훈의 저런 행동들을 ‘동정’으로 느꼈다.

얼마나 불쌍했으면 저렇게까지 해줄까.

그래서 항상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힘을 보여줬고 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이제 모두 달라졌어. 난 짐이 아니야.’

실상 변한 건 민우의 마음가짐 그 하나밖에 없었으나, 본디 세상만사는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도 있듯, 어찌 보면 모두 달라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아니, 적어도 민우의 시선에서는 모든 게 달라져 보였다.

“뭘 질질 짜, 인마. 정말 너 없으면 뒤질 뻔 했다니까?”

새하얀 거짓말.

만약 반지가 이능 저항을 조금이라도 더 늦게 성공했다면, 지금쯤 지훈의 뇌는 VGC 탄으로 걸레짝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가끔은 묻고 가야 더 좋은 일도 있음을 지훈은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알았다.

“보세요, 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니까요?”

민우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픽 웃었다.

‘얘는 뭐 한 번만 잘해주면 자신감이 하늘까지 솟냐.’

한마디 하려다 그냥 머리만 거세게 쓰다듬고 말았다.

“맞다, 너 일단 이거부터 마셔라.”

포션을 건네줬다. 뭐냐고 되물었지만, 설명하기 애매해서 그냥 약이라고 일축했다. 목젖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걸 보고는 펜던트도 마저 건네줬다.

“이능 폭주 막아주는 물건이라니까, 항상 가지고 있어라. 그리고 너 개척지 돌아가면 나랑 같이 병원 좀 가자.”

심각한 말에 민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한테… 뭔가 큰일이 난 걸까요?”

이능 폭주야 약 먹이고 제어장치 붙였으니 괜찮았지만, 문제는 아쵸프무자가 민우의 종족이 변했다고 말했다는 거였다.

DNA가 변하면서 약이나 마력에 알러지 반응이 생길 수 있었기에 반드시 정보를 파악해 둬야 했다.

물론 당장은 필요하지도 않거니와, 할 수도 없었으므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쑥 넘어갔다.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차에서 내리기나 해.”

“어라? 어디 갈 곳 있나요?”

“밥, 새끼야. 밥.”

지훈과 칼콘은 방금 먹고 왔지만, 민우는 거의 24시간 넘게 공복 상태. 뭔가 먹여야 했다. 게다가 피눈물이 흐른 그대로 피딱지도 얹어있어서 씻길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 ☆ ☆

한국 개척지에 귀환 후, 하루 푹 쉰 뒤 정산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디스톨팅 스톤을 처리했다.

원래대로라면 각성자 물품 거래소나 BOSA에 가야 했지만, 둘 다 영 마음에 들질 않았다.

전자는 세금 때문이었고, 후자는 얼마 전까지 치고받았던 녀석들과 거래를 한다는 사실이 깨름칙했던 이유에서였다.

연구소에 있던 인간은 사실상 몰살당했기에 정보가 빠져나갔을 리는 없기에 원한다면 갈 수는 있었지만, 심적인 거부감이 심했다.

사람을 모르모트로 쓰는 미친 기업.

돈을 위해 과학에서 도덕성을 거세한 과학자 집단.

지훈은 저런 사안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했었으나, 본인이 직접 피해를 받으니 얘기가 180도 달라졌다. 보사와는 될 수 있으면 모든 접점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잠시.

‘시연이….’

복잡하게 얽힐 것 같아 적당히 생각을 끊어버렸다.

일단 지금은 정산을 마무리하는 게 먼저였다.

디스톨팅 스톤은 석중 할배에게 개당 1억으로 쳐서 정산했다.

“하이고, 우리 지후이 마이 컸디. 기다리면 암시장에다 팔아다 돈 더 준대도, 기래 그걸 못 기다리겠니?”

“거 이유 있어서 그런 거니 적당히 합시다.”

아무리 석중이라도 현찰로 5억을 당장 마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 하루 정도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맘 편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날 발신자 번호 제한으로 문자가 한 통 찍혔다.

- 떡 배달 끝났습니다. 맛있게 드십쇼.

‘쯧, 누가 할배 아니랄까 봐… 꼭 애들 시켜서 찍는 문자도 이렇게 노인 냄새 풀풀 나게끔 찍어야 하나.’

계좌를 확인하니 정확하게 5억 원이 찍혀있었다.

걸음을 옮겨 용병 길드로 향했다.

사실 5억 원 전부 먹어도 됐지만, 생각과 달리 용병들이 모두 죽어버렸기에 뒷맛이 씁쓸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임무 완수했소만… 용병들은 모두 사망했소.”

직원의 이마가 찌그러졌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가끔 용병들 모집하고는 모조리 죽여서 장비만 뽑아가는 범죄가 벌어졌기에, 이런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굉장히 유명한 얘기였기에 보통 임무 중 용병이 모두 사망한 경우 그냥 나 몰라라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근데 어쩐 일로….”

“개인 정보. 유족한테 정산금 보내고 싶소.”

용병은 사망이나 실종 시 의뢰인이 위로금 혹은 임무 완수 대금을 유족에게 건네주는 경우가 있었다.

약속했던 7%를 전부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돈으로 그들의 목숨을 산 것도, 마음에 있는 짐을 덜어내기 위한 도피성 선의도 아니었다.

지훈은 연구소에 가기 위해 달콤한 조건으로 용병들을 모집했고, 이에 용병들은 기꺼이 제 목숨을 걸고 참가했다.

정당한 거래였지만, 그래도 보내는 길 유족들에게 위로금이라도 건네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었다.

씁쓸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정산 결과]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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