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꿈동산>
다시 시계를 돌려 5분 전으로 돌려, 주거동 격벽 앞.
지훈이 정체 모를 폭탄들을 격벽 모서리를 따라 붙였다.
초록색 점토처럼 생겼으나 생각보다 점착력이 좋아 잘 붙었다. 이후 중앙에 뇌관을 푹 꽂은 뒤 멀리 벗어났다.
“지훈, 이게 잘하는 짓일까?”
칼콘은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잘하든 못하든 그게 뭔 상관이냐. 아무것도 안 하고 민우 뒤질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
“그래도 처음 보는 폭탄이고, 잘못 터지면 후폭풍이….”
“그만. 이럴 시간 없다. 터트릴 거야.”
칼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마법사에게 명령했다.
“마법 써.”
마법사 역시 불안한 표정이었으나 군말 없이 따랐다. 어차피 폭사해서 죽으나, 눈 돌아간 지훈한테 목이 돌아가 죽거나 그게 그거였다.
차이가 있다면 한 방에 고통 없이 폭사하느냐, 척추가 뒤틀리는 날카로운 고통을 느끼던가 정도겠지.
“Grace ei kaotanud laps hingata (숨 막히는 자들을 위한 은총)”
성경에나 나올법한 괴상한 주문이 끝나자 공간이 작게 일렁거렸다. 해당 마법은 일정 공간의 산소 농도를 급격하게 올려버리는 마법이었다.
“다 됐다입니다. 이제 기폭하면 된다입니다.”
콜 사인은 떨어졌다.
이제 폭파 후 진입해서 모조리 제압하면 됐다.
“숫자 많을 거니까, 가기 전에 보조마법 건다. 기다려.”
보통은 민첩한 움직임을 위해 잘 쓰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BSS 경비들의 소총은 폭발탄이었다.
이는 곧 피부에 들어가는 순간 받는 피해가 제곱이 된다는 뜻이었기에, 될 수 있으면 막아야 했다.
각자 돌 피부를 사용한 뒤, 칼콘에게는 위압감 마법을 부여했다. 이제 칼콘에게 집중포화가 될 터였다. 거기에 더해 마법사가 기타 여러 가지 마법을 덧붙였다.
“기폭 한다, 제대로 막아.”
칼콘이 코너 너머에서 뿜어져 나올 화염을 대비하기 위해 방패를 바닥에 붙였다.
꾹!
콰아아아아아아 -
말로 할 수 없는 화마가 몰아쳤다.
모발이 모조리 발화하고, 눈 속에 있는 피까지 끓어오를 것 같은 끔찍한 화염 폭풍!
만약 돌 피부로 코팅하지 않았다면, 마법사가 조처를 해놓지 않았다면, 둘 다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
“들어가!”
화염 폭풍이 끝나자마자 바로 돌입했다.
선두 칼콘, 중간 지훈, 후미 마법사 순으로 서로의 등과 가슴을 붙이고 딱 달라붙었다.
타타타타타타탕!
아니나 다를까 경비들이 탄환을 쏟아냈다.
초속 50M짜리 강풍을 밀고 걷는 것 같은 착각!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셋이 힘을 합쳤기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주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한 발자국씩 이동해 격벽 근처까지 간 뒤…
“수류탄 투척! 대가리 숙여!”
지훈이 옷에 매달아 놨던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BOSA의 살인 기술이 그대로 들어간 물건이다. 마법 공학 수류탄만큼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물건중에는 발군의 위력이리라.
푸쉬이이익 - 쾅!
주먹만 한 수류탄이 무슨 C4처럼 폭발했다.
그 과정에서 뭉쳐있던 연구원과 경비 여럿이 순식간에 육편으로 쓸려나갔다. 그 틈을 이용해 칼콘은 총만 내밀고 그대로 풀오토로 갈겼고, 지훈은…
‘이능 발동, 가속.’
타타타타타탓!
아무리 강한 총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봐야, 맞추지 못하면 전부 허사였다. 동체 시력으로는 허상밖에 좇을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 그걸 바탕으로 종횡무진 전장을 누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unfold the electric shield! (전자기 장막 전개!)”
외침과 동시에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전자 폭풍이 휘몰아쳤다.
파지지지지직!
이에 지훈은 속사로 응대했으나, 채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탄환이 모조리 산화해 버렸다. 마법을 제외한 모든 원거리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물리 방어막!
‘빌어먹을!’
