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짙은 녹색 안개. -->
폐허가 된 도시 속.
안개 대신 딱 봐도 유해해 보이는 짙은 녹색 안개가 사람 머리 높이에 둥둥 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보통 매체에서 방사능을 녹색으로 표시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는 이의 직관성을 높이기 위한 배려일 뿐이었다.
현실 속의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으며, 본인이 피폭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리자드맨 마법사가 뿌려놓은 독성 구름이에요.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필터 확인하세요. 건너가야 해요.”
끼릭, 끼릭, 끼릭.
“전원 이상 무. 출발.”
마치 늪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극도로 좁아진 상태.
일행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할 듯 날카로워져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귀에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왼손을 들어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뭐지? 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확인을 위해 주변을 둘러봤으나 눈에 보이는 거라곤 100M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독구름 밖에 없었다.
“이봐, 여기 혹시 거대한 곤충 같은 것도 있나?”
“예, 있습니다. 듣기로는 거대한 곤충들이 산다고는 들었는데, 최근에 방사능 때문에 더 커졌다는 얘기가 있어요.”
보통 휴머노이드의 발은 짐승과 달리 굉장히 넓으므로, 걸을 때 턱턱 거리는 소리나 바닥을 쓰는 소리가 난다. 저런 소리라면 다리가 엄청나게 얇은 생물체라는 얘기였기에, 안심했다.
“주변에 거대 곤충이 있는 것 같으니 주의해.”
용병 일행에게 알려주고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공지가 끝나자 마치 곤충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 마냥 이상하게 소리가 뚝 끊겼다. 이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으나 단순 기분 탓이려니 하고 넘겼다.
같은 시각. 일행의 50M 뒤.
회색 비늘을 가진 이족보행 도마뱀이 길이가 4M는 될 법한 사마귀 위에 올라타 있다.
기병 같은 분위기와 달리 어깨에는 일본 자위대의 제식 소총은 89식 소총을 매고 있었다.
“쉬이 - 쉬…….”
리자드맨이 사마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품에서 피리를 꺼내 코에 꽂았다. 구강 구조상 볼이 없으므로 입으로는 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후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더니 힘차게 내뿜었다.
삐이이이이이 -
인간의 귀를 들을 수 없는 소리가 폐허가 된 도시 속을 뛰어다녔다. 이후 리자드맨은 호흡을 짧게 끊어 8번 더 불었다.
독구름 속으로 들어온 지도 벌써 반시간이 지났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건데?”
D등급의 투덜거림에 길잡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5분 정도만 더 가면 됩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10M 앞에 해제 안 된 대인지뢰 보이니까, 조심들 하시구요.”
지뢰가 있다는 말에 일행 모두 바닥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걸었다.
“근데 지뢰는 흙 같은 곳에 안 보이게 묻지 않아요?”
민우가 길을 가다 궁금한 듯 물었다.
“맞아. 근데 여기는 흙이 없지.”
애초에 숨길 수 없다면 그냥 많이 뿌리자는 심보였다.
과거에 일일이 손으로 묻던 것과 달리, 현대에 들어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차량에 타서 스위치 하나면 사방에 초당 10개씩 잔뜩 뿌려댔기 때문이다.
러시아 퇴각 당시 리자드맨에 의해 개척지가 반쯤은 점령당한 상태였기에, 이를 이용해 사방에 지뢰를 뿌렸다.
물론 대피 중이던 일본인 사상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발생했지만, 러시아는 식민지민 따위는 안중 밖이었다.
이후 러시아는 퇴각 이후 리자드맨이 개척지를 요새화할 것을 우려, 개척지에 핵미사일까지 꽂았다.
가지지 못할 바에는 부숴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많은 리자드맨들이 폐허가 된 개척지를 떠났으나, 소수의 부족만 남아 아직까지 개척지를 들쑤시는 중이었다.
길잡이 말 대로 5분 정도 더 걷자 귀신같이 녹색 안개가 사라졌다. 자연적인 구름이라면 바람에 따라 이동했어야 했지만, 마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괴랄한 지속시간에는 시전자가 고등급이고, 오염으로 인한 잔류 마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중요한 건 아직까지 남아 생명체들을 죽이고 있다는 거였다.
