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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구하러 갔던 저번과 달리, 이번엔 용병 길드 측에 의뢰를 맡기는 입장이 됐기에 절차가 약간 복잡했다.
“성함이 김지훈씨 맡으세요? F등급 각성자시구요.”
“감지기 대보쇼. B등급.”
용병 길드 직원이 얼굴을 찌푸렸다. 각성자 등록한 게 겨우 반년 전인데, 어떻게 반년 만에 B등급이 된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얘기였으나, 앞에 고객 두고 ‘구라 치지마세요.’ 할 수도 없었기에 직원은 감지기를 가져왔다.
삑.
삑, 삑!
결과를 보자 직원의 눈썹이 확 올라갔다.
B등급 맞았다. 두 번 대봐도 맞았다.
살면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을 겪을 때가 가끔 있는데, 직원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딱 그랬다.
“아……. 네, B등급이시네요. 근데 신원조회 해보니까 범죄경력 있으시네요?”
관공서도 돈 때문에 못 쓰는 인터넷을 펑펑 써댄다는 점에서 과연 용병 길드구나 싶었다.
‘거 귀찮게 인터넷 같은 걸 왜 달아서는, 쯧.’
“그래서, 뭐. 문제 있소?”
직원은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오므렸다.
“저희 길드는 범죄와 관련된 일에는 인력을 일절 제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딱 봐도 매뉴얼 읽는 톤이었다.
아마 숙지는 해놨지만 직접 입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리라.
“거 도덕책 읊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서약서 가져오쇼. 짜증나니까.”
하지만 지훈은 과거에 몇 번 들어봤던 내용인지라 말을 휙 잘라버리고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말이 서약서지 서식은 계약서인 A4 5장짜리 종이 더미가 책상 위로 올라왔다.
혹 바뀐 내용이 있을까 빠른 속도로 훑었다.
‘별거 없네.’
만약 범죄와 연루된 일을 할 경우 배상금을 문다는 것과 개인 간 사법 처리에 대해서는 길드가 일절 관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일 중요한 부분은…….
- 갑은 을이 행할 잠재적인 피해요인을 감수하는 조건으로 계약 시 인력 충당비의 200%를 받는다.
돈.
바로 저거였다.
범죄와 연루되기 싫다네 뭐네 다 명분일 뿐이고, 위험 요소를 명분으로 돈을 더 뜯기 위한 계책이었다.
보통 헌터들은 헌팅 과정 혹은 기타 행동 중에 경범죄를 자주 저지르게 된다. 거의 렌트 문제나 미등록 총기 휴대, 불법적인 아티펙트 처분 등이었다.
이에 국가는 부족한 세수를 채워야겠다는 심정으로 헌터들에게 엄청난 벌금을 먹이는데, 문제는 벌금을 50만 원 이상을 내면 전과가 생긴다는 거였다.
이에 용병 길드는 아주 가벼운 전과(벌금을 50만 원 이상 내면 전과가 남는다)만 있어도 의뢰비를 200%나 더 받는다.
‘씨발 그냥 돈이면 다 되지, 개새끼들.’
보통 용병이 연락만 해 와도 의뢰비용으로 10만 원이 깨진다. 어중이떠중이들은 그 돈만 내고 쓱싹 계약하면 됐지만, E등급 이상의 전문 용병은 계약 체결 시 또 정식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보통 사람 고르는 데 10명은 봐야 하고, 그중 대부분은 각성자로 뽑아야 하는 상황인데 그 돈을 3배로 내면…….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푼돈으로 짜증내는 건 딱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 A등급 찍으면 큰놈 사냥 다닐 수 있다.’
“일본 개척지에서 디스톨팅 스톤 수집할 거요.”
직원에게 의뢰내용을 알려줬다.
원래 목적은 연구단지에 들어가 연구 내용을 가져오는 거였으나, 당연히 고운 시선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에 거짓말을 했다.
“길잡이랑 전투 요원이 필요하오. 길잡이는 일반이어도 괜찮지만, 전투 요원은 각성자였으면 좋겠군. 보수는 후불제, 디스톨팅 스톤 정산한 값 7% 때려줄 거요.”
보통 고용한 용병의 경우 정산 값의 3% 정도 떼어주는 게 관례였으나, 지훈은 일부러 세게 불렀다. 많이 데리고 가봐야 반도 못 살아나올 걸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개척지 내에서 아주 우연히 이상한 연구 단지에도 들어갈 예정이라서 말이지.’
그 안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이 아닌 차악만 해도 용병이 75% 이상은 죽었다.
