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29화 (129/173)

<-- 큰 힘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 -->

총기와 탄환을 구했으니 남은 일은 두 가지였다.

이능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는 것과, 탄환에 주입할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것.

그저 저 둘만 생각하며 지냈다. 시간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흘렀고, 정신을 차리니 벌써 이틀이나 지나있었다.

‘피곤하다.’

여태껏 잠까지 줄여가며 시간을 길게 쪼갠 까닭이다. 가벼운 피곤이 몰려왔지만, 커피를 입에 털어 넣어 쫓았다.

“후…….”

카페에 앉아 깊게 한숨을 쉬고 있길 잠시.

눈앞으로 서구 경제지구의 바쁜 일상이 지나갔다.

일을 끝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친구 혹은 지인과 약속을 잡아 신나게 웃고 있는 사람들 등.

평균 한 달에 두 번꼴로 사지를 넘나드는 지훈과는 퍽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세드에 오지 않았다면, 동생이 병들지 않았다면, 전과가 없었다면,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있었을까?’

피곤과 피로에 짓눌려 반쯤 썩어버린 눈동자에 비친 건 바로 동경이었다.

과거 뒷골목 시절에는 헌팅을 다니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헌터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했는데, 정작 되고 나니 평범한 일상이 부러워졌다.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의 떡이 커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미쳐가는군, 미쳐 가.’

아직 맛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무시할 수준도 아니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서서히 지훈의 마음과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무리 각성을 통해 신체 능력이 초인이 됐다고 한들, 그 안에 있는 건 유리같이 연약한 인간 본연의 정신이었다.

문득 홍궈가 떠올랐다.

- 히히힉, 우린 다 죽을 거야!

욕심에 눈이 멀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른 인물이지만 이상하게 공감이 갔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는 걸까?’

홍궈 뿐만이 아니었다.

문득 과거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 지훈아, 너는 왜 그렇게 각성자가 되고 싶어 하냐?

- 헌팅 가야죠. 헌팅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잖아.

- 지금도 갈 수 있어. 짐꾼 해, 새끼야.

- 하, 저보고 가서 미끼하고 뒤지라고? 안 해요.

- 푸하하, 새끼. 쓰고 버릴랬는데 안 넘어오네.

바로 중배였다.

지금은 제 손으로 직접 인생에 마침표를 찍어 줘 고인이 됐으나, 과거 둘은 꽤 가까운 사이였다.

- 근데 형님 요즘 담배가 늘은 것 같은데, 뭔 일 있어요?

- 이거 담배 아니야, 까트지.

까트.

담배보다도 중독성이 낮아서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분명 법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마약이었다.

중배는 그 까트를 하루에 20개비 이상 피웠다.

헌팅으로 번 돈의 반을 까트로 쓸 정도였다.

- 미쳤네. 그 비싼 걸 하루에 20개비나 핀다고요?

- 너도 헌팅 다녀봐라, 이렇게 된다.

당시에는 단지 ‘돈을 많이 버니 너도 이만큼 쓸 수 있을 거다.’ 라는 뜻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뜻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술,

담배,

마약류,

방탕한 생활,

정신과 입원과 약물치료,

마법을 통한 정신과 기억 세탁.

많은 헌터들이 저 중 하나 혹은 여러 개에 심각한 의존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잊기 위해서, 누군가는 보상 심리로, 또 누군가는 본인이 미쳐간다는 걸 부정하기 위해서 헌터들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생활과 약물에 몸을 기댔다.

‘악순환이다.’

그 결과는 뫼비우스의 띠였다.

술 담배 같은 경우는 좀 덜했지만, 나머지 4개는 얘기가 달랐다. 비싼 가격 때문에 크게 한탕 했던 돈도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결국 헌터는 PTSD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헌팅을 나가고, 크게 번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치 산 정상에서 조그마한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처음에는 별 게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거대하게.

