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28화 (128/173)

<-- AS VAL -->

뚜둑, 뚜둑.

걸어가며 주먹을 눌러 뼛소리를 냈다.

어느 정도로 세게 때려야 할까 고민하길 잠시. 적당히 힘 조절해서 치지 않으면 죽었기에 주의하기로 했다.

“이보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뭔데!”

팔을 휘둘러 지훈의 손을 쳐내는 남자. 게다가 툭 튀어나온 말은 반말이었다.

‘새끼 봐라?’

어차피 시비 걸어야 했는데 껀덕지 던져주니 참 좋았다.

“뭔 일인진 몰라도 빨리 끝내지? 기다리는 사람 안 보여?”

“아 그거야 댁 사정이고. 네가 뭔데 끼어들어!”

지금 본인이 누구한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지 안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어이쿠, 무서워라. 거 한 대 치겠다?”

“괜히 한 대 맞고 질질 짜지 말고 꺼져, 병신아.”

슬쩍 긁듯 도발하니 남자가 더욱 버럭 하며 욕을 내뱉었다.

‘화 돋우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하겠고…….’

이제 이빨을 드러내 버르장머리 없는 하룻강아지의 이빨과 발톱을 모조리 뽑아주면 됐다.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지갑에서 각성자 등록증을 보여줬다.

효과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남자가 머뭇거렸다.

“어, 어……. 저기 그게…….”

비무장 민간인에게 있어서 각성자는 공포 그 자체였다.

총 맞아도 안 죽을지 모르는 놈이랑 주먹다짐한다?

맨손으로 황소랑 싸우는 꼴이었다.

이에 지훈은 일부러 볼을 내밀며 때려보라고 자극했다.

“때려 봐, 어디 질질 짜는 게 누가 될지 한 번 보자고.”

“왜 그러세요…….”

남자가 바로 꼬리를 말고는 깨갱했다.

“빨리, 해보라고. 응? 내가 요즘 조금 심심해.”

“그, 그만 하세요…….”

남자의 목소리가 바닥을 뚫고 들어갈 기세로 작아졌다.

굳이 사람 하나 팰 것 없이 이 정도로 끝내려니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남자 너머로 보이는 고소한 승호의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달라졌다.

저번에 사격장 박살 낸 전과가 있으니 조금 더 서비스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짝, 짝, 짝.

손바닥으로 남자의 볼을 번갈아가며 때렸다.

아프지는 않을 정도였으나 분명 모욕적인 처사.

여자 친구 앞에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으리라.

“뭐야, 자기 싸움 잘한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승희가 남자를 쏘아봤다.

남자는 우물쭈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싸움 잘하는 사람들은 잘 안 싸워……. 때리면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웃음이 터지려는 걸 꾹 막았다.

여자 친구 앞에서 폼은 잡아야겠고, 앞에 서 있는 지훈은 무섭고 하니 나온 결과가 저거였다. 다음 반응이 궁금해서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지만, 남자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싸움 걸 테니까 한 번 붙어보자. 내가 우리 고조부님 존안이 어떻게 생겨 드셨는지 진짜 궁금했거든. 이 새끼야. 가서 인사나 한번 드려 보자고. 응?”

말 끝나자마자 워커로 정강이를 차버렸다.

뻑 소리와 함께 앓는 소리가 들리기도 잠시…….

“에이, 씨발 진짜…….!”

남자가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

뭐 결과야 말할 것도 없었다.

“자기야, 정신 차려! 자기야!”

승희가 남자를 흔들어 깨웠지만, 그 정도로 기절한 사람이 일어날 리 없었다.

“당신 뭐야! 왜 사람을 때려! 고소할 거야, 고소!”

남자 친구가 다쳤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승희는 고소를 들먹였다.

“해.”

사실 상관없었다.

AMP 사건이야 지구에서 정부 요원 반병신 만들고 도망 온 거니 일이 컸지만, 세드에서는 또 말이 달랐다.

사람 죽여도 무마할 수 있는 돈과 인맥과 인맥이 있는데 저깟 단순 폭행 따위야 일도 아니었다.

“뭐가 그렇게 당당해! 저기 CCTV 보여!? 증거 다 있어 미친 새끼야!”

제 아빠 연배 어른한테 반말 찍찍하는 모습에서, 승호도 어지간히 자식 농사 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열네 살.

승호가 승희를 낳은 나이였다.

애가 애를 낳은 꼴이니 제대로 된 교육은커녕, 애 키우는 것보다 나가 노는 것에 더 집중했겠지.

