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심과 욕망. -->
다음 날 아침.
일행은 고된 하루를 대비해 식량을 까먹었다. MRE가 조리되길 기다리고 있자니 문득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나 어제 새벽 봤습니다. 강력한 마법.”
뭉뚱그린 단어들 때문에 정확히 뭘 말하려는 지 알 수 없었다. 다들 별생각 없이 무시하고는 식사를 했다.
딱 마법사가 다음 말을 꺼내기 전까지만.
“내 생각, 소문의 리자드맨 마법사. 위험하다입니다.”
일행 중 지훈과 길잡이의 눈만 초승달처럼 휘었다.
“언제 봤지?”
“새벽 4시. 저쪽입니다.”
길잡이는 MRE를 내려놓고는 바로 방향을 살폈다.
“서쪽이네요. 저쪽이면 아마 리자드맨 부족이 순찰하는 장소일 텐데……. 아마 다른 헌팅 팀이 운 나쁘게 소문의 마법사와 마주친 것 같군요.”
“우리와 마주칠 가능성은?”
“저번에 매복하고 있었던 걸 봤을 때, 최근 들어서 순찰 범위를 늘린 것 같습니다. 없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요.”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마법사가 희번덕거렸다.
“What the hell are you talking about! That's a bullshit! If we meet the fucking lizard magician, we be a fucking dead man. Hua!? (뭘 개 같은 소리 하는 건데! 만약 우리가 그 좆같은 도마뱀 마법사 만나는 순간 우린 다 뒈진 목숨이라고!)”
한국어가 서투르니 영어로라도 돌아가자는 걸 피력하고 싶은 듯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나가려야 나갈 수 없었다.
“가고 싶으면 가. 혼자서.”
“Are you kidding me? (장난해?)”
“왜 돈 많이 쳐준다고 할 때는 발정 난 개처럼 달려들더니, 왜. 조금 위험하다 싶으니까 잘 섰던 좆이 죽었나 보지? 애새끼처럼 징징대지 마라. 오래 살고 싶으면.”
마법사는 구시렁거리며 물러났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무조건 디스톨팅 스톤을 챙겨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끝낸 뒤 일행은 다시 보호복을 입고 이동했다.
“오늘은 디스톨팅 스톤을 찾으러 간다. 이 주변에서 4시간 수색하고, 그다음엔 해가 지기 전까지 다음 포인트까지 이동한다.”
당연히 다음 포인트 방향은 남쪽이었다.
“그럼 일단 동쪽으로 가죠. 서쪽은 리자드맨이랑 마주칠 위험이 있습니다.”
성큼 움직이는 길잡이를 따라 일행이 걸음을 옮겼다.
많은 스토커와 헌터들이 오갔던 만큼 지뢰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문제가 튀어나왔다.
바로 마법 오염이었다.
“잠시 정지. 앞에 마법 오염이 있는 것 같네요.”
길잡이는 일행은 세우고는 앞을 가리켰다.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어려웠지만,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보였다. 마치 그 장소에만 불투명한 필터가 낀 느낌이랄까?
길잡이가 보호복에 달려있던 주머니를 집었다.
안에는 동글게 말린 알루미늄이 들어있었는데, 캔 음료를 구겨서 만든 것 같았다. 도대체 저게 왜 필요할까 싶은 생각도 잠시.
길잡이가 그 알루미늄 덩어리를 마법 오염으로 집어 던졌다.
우 - 으 - 으 - 으- 응 - !
불투명한 공간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순식간에 알루미늄 덩어리를 삼켜버렸다. 이후 마치 토네이도처럼 빙글빙글 돌아 하늘로 솟구치듯 올라가서는…….
퍽!
섬뜩한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알루미늄 덩어리라서 저 정도였지,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피 분수가 됐을 게 분명했다.
“빨려 들어가는 순간 끝입니다. 터지고, 터져서 고기 한 점 남지 않을 때까지 반복돼요.”
마법 오염은 강력한 마법사가 마법을 남용할 시 지면에 남는 뒤틀린 잔류 마나를 말했다.
보통 술사가 어떤 마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생성되는 마법 오염도 천차만별이었고, 그만큼 대응하기 어려웠다.
“방금 본 오염은 토렌트(급류)라고 불립니다. 중력에 관련된 마법을 쓰면 남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잠깐만, 설마 종류가 여러 개라고?”
“예. 들어가면 불이 붙거나, 녹아내리거나, 심지어 전류가 통하는 오염도 있습니다. 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요.”
민우가 얘기를 조용히 듣다가 끼어들었다.
“보니까 푸른색으로 희미하게 외곽이 보이는데, 저게 마법 오염인가요?”
일행의 눈이 전부 민우에게 향했다.
“보인다고요?”
“예. 용트림하듯 하늘로 솟구치고 있네요.”
