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구리같은 양반 -->
“아, 드디어 도착한 건가! 끄으으!”
가벡이 한국 개척지 톨게이트를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통조림마냥 차 안에 박혀있어서 온몸이 쑤셨던 모양이다.
차에 타고 있다가, 내려서 밥 먹고, 잤다가, 밥 먹고, 잠깐 운전하다가, 내려서 밥 먹고, 잤다가, 밥 먹고.
벤츠가 닭장도 아니고, 일행 전체가 근 이틀 동안 계속해서 저렇게 살았다.
한가위 때 여섯 시간만 갇혀있어도 사람이 반쯤 맛이 가는데, 48시간을 저랬으니 오죽했을까.
그나마도 지훈이 차를 몰 때는 시속 240km씩 밟아서 이틀이었지, 갈 때는 72시간이었다.
아마 한동안 자동차라면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나 볼일 있어서 여기까지만 타자. 각자 알아서 가라.”
일행들은 전부 톨게이트에 내려줬다.
평소라면 ‘지훈, 왜~ 태워줘!’ 하고 불평을 했겠지만, 다들 군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에서 쇼생크를 탈출한 전직 은행원이 비춰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럼 슬슬 밀려있는 일을 처리해 볼까.’
이것저것 할 일은 많았지만, 제일 급한 건 정산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했기에 보통 두 명이 했지만, 이번에는 석중 할배만 만나면 됐기에 혼자서도 충분했다.
벤츠를 가까운 유료 주차장에 대고는 가까운 슈퍼에서 카트를 하나 빌렸다. 뒷골목에서 워낙 유명한 지훈인지라, 흔쾌히 받아낼 수 있었다.
드륵, 드륵, 드륵, 드륵.
포스트 아포칼립스 혹은 미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난민 내지는 노숙자마냥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이동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위의 둘은 생필품을 가지고 다니지만 지훈은 아티펙트와 흉흉해 보이는 칵톨레므의 손발이 들어있다는 것 정도?
양아치들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내용물을 보고 중얼거렸지만, 그 누구도 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 비싸 보이지 않냐? 털까? 무장도 안 한 것 같은데.
- 야, 이 병신아. 저거 누군지 몰라?
- 미친 사냥개잖아. 걸리면 그냥 뒤진다고!
- 요즘 잠잠해서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어?
- 각성해서 헌팅 다닌다고 하던데?
각성해서 헌팅을 다닌다.
그 말은 그냥도 위험했던 사람이 2배, 4배 혹은 그 제곱으로 위험해졌다는 말이다.
‘거 한심한 새끼들. 대낮부터 강도질할 생각이나 하고.’
나름 자기들끼리 소리 낮춰 홀긋홀긋 쳐다보며 얘기한다고 했지만,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는 지훈은 그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얼굴 찌푸리고 쳐다봐 주니, 고기 훔쳐 먹다 걸린 바퀴벌레 무리처럼 파스스 흩어지는 양아치들이었다.
평소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 사람 하나 간신히 다닐 수 있을 법한 지름길을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카트를 끌고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빙 돌아서 이동했다.
‘이쪽 길은 오래간만에 오네. 관 따고는 처음인가?’
뒷골목 시절이야 구석구석 잘 다녔지만, 지금은 헌팅을 했기에 올 길이 많지 않았다.
카드 끌고 가고 있자니 엘프 하나가 들러붙었다.
뭔가 싶어 쳐다보니 낯이 익다.
‘누구더라?’
구면이냐고 묻기보다 앞서 엘프가 말했다.
“오빠, 쉬다 가세요. 금방 오픈해서 깨끗해요.”
- 입으로도 해줄게요. 얼굴에 뿌려도 돼요. 제발 그냥 가지 마세요. 할당량 못 채우면 맞는단 말이에요…….
관 따고 석중 할배 만나러 가다가 붙잡았던 엘프 창녀였다.
‘너였냐.’
용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도 잠시. 바로 떼어냈다.
“이종교배 관심 없다. 꺼져.”
보나 마나 말로만 해서는 떨어질 것 같지 않았기에 재킷을 열어 글록을 슬쩍 보여줬다.
엘프가 기겁하며 떨어졌다.
“히익!”
큰 소리가 나자 방석집에서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낯익은 얼굴. 저번에 시비 붙었던 경비였다.