지금이야 마음 바로잡고 가족에 집중했지만 이미 딸 맛탱이가 간 건 어찌 바로잡을 길이 없었다.

“어이쿠, 주인 양반. 내 알기로 저거 모형만 달아놓은 거로 아는데, 아니었나?”

승호를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예, 맞습니다. 그냥 모형이지 말입니다.”

이에 승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봤잖아! 증인 서주면 되잖아!”

“승희야 미안한데 아빠가 고개를 돌려서 못 봤어.”

“으아아아아, 이 꼰대 새끼야. 너 존나 싫어!”

“거 꼬멩아. 시끄러우니까 빨리 남자친구 끌고 나가라.”

결국 승희는 악을 잔뜩 쓰며 남자 친구를 끌어가려고 했지만, 힘에 부쳤던지 결국 버리고 가 버렸다.

승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지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후……. 고맙다, 진짜 고맙다.”

“하이고 새끼야, 내가 이런 똥까지 치워야겠냐?”

“너도 애 낳아서 키워봐, 미친놈아.”

“그나저나 저거 어쩔 건데?”

가게 안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이에 승호는 밖에 있던 문지기를 불러, 창고에 가둬놓으라고 시켰다.

아마 딸이 안 보는 장소에서 제 손으로 직접 조지려는 생각 같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냐?”

“빈토레즈 잃어버렸다. 새 물건 필요해.”

“기다려 봐 요즘 새로 들어온 물건 있다.”

…….

많은 총기류가 카운터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제일 먼저 올라온 건 AK47이었다.

지금 당장 지구에서도 온갖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음은 물론, 분쟁지구에는 절대 빠지지 않고 발견되는 무기였다.

최고의 총기는 아니었으나, ‘사람 죽이는 무기’라는 것에 아주 충실하다 못해 그것만 생각한 소총이었다.

영점 조준할 것 없이 대충 쏴도 잘 나가고, 드르륵 긁어도 잘 걸리지 않으며, 단순한 구조 때문에 신뢰도도 높다.

“무엇보다 총 가격이 싸. 탄환도 7.62mm라 끝내주지!”

“됐어, 새끼야.”

명총이긴 했지만 정감이 안 갔다.

당장만 해도 고블린이 AK 들고 사람 죽이고 다니는 건 물론, 온갖 이종족들이 대부분 쓰는 총이 바로 AK였다.

과거 AK가 테러리스트의 상징이자, 제 3 세계를 상징하는 총이었다면, 지금은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쓰는 것 보다, 몬스터가 사람 죽이는 데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참 웃기지도 않는 아이러니였다.

워낙 좋은 총이기도 하거니와, 가격도 싸고 만들기도 쉬우니 어두운 쪽으로 유통이 많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거 들고 다니면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총도 모르는 새끼들이 꼭 이미지 타령하지. 그럼 멋들어지게 SO80 써 새끼야. 간지 죽이잖아.”

SO80. 저번에도 승호가 추천했던 총이자, 영국군 제식소총으로 ‘초콜릿 총’이라는 별명이 유명했다.

왜 하필 초콜릿일까?

드르륵 긁으면 녹아 없어져서(고장 나서)였다.

근데도 추천한다고?

헌팅 나가서 총기 고장으로 죽으라는 얘기였다.

“에라이, 새끼야!”

훅!

대머리에 손바닥 자국 하나 날려줄 생각으로 손을 휘둘렀지만, 승호는 잽싸게 홱 피해버렸다.

뒷골목에서 은퇴해 지금은 뱃살 가득한 아저씨가 됐다고 한들, 전투로 갈고 닦인 감은 잘 녹슬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 꼭 소총으로 해야 되냐?”

“무슨 소린데?”

소총은 모든 총기를 통틀어 제일 균형 잡힌 총이었다.

권총은 탄두와 장탄이, 기관단총은 파괴력이, 기관총은 활동성이, 저격총은 연사력이, 산탄총은 사거리가 부족하다.

유탄발사기의 경우 파괴력은 절륜했으나 아군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무조건 탈락이었다.

‘실내에서 저딴 거 쐈다간 피아 구분 없이 다 뒤집힌다.’

결국 범용성 면에서는 소총이 제일이었다.

“봐라, 헌터들이 왜 기관총 안 들고 다니냐?”

“너무 무겁다. OTN으로 긁을 거면 총알 값도 은근히 부담되고, 반동도 무거워. 게다가 위급 상황은 어쩔 건데?”

위급 상황에선 1초 사이로 생과 사가 오간다.