보일 수밖에 없는 게, 현재 민우에게는 마나 감지 안경을 씌워 놨다. 혹시 몰라 챙겨왔기에 준 것인데 다행히 효과가 있는 듯했다.
“에이, 기우겠죠. 저걸 어떻게 사람 맨눈으로 봅니까.”
길잡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찌푸리곤 이동을 재개했다.
스슥, 스슥, 스슥.
토렌트 오염은 사람 허리 높이부터 있었기에 다들 기어서 통과했다. 이후 잠시 길잡이가 멈칫거렸다.
“잠시 만요. 앞에 뭐 보이는데……. 어디 있는지는 잘…….”
버벅이는 사이 민우가 슬쩍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아니에요?”
이에 길잡이가 바로 알루미늄을 던지자 퍽 소리가 났다.
정답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게 진짜 보여요?”
민우는 어색하게 웃고는 말았다.
괜히 마력 감지 안경 같은 걸 얘기했다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돈 벌고 싶으면 잡담 그만하고 주변이나 잘 훑어. 어디에 디스톨팅 스톤이 있을지 모른다.”
약 30분 정도 수색했을까?
샤오핑이 구멍이 숭숭 뚫린 돌덩이를 가리켰다.
얼핏 보기엔 구멍 크기가 좀 큰 현무암처럼 보였다.
“저거 같군.”
디스톨팅 스톤이 발견되자마자 길잡이가 물었다.
“채집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디스톨팅 스톤은 마법 오염지대 가운데에 생성됐다.
이후 바람이나 외적인 요인에 의해 굴러오거나 튕겨 나가기도 했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염 주변에 있다고 봐야 옳았다.
이에 대부분의 스토커나 헌터들은 목숨을 건 외줄 타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가져왔지만, 팀에 마법사가 둘이나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양키, 저기다 볼트계 마법 하나 써 봐.”
볼트(Bolt, 석궁 화살)계 마법이란 상대방에게 직접 피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공격 마법을 말하는 단어였다.
좋은 예로 화살 시리즈 마법과, 화염구 등이 있었다.
“Zargon'Th Nool magada!(자르곤의 수면 화살!)”
마법사가 영창을 하자 스태프 끝에서 짙은 보라색 화살이 나타나 디스톨팅 스톤 쪽으로 날아갔다.
우으으응 - 쪙!
키이이이이잉!
퍽, 퍽, 퍽, 퍽!
공명음과 함께 날아간 마법이 오염에 적중, 오염 속에 남아있던 잔류 마나와 공명하기 시작하며 오염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씨, 씨발 저거 뭐야!”
기관총은 허공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지만, 지훈은 재빨리 정신을 집중했다.
“kitkuma.(당기기.)”
총알에 집어넣을 마법 중 prantsatama(밀치기)를 배우는 과정에 습득한 마법으로, 원하는 물건을 시전자 쪽으로 끌어당기는 마법이었다.
이이잉 - 턱!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디스톨팅 스톤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공중에 붕 떠 지훈의 손에 딱 들어왔다.
“채집 별거 없네.”
마법을 이용해 오염을 뒤흔든 뒤 끌어당겨 채집하기.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살짝 긴장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너무 쉬워서 김이 픽 새버렸다.
물론 쉽다는 건 지훈 일행에게만 한정된 얘기였고, 다른 헌팅 팀에게는 꿈같은 채집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 마법사는 헌팅 아니더라도 돈 벌 일 많았기에 데려오기도 힘들거니와 그런 마법사가 둘이나 필요했다.
덤으로 어떻게 데려왔다고 쳐도 이동이나 헌팅 중 살아남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옳았다.
하지만 지훈에게는 가능한 얘기였다.
지금이야 마력을 아끼기 위해 첫 마법은 용병에게 시켰지만, 수틀리면 가속 이능 쓰고 마법을 연이어 영창하면 그만이었다.
“오, 오오……. 의뢰자 분은 마법도 쓸 줄 아셨습니까?”
길잡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B등급 괜히 찍은 줄 아쇼?”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민우에게 디스톨팅 스톤을 건넸다. 용병들 모두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움직여. 해 지기 전까지 많이 캐야 각자 받는 돈 늘어날 거 아냐?”
맞는 말이었기에 용병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아무리 일 싫어하는 놈이래도 일하는 만큼 돈이 나오면 없던 열정도 생기는 법이었다.
오전까지 정오까지 탐색한 결과 디스톨팅 스톤을 추가로 2개 더 건질 수 있었다.
현 디스톨팅 스톤의 시세는 평균 1억.
5시간 남짓 노동해서 3억을 벌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원래 디스톨팅 스톤 채집에 수집되는 위험도 없이 찾기만 하면 되니 더더욱 편했다.
“이거 정말 너무 쉬울 정도로 잘 찾는데?”
기분이 좋았는지 기관총이 헤죽 웃었다.