“대기해 주시면 호출해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핸드폰으로 연락드릴까요?”
“그냥 여기서 기다리지.”
의뢰 내용을 알려주고는 대기실에서 시간을 죽였다.
아무래도 용병 길드에게 있어 의뢰인은 꽤 중요했던지라 시설이 꽤 좋았기에, 간이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지훈, 그냥 기다리는 건데 나도 필요할까?”
있으면 좋았지만, 필수는 아니었기에 지루하면 나중에 다시 만나도 좋다고 얘기했다.
“나 그럼 좀 쉬다가 올게.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 정리할 것도 좀 필요하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헌팅에 매일 따라와도 저런 말 한 번 안 하던 녀석인지라 기분이 이상했다.
“새끼야, 뭔 마지막이야. 불길하게 그딴 말 하지 마라.”
“얘기 들어보니까 이번 일은 좀 위험해 보여서.”
위험한 건 사실이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배웅해 주고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능이랑 마법 연습한다고 얼마 자지 못했던 터라, 몸이 무거워지는 착각과 함께 금세 잠들었다.
…….
얼마나 잤을까?
몸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 김지훈 씨?”
잠결에 들은 본인 이름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동시에 재킷 안주머니에서 글록을 꺼내 흔들던 사람에게 겨눴다.
철컥!
“어, 어! 쏘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화들짝 놀라는 사람을 보자 잠이 확 날아가는 걸 느꼈다.
본디 위험한 일을 했던지라 누군가 잠을 깨우는 것에 익숙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딱 보니 위해를 끼치려는 사람은 아니고 단순 용병 길드 직원인 듯싶었다.
“미안합니다, 하는 일이 일이라서 말이지.”
순수한 마음으로 사과하고는 총을 집어넣었다.
직원은 이런 일 자주 겪었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많이들 모였습니다.”
교수와 만났던 때와 달리, 사람이 꽤 많았던 까닭인지 아예 세미나 룸 같은 방으로 안내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많았던 사람들의 눈이 순식간에 지훈에게 몰렸다.
‘뭐 저렇게 많아.’
기자회견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별 고민할 것 없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불렀다.
“거기 당신, 이리 와 보쇼.”
아무래도 정산금액을 쎄게 부른 까닭인지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많이 모였다. 면접을 봐서 빼는 속도보다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으니 말 다 할 정도였다.
‘하긴 디스톨팅 스톤 정산이면 욕심날 법하지.’
여기서 뽑아가는 사람 중 75%가 죽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잠시.
귀한 물건에 F등급 각성자도 된다는 조건이 걸렸다는 건 지원자들도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는 얘기였기에 찝찝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본디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사람 목숨도 싼값으로 부릴 수 있는 법이었다.
‘쯧, 이블 포인트나 안 올랐으면 좋겠네.’
약 2시간 정도 면접을 봤다.
지훈이 뽑은 사람은 다음과 같았다.
1. 이재진. (D등급 각성자)
변이계 이능력자. (보호색)
총꾼 (소총과 샷건)
세열 수류탄
2. 박동수 (F등급 각성자)
이능 없음.
총꾼 (분대 지원화기 - 기관총)
연막탄
3. 박스 존 주니어 (일반인)
이능 없음.
보조 마법사 (마력 E랭크)
마력 증강용 스태프
4. 샤오핑 (F등급 각성자)
이능 없음.
창잡이 (F등급 삼지창과 팔목 고정형 소형 방패)
5. 오철수 (일반인)
이능 없음.
비전투원, 길잡이 (전직 일본 개척지 관광가이드)
대충 다 뽑았기에, 내일 오전에 동구 톨게이트에서 보자고 하고는 헤어졌다.
다음날 새벽.
칼콘이 용병들을 슥 훑어보더니 투정을 부렸다.
“관광 가이드는 뭐야, 지훈. 내가 봤을 때 저거 얼마 가지도 못해서 죽을 것 같은데.”
지훈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건 또 뭔 미친놈인가.’ 싶었는데, 방사능 보호복에 가이거 계수기까지 갖춘 걸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일본 개척지가 작살남과 동시에, 독특한 관광이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방사능 관광’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박살이 난 도시를 볼 수 있는 경험을 하기는 어려웠기에 거금을 들여서 일본 개척지 관광을 오는 사람이 있었던 것.
“근데 왜 그만뒀대?”
“현지 일본인 강도 만났는데, 관광객 버리고 냅다 도망쳤단다. 뭐 이쪽 업계에선 수명 끝난 거지.”