‘빌어먹을 전쟁.’
직접 개척 전쟁을 겪어본 지훈은 전쟁이 낳은 기형아들을 보자 역겨움이 몰려왔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으나 안타깝게도 보호복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녹색 안개가 다음엔 거대한 크레이터가 나타났다.
“지훈, 나 이거 알아. 미사일 꽂힌 장소지?”
“그래. 여기에 핵미사일이 떨어진 모양이군.”
눈앞에는 몸을 던졌다간 까마득히 굴러야 바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구덩이가 보였다.
그 와중에 독특하게도 중앙 약 5M 주변만 땅이 정상적으로 남아있었다.
“신기하죠? 소문에 따르면 저게 바로 리자드맨 마법사가 핵미사일을 막고 남은 흔적이라고 하더라구요.”
실제 소말리아에서도 오우거 강습부대 헬레이저(지옥 면도날 부대)가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주술사를 대동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얘기였거늘, 실제로 보니 마법사라는 존재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핵을 막을 수 있는 마법사였다면 여태까지 지훈이 봤던 어중이떠중이 마법사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일 게 분명했다.
고개를 돌려 슬쩍 마법사 용병을 쳐다봤다.
“아뇨, 나 못합니다. 저런 거 불가능 합니다.”
“총알이나 수류탄은 막을 수 있어?”
“나 혼자 딱 그 정도. 오래는 못 막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마저도 혼자서만 막을 수 있다니, 있으나 마나였다.
“근데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은 없나?”
“몇몇 헌터들이 다른 길 뚫었다는 소문이 있긴 한데, 정보가 돌지를 않아서요. 저는 몰라요.”
둘레를 따라 걷는다니 길을 잃은 걱정은 없겠지만, 그 외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외길이기 때문에 포위당할 우려가 있다는 거였다.
항상 혹시 모를 위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훈으로서는 이런 외길이 영 못마땅했다.
평원이나 정글 같은 자연에서는 지형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시가전 같은 경우 매복을 당하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일본인이나 리자드맨이 있을 가능성은?”
“이 주변에서 만났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제가 알기에 리자드맨 부족은 시청 남서쪽에 있거든요.”
맘 같아서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둘레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자꾸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마치 귀속에 바퀴벌레라도 들어간 것 마냥 불쾌한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봐, 여기 포미시드 같은 거 없지?”
포미시드.
만드라고라를 상대했을 때 만났던 문명을 가진 개미 종족을 뜻했다. 크기가 매우 작아 얼핏 보면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해당 문명이 전차나 총기를 개발했거나, 강력한 마법사를 가지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포미시드와 싸우면 기본이 만 이상을 상대해야 했다.
총으로 쏴봐야 숫자 줄이기도 어렵거니와, 밟아 죽이는 것도 정도껏이었다. 숫자에 밀려 개미 밥이 된다.
“아마 없을 거예요, 형님. 포미시드 여왕은 주변 환경에 굉장히 민감해서 척박한 환경에는 둥지를 틀지 않아요.”
이에 민우가 대답했다.
포미시드가 없다는 얘기를 듣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푸하하, 의뢰인 이제 보니까 겁이 너무 많으시네. B등급은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거요?”
D등급은 그런 지훈을 보며 비꼬듯 얘기했다.
기분이 나빠져 한마디 하려는 순간…….
쐐액 - 퍽!
D등급의 오른쪽 가슴에 괴상하게 생긴 창이 틀어박혔다.
“어, 어……. 씨발 이거 뭐야…….”
D등급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가슴을 매만졌다. 그런 그의 몸이 옅은 회색으로 일렁거렸다.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변이계 이능이 발동한 듯싶었으나,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인지라 무용지물이었다.
“매복! 엄폐해!”
소리를 지르자마자 일행이 각자 몸을 숨겼다.
가까운 건물, 무너진 잔해, 엎어진 차 등으로 몸을 숨겼다.
