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사능 -->
밴은 일본 개척지 입구 가까운 곳에 댔다.
이후 타이어 잠금장치를 이용해 각각 앞, 뒷바퀴를 하나씩 묶어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강도들이 훔쳐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대비였으나, 일행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본 개척지까지 왔다면 다들 돈 좀 버는 헌터들일 텐데 차 하나 훔치려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것 같지는 않았다.
뚜벅, 뚜벅, 뚜벅.
8명의 일행이 삼각형 대열로 이동했다.
맨 선두에는 칼콘이 섰고, 중간에는 지훈, 길잡이 그리고 민우, 후미에는 남은 네 명의 용병이 따라붙었다.
“근데 꼭 정문으로 가야 하나? 괜히 다른 헌터들 만나면 머리 아픈데.”
보통 각성자들은 범죄를 잘 저지르지 않지만, 일본 개척지 같은 완전한 오지는 예외였다. 가장 가까운 국가와 7일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완벽한 무법천지가 펼쳐졌다.
돈 좀 있어 보이거나 만만해 보이면 습격을 당할 우려가 있기에 보통 다른 팀과 마주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꼭 정문으로 가야 합니다. 스토커들이 지뢰랑 터렛들을 전부 다 해제해 놨거든요.”
“스토커요? 변태 아니에요?”
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스토커라고 함은 상대방을 졸졸 쫓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했고, 언더 다크 소속인 시체 구덩이의 주인의 코드 네임 역시 이 의미를 뜻했다.
“다른 거야.”
길잡이가 말했던 스토커는, S.T.A.L.K.E.R로 마법 오염 지대를 돌아다니며 전문적으로 디스톨팅 스톤을 헌팅 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각 뜻은 다음과 같았다.
Scavenger - 폐품업자
Trespasser - 침입자
Adventurer - 모험가
Loner - 외톨이(괴짜)
Killer - 살인자
Explorer - 탐험가
Robber - 강도
잘 보면 마법 오염 지대와는 별 상관없는 직종이 많아 보였으나, 다들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원래는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었으나, 어느 골 빈 기자가 이 말을 신문에 실어버리면서 그냥 고유명사화 되어 버렸다.
“덕분에 지뢰 걱정 없이 편하게 전진할 수 있어서 좋죠.”
길잡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 픽 웃었다.
그 모습에서 전직 관광 가이드의 모습이 묻어났다.
“저거 지뢰 아니야?”
칼콘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살짝 깨진 자국과 함께 얼핏 지뢰가 보였다.
“크기 보니까 대전차 지뢰다. 밟아도 안 터져.”
어차피 국가나 길드 아니고서야 장갑차를 몰고 오진 않을 테니 스토커들도 일부러 내버려 둔 모양이었다.
말 끝나자마자 칼콘이 발로 꾸욱 눌러봤다.
방패, 갑옷, 보호복까지 더해져 꽤 무거운 무게였음에도 지뢰는 요지부동이었다.
칼콘은 신기한 듯 그 위에서 뛰었으나, 장난칠 시간이 없었기에 제지하고는 앞으로 이동했다.
…….
방사능 보호복과 짐 때문에 체력이 빠른 속도로 고갈됐다.
특히 일반인인 마법사, 민우, 길잡이가 지쳐 보였다.
“걷는 속도 좀 잠시 늦추지.”
“알겠습니다.”
길잡이는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처럼 웃었다.
느린 속도로 걸어가며 주변을 슥 훑어봤다.
분명 방사능 때문에 보호복이 없으면 서서히 썩어가는 죽음의 땅이었으나, 눈으로 보기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도시.
망가지고 뒤틀어졌지만 그게 다였다.
갈라진 도로에서 뻗어난 풀과 나무는 도시를 서서히 침식시키고 있었고, 이름 모를 짐승들은 주인이 떠난 도시를 제 둥지마냥 신나게 뛰어다녔다.
“겉모습만 보면 보호복 없어도 될 것 같네요.”
“그래.”
물론 완벽하게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
지지직 - 지직, 직 !
길잡이가 들고 있던 가이거 계수기가 소음을 냈다.
“앞에 방사능 있네요. 안개 낀 것 보니까 독소도 조금 있는 것 같으니까, 다들 필터 확인하세요.”
몇 번이나 확인했으나 사건은 언제나 아차 싶을 때 터진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한 번 더 확인했다.
꾸욱, 꾹.
역시나 잘 들어가 있었다.
다 끝냈기에 일행을 슥 훑었다.
