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33화 (133/173)

<-- 생각보다 잘 터지네. -->

정말 기절했다가 깨어나고 싶을 만큼 엄청나게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고문도 아니고 진짜…….’

벤츠는 그나마 시트라도 편했지, 밴은 그런 거 일절 없었다. 언제 박살날지 모르는 헌팅용 렌트 제품이라 옵션 하나도 없는 깡통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원가 절감한다고 시트도 돌덩어리 같았고, 소문에는 에어백도 넣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로 칼날 정글에서 SUV 탈 때도 안 터졌지 않던가?

‘거 씨발 차를 만들랬지 누가 흉기를 만들랬나, 빌어먹을 기업쟁이 새끼들. 죄다 돈에 돌아서는, 쯧.’

부르르르릉 -

쿠궁, 쿠궁.

차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누가 방귀라도 뿡 끼면 다들 펑 터져버릴 것 같은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벤츠 탈 때 우스갯소리로 닭장이라고 했지만, 이 밴에 비하면 정말 펜트하우스 같았기 때문이다.

…….

24시간 후 러시아 개척지에 도착했다.

약 4시간 정도 되는 짧은 휴식과 함께 식량과 식수를 구입했다.

“저기……. 가이거 계수기랑 방사능 보호복 안 사세요?”

민우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본인이야 러시아 하수도 때 사뒀던 방사능 보호구가 있었지만, 지훈 및 기타 용병들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길잡이가 일본 개척지 주변에서 사자고 하더라. 그쪽이 좀 더 싸다고 하더군.”

가격 문제도 있었거니와, 운반 문제 때문이었다.

일본 개척지까지 러시아에서 남쪽으로 일주일.

과거 일본 상태가 괜찮았을 때는 도로도 쾌적했고, 중간 중간 휴게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헌팅을 위한 소수의 헌터 및 일본 개척지를 관광하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를 제외한 모든 발걸음이 끊겼다.

그 말은 곧 돈이 되질 않는다는 얘기였다.

국가 소유든, 민간 소유든 너나 할 것 없이 사업을 철수했고, 심지어 도로 관리도 안 하는 실정.

일본 개척지로 가는 길은 반쯤 포스트 아포칼립스 하이웨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 개척지도 개판인데 도로는 오죽하겠나.’

그 와중에 남쪽으로 3일(일본, 러시아 중간지점) 정도 가면 헌터들 상대로 장사하는 무리가 있긴 한데, 거기는 뭘 사던 정가의 5배는 얹어줘야 했다.

거기서 3일 정도 더 가면, 전 일본 개척지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자칭 ‘신 일본 개척지’가 있었다.

거기도 음식 값 비싼 건 똑같았으나, 독특하게 방사능 관련된 물건만큼은 이상하게 쌌다.

이에 러시아 개척지에서 이동 및 헌팅에 필요한 12일 치 식량, 식수, 기름은 물론 기타 물건들을 구입했다.

그 외에도 가로등이 없었기에 시야 확보를 위한 차량용 강화 라이트와 혹시 모를 차량 고장을 위한 스페어타이어를 포함한 정비용품 등이 있었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좁았던 차가 금방이라도 미어터질 듯 가득 찼고, 차 천장 위에까지 짐을 잔뜩 실어야 했다.

‘꼭 전쟁 나서 도망가는 피난민 같군.’

“곧 출발할 거요, 근데 두 명 어디 갔소?”

준비를 마치고 출발 시각을 고지하려는 순간, 용병 둘이 비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관총 사수와 길잡이였다.

대충 10분쯤 기다리니 돌아왔다.

어디 가서 맞기라도 한 지 오는 길에 퉤 하고 뱉은 침에 피가 잔뜩 섞여 있었다.

“저 새끼 왜 저래?”

길잡이한테 물으니 그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러시아 여군한테 농담 던졌다가 맞았어요.”

꼬락서니 보니 성희롱했다가 개머리판으로 맞은 모양.

각성자라고 저항 수치가 있어서 이가 뽑히진 않아 보였으나, 지훈은 왠지 모르게 못마땅해졌다.

야만인인 가벡도 안치는 사고를 치는 놈을 데리고 다녔다가 괜한 시비에 휘말릴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만두자, 어차피 살아 돌아올지 알 수도 없는 놈이다.’

…….

러시아 남쪽 톨게이트를 지났다.

“통행료가 5만 루블(한화 90만)이나 해?”

D등급 각성자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투덜거렸다.

“나 들었습니다. 러시아 관리 안 합니다.”

이에 마법사가 서툰 한국어로 설명을 덧붙였다.