마법사가 마법을 부릴 줄 안다지만, 남은 경비는 아직 30명도 더 됐다. 모두 제압하기엔 무리. 방패 뒤로 되돌아와 전자기 폭풍이 멎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인 공세가 계속됐다.
“도망쳐야 해! 더 이상은 방패가 버티질 못해!”
방패가 뚫리는 순간 끔찍한 화망에 연약한 육체가 그대로 노출됐다. 강력한 갑옷을 두르고 있다고 한들, 그것도 총알 한두 방 막아주는 게 다였다.
초음속으로 날아와 핀포인트로 꽂히는 탄환들을 절대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떡하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 으아아아, 씨발! 개새끼들아, 죽어! 죽으라고!
그 순간 머릿속에 민우의 목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 강력한 정신계 이능 감지!
- 저항 시도!
- 실패!
- 정신 오염에 주의하십시오!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 ☆ ☆
동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알록달록한 꿈동산,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볼 법한 만화처럼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게 뭔…?’
방패 밖을 쳐다보자, 작은 별들이 은하수처럼 쏟아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정신을 잃고 쳐다봤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광경. 하지만 끝과 끝은 통한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자 상식 따윈 일그러진 아름다움에 묻혀 더는 제구실을 못 하게 되어 버렸다.
별빛이 머지않아 멈췄다.
더 보고 싶었다.
방패 밖으로 나갔다.
무지갯빛 분수가 어느 쿠키맨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 모습이 남아있던 이성이 끊어져 버렸다.
마치 물가에 몸을 던지는 아이처럼 달려가 부딪쳤다. 짜릿한 쾌감이 스치는가 싶더니 분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 하하! 하하!”
웃고 있으니 어느 쿠키맨이 지훈을 향해 빨간색과 흰색이 섞인 줄무늬 막대 사탕을 겨눴다.
찌익 - 퐁!
그 안에서 작은 초콜렛이 튀어나오더니 퍽 터졌다.
“오호라, 네놈이 날 쐈다 이거지!?”
손을 내려다봤다.
역시나 같은 사탕이 들려있었다.
너도 당해보라는 심보로 쿠키맨에게 겨눴고, 쐈다.
찌이이익 - 퐁퐁퐁!
쿠키맨 눈이 만화마냥 X로 변하더니 몸이 터져나가며 분홍색 잼을 잔뜩 토해냈다.
“꼴 좋다, 망할 놈! 푸하하!”
다음 적수를 찾기 위해 눈을 돌리자, 쿠키맨들이 서로를 향해 서로 사탕을 겨누고 초콜렛을 쏴대고 있었다.
무지갯빛 분수 안에는 수없이 많은 쿠키맨들의 잔해와 함께 입에 넣으면 황홀할 것 같아 보이는 아름다운 잼들이 널려있었다.
“나 빼놓고 즐기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알록달록 꿈동산 속.
쿠키맨들과 섞여 과거 어렸을 적처럼 재밌게 놀았다.
쿠키맨들이 지훈에게 집중포화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지훈에겐 관심 없이 서로 싸웠던 까닭에 손쉽게 모두 제압할 수 있었다.
어느덧 마지막으로 남은 쿠키맨까지 제압하고 난 뒤, 지훈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벌써 끝이야?”
흥이 식었다.
뭐 할까 싶다가 손에 들린 사탕을 내려다봤다.
‘이제 이건 질렸어.’
손에 들고 있던 줄무늬 사탕을 버리고는, 어깨에 메고 있던 맥주 모양 사탕을 집어 들었다.
맛있어 보였다.
‘맛이나 한번 볼까.’
한번 슥 핥아보자 뇌가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아 돌았다.
“오…?”
입안에 막대 사탕을 가득 머금고…
손을 움직…
움직…
움직…
“아….”
뭔가 이상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뭔가 중요한 일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더라?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여긴 어디지?
사탕?
내가 사탕을 왜 들고 있지?
수없이 많은 질문에 머뭇거리기도 잠시.
‘모르겠다, 그냥 맛있으면 됐지. 나중에 생각하자.’
사탕을 목젖까지 쑥 밀어 넣고, 손을 움직…
움직…
움직…
- 저항 시도!
- 성공, 정신계 이능에서 벗어납니다!
눈앞이 흐려졌다.
☆ ☆ ☆
시야가 회복된 후 처음으로 본 건 바로 총이었다.
AS VAL의 총열이 보였다. 이는 곧 총열을 입에 넣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게 뭔…?’
현재 아스발 안에 들어있는 탄환은 VGC탄.
저딴 걸 연약한 속살에 맞았다는 100% 관통이었다.