“너무 쉬운 것 같으면 정산금 5%로 깎아도 되겠네.”
“아, 아! 의뢰인, 이보쇼. 거 농담도 못 하겠네!”
쩔쩔매는 기관총을 보고는 픽 웃고 말았다.
여자에 환장하는 모습이 영 못마땅하긴 해도, 명령에 군말 없이 바로 반응하는 건 쓸 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행 앞에 벽처럼 커다란 오염이 나타났다. 그 모습이 거대한 비눗방울 같아 절대로 뚫고 지나갈 수 없어 보였다.
길잡이는 오염에 알루미늄을 몇 번 던져봤지만, 전부 퍽 퍽 하고 터져나갈 뿐이었다.
“이제 이 주변에는 없는 모양이네요. 되돌아가죠.”
되돌아가는 길에는 수색할 필요가 없었기에, 1시간쯤 걷자 다시 대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남쪽으로 이동했다.
‘시청까지 대충 얼마나 남았지?’
대강 추측하기엔 약 5시간 정도 남았다.
‘때를 봤다가 더 깊은 곳으로 가자고 얘기를 꺼내야겠군.’
다음 헌팅은 남쪽으로 3시간 더 이동한 뒤 실시했다.
서쪽에는 리자드맨 부족이 있었기에 역시나 동쪽으로 향했으며, 결과적으로 디스톨팅 스톤을 2개 더 찾을 수 있었다.
“이야……. 지금 하루 만에 5억 번 거야?”
기관총은 신이 나서 당장 춤이라도 출 듯 말했다.
의뢰 대금은 정산금의 7%니 현재 적립금은 3,500만 원.
F등급 각성자로 헌팅 팀에 들어가면 벌 수 있는 돈이 1,000만 내외였기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봐야 옳았다.
“위험에 비하면 비루한 수익이지.”
사오핑은 그것도 적다는 듯 눈가를 비틀었다.
그 모습에서 돈에 대한 욕심이 스쳐 지나갔고, 지훈은 그 욕망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동시에 지금이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 적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목숨 걸고 왔는데 5억은 너무 적지 않나, 적어도 15억은 챙겨가야지. 안 그래?”
15억이라는 말에 일행의 눈이 전부 지훈에게 향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푸념 혹은 허세로 들렸겠지만, 지금 저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은 B등급 각성자였다.
그 말은 곧 15억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하……. 정말 15억 챙겨갈 겁니까?”
정산금이 15억이라면, 용병에게도 1억 원이 돌아간다. F등급 용병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거금이었다.
“왜? 못할 거 없잖아.”
길잡이는 그 말에 프흐흐 웃었다.
“의뢰인 님, 패기는 좋지만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헌팅 팀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디스톨팅 스톤을 10개나 더 찾는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2번 수색해서 5개나 찾은 것도 엄청난 거였다.
“이미 거의 다 털려서 찾기 힘들 겁니다.”
“그래, 길잡이 말이 맞아. 찾기 힘들겠지. 이 주변에서는.”
끝에 붙은 말에 길잡이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관리국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간다.”
헌터들이 실종된다는 검은색 선이 그어져 있는 부분 안으로 들어가자는 얘기였다.
용병들은 주저했다.
“의뢰인 님……. 저기는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헌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요!”
특히 길잡이는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봐, 길잡이. 원래 이쪽은 소문을 너무 믿어서는 안 돼. 당신 그게 진짜 정보라고 확신할 수 있어?”
당연히 없다.
본디 위험에 관련된 정보는 70% 이상 맞았으나, 그게 거짓 정보일 30%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서 죽으면…….”
“잘 들어. 만약 저기 들어갔는데 디스톨팅 스톤이 넘친다면? 크게 한탕 하는 거야.”
크게 한탕 하자는 말에 기관총과 마법사 그리고 샤오핑의 눈이 흔들렸다. 그 모습에서 지훈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흔들면 된다.’
“언제까지 쫄보처럼 웅크리고 있을 거냐, 바로 앞에 금덩이가 굴러다니는데 저걸 놓고 가자고? 너희 다 돌았냐?”
무거운 침묵도 잠시.
기관총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걸 신호로 샤오핑, 마법사도 동의했다.
“갑시다.”
“가지.”
“나도 가십니다.”
길잡이만 홀로 하얗게 질려 절대 안 된다며 거절했지만, 그나마도 잠시였다.
“봐봐, 길잡이 양반. 당신이 저쪽 정보를 가지고 있잖아, 그럼 다른 헌팅 팀이 당신한테 얼마나 떼어줄 것 같아?”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머지않아 길잡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관리국을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잔뜩 벌 생각에 한껏 들뜬 용병 일행과 달리, 지훈 일행은 도리어 위험에 대비한 표정을 지었다.
디스톨팅 스톤은 곁가지 임무였고, 실제 임무는 연구 자료 탈환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지훈 역시 이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