“관리 안 할 거면 그냥 문 닫아버리던가, 이게 뭐야.”

“오우, 아닙니다. 이거는 돈 됩니다. 냅둡니다. 좀 행인 많습니다.”

D등급이 뭔 소리냐 되묻자 길잡이가 설명을 해줬다. 전직 가이드답게 이런저런 재밌는 얘기 섞어가며 얘기했다.

피식피식 웃는 것도 잠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

러시아 개척지까지는 2시간 마다 용병들 로테이션 돌려가며 운전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수 없었다.

도로를 감싸고 있던 외벽이 부서진 곳이 있었기에,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들짐승 같은 건 차로 쳐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만약 혼 호스(유니콘 비슷하게 생긴 짐승) 같은 커다란 짐승과 부딪치면 난리가 났다.

영화에서는 막 아무거나 치고 다녀도 잘 굴러다니는 게 차지만, 현실의 차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차가 부서진다면?

나란히 구조대 렉카타고 러시아 개척지로 돌아가야 했다.

이에 제일 어두운 시간대에는 밤눈이 그나마 밝은 칼콘과 지훈이 운전했고, 빛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만 로테이션을 돌렸다.

…….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용병들이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왜 용병이 된 거에요?”

민우가 기관총 사수에게 물었다.

“쯧, 좋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데 궁금하냐?”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아요. 심심해서 묻는 거지.”

기관총 사수는 푸하하 웃으며 민우를 툭툭 두드렸다.

“별거 없어. 그냥 내가 바텐더랑 사귀게 됐거든. 근데 그 년이 바람을 피대? 그래서 죽였어.”

사람 죽였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청중 역시 ‘어제 꿈자리가 사나웠네.’ 정도로 들었지만, 민우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휴머노이드 중 고블린은 죽여본 적 있지만, 그들은 ‘이종족’이었기에 인간을 죽인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근데 그 년이 레니게이드가 관리하던 년이었던 거야. 그 새끼들이 나보고 빚 갚으라대?”

기관총 사수는 짜증이 나서 러시아나 중국으로 도망갈까 싶었지만, 그럭저럭 갚을 만한 금액이어서 용병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놈의 여자가 문제네요…….”

민우는 중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 근데 언제 뒤질지 모르는 거, 좆질이라도 열심히 하고 죽어야 때깔이 곱지 않겠나? 낄낄.”

“뭐……. 그렇군요.”

민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영혼 없이 대답했다.

“뭐 빚은 다 갚았지만 이 일이 뜻밖에 돈이 쏠쏠하데? 그래서 그냥 계속하는 거야.”

…….

운전하던 길잡이가 조수석에 앉아있던 지훈을 흔들었다.

“어, 어, 어……. 저거 뭐죠?”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승용차 3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차 세워.”

끼이이익 -

일단 차를 세우고는 D등급이 가지고 있던 망원경을 이용해 자세히 살펴봤다.

얼핏 보면 사고가 나서 막힌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고가 났다기엔 주변이 너무 깔끔했다.

‘누가 일부러 막은 거네.’

러시아 남쪽이면 위험천만한 사냥감들 천지인지라, 고등급 각성자들의 통행이 잦은 지역이었다.

고등급 각성자면 이미 가디언에게 털릴 거 무서워서 저딴 짓 않을 테니, 백방 저등급 각성자나 비각성자로 이뤄진 강도란 얘기인데……. 지훈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도 새끼도 대가리가 있으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딴 짓을 하는 거야?’

정찰을 위해 지훈과 칼콘이 바리케이트까지 이동했다. 혹 지뢰라도 있을까 봐 주변 잔해들을 조심해서 걷고 있자니…….

휙!

반쯤 작살난 차 안에서 사람 서너 명이 튀어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타 강도들과 달리 바로 총부터 겨누지는 않았지만, 다들 무장을 하고 있었기에 언제든지 공격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 뭐 한다고 길을 이렇게 막아놓으셨나?”

“어차피 여기 오실 정도면 다 아실 것 같은데 말이지. 통행료 주셔야겠어.”

웃기다 못해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왜? 그냥 너희 죽이고 지나가면 되잖아.”

“그래 보시던가.”

강도가 고자세로 대답했다.

“내가 너희 넷 죽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내 생각으로는 1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네 말이 맞아. 나도 너희 못 이긴다는 거 알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박살 난 도로 외벽에서 거대한 쇳덩이를 짊어진 사람이 하나 등장했다.

“그래서 우리도 대비를 했거든.”

삐- 삐- 삐-

‘자벨린? 이런 씨발…….!’