덕분에 흘러 흘러 일본 개척지에 디스톨팅 스톤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 길잡이나 하면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저 마법사는 뭐야? 일반인인데?”
보통 마법사는 인건비가 비쌌다.
까닭에 이런 일은 잘 하지 않았지만 뭐 고용하는 입장에서야 싼 가격에 마법사를 부릴 수 있으니 덜컥 잡아왔다.
“아이덴티티 들어가려고 공부하다가, 돈 딸려서 일했는데 적성에 맞는단다.”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어차피 죽으려고 환장한 놈 이해하려 해봐야 머리만 아팠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자, 다들 밴에 타쇼. 이동만 거의 일주일 해야 하니까 그렇게 아시고, 차멀미 있는 사람 미리 봉투랑 약 챙기쇼.”
어차피 다들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밴에 7명이 타서 출발하려는 순간…….
띠리리리 - 띠리리리 -
핸드폰이 울렸다.
‘꼭두새벽부터 누가 전화를…….’
액정을 살펴보니 민우였다.
“왜.”
“혹시……. 출발했어요?”
욕이나 한 사발 해주려다 참았다.
본인도 도와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으니, 괜히 긁을 필요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직. 왜.”
“제가 잘 생각을 해봤는데요…….”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병신아, 가면 뒤진다. 그냥 집에 있어.”
괜히 괜히 감정에 휘둘려서 따라 왔다가 죽었다간, 그건 말 그대로 ‘개죽음’이었다. 처음부터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냥 내버려두고 오는 게 좋았다.
가벡 역시 그 말에 동의했는지 전화기 너머로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장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왜 개죽음을 자초하는지 모르겠군. 한심한 놈.
- 시끄러워 가벡. 너는 겁쟁이야.
- 아니, 현명한 거다. 개죽음을 피했을 뿐이지.
- 전사는 개뿔, 쫄보새끼.
“형님, 저 따라가겠습니다.”
어제처럼 흔들리는 목소리가 아닌,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뭐야, 생리하는 것도 아니고 변덕이 뭐 그렇게 심해. 미쳤어?”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동료 구하는 데 이유가 어딨냐고. 저도 똑같아요, 동료 돕는데 이유가 어딨습니까! 씨발, 그냥 하는 거죠!”
언젠가 지훈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는 민우였다.
감동 받을 수도 있는 시큼한 광경이었으나…….
“지랄한다. 곧 출발할 거니까 따라오지 마라.”
욕을 내뱉어 주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싫다고 했다가 갑자기 변덕 부린 것에 빈정 상해서?
아니었다.
‘이번엔 방사능이랑 마법 오염 때문에 엄청나게 위험할 건데, 괜히 마음 싱숭생숭한 놈 데려가긴 너무 위험해.’
민우가 결심한 건 기특하긴 했지만, 그게 잠시 감정과 죄책감에 휘둘린 거라면 오히려 역효과였다.
‘일단 확인이나 해 보자.’
슬쩍 민우 집에서 터미널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잠깐, 일 생겨서 1시간만 있다가 출발합시다.”
택시 타고 약 30분 거리.
1시간 안에 온다면 정말 마음 붙잡은 걸 테고, 객기를 부른 거면 그대로 집에서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만약 전자라면 뜯어말려서 될 게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데려가야 할 테고, 후자라면 안심하고 놓고 가면 됐다.
‘될 수 있으면 오지 마라, 민우야.’
약 45분 후.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
민우였다. 녀석은 급히 두리번거리다가, 밴에 기대서 담배를 피고 있던 지훈을 발견했다.
“형님!”
“오지 말라니까 왜 왔냐.”
“같이 가야죠. 동료 내버려 두고 어딜 가십니까?”
“한심한 놈. 너 지금 어디 가는지는 아냐? 진짜 뒤질지도 모른다니까?”
민우는 대답도 안 하고는 그냥 밴에 올라타 버렸다.
“하, 새끼…….”
지훈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고맙다…….’하고 웅얼거렸다.
민우가 잘 못 들었다는 듯 ‘예?’하고 되물었지만, 지훈은 대답해주질 않았다.
이동 도중 D등급 용병이 민우와 대화를 하더니, 비각성자라며 무시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었다.
이에 지훈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나한테는 당신보다 저 새끼가 5배는 도움 되니까, 거 닥치고 계쇼. 애가 좀 모자라 보여도 제 몫 다하는 놈이오.”
민우는 자신을 감싸주는 지훈을 보며 픽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