“너 뭐야 이 새…….”
똑같은 레퍼토리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미친 사냥개, 새끼야. 미친 사냥개!”
그 날 새벽과 달리 지금은 낮이다.
지훈의 얼굴이 훤히 보였기에 경비가 바로 꼬리를 말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너는 씨발 좀, 가는 사람 좀 붙잡지 마라. 그러다 총 맞고 뒤진다 진짜. 짜증나게, 쯧.”
엘프에게 진심을 담은 충고를 내뱉고는 다시 움직였다.
- 잡화, 아티펙트도 취급.
언제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낡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 안에 카트가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으므로, 당연히 들고서 내려가야 했다.
바로 석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습니디.”
“할배, 나요.”
“네가 누군지 내는 모른디. 싹 누런 쓰애끼, 니는 눈데 이름도 안 말하고 내요, 내요 하니?”
“거 김지훈, 씨발. 김지훈!”
제발 발신자 번호 찍히는 전화기 하나 사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도, 기어이 안 산 모양이다.
‘돈은 썩어 넘치게 많은 양반이 도대체 전화기 한 대가 뭐 그리 아깝다고 난리야. 미친 노인네!’
“지금 가게 앞인데, 망보는 애들 좀 빌리겠소.”
“망보는 애들이라니, 니 지금 뭔 소리니.”
“거 개 좆같은 소리 집어치우시고, 오크 좆 말린 거나 씹고 계쇼. 금방 내려갈 테니까, 씨발 나랑 얘기 좀 합시다.”
빌어먹게 힘든 폐품임무를 떠넘긴 것부터 시작해서 겨우 5km짜리 GPS 준 것. 그리고 정글 주인에 대한 정보는 쏙 빼놓은 것 등 할 얘기가 많았다.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지만, 꾹 눌러두고는 석중 가게와 마주 보고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얼핏 보기에 비어있는 건물처럼 보였다.
반면 실상은 석중 소유로 가게 주변에 적이 매복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만들어 놓은 일종의 감시용 망루였다.
비어있는 1층을 홀을 지나 거미줄 가득한 계단을 올랐고, 이내 녹이 잔뜩 슨 철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노크 소리가 꼭 사형선고라도 되는 것처럼 울렸다.
“전화하는 거 다 들은 거 알아, 새끼들아. 문 작살내고 들어가기 전에 튀어나와라. 내가 지금 기분이 별로 안 좋다.”
지훈은 OTN탄으로도 죽일 수 없는 각성자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서 저 철문을 부수는 것은 물론, 이 건물 전체를 초토화 시킬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는지 살찐 대머리 하나가 사무실 문을 반만 열고는 머리만 내밀었다.
주식쟁이를 칵톨레므 미끼로 질질 끌고 갔던 놈이었다.
“어……. 지훈 형님, 안녕하십니까……. 여긴 무슨 일로…….”
“엿 같은 시치미 그만두고, 내려와서 짐 옮겨 새끼야.”
대머리가 머리카락 하나 없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얼굴에서 곤란한 표정이 묻어났다.
“아, 행님……. 진짜 이러시면 저희 석중 할배한테 죽습니다, 좀만 봐주십쇼……. 누가 짐 못 훔쳐가게 망 잘 봐 드릴 테니까 안심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이 새끼가 진짜.”
“저희 좀 살려 주세요…….”
“됐고, 대가리 집어넣고 문에서 물러나라.”
최후통첩이었으나, 대머리는 저 말을 오해한 듯싶었다.
“감사합니다, 행님!”
대머리가 쏙 들어갔다.
이후 지훈은 주먹을 꽉 쥐고는, 문 경첩이 있을법한 두 부분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뻑, 뻑!
맨손이 콘크리트를 부수는 기괴한 상황!
이후 지훈은 발로 문을 세 번 정도 찼다.
쾅 소리가 이어지길 몇 번.
쿠웅!
이내 콘크리트 째로 철 문짝이 뜯겨 넘어졌다.
“이 개새끼들아! 내가 기분 안 좋다고 했냐, 안 했냐?”
사무실 안에 있던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얼어붙었다.
“거 씨발, 내가 할배한테 직접 얘기할 테니까 두 놈만 나와서 짐 옮겨라. 앙?”
결국 울상을 지은 남자 둘이 도축장이 끌려가는 돼지마냥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헥, 헥, 헥…….
