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아 -->
약 15분 전. 정확하게는 지훈이 깨어나서 한참 작전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
“Siinsamas? Ükskõik kui varemed otsida sõltuma? (여기 맞아? 그냥 폐허잖아?)”
“Täpselt. Ta on teinud suuri asju sinna taha seda. (정확해. 저 아래 위대하신 그분께서 원하는 물건이 있다.)”
하즈무포카의 하수인들이 일본 개척지 아래에 숨겨져 있는 연구 벙커를 가리키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녀석은 과거 지훈과 붙었던 거대화와 전이계 이능을 쓰는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무기질 느낌이 짙게 나는 인섹토이드(곤충 인간)이었다. 성별은 알 수 없었다.
“Nii et on ka midagi seal, poisid? (그럼 저곳에 그 녀석도 있겠네?)”
“Tahad teada, teisel päeval ja nägin mitu gin? Kuigi hindamatu. (저번에 졌던 걸 복수하고 싶나 보지? 한심하긴.)”
“Ole vait. Sa tead, mis midagi on, ilma minu sekkumiseta oli ülekaaluka võidu! (닥쳐. 너 따위가 뭘 알아, 방해만 없었다면 나의 압승이었어!)”
“Pea meeles, et praegune missioon on koguda mitte pealt kuulata. Suur lase teda Ta ei taha, et ma suren veel helisema kasutaja. (현재 임무는 요격이 아닌 수집임을 명심해. 위대하신 그 분께서는 아직 반지 사용자가 죽는 걸 원치 않으셔.)”
남자는 이를 꽉 깨물고는 연구 벙커로 향했다.
15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식사 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수 없이 많은 포탑과 터렛은 물론, BSS 측 경비들이 수도 없이 죽어나갔다. 이에 연구소는 진행 중이던 작업을 정지하고 모든 경비 인력은 입구 쪽으로 밀어 넣었다.
딱 지훈이 실험체 보관실에서 밖으로 나온 시점이었다.
☆ ☆ ☆
다시 15분 후, 현재.
에에에에에엥 -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계속됐다.
감각을 늦추지 않고 걸어가길 잠시, 문득 코너 저편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타다다타다!
보폭이 일정치 않은 게 2인 이상인 듯싶었다.
- 멈춰.
수신호로 마법사를 멈춘 뒤, 빠른 속도로 달려가 코너에 찰싹 달라붙었다.
‘빨리 와라, 이 개 좆만도 못한 니미 씨부랄 새끼야.’
심호흡을 하며 귀에 정신을 집중했다.
소리가 굉장히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다.
몸을 돌리는 회전력에 몸무게까지 싫어 팔을 휘둘렀다.
주먹을 이용한 점 공격이 아닌 팔 전체를 이용한 횡 공격이었다. 레슬링 기술의 일종인 크로스 라인. 보통은 적의 목에 걸어 넘어뜨리는 용도로 사용됐다.
꾸욱 - 퍽!
인영의 쇄골에 팔이 정확히 걸리며 풀썩 쓰러졌다.
엄청난 소리가 난 걸 봤을 때 머리부터 떨어져 뇌진탕에 시달릴 게 분명했다.
몸을 던져 나머지 하나를 확인했다.
흰색 보호복을 입은 남자가 영어를 지껄였다.
단지 무장을 하지 않은 것을 보아 연구원 같았다.
도망을 가든 말든 무시하고는 쓰러져 있는 경비의 턱을 싸커킥으로 차 마무리했다.
‘총은 없는 건가?’
자세히 보니 등에 멘 상태였다.
꺼내보니 처음 보는 총이다. 아무래도 보사에서 직접 만든 차세대 총기인 모양. 조종간을 단발로 놓은 뒤 집중 이능을 발동해 연구원의 허벅지를 겨눴다.
탕 - 퍼억!
“마법사, 너 영어 할 줄 알지?”
“하, 합니다. 잘 합니다!”
바로 맨손으로 사람 조지는 걸 봤기 때문인지, 마법사는 조곤조곤 말을 잘 들었다.
“민우, 칼콘 그리고 장비 있는 곳 물어봐.”
마법사는 연구원에게 다가가 죽이지 않는다고 약속하고는, 원하는 정보를 물어봤다. 고문과 공포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었기에 손쉽게 술술 털어놨다.