기관총은 메고 이동해야 하는데 적 발견과 동시에 사격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원한다면 들고 다닐 수도 있긴 하겠지만 무거워서 기동력이 떨어졌다.

이는 기동력을 중시하는 지훈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너 그 정도는 들 수 있잖아?”

맞는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거절했다.

소총보다는 범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빈토레즈 같은 물건 없어? 그거 좋더만.”

애초에 지정 사수 소총으로 개발된 물건이라 파괴력이 월등함은 물론, 연사도 가능한지라 거의 소총 수준으로 갈겨댔던 지훈이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면 일체형 조준경에 배율이 들어가서 근접 사격이 어려웠다는 것 정도?

“독특하네, 헌터 애들은 불곰국 애들 물건 잘 안 쓰려고 하던데 너는 그게 또 맞냐?”

총은 거의 알음알음으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정보가 널리 퍼져있는 미국이나 유럽 쪽 총기가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까닭에 많은 헌터들이 처음 미국, 유럽 쪽 총기를 쓰기 시작, 그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그 총을 따라 쓰면서 동유럽 총은 거의 잊혀진 게 현실이었다.

“지랄하지 말고. 있어, 없어?”

승호가 이내 카운터 위로 총을 하나 올려놨다.

빈토레즈와 비슷해 보였으나 분명 다른 총이었다.

“아스발(AS VAL). 정확한 명칭 Автомат Специальный Бесшумный. 뜻은 나도 몰라.”

같은 뿌리에서 시작해, 빈토레즈가 지정 사수 소총을 향해 갔다면, 아스발(AS VAL)은 돌격 소총을 향했다.

현 러시아 특수부대들이 사용하는 소총이었으며, 역시나 소음기 일체형이며, 9x39mm 탄을 사용했다.

“소음기 일체형이라 시가전에서 아주 죽여주지. 괜히 사냥하다가 강도들 시선 끌 일도 없고.”

예전이라면 갸웃 한 번 했겠지만, 현재는 빈토레즈에 굉장히 만족한 상태이므로 바로 사격을 해보기로 했다.

푝, 푝!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빈토레즈 같은 경우 근거리 사격 시 조준경 때문에 방해됐지만, 아스발은 그런 걱정이 없었다.

게다가 빈토레즈는 최대 장탄이 20발이지만, 아스발 같은 경우 30발들이 바나나 탄창을 사용할 수 있어 훨씬 더 유리해졌다.

‘괜찮은데?’

승호가 보지 않는 사이 마력을 불어넣어서 한 번 쏴봤다.

“Valgus(빛).”

푝!

빛 때문에 마치 흰색 레이저같이 보였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아스발을 구매했다.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어차피 총은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편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총기 바꾸면 탄환도 새로 사야 하는데, AS VAL이면 예전에 사놨던 9x39mm OTN탄을 다시 쓸 수 있으니 가격으로 따져도 그게 그거다.’

총알이 생각나자 살 물건이 하나 더 떠올랐다.

바로 각성자 물품 거래소로 향했다.

“9x39mm VGC탄 있소?”

마음 같아서는 MN탄을 사고 싶었지만, MN부터는 요인 암살을 우려하는 까닭에 거래가 힘들었다.

사고 싶으면 암시장에 가야 했는데, 원래 가격도 200만 원을 호가하는 물건을 암시장에서 산다면?

발당 2,000만 원은 각오해야 했다.

‘20발 가득 채우면 4억인가.’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타협점을 본 게 D등급 1cm 철판을 관통 가능한 VGC였다. D등급 방패까지는 몰라도, 갑옷까지는 손쉽게 뚫을 게 분명했다.

‘그 거인 새끼도 VGC면 박힐 가능성이 크다.’

일반 탄환을 맨몸으로 튕겨냈으니, 분명 그 녀석 역시 저항 능력치가 엄청나게 높을 터. 괜히 아슬아슬한 OTN으로 쏠 바에는 VGC를 준비해 놓는 게 좋았다.

“요즘 환율 올라서 발당 25만 원쯤 합니다. 기다리면 22만 원까지는 내려갈 것 같기도 한데, 어쩔까요?”

아스발의 최대 장탄은 20발.

곧 탄창 하나 채우는 데 500만 원 나간다는 얘기였다.

“주쇼.”

탄창 하나에 거금이날아가는 순간.

비효율적인 금액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깟 돈이야 계속 벌 수 있었지만, 목숨은 떨어지는 순간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거인 새끼. 다음에 보면 벌집을 만들어주마.’

이를 꽉 물고는, 9x39mm VGC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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