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34화 (13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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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개척지 출발 3일째.

일행은 소위 ‘보더랜드’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과거 경계선이 존재할 때 러시아 개척지와 일본 개척지 딱 중간 지점에 만들어서 붙은 별명이었다.

나무로 만들어 조잡해 보이긴 했지만, 5M는 되어 보여 위압감을 주는 나무 울타리가 제일 먼저 보였다. 그 모습이 마을이라기 보단 요새 혹은 군 주둔지에 가까워 보였다.

“마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원래 저래. 국가가 보호해 주는 곳이나 뻥 뚫려 있어도 되는 거지. 얘네는 제 목숨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딱히 별다른 출입절차는 없었다.

마을 내부 범죄 전단 비교와 통행료가 끝이었다.

와글와글.

웅성웅성.

보더랜드 안에는 헌팅을 위해 모인 여러 각성자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상인으로 북적였다.

아무래도 토지를 넓혔다간 그만큼 경계구역이 늘어나기에 다들 땅을 좁게 쓰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내일 오전 8시에 출발할 거니까 그때 가지 알아서 회포들 풀어.”

지훈은 방을 잡고는 용병들에게 개인 정비 시간을 줬다.

- 푸하하, 창녀나 따러 갑시다. 들어보니까 여기 일본년 있다던데, 전부 다 사라지기 전에 빨리 먹어야지! 나중에 아들놈 낳아다가 이 애비는 일본년 타봤다고 자랑 좀 해봐야 하지 않겠어!?

슬쩍 쳐다보니 기관총 사수였다. 개인 시간이라 뭘 하든 본인의 자유였으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후, 형님은 뭐하실 거예요?”

“자야지.”

“아니 그렇게 자고 또 자요?”

사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눈을 감았다.

최근 마법과 이능을 연습한다고 마력을 펑펑 써댔기에, 조금이라도 더 채워놔야 했기 때문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밤사이 별다른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장비 챙겨. 다시 출발한다.”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들 밴에 올라탔다.

마치 훈련소 끌려가는 군인처럼 다들 표정이 썩어 들어가고 있자니 문득 칼콘이 코를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야?”

싸구려 화장품과 향수가 섞인 묘한 냄새.

근원지는 기관총 사수였다. 여자와 뒹굴고 나서 뒤처리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하……. 물 값이 좀 비싸더라고. 그래서 못 씻었어.”

“확 성병으로 좆이나 잘리지 그러셨나.”

D등급 용병이 농을 건네자 기관총 사수가 ‘에이, 이거 여든까지 써먹을 수 있는 물건이야.’ 하며 웃었다.

“냄새 독한데 어떻게 못 해요?”

“식수로라도 씻는 게 어때?”

절대 안 됐다.

혹시 모를 상황이 터지면 식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물건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고 달렸다.

민우와 길잡이가 이따금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

보더랜드 출발 2일째.

툭, 투둑, 투두두둑…….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둑!

“비 오네요.”

민우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얼굴에 고양이 세수를 했다.

“차 세워. 그리고 기관총.”

“예?”

“너 나가서 샤워하고 와. 너 때문에 골통이 깨질 것 같잖아, 씹새야.”

기관총 사수는 머쓱하게 웃더니 옷을 훌훌 벗어 빗물에 샤워를 했다.

“쟤 말고도 씻고 싶은 놈 있으면 씻어.”

러시아 개척지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머리도 제대로 한 번 못 감아본 일행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눈치를 보는 듯했으나, 칼콘이 옷을 벗자 너나 할 것 없이 탈의하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솨아아아 하고 쏟아지는 빗물 속에 성인 남자 여럿이서 뛰어노는 모습이 참 기묘하게 보이면서도 우스웠다.

…….

보더랜드 출발 3일째.

일행은 신 일본 개척지에 도착했다. 일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과 달리, 퍽 초라한 모습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보더랜드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요?”

“알고 싶어요?”

민우의 질문에 길잡이가 씩 웃었다.

“자꾸 뜸 들이지 마요.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고요.”

“거 어디였더라?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묵시록 어쩌고 했던 단체가 도와줬어요. 이상하게 방사능 계통에 잘 알더라고요. 진짜 핵전쟁 났던 곳에서 온 것 같다니까요?”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혹시 그 새끼들 과학단체인가?”