‘칼콘은 연구 2동, 민우는 연구 1동인가.’
연구소 구조는 크게 경비동, 주거동, 연구동, 창고로 나뉘었다. 유일한 입구이자 출구 주변에 경비동과 대부분의 병력이 있었고, 그다음으로 주거동, 연구동 순서였다.
그중 지훈이 있던 곳은 연구 3동으로 연구실에서 제일 깊숙한 곳이었다.
‘장비는 각 연구동 창고에 나뉘어 있는 건가.’
머릿속으로 이동 동선을 그렸다.
“여기 담당자 새끼 누군지 물어봐.”
마법사는 얼마 후 연구 1동에 있는 안드레이라는 늙은 러시아인 연구원이라고 답했다.
‘이 난리 속에서 그 녀석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비상사태라면 연구원들을 안전한 주거 공간 속에 밀어 넣었을 터.’
칼콘이 있다면 모를까 혼자서는 절대로 뚫을 수 없었다.
총알 맞는다고 해서 뚫릴 C등급(강화 포함) 육체와 C등급 갑옷이 둘 다 뚫리진 않겠지만, 세게 두드리는 운동 에너지를 이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집중포화를 맞았다가는 내장이 걸레가 될 게 분명했다.
“자료 백업 있냐고 물어 봐.”
“있다 합니다. 근데 엑세스 조건 대장만 있다 입니다.”
아마 방대한 양이니 메인 프레임 내지는 슈퍼컴퓨터에 넣어놨을 터, 그 거대한 물건을 뜯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어쩌나 저쩌나 안드레이라는 담당자가 필요했다.
정보는 다 얻었기에 연구원에게 총을 겨눴다.
“You said promise to me! (살려준다고 약속했잖아!)”
“That's him, not me. motherfucker. (나는 안 했는데?)”
보호복 유리에 총구를 딱 붙여서 발사했다.
탕 소리와 함께 탄두가 머리에 박히는 동시에 터져버렸다.
당연히 그 반동으로 지훈은 피범벅이 됐으나, 불쾌한 감정 말고는 딱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구경이랑 총알이 도대체 뭐 길래 이따구로 터져?’
보통 유탄류는 관통 없이 착탄과 함께 폭발한다. 하지만 이 탄환은 분명 표적을 ‘관통’하고 나서 폭발했다.
폭발 마법탄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일개 경비에게 발당 가격이 입 떡 벌어지는 물건을 쥐여 줄 리 없었기에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일단 중요한 건 화력이 좋다는 거다.’
애초에 칵톨레므도 원격으로 조종하고, 주사 몇 방으로 없던 이능까지 만들어내는 놈들이었다.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는 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경비 하나에 연구원 대여섯쯤 되는 무리와 마주쳤다.
“Subjuect 51? how……. (실험체 51? 대체 어떻게…….)”
연구원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풀오토로 갈겼다.
전기톱 긁듯 탄환들이 가로로 연구원 무리를 양단했다.
가속 이능을 사용했기에 경비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모조리 처리할 수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바로 이동하려는 찰나…….
욱신!
누군가 뇌에 침을 놓는 것 같은 날카로운 편두통과 함께 왼쪽 얼굴이 욱신거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막자, 손등에 뭔가 얕게 퍽 하고 박히더니 쾅하고 터져버렸다.
BSS 경비의 총알이었다.
‘살아있다고? 어떻게? 즉사해야 정상인데?’
호기심보다 제압이 먼저였기에, 양손으로 머리를 보호한 뒤 그대로 경비 쪽으로 달렸다.
타타타타탕!
콰콰콰콰쾅!
수없이 많은 탄환이 몸을 흔들고, 터졌다.
다행히 몸에 박히지는 않은 터라 가볍게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끝났다.
퍼억!
턱을 발로 차자 기괴한 소리가 나며 고개가 돌아갔다. 그걸로도 혹시 몰랐기에 머리를 밟아 두개골을 뭉개버렸다.
맨발에 물컹한 느낌과 동시에 날카로운 뭔가가 밟혔다.
뇌 속에 날카로운 것.
뭔가 싶어 보니 컴퓨터 같은 게 부서져 있는 게 보였다.