저벅, 저벅, 저벅.
석중의 부하 둘이 물건을 옮기는 걸 담배만 물고 지켜봤다.
사실 혼자 해도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나마 석중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어서 시킨 일이었다.
물건이 다 옮겨지고 난 뒤 느긋한 발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시체 썩는 듯 퀴퀴한 곰팡이와 위험한 화약 냄새가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 석중의 가게가 펼쳐졌다.
“쓰애끼, 왔니.”
석중은 재미있다는 씩 웃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이 연신 비틀어지는 모습이 꼭 썩은 고목 같아 보였다.
“어떻게 중국 개척지 관광은 즐거웠고?”
“거 참 존나게 즐거웠지. 덕분에 목도 날아갈 뻔하고.”
석중은 가게에 혼자 있을 때 항상 뉴스를 틀어놓으니, 아마 칼날 정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내는 그런 일 몰랐디. 니 지금 홍궈가 빙싀짓 한 걸 왜 내래 와서 화를 내고 있니?”
개소리였다.
홍궈가 죽을 정도였다면 석중 역시 뭔가 큰일이 터졌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 터.
결국 반쯤은 알고 보냈다는 얘기였다.
“오리발 잘라버리기 전에 치우쇼. 씨발, 더 혓바닥질 할 것 없고. 한 번만 더 이딴 엿 먹이면 앞으로 할배랑 거래할 일 없으니까 그래 아쇼.”
“워~ 워~ 진정하라 우리 지후이. 내래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전부 다 내 잘못이디.”
전혀 반성하는 눈치가 없는 석중이었다.
‘나이랑 같이 고집이랑 아집만 처먹었나, 쯧.’
“됐고. 돈이나 내놓으쇼.”
쟁반에 폐품으로 모아온 아티펙트를 올려놓고는, 방탄유리 너머로 물건을 건네줬다.
총 D등급 4개, C등급 2개였다.
“뭐야, D등급 1개 어딨니?”
“6M짜리 괴물이 정글 헤집고 다니는 와중에 그거 찾아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로 아쇼. 씨발, 내가 예수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찾아오나?”
“뭐, 그럴 수도 있디, 납득할 만한 수준이그.”
현금, 계좌 둘 중 뭐로 주냐는 말에 현금을 선택했다.
카운터 너머로 500만 원 19뭉치가 넘어왔다.
“거 할배, 돈이 많은데 이거 뭔데?”
“용돈 해라. 대가리에 피 몰린 거 보이, 가서 여자라도 안으메 식히야 할 것 같디.”
말은 저렇게 해도, 일종의 위험수당인 듯했다.
아마 입장 상 대놓고 사과할 수는 없으니, 돈으로라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5,000만 원.
네 명 목숨 건 값으로는 적은 양이었지만, 마음과 성의 그리고 여태까지 함께해온 정이 있어서 받아주기로 했다.
다음으론 칵톨레므 손발을 카운터에 올려놨다.
“아티펙트 보니까 그냥 장갑에다가 손톱 박아놓은 것도 있드만. 그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요?”
딱 봐도 싸구려 티 팍팍 나는 아티펙트가 아닐 수 없었다.
“겉 보고 무시하다 한 방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염라 얼굴 보러 가는기디. 왜, 한번 보고 싶나?”
“됐소.”
석중은 약속대로 발톱 하나당 500만 원을 쳐줬고, 현금 2억은 계좌로 쏴준다고 말했다.
“그거하고, 여기 다른 폐품하고 활력초인가 뭔가 정력에 좋아 보이는 풀도 있소. 이것도 그냥 한꺼번에 정산합시다.”
석중은 슥 훑어보고는 총합 6,000만 원을 불렀다.
어차피 웃돈 받은 거 있었기에 흥정 없이 그대로 받았다.
“다음에 보고, 앞으로는 일 좀 똑디 합시다. 쯧.”
“니나 디지지 말고 살아있으라, 빙시야.”
석중에게 인사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슬쩍 건너편 사무실 2층을 바라보니, 창 너머로 나와 있던 거울 하나가 슥 사라졌다.
‘한심한 놈들.’
가볍게 혀를 차주고는 다시 벤츠로 향했다.
걸음마다 가벼운 피곤이 묻어났지만 무시했다.
아직 잠자기에 할 일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