순식간에 뽑아내자 어지럼증과 함께 구토감이 몰려왔다.
입을 꾹 다물고 주변을 훑어보니 연구원과 경비 모두 쓰러져 있었다.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는 꼴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처럼 보였다.
상황파악을 하고 있자니 민우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혀, 형님… 괜찮으… 꺽!”
눈, 코, 귀 그리고 입.
민우는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능 폭주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아주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극소수의 이능력자에게 나타났다.
“너 이 새끼야, 괜찮아!?”
세상이 빙빙 돌아 걷기 어려웠으나, 민우의 상태가 더 심각해 보였기에 애써 걸어가 붙잡았다.
“제가… 제가 해냈어요… 드디어 제가… 쿨럭.”
민우가 말을 하다말고 피를 토해냈다.
내용을 통해 방금 봤던 게 민우의 이능이었음을 깨달았지만, 당장은 추궁보다 걱정이 앞섰다.
“알겠으니까, 일단 닥쳐 새끼야!”
“저는 더 이상… 짐이 아닌거죠? 그렇죠?”
민우의 눈에서 피와 눈물이 섞여 나왔다.
“한 번도 짐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 이 병신아!”
“고맙습니다….”
민우는 안심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표정이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티 없이 맑아,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나 민우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다행히 심장 박동은 규칙적이었다.
아마 단순 기절이리라.
안심하고는 민우를 등에 업었다.
끈적한 피가 목에 잔뜩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귓가에 고른 숨소리가 들린다는 것에 안심했다.
다음으로 칼콘을 확인했다.
제 방패를 이빨로 물어뜯고 있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덤벼들 것 같아서 너부러져 있던 이름 모를 인간의 손을 집어 던졌다.
퍽!
“크어어어!”
칼콘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살기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의수만 조심한다면 백병전은 호각.
신체 능력 강화를 언제든지 발동할 수 있게 준비했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그러냐?”
“몰라, 하지만 맛있어 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뛰쳐나가, 그대로 팔꿈치로 턱을 후려쳤다. 칼콘은 뻑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김지훈, 새끼야. 김지훈!”
이름에 반응했는지 칼콘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기… 어? 내 고기 어디갔… 지훈?”
“이제 정신이 좀 드냐?”
칼콘은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고는 토악질을 해댔다.
위액 범벅이 된 이름 모를 고기가 쏟아졌는데, 그걸 보자 형언할 수 없는 혐오감이 들었다.
“어지러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민우가 한 것 같아.”
“민우가?”
“그래.”
단답하고는 마법사의 상태를 살폈다.
녀석은 제 손으로 목을 졸라 질식사한 상태였다.
‘쉽게 끝났다면 쉽게 끝난 건가.’
정신 감응에 반쯤 미쳐버렸던 걸 제외하면 분명 손쉬운 승리였다. 저항력이 강한 지훈이 이 정도였다면 아마 경비와 연구원들은 엄청난 걸 봤으리라.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에 몸서리치기도 잠시. 지훈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자료를 찾아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USB 같은 이동식 저장 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찾는 것이었지만, 연구실 책임자가 사망한 상태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 전자 저장기기, 마법적 기록, 연구원 납치 혹은 뇌 적출 등 어느 방법을 써서든 연구 자료를 획득해라.
반지 정보에는 분명 저렇게 적혀 있으니, 총 책임자 혹은 그에 준하는 인물의 머리만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시체 속을 뒤지기를 약 30분.
유독 하나만 명찰 색깔이 다른 한 시체를 발견했다.
주변 연구원에게 공격당했는지, 두 눈이 없는 상태였다. 아마 안구에서 난 출혈로 인해 쇼크사한 모양이었다.
‘나이는 60대 후반인가.’
명찰을 확인하니 영어로 총 책임자라고 적혀있었다.
날카로운 도구가 없었기에 손으로 머리를 뽑아냈다. 손에 끔찍한 감촉이 전해지며 쑥 뽑혀 나왔다. 쓸 대 없이 딸려 나온 뼈는 발로 밟아 작살냈다.
가는 길에 문득 발에 어떤 시체가 걸렸다.
‘전자기 필드를 만들어 냈던 녀석인가.’
무장을 보자 딱 봐도 마법사는 아니었다.
팔목에 투명한 플라스틱 보디에 이상한 보석이 박혀있는 하완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혹시 몰랐기에 챙겼다.
필요한 물건은 전부 챙겼기에 비틀거리는 칼콘을 챙겨 격벽 밖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연구소 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