뭔가 싶어 유심히 보니 대전차미사일이었다.

개척 전쟁 때 잔뜩 찍어냈지만, 생각보다 전차 몰고 싸워야 할 일이 적었기에 재고가 잔뜩 쌓인 물건.

가격이 워낙 비싼지라 도대체 어떻게 얻었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중요한 건 저게 강도 손에 있다는 거였다.

“일단 진정하고 얘기로 하지.”

지훈이야 저 미사일 맞고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일행이 타고 있던 밴은 아니었다.

자벨린이면 탑다운(미사일이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꽂힘) 형식에다 유도까지 되는 물건이라 회피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밴이 터지는 순간 용병들 다 뒤지는 건 물론이오, 장비 값, 구조대 값, 시간까지 죄다 버리게 된다.

“통행료 500, 너희한테 비싼 돈은 아니잖아. 그렇지?”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차 날려 먹고 강도들 죄다 쳐 죽이는 것보다 통행료 주고 지나가는 게 기회비용이 적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통행료를 지급했다.

대금으로는 현금이 없었기에 칼콘이 휴대하던 F등급 아티펙트와 예비 기름으로 대신했다.

“괜찮아, 지훈. 어차피 안 쓰는 물건이었어. 나중에 딱딱한 음식 먹을 때 쓰려고 갖고 다니던 거야.”

반면 칼콘은 괜찮다는 듯 하하 웃었지만, 지훈은 운전하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다 결국 해가 질 때쯤…….

“야, 씨발. 안 되겠다. 차 돌려.”

끼이이이익.

야심한 밤.

달빛 말고는 광원이 하나도 없었기에 사람 눈으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단지 시야 끝까지 고속도로 실루엣만 죽 이어져 저세상이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 가운데를 지훈과 칼콘이 걸었다.

“그냥 가도 괜찮은데, 진짜 안 쓰는 거였어.”

칼콘은 신경 써주지 않아도 된다는 듯 웃었으나, 지훈은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 저 새끼들 짜증나서 안 되겠다. 겁 없는 새끼들은 죽어야지. 자벨린 하나 믿고 나대는 꼴을 보니 속이 뒤집혀.”

자벨린 사거리에 안 닿을법한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20분 정도 이동했다.

“모닥불 보인다. 저기 있나 보네.”

“자, 놀아 보자고.”

강도들은 한 건 올렸다는 사실에 흥이 올라 모닥불 주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거 봐, 돈 많은 새끼들은 500만 원 정도는 신경도 안 쓴다니까! 이번 주에만 벌써 6건이나 처리했다고!”

리더로 보이는 놈이 헤벌쭉 웃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형님 따라오길 잘했네요. 러시아 애들은 이쪽 관심도 없어서 경찰 눈 끌 일도 없고, 저희 중에 각성자 없어서 가디언도 신경 안 쓰고! 최곤데요!”

부하 하나가 리더에게 아부하며 일어나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짜자자자작.

다들 그에 동조하듯 박수 소리가 불어났지만, 그것도 잠시.

“어……?”

아부하던 녀석이 갑자기 제 몸을 쳐다봤다.

복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총에 맞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얼마 후…….

퍽!

남자의 상처가 터져버렸다.

풀썩.

비명도 지르지 못한 즉사.

축제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으아아아! 엄폐해!”

다들 습격이라는 것을 깨닫고 움직였으나, 이미 그사이 다른 한 명이 더 터져나갔다.

‘생각보다 잘 터지네.’

지훈은 멀리서 총에 맞은 사람이 퍽 하고 터지는 걸 지켜보며 생각했다.

현재 그가 총알에 담은 마법은 ‘공기 울림’이었다.

이는 원하는 장소의 공기를 급격히 압축시켜 큰 소리를 내는 마법으로, 폭발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으나…….

그 마법이 사람 몸 안에서 발동되면 얘기가 달랐다.

총상 벌어진 상처 속이 진공으로 변한다면?

당연히 자연현상에 의해 공기들이 급격히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기압 차이로 인해 상처 부위가 터져버렸다.

“쟤네 엄폐하네. 어떡해?”

“넌 그냥 나 따라오다가 발각되면 방어나 해.”

어차피 저쪽은 총알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도 몰랐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처리해도 상관없었다.

칼날 정글에서 칵톨레므 보다 경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무섭듯, 지금도 똑같았다.

안전한 지훈과 달리 저쪽은 계속 짓눌려 있을 터.

시간은 이쪽 편이었다.

약 2시간 후.

지훈과 칼콘은 통행료로 지급했던 물건 외에도 강도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모조리 긁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