기관총은 엎어진 차 옆에 들러붙었고,
마법사는 그런 기관총을 따라갔으며,
칼콘은 건물 사이로 들어가 방패로 틈을 막았고,
틈을 막기 직전 샤오핑이 칼콘에게 착 달라붙었으며,
지훈은 공황상태에 빠진 민우와 길잡이를 질질 끌어 가까운 건물로 들어갔다.
“씨발!”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느낌은 절대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속에서 욕지거리가 잔뜩 뿜어져 나왔으나 참았다.
어차피 다른 길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무조건 강행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고개를 숙이고 기다려야 한다. 섣불리 나갔다가는 움직이는 표적이 될 뿐이다.’
D등급이 물었던 말, 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지훈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여 봐야, 죽으면 끝이다.
반면 조금 조심하더라도 살아남는다면, 꾸준히 헌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살아남는 놈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민우는 필사적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동료였던 사람이 죽었으니 속이 울렁거리는 모양이었다.
“정신 차려, 새끼야!”
민우의 보호복 안면 유리를 들이받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동시에 흔들리던 민우의 동공이 진정됐다.
“총 들고 엄폐 똑바로 해. 적 보이면 쏴라, 알겠어?”
“아, 알겠어요…….”
이번에는 길잡이를 쳐다봤다.
길잡이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봤지만 적응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수그린 채 끔찍한 일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당신은 대가리 잘 숙이고 목숨 챙겨.”
길잡이가 죽으면 연구소까지 가지도 못함은 물론, 퇴로까지 끊겼다. 무조건 살려둬야 했다.
둘을 챙긴 뒤 지훈은 본격적으로 전투 준비를 했다.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건물 1층에 있던 전신 거울을 깨뜨린 거였다.
쨍 - !
아스발의 개머리판에 맞은 거울이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들을 잔뜩 떨어뜨렸다. 그중 큼직한 녀석을 집어 건물 입구 주변에 바싹 달라붙었다.
“사, 살려……. 줘…….”
아스팔트 색깔처럼 변해버린 D등급의 몸에서 연신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꼭 아스팔트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
지훈은 그런 D등급을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비꼰 것에 앙금이 남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끌고 와 봐야 가슴이 관통된 치명상이었다. 챙겨온 응급치료용 도구로는 무슨 짓을 해도 살릴 수 없었다.
건물 밖으로 거울을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전방 건물 3층에 창잡이 하나, 2층에는 소총수 둘.’
그뿐만 아니라 도로 위에는 마갑처럼 보이는 철편을 잔뜩 두른 사마귀 위에 리자드맨이 타고 있었다.
손과 등에는 투창으로 보이는 물건이 보였다.
얼핏 잡담 중 주워들은 얘기로는, D등급은 꽤 품질 좋은 방어구를 입고 있었다. 최소 E등급은 되리라.
그 말은 곧 창 역시 꽤나 고품질의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현재 지훈의 저항 능력치는 D에, 몸에 입은 갑옷은 C등급.
VGC 탄환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시속 100km 이상으로 날아오는 무게 5kg짜리 투창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본디 힘이란 무게에 비례하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칼콘과 합류해야 한다.’
칼콘의 방패라면 완벽한 방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창이 방패에 박혀 아주 잠시나마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언제 나갈지 타이밍을 보고 있는 찰나…….
2층에 있는 투창수가 움직이더니 창이 날아왔다.
쐐애액 - 퍽!
D등급의 다리에 다시 한 번 창이 틀어박혔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아마 리자드맨들은 낙오된 동료를 미끼로 이용함과 동시에, 일부러 살려 둬 일행의 사기를 꺾으려는 심보 같았다.
더는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미끼는 죽어가고 있었으며, 리자드맨 기수는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 해야 했다.
“기관총, 엄호사격 갈겨!”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기관총이 차 위로 총을 거치하곤 그대로 갈겨버렸다.
명중률 따위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을 아주 잠시나마 엄폐물에 몸을 숨기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지훈은 그 소리를 신호로 건물 밖으로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