그러다 문득 민우에서 눈에 멈췄다.
끼익, 끼익, 끼익.
“어, 어……. 왜 이래?”
자세히 보니 필터 어귀가 잘못 맞아 있었다.
가벼운 독소야 저걸로도 괜찮았지만, 짙은 독소를 들이마실 경우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조치가 필요했다.
“필터 뽑는다, 숨참아.”
“네, 네?”
얼타는 민우를 무시하곤 그대로 필터를 뽑았다가 다시 끼워줬다. 아무래도 미필인지라 방독면을 처음 낀 까닭이었다.
“푸하!”
“준비 끝, 다시 출발하지.”
스읍 - 하, 스읍 - 하.
뚜벅, 뚜벅.
지지지직 -
가이거 계수기가 마치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노이즈를 뿜어냈다.
…….
“이제 곧 마법 오염 지대가 나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여기서 샛길로 빠져도 되고, 아니면 더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길잡이가 이제부터 헌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갈 것 없이 여기부터 수색합시다. 서서히 파고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나도 그거 좋다 입니다.”
기관총이 의견을 내놓자 마법사가 거들었다.
“그것도 좋긴 한데, 저희 말고 다른 팀들도 중앙대로 이용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 가봐야 이미 털렸을 가능성이 커요.”
맞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스토커들이 길을 전부 뚫어놨고, 그 정보가 일파만파 퍼진 까닭에 모든 헌터들이 전부 중앙대로를 이용했다.
디스톨팅 스톤 생성주기는 한 달.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적어도 60팀은 왔을 게 분명했다.
운이 좋다면 한두 개쯤은 건질 수 있을지 몰랐지만, 단순 복불복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지훈의 목적은 연구 시설 잠입이지, 디스톨팅 스톤이 아니지 않던가.
“여기서 샛길로 빠지면 얼마나 걸리지?”
그래도 일단은 용병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연기했다.
“오염지대까지 2시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중간에 심한 방사능 지대가 있어서 돌아가야 하거든요.”
갔다가 돌아오는 데만 4시간.
이동과 탐색은 아침에만 할 수 있었기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디스톨팅 스톤을 위해 금쪽같은 4시간을 할애하기는 무리에 가까웠다.
“더 남쪽으로 간다. 우리는 심부로 들어갈 거야.”
“얼마나요?”
“관리국 반 지점에서 한 번 헌팅하고, 그다음은 관리국 주변에서 한 번, 그다음은 위험지대 바로 옆에서 할 거야.”
길잡이가 얼굴을 구겼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위험할 건데요.”
“그 말은 곧 다른 놈들도 잘 안 갈 거라는 말이지.”
길잡이와 D등급이 불만을 표시했으나, 묵살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순간 같은 배를 탄 꼴이었다.
죽으나 사나 무조건 동행해야 했기에 딱히 반발은 없었다.
…….
단순히 걸어서 15시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보호복 때문에 체력 소모도 심하거니와, 방사능과 온갖 방해물(건물 잔해, 차량) 때문에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덕분에 3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헌팅 플레이스 까지는 아직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정지. 혹시 저거 보이세요?”
길잡이가 갑자기 멈추더니 건물 사이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그 위에 수박처럼 생긴 옥수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있었다. 짙은 방사능으로 인해 변이된 식물 같았다.
“밭?”
아무리 봐도 밭이었다.
“단순 거주자면 괜찮은데, 리자드맨 일수도 있어요.”
같은 인간이라면 가벼운 냉대로 끝날 테지만, 리자드맨은 인간을 ‘식량’으로 인식했다. 당연히 보자마자 사격부터 할 테고, 그 과정에 방사능 보호복이 찢어지면 난처했다.
“저기 지나가야 하나?”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긴 한데, 어디에 지뢰가 있을지 몰라서……. 될 수 있으면 이쪽으로 가는 게 좋습니다.”
지뢰 밟았다가 발목 버리는 것보다는 정체 모를 적 쪽이 나아 보였기에 결국 강행돌파 하기로 했다.
말이 발목만 날아가는 거지, 의사와 항생제도 없는 상황에서 사지절단은 곧 사망을 의미했다.
“대열 바꿔. 2 종대. 선두에 칼콘과 샤오핑, 그 뒤로 나와 D등급, 민우와 길잡이, 후미 기관총과 마법사가 선다.”
순식간에 대열을 바꿔 전진했다. 방패가 있는 둘이 그나마 기습을 방어하기에 알맞기 때문이었다.