모든 헌터들이 PTSD에 시달리다가, 사리분별이 탁해져 커다란 사건을 저질러 버린다.

홍궈가 그랬고, 중배가 그랬다.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최근 들어서 든 생각이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더 큰 힘, 더 많은 돈, 더 안락한 생활.

지금도 겨우 반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힘과 돈을 얻었고,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이 가능했다.

내일 먹을 음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밤중에 누군가 자물쇠 따는 소리에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도 욕심은 끊이질 않았다.

더 큰 힘,

더 많은 돈,

더 안락한 생활.

더, 더, 더, 더, 더, 더!

결국 그 욕심이 지훈에게 하여금 반지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위험으로 밀어 넣었다.

‘만약 내가 반지를 포기했으면 행복했을까?’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행복은 모르겠지만, 패배자이자 도망자로 남았겠지.’

저번에도 한 생각이었지만 이제 도망가는 건 더는 질색이었다. 이미 예전에 삶에 쫓겨, 돈에 쫓겨 질리도록 도망쳐 다니지 않았던가?

그때는 힘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훈에게는 힘이 있었고,

권능의 반지는 그 힘을 더욱 배가시켜줬다.

‘딱 1조만 벌자.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1조!

연봉 10억인 사람이 고려 시대부터 숨만 쉬고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현 지훈 연봉도 10억이 될까 말까였지만,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본디 모든 제품은 상위 1% 이내부턴 심각한 가격 인플레가 생기기 마련이었고, 이는 헌터와 각성자 역시 똑같았다.

거대 몬스터인 멕들킨토 한 마리만 잡아도 그 부산물이 거의 1,000억이었고, 요인 암살이나 국가 암투에 투입돼도 100억은 그냥 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자.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안전한 헌팅으로 월 1회 나간다는 가정하게, 지훈의 수입은 월 1,000만 원 내외.

얼핏 보면 충분히 많은 돈이었으나, 높은 물가 외에도 지현에게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절대 많지 않았다.

치료비를 포함, 완치되면 이제 대학까지 보내야 했다.

과거에도 대학 등록금은 비쌌지만, 현재는 수많은 대학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 등록금이 3배는 더 비쌌다.

그 말은 곧 잡비 포함 한 학기에 3,000은 깨진다는 뜻. 졸업 때까지 2억 4,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보사나 아이덴티티에 취직시키려면 대학 졸업 이후 또 전문 교육기관이나 마법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그 돈이 무지막지하게 비쌌다.

굳이 지현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훈도 똑같았다.

이미 엄청나게 커져 버린 씀씀이는 어떡한단 말인가?

당장 보험비 외에도 벤츠 기름 값으로만 한 달에 500이 넘게 깨짐은 물론, 입이 까다로워져서 식비만 200이 나갔다.

그 외에도 결혼하랴, 애 낳으랴, 노후 준비하랴……. 나갈 돈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했다.

‘결론은 몸 괜찮을 때 헌팅하는 수밖에 없겠네.’

사실 머리로는 전부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잠시 속도를 늦추고 뒤라도 돌아볼 마음에 한 번 더 곱씹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뒷골목 전전하다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총 맞고 술에 꼴은 취객 옆에서 싸늘하게 식어 갈 운명이었다.’

어차피 죽었을 운명이고, 위험한 건 똑같았다.

‘요즘 너무 편하게 살았나, 감성적이게 됐군. 늙었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침 커피가 다 떨어졌기에, 카페에서 나와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

뒤적, 뒤적.

근데 라이터가 없다.

갑자기 아쵸프무자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 süüde(발화).

‘개 같은 년. 동시에 고마운 년이기도 하군.’

옛날 같았으면 짜증에 담배를 구겼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신 지갑에서 오만원권 지폐를 하나 꺼냈다.

‘이능 발동, 마력 부여.’

지폐에 정신을 집중하자,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능 발동, 주문 주입.’

“Ilutulestik(불꽃).”

불꽃 마법을 시전 했다.