“기본 베이스는 과학인데 사설 군대도 갖추고 있어요. 사실 보더랜드나 러시아가 맘만 먹으면 부술 수는 있는데, 인도주의 단체다 보니까 저기 털면 공공의 적이 되거든요.”

약하지만 건드리면 위험해지는 녀석들, 골든 하플링과 비슷한 이치였다.

신 일본 개척지 내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일본의 잔재들이 얼핏얼핏 보였다. 완전히 작살난 줄 알았거늘, 살아남아 있는 모습을 보니 의외였다.

“자, 그럼 여기서 방사능 보호복 사시면 됩니다.”

용병들은 전부 한 벌씩 가지고 있었기에 지훈, 칼콘만 각자 한 벌씩 구입했다.

“으……. 이 거죽 꼭 입어야 해? 갑옷 위에 입으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해. 러시아 때는 안 입어도 괜찮다며, 지훈!”

칼콘은 방사능 보호복을 잡아당기며 투정을 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호복은 필수불가결 요소였다,

입지 않아도 살아서 나올 수는 있으나, 의뢰 완료 후 심각한 유전병은 물론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내출혈에 고생을 해야 했다.

“그냥 입어, 새끼야.”

방사능 보호복 다음은 지도였다.

아무리 반지 내에 정보가 있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방향과 거리만 대강 알려줄 뿐이었다.

괜히 빌딩에 가로막혀 먼 거리를 돌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릴 수 있었기에 지도가 반드시 필요했다.

가게에 들어가려는 찰나 길잡이가 만류했다.

“지도라면 제가 가지고 있어요. 아는 지도쟁이한테 구한 건데, 방사능 수치랑 심각한 오염지대도 적혀있어서 잘 알 수 있어요.”

사실 알음알음 얻는 정보가 굉장히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만큼 신뢰도도 떨어졌다. 일부러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은 물론, 일부러 정보를 흘려 피해자를 낚는 강도들도 있었다.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 번 봅시다.”

길잡이의 지도를 슥 훑었다.

‘생각보다 작다.’

한국 개척지도 타 국가와 비교하면 굉장히 작은 편에 속했지만, 일본은 그것보다 더했다.

몬스터 아웃브레이크로 인구가 엄청나게 줄어버리면서 개척민 역시 적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 비교하면 동구 정도 크기인가.’

한국과 비교하자면 지방 도시 중 도심이 차지하는 면적 정도와 비슷했다. 차로 이동하면 끝에서 끝까지 약 30분. 걸어서 이동해도 쉬는 시간 포함 15시간이면 됐다.

지도를 샅샅이 뒤져 반지가 말하는 연구소로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 정보에 따르면 연구단지는 분명 ‘군용 벙커’속에 있다고 했다.

반면 지도에는 벙커는커녕 군부대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이 지도 제대로 된 것 맞아?”

“그럼요. 이 녀석이 제 목숨을 몇 번이나 구했는걸요?”

“아니 개척지면 분명 군부대도 주둔했을 텐데, 여기엔 군부대나 항공기지 연구소 같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

따지듯이 물었다.

대놓고 물어볼 수 없으니 돌려 말한 거였다. 아마 남들 눈에는 단순히 길잡이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리라.

“이게 민간용 지도라서 테러나 전쟁 위협 때문에 중요 시설 위치는 전부 다 비어있습니다. 진짜예요!”

얼굴이 팍 찌푸려졌다.

길잡이의 말을 믿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애원하듯 말하는 투와 표정을 봤을 때 진실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그럼 군부대가 어딨는 지는 알 수가 없잖아.’

정보가 더 필요했기에 조금 더 따져보기로 했다.

“그래서, 모른다는 얘기야? 아니 길잡이라는 사람이 개척지 내부 사정을 모르면 어떡하자는 건데.”

혓바닥 잘못 굴리면 바로 놓고 갈 수 있다는 냄새 풀풀 풍기며 심사하듯 물었다.

여기다 놓고 간다고 해서 생명이 위험해지진 않지만, 다시 한국 개척지까지 가기가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기름 값 비싼 건 물론이오, 대중교통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길에는 몬스터와 강도가 미쳐 날뛰는 데 도대체 어떤 수단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지훈 일행이야 무장하고 있으니 괜찮았지만, 홀로 이동하는 민간인에게 있어서는 죽음의 땅이었다.

