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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140화 (140/173)

<-- 위험한 곳에 더 큰돈이 있다. -->

리자드맨과의 전투가 끝난 뒤 계속 남쪽으로 향했다.

길잡이는 점점 더 사지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렸으나, 기관총, 마법사, 샤오핑은 연이은 승리에 헤죽헤죽 웃기만 했다.

“방금 의뢰인 봤어? 나 무슨 진짜 영화 찍는 줄 알았다니까? 존나 하늘을 날아서 쨍하고 들어가는데……!”

“경공을 보는 것 같았다. 멋지더군.”

“나 의뢰인 다시 봤다 입니다.”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닥치고 걸어, 새끼들아.”

되지도 않는 칭찬 듣기도 거북했거니와, 잡담으로 소음 뿜어봐야 벌레만 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마디 하자 다들 찍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적당히 걷고 있자니 칼콘이 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Jah see läheb tööle?(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내용 유출을 우려해서인지 고대어로 묻는 칼콘이었다.

방법 자체는 훌륭했으나 개인적으로 해당 언어를 좋아하지 않았고, 실제로 마법을 쓸 때 말고는 될 수 있으면 입에 담지 않았던 터라 얼굴부터 찌푸렸다.

“저쪽에 안 들리니까 그냥 말해.”

“이러다 진짜 디스톨팅 스톤만 잔뜩 주워다 가는 거 아닐까 싶어서.”

절대 그럴 일 없었고, 또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디스톨팅 스톤은 분명 부수적인 임무일 뿐, 지훈의 최우선 목표는 연구자료 획득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잘 한다.”

“응, 알겠어. 지훈만 믿을게.”

칼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멀어졌다.

잘 걷던 중 길잡이가 갑자기 멈췄다.

“이 앞은 저도 아무런 정보를 모릅니다. 정말 길 가다 지뢰 밟고서 죽을 수도 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방사능에 피폭돼서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래서, 되돌아가자고?”

길잡이의 머리가 세로로 두어 번 흔들렸다.

“이건 정말 미친 짓입니다. 자살이라고요!”

“너 말이야 참 재밌는 얘기를 하네. 일본 개척지에 용병 길잡이 하는 게 장난인 줄 알았나 봐?”

헌팅.

IHA(국제 헌팅 협회)는 작년에만 헌팅으로 인한 사망 및 실종자(지만 보통은 죽었다고 생각한다)가 25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지훈이 하는 일마다 아무런 희생 없이 잘 마무리해서 그렇지, 보통 용병이든 헌터든 뭐든 필드에 나가는 순간 목숨 버릴 각오하고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지금 여기서 지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하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어. 다 알고 있다고, 알간?”

“그, 근데 어째서…….”

길잡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전투와는 연이 없던 까닭에 ‘도대체 위험한 거 알면서 왜 들어가는 겁니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위험한 곳에 더 큰돈이 있으니까.

어차피 목숨을 저당 잡힌 상태라면, 그 목숨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내야 했다.

길잡이야 용병들과 지훈 일행이 기를 쓰고 보호해 주니 몰랐겠지만, 길잡이를 제외한 사람은 전부 개척지에 들어오면서부터 피부가 아릴 정도로 짙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돈.”

길잡이는 결국 할 말을 잊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일 끝나면 각자 1억씩 챙겨 가자고, 응?”

물론 일이 잘 끝났을 경우에야 그럴 수 있겠지만.

잘 다독이자 결국 길잡이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지도에 표시된 정보는 없지만, 여태까지 이 방사능 덩어리를 누비고 다닌 짬밥은 어디 가질 않았다.

“근데…….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여기 주변 너무 깨끗한 것 같습니다.”

길잡이는 슬쩍 가이거 계수기를 살펴봤다.

여태껏 고장 난 라디오마냥 계속해서 지직, 지직 거리는 소음을 내뱉었거늘 어째 그 소리가 작았다.

방사능이 옅다는 소리였다.