만약 마력 부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입고 있는 옷에도 불이 붙을 터. 하지만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탁, 탁.

화르륵!

지폐를 팔랑이자, 지폐에만 불이 붙었다.

지훈은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고는 다시 손목을 휘둘러 불을 홱 꺼버렸다. 그 모습에서 중국 영화 속 누군가가 떠오르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다 타버리면 재가 될 운명이거늘, 이깟 돈이 뭐라고.’

이딴 것에 목숨을 건다고 생각하니 퍽 우스워졌다.

톡!

담배 필터를 물어 멘솔 캡슐을 터트린 뒤, 깊게 빨았다.

“스읍 - 하.”

분명 폐를 병들게 하는 독임에도, 기분은 마치 청량해지듯 시원하기만 하다.

건물 벽에 기대 여유를 부리는 것도 잠시.

반쯤 타버린 지폐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능도 적당한 수준으로 써먹을 수 있게 됐다.’

안타깝게도 마법은 시간이 부족했던 까닭에 폭발이나 기타 위협적인 마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 대비 훌륭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총을 든 상태로 발마다 마력 부여를 할 수 있다.’

고속 영창이 없는 까닭에 지근거리 전투에선 사용하기 어려웠지만, 중거리 이상부터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터였다.

만족스러웠다.

혼자 씩 웃고 있으니 웬 여자 하나가 다가왔다.

아까 담배 피울 무렵부터 있던 여자였는데, 일행을 기다리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자였다.

“저기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며, 눈으로 상대를 훑었다.

9cm는 되어 보일 붉은 하이힐에,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하얀 색 원피스. 그리고 성형한 끼가 조금 나지만 길 다니며 시선 두어 번쯤 뺏길 법한 훌륭한 외모.

괜찮은 여자였다.

외모로만 따지자면 시연보다 더.

그래봐야 생판 남이라는 건 변함없었기에 무표정으로 말없이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한동안 머뭇거리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예쁜 여자가 눈앞에서 당황하는 모습.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으로, 사뭇 많은 남자의 심장과 뇌를 두드리기 좋은 모습이었으나 지훈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여자가 말이 없었기에 이쪽이 입을 먼저 뗐다.

“뭐.”

“저기……. 그러니까…….”

“왜.”

“연락처 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겨우 저 얘기 하려고 서류 결재 받으려는 신입 사원처럼 긴장했단 말인가?

이에 여자의 손을 덜컥 잡았다. 부드러운 살결과 함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여자가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 아……?”

예쁜 얼굴이 홍조가 스친다.

뭘 기대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안다고 해도 그 기대에 부응해 줄 생각도 없었고.

단지 여자의 손에 반쯤 타버린 지폐를 얹은 뒤…….

치이이익…….

그 위에 담배를 꺼버렸다.

“이, 이게 뭔……?”

“가져.”

여자의 반응은 보지도 않고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 아마 다른 의미로 얼굴이 잔뜩 붉어졌으리라.

‘몇 시지?’

오후 6시.

하늘을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고, 거리에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이 불을 밝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슬 때가 왔군, 얼마나 빌어먹게 잘 지냈나 보자고.’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골목길로 향하며, 오른손에 끼고 있던 권능의 반지를 매만졌다.

권능을 당신의 손안에.

반지를 만질 때마다 봤던 문구였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래, 권능이든 뭐든 전부 내 것이 될 것이다. 딱 그때 가지만 네 마음대로 움직여주마, 아쵸프무자.’

이를 꽉 깨물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길 몇 시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차가운 도시.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 아래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청바지에, 붉은색 체크무늬 셔츠. 그리고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과 화상으로 일그러진 왼쪽 얼굴.

아쵸프무자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을음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간만이네.”

“친한 척 인사는 집어치워. 피차 거래관계 용건만 간단히 하지. 내게 할 얘기가 많을 텐데?”

아쵸프무자는 분명 다음에 만날 때는 진실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대답을 들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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