밭에 가까워질수록 모두 긴장했다. 언제라도 싸울 수 있게 준비하며 모퉁이 돌자…….
“ちくしょう!(젠장!)”
넝마를 입은 상태로 밭을 갈던 여자가 보였다.
보호복도 없고 무장도 조악한 상태를 보아 일본 개척지 거주민으로 보였다.
“君たち誰!(너희 뭐야!)”
이에 길잡이가 앞으로 나서서 그냥 지나가려고 설명하려는 찰나, 여자가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콜트였다.
군이 철수하며 채 수거 하지 못한 총기 중 하나.
“それ……. (그거…….)”
길잡이는 싸움을 막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보다 D등급이 더 빨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총이 여자에게 향하더니…….
탕!
D등급의 소총이 불을 뿜음과 동시에 여자가 픽 쓰러졌다.
복부에 맞았기에 즉사는 아니었지만, 병원이 없는 이 장소에선 얼마 가지 못해 죽을 치명상이었다.
“아직 살아있는데, 어쩔까요?”
D등급은 사람이 아닌 쥐를 잡은 것처럼 물었다.
이에 표정을 확 굳어졌다.
상대방은 강도가 아닌 비무장에 가까운 일반인이었다. 게다가 총 역시 자기방어 차원에서 겨눈 일종의 몸짓 부풀리기겠지.
우리의 목적이 단순 통행이라는 걸 알리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 게 분명했다.
“앞으로 내 명령 없이 방아쇠 당기지 마, 개새끼야.”
D등급에게 대기하라고 말하곤,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일본어로 뭐라 뭐라 저주의 말을 쏟아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아스발을 여자의 머리에 겨누고는…….
푝!
그녀의 고통을 끝내줬다.
여자가 늘어지자 가까운 건물에서 아이가 튀어나왔다.
뭐라 뭐라 고함을 지르며 달라붙었지만, 혹시 몰라 손으로 떼어냈다.
“길잡이, 얘 뭐래?”
길잡이가 작게 입맛을 다셨다.
“들으셔야 기분만 나쁘실 텐데요…….”
“닥치고 통역해.”
“악마랍니다. 엄마를 죽인 악마. 죽으라는군요.”
목에 가시가 낀 듯 불편했다.
정당방위고, 이블 포인트에 변동이 없다고 한들 상관없었다. 죽일 거 없이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봐요 의뢰인. 저거 내버려둘 겁니까?”
기관총이 끼어들어 손가락으로 아이를 가리켰다.
“내버려 두면 네가 어쩔 건데?”
“보니까 10살은 되어 보이는데, 저 정도면 총 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쫓아왔다가 등에 갈기면 큰일 나요.”
“그래서.”
“뭐……. 애 죽이는 건 안 내키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내버려 뒀다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어이가 없어졌다.
어찌 성인 입에서 애를 죽이자는 말이 저리 쉽게 나온단 말인가. 아무리 개차반에 오늘만 보며 살았던 지훈도 애는 죽이지 않았다.
“거 이쪽 일 한두 번 해보신 분도 아니고……. 어차피 죽여 봐야 경찰이나 가디언도 안 붙잖아요. 그리고 따지자면 쟤네 애미가 먼저 총 들이밀었고요. 정당방위입니다, 정당방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을 잘랐다.
“너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무표정 속에 짙은 살기를 담아 말했다.
“아니, 그게…….”
“내 앞에서 말 많았던 녀석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려줄까?”
기관총은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흐렸다.
“다, 다음에 들을 게요…….”
“다음에도 좆같은 소리 지껄이면 그 잘난 혓바닥 잘라버릴 줄 알아.”
자존심을 짓뭉개는 말이었으나 기관총은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돌렸다. 애초에 지훈은 B등급 각성자였고, OTN탄도 무시하는 강력한 존재였다.
싸워봐야 지니 그냥 꼬리를 말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훈은 다시 일어나 덤벼드는 아이를 바닥에 메치고는, 여자가 흘린 콜트의 슬라이드를 뽑아버렸다.
“출발한다.”
일행이 다시 대열을 만들려는 찰나 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투 명령 떨어지기 전까지 함부로 싸우지 마라. 다음에도 이딴 일 벌어지면 제일 먼저 움직인 놈 대가리에 총알 박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일행은 다들 공포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용병들이 거칠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동급 혹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나 그랬다.
들개가 호랑이 앞에서 짖을 수 없듯, 저들은 지훈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됐다.
아니 되어야 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