그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마법 오염도 현저하게 줄었으며, 누가 왔다 가기라도 한 것처럼 지뢰가 전부 해제되어 있었다.

“거봐, 여기 어떤 새끼들이 지들끼리 처먹으려고 헛소문 퍼드린 거라니까?”

기관총이 헤벌쭉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여기는 잘 안 뒤졌을 테니까, 분명 디스톨팅 스톤이 잔뜩 있을 거라고! 우린 부자가 될 거야!”

이는 또한 연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도 됐기에 남들이 보지 못할 미소를 지었다.

본디 연구실은 제 혼자서 자립이 가능한 시설이 아니었다.

전력까지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연구물품이나 식량 같은 건 무슨 수를 써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누군가가 길을 뚫어놨을 거란 말이지.’

아마 그 길은 현재 일행이 걷고 있는 검은 선, ‘데드라인’일 가능성이 컸다. 실종됐다는 헌터들 역시 연구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사살했을 게 분명하겠지.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울 정도로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놓고 이동하기도 잠시…….

갑자기 일행 주변으로 작은 쇳덩이들이 치솟았다.

“씨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동자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움직였으나…….

파지지지지직!

일행을 원형으로 감싼 쇳덩이에서 전류가 흘러나왔다!

“으거거거꺽!”

이를 꽉 깨물고 버텨보려고 했으나, 근육을 강제로 비틀고 인간의 신호체계를 뒤흔드는 전기에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하나둘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니미……. 이번엔 전기냐…….’

지훈은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신경계까지 강화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머지않아 쓰러졌다.

오로지 길잡이만 우뚝 서 있었을 수 있었다.

번 돈을 모조리 보호복에 투자할 수 있었기에 전기에도 저항이 있는 보호복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 이봐요! 어떻게 된 거에요!”

길잡이는 깜짝 놀라 지훈을 흔들어 깨웠지만, 방금 기절한 사람이 도로 일어날 리는 만무했다.

철컥, 철컥.

일행이 모두 쓰러지자 가까운 건물에서 검은 인영 여섯 개 튀어나왔다. 개 중 하나가 각성자 검사기로 보이는 물건으로 멀찍이서 길잡이를 슥 훑었다.

삐빅 -

“확인 결과 보고. 비각성자. 사살할까요?”

분대장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푝 하는 소리와 함께 길잡이가 바닥이 쓰러졌다.

…….

1초, 2초, 3초……?

기억이 뚝 끊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흐어어어억!”

죽었다가 깨어난 시체처럼 소리를 질렀다. 온몸이 바싹 익는 고통에 비명도 못 질렀으니, 뒤늦은 비명이 나온 것 같기도 했다.

“끄어억!”

두 번째 비명이 울렸다.

한 번으로는 시원하지 않아서 한 번 더 지른 걸까?

당연히 아니다.

눈앞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깜짝 놀라 바닥에 엎어졌다. 손에는 바늘이 노란색인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메가 나이트?’

메가 나이트, 줄여서 MN.

C등급 합판을 관통하는 강력한 금속.

저게 주사기에 박혀있다면 분명 병원 아니면 연구소 둘 중 하나였고, 지훈이 쓰러진 장소가 일본 개척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씨발, 연구소라고?’

들어온다는 계획 자체는 성공했으나,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들어오게 됐다.

“경비, 경비! 실험체가 깨어났다!”

상황을 파악하느라 잠깐 시간을 지체한 사이 연구원이 사람을 불렀다.

치이익 - !

우주선에나 달려 있을 법한 두꺼운 철문이 세로로 열리며 경비가 나타났다. 푸른색 야광 봉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러기에 전에 경비가 다가와 푸른색 야광 봉을 지훈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파지지지지지지직 - !

강렬한 전류가 온몸을 가로지른다!

“으거거거걱! 꺽! 거어어어억! 이 개…… 새끼……가!”

온몸을 비틀며 저항했으나, 그나마도 잠시. 경비가 제압 봉 스위치를 만지작거리자 얼마 후 하체가 뜨뜻한 느낌과 함께 의식이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분노도, 복수도 아니었다.