길잡이는 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 다 압니다! 보십시오! 여 주둥이처럼 튀어나온 게 북문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주 자그마한 공터 보이시죠?”

일본 개척지는 마치 수류탄 같은 모양이었다.

전체적으로 둥근 구조에 북쪽만 툭 튀어나와 있는 게 꼭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 같아 보였다.

길잡이가 가리킨 곳은 마치 빈 땅처럼 회색 네모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여기가 북문 지키던 부대입니다!”

“아아, 그래. 계속해 봐. 말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지도 가지고 꺼지면 된다. 알겠지?”

친절한 사형선고를 내리자, 길잡이가 희번덕거렸다.

“아닙니다, 자 보십시오! 중앙에 있는 게 관리국이고, 거기보다 조금 더 남동쪽에 있는 게 바로 연구소와 군부대가 합쳐진 곳입니다!”

연구소와 군부대가 합쳐진 곳. 저 장소가 분명했다.

원하는 정보를 얻었기에 속으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으나, 겉으로는 계속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또, 여기는…….”

“그만. 듣고 있자니 시끄럽네. 초록색 동그라미는 뭐야?”

말을 돌려 지도에 형광펜으로 그려진 걸 물었다.

“아……. 저기 방사능 위험 구역입니다. 외곽은 괜찮은데 중앙으로 가면 보호복도 뚫어버려요.”

“그럼 노란색이랑 붉은색 그리고 검은색 선은 또 뭐야?”

“노란색은 개척지민들이나 리자드맨 서식지, 붉은색은 마법 오염지대, 검은색은…….”

길잡이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뗐다.

“그 아래로는 가면 안 됩니다. 정보가 없어요. 소문으로는 그 아래로 가면 죄다 실종된다고 해서…….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검은 선은 구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120도는 되어 보일법한 부채꼴처럼 그어져 있었다. 위험하다고 하니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목표 지점이 그 검은 선 안에 있었다.

‘좆같네. 어떻게 쉽게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나.’

운명의 신이 있다면 당장 멱살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이 꽉 깨물고 버텼다.

“후……. 잘 아는 것 같네. 다들 장비 챙겨, 출발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길잡이의 어깨를 두드리곤, 차를 몰아 일본 개척지로 향했다. 얼핏 봐도 더는 그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게 분명한 도로가 펼쳐졌다.

그나마 러시아 개척지에서 여기까지 올 때는 드문드문 차가 다닌 까닭에 도로에 풀은 없었지만, 이제는 아예 도로가 반쯤은 풀밭이 되어 있었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잡초는 꼭 ‘인간이 사라져도 우리는 계속 남아 이 장소를 지킬 것이다.’ 라고 외치고 있는 듯싶었다.

☆ ☆ ☆

그 시각, 일본 개척지 어딘가.

삐빅, 삑.

비프음에 그림자 하나가 움츠렸던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프음을 낸 기계로 다가가 뭔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기계에 낯익은 밴 하나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바로 지훈 일행의 차량이었다.

치직 -

“여기는 오메가, 여기는 오메가. 전 분대에게 전한다. 신규 탱고가 차량을 타고 진입 중. 현재 개척지 내부 탱고 무리는 아홉, 아홉. 전 분대원 이를 숙지하여 임무 수행에 주의하며, 탱고에게 발각 시…….”

그림자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사살하라.”

이후 무전기에서 차례대로 알아들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림자는 끝까지 듣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휘이이잉 -

고지에 있던 터라 날카로운 바람이 살을 에듯 스쳤다.

“후읍- 하…….”

그림자는 방사능을 음미하듯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서 주변을 둘러봤다.

- 치직.

“G 사이트 데드라인 너머로 헌터로 보이는 탱고 무리 접근. 사살하겠다.”

- 치직.

- 알겠다, 오메가. 여기는 델타 스쿼드. 목표 지점에 접근 중. 5분 예정. 시체를 처리하겠다.

그림자는 옆에 뉘어놨던 바렛을 창문에 거치했다.

이후 조준경으로 헌터를 겨눈 뒤…….

탕 -

탕 - 탕 -

- 치직.

“남은 탱고 무리는 여덟, 여덟. G-9 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스쿼드는 사체를 처리하라. 델타 스쿼드가 접근하고 있으나, 가까운 곳에 로취가 있다. 실험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무조건 확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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