‘임플란트?’
보통 한국에서 임플란트라고 하면 ‘인공 치아’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공장기에도 쓰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원 왜곡 이후 생체 공학이 엄청나게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MES의 대안품으로 나온 게 바로 임플란트였다.
팔다리를 잘라내지 않고도 비각성자를 저등급 각성자만큼 강하게 만들 수 있게끔, 장기는 전부 인공으로 교체하고 뇌에는 제어 및 연산 가속 부품을 집어넣었다.
‘미친 새끼들…….’
몇몇 헌터들이 부상으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임플란트를 넣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복부가 터져나가고도 생존했다면 아마 거의 모든 장기가 임플란트인 것은 물론, 통각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기본 골자가 인간인지라 척추(목)를 작살내거나 머리를 잘라내면 죽지만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힘든 전투가 이어질 것 같았기에, 쓰러뜨린 경비에게서 탄띠 및 예비 탄창을 노획했다.
창고를 찾기 위해 연구 3동을 헤집던 중 적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리자드맨……. 같이 보이는 녀석이었다.
변이 계통으로 실험을 당한건지, 비늘은 모조리 벗겨져 있었고 등에는 손바닥 2개 만한 작은 날개가 돋아 있었다.
“쉬이익! 쉬익!”
리자드맨은 꺼지라는 듯 손짓했다.
옷이 같았기에 같은 실험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불필요한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리자드맨 얘기였고, 이쪽은 아니었다.
탕!
리자드맨이 풀썩 쓰러졌다. 아무리 전투 의지가 없다고 한들 살려뒀다가 나중에 괜한 변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였다면 살려 보내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강적이 넘쳐남은 물론,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황천 가는 상황에서 괜히 위험을 남겨 둘 필요는 없었다.
창고는 연구 3동 구석에 있었다.
연구원을 죽이고 노획한 카드키를 단말기에 긁었다.
삐빅 -
쉬이이이익.
언제 봐도 우주선 같은 문이 열리며 창고가 드러났다.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서인지 장비들은 전부 비닐로 밀봉해 놓은 상태였다. 몇몇 물품은 소각 예정이었는지, 불꽃 그림이 그려진 메모가 붙어 있기도 했다.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얼핏 보기에 겉에 힘을 잔뜩 줘 등급이 높은 아티펙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모조리 무시했다.
‘좋은 물건이었다면 아마 노획해서 사용하고 있을 거다.’
지훈의 물건은 비교적 바깥쪽에 있었다.
창고가 컸던 까닭에 슥 훑고 지나가야 했으므로 못 찾을 법도 했지만, AS VAL이 워낙 특이하게 생긴 총기라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철컥, 철컥!
보호복을 제외한 모든 장비를 착용했지만, 경비에게서 노획한 총은 여전히 들고 다니기로 했다.
탄약 때문에 밖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총이지만, 연구소에는 넘쳐났기에 걱정할 것 없었다.
“저, 저는 어떻게 하냐 입니까?”
마법사가 제 장비를 찾지 못하고 버벅였기에,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상자를 뜯어서 건네줬다.
안에는 AR-15(아말라이트-15) 계통 M16A1과 함께 투박한 가죽 갑옷이 들어 있었다.
“저, 저는 마법사입니다!”
마법사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무시했다.
“실전에서 쓸모 있는 마법은 단 한 번도 못 쓴 새끼가 그딴 말이 잘도 튀어나와? 내 손에 뒤지기 싫으면 총 들어.”
어차피 개판 된 상황에서 칭얼거리는 용병을 달래 줄 여유와 시간 따위 없었다.
결국 마법사는 끙 소리를 내며 장비를 입었다.
“이제 우리 어디 가냐 입니까?”
“연구 2동. 칼콘을 구하러 간다.”
아스발은 사선으로 매고, 업을 짊어지는 자는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끔 왼쪽 허리에 맸다.
‘사람을 모르모트로 쓰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주 똑똑히 보여주마.’
이를 꽉 깨물고는 창고 밖으로 나갔다.
오는 길을 전부 정리해 뒀기에 시체만 즐비해서 B급 고어 필름을 보는 것 같았지만, 지훈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적이 가득 차 있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