어째서 경비가 보사가 만든 사설 경비 업체 BSS(BOSA Security Service)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가 였다.

연구원은 멀찍이서 지켜보다 말했다.

“이, 이봐. 저거 죽은 거 아냐? 몸에서 연기 나잖아!”

“각성자는 이 정도로 죽지 않습니다.”

“고기 타는 냄새는 또 뭐고, 저 새끼 오줌까지 지렸잖아! 제압하랬지 누가 죽이라고 했어! 저 실험체가 얼마나 귀중한 자원인지는 알아?”

“죽지 않았습니다.”

짧은 단답에 연구원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리고 그 힘줄은 머지않아 폭언을 불러왔다.

“어디 집 지키는 개가 주인한테 말대답이야! 개새끼가, 우리가 너 그러라고 월급 주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경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약간은 로봇 같은 모습이 연구원의 화를 더 북돋웠다.

“이미 헬레이저 강습 부대로 만든 강화 약품을 투여했단 말이다! 저 새끼 뒤지면 중요 자료가 날아간다고! 알겠어?”

“죄송합니다.”

경비는 다시 한 번 무표정하게 사과했다.

연구원은 그 모습을 보고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됐다, 됐어. 씨발……. 임플란트 잔뜩 박아서 이제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새끼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고…….”

연구원은 이후 주사기로 지훈 안에 이상한 약물을 주사하고는, 지훈을 실험체 보관소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 ☆ ☆

비슷한 시각, 연구 2동.

마치 도마 위에 기절한 생선이 올라가 있는 것 마냥, 칼콘이 차가운 철제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연구원은 칼콘을 조용히 지켜보다 기계를 작동했다.

“연구 일지 149번. 실험체 중 오크가 들어왔다. 현 실험 상황으로는 인외종에게 약물 투여 시 강력한 부작용이 보였다. 특히 리자드맨의 경우 투여 후 48시간 후에 사망했다. 하지만 리자드맨은 포유류가 아닌 파충류로 분류되기 때문에, 같은 포유류인 오크에게 같은 실험을 해 볼 필요성이 있다.”

연구원은 칼콘에게 이상한 약물을 주사했다.

“등급 강화제 샘플 32 주입 완료.”

☆ ☆ ☆

비슷한 시각, 연구 1동.

연구원 둘이 민우를 고민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이거 인간 같죠?”

“생긴 건 아무리 봐도 인간이군.”

“근데 인간이 아니라뇨, 거 참 우습네요.”

늙은 연구원이 턱을 긁적였다.

“비각성자인데 이능력 사용이 가능하다라…….”

“아마 인간으로는 최초겠죠?”

“인간이라면 최초겠지.”

그 말이 꼭 인간이 아니라는 것 같아 말투가 묘했다.

“사람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괴물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천면귀(千面鬼)? 아니야. 그 녀석은 의식을 잃으면 본래의 흉측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럼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젊은 연구원이 눈을 반짝거렸다.

“해부하는 겁니까?”

“거 젊은 놈이 이상한 것만 배워서는……. 야만인도 아니고 무작정 째면 다 되는 줄 아나? 그 전에 작업할 게 산더미야!”

“살려둔 채로 연구하겠다고요? 이 실험체는 클레이보얀스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살려두면 곤란할 텐데요. 일단 눈부터 뽑죠. 그럼 보질 못할 겁니다.”

“하……. 내 조수로 들어온 새끼가 이렇게 멍청한 놈이라니. 한 번만 더 되지도 않는 소리 지껄이면 가만 안 두겠다.”

젊은 연구원은 어깨를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

“일단 대화부터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으니까 직원 숙소에서 재워 둬. 우리 팀은 이 실험체를 최우선으로 연구한다.”

늙은 연구원은 경비를 불러 민우를 직원 숙소로 옮겼다.

남은 시간 - 128시간 (5일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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