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족스러운 결과 -->
새로운 이능.
제대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발걸음이 가벼운 게 꼭 공중에 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칼콘과 가벡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시 뒷골목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몬스터 파이팅(이종족 혹은 맹수 둘을 가둬놓고 판돈을 거는 경기)였기에, 주변 사람들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심각한 일인가 싶어 살펴봤다.
다행히 둘 다 맨손으로 싸우고 있는 걸 봤을 때 누구 하나 시체 되는 꼴은 안 일어날 것 같았다.
결과는 가벡의 승리였다.
제대로 싸웠다면 왼쪽 사지가 B등급인 칼콘의 압승이겠지만, 부상을 우려해 왼쪽 팔을 아예 쓰지 않은 까닭이었다.
싸움이 끝나자 구경꾼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뭐하냐?”
“지훈 왔어? 잠깐 운동 좀 했지!”
칼콘이 흙범벅이 된 옷을 훌떡 벗어 탈탈 털었다.
인간 눈으로 보면 누가 봐도 쌈박질인데, 저걸 운동이라고 말하는 걸 보며 역시는 전투종족은 전투종족인가보다 싶었다.
“민우 어디 갔냐?”
“걔 요즘 이상하게 자꾸 배고프다고, 뭐 먹으러 갔어.”
“방금 밥 먹었는데 또 먹는다고?”
뭔가 이상했다.
각성자인 지훈, 칼콘, 가벡은 신진대사 때문에 음식을 많아 먹을 수밖에 없다고 쳐도 민우는 일반인이었다.
“내가 봤는데, 화장실에서 토하고 또 먹더군.”
순간 스쳐 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각성 전 증후군.
사람마다 워낙 증상이 달라서 딱 규명된 건 없었지만, 대부분은 각성 전에 온갖 기행을 저질렀다.
술을 잔뜩 마신다든가, 폭력적으로 변한다거나, 시름시름 앓거나, 성욕이 폭발한다거나, 폭식하거나 말이다.
조만간 각성 증후군 테스트를 받거나, 병원에 데려가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벤츠에 기댄 체 담배를 한 대 태우며 기다렸다.
…….
약 15분쯤 지나자 민우가 양손에 핫바를 들고 나타났다.
‘화장실에서 토했는데 그사이 또?’
말로만 들었을 때와 달리 실제로 보니 또 충격적이었다.
혹시 거식증 걸렸거나, 병 같은 거 걸린 적 있냐고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자세히 뜯어보고 있으니, 민우가 문득…….
툭!
지나가던 여자와 몸을 부딪쳤다.
“아 죄……. Sorry. (미안합니다.)”
“Fine. Care. (괜찮아. 조심해.)”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민우와 멀어졌다.
뭔가 바쁜 일이 있겠거니 싶을 수도 있었지만, 지훈은 뭔가 찜찜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보통 이런 일은 최대한 빨리 대응하는 게 좋았기에, 바로 민우에게 성큼 다가갔다.
“왜 그러세요?”
“너 지갑 어디다 넣어뒀어.”
“후드 앞주머니에 넣어 놨어요. 왜 그러세요?”
좀도둑 많다고 뒷주머니에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터라, 아무래도 후드 앞에 넣어놓은 모양이다.
“에이, 저 말 한번 들으면 딱딱 지킨다니까요! 봐봐요, 제가 여기다 잘……. 어?”
없다.
화들짝, 주섬주섬, 뒤적뒤적, 뒤져봐도 없다.
핫바 사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게, 없어졌다!
민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 거주증이랑 주민등록증 전부 다 지갑 안에 있는데…….”
정신이 나가버린 민우의 등을 토닥이고는 워커 끈을 조이는 척하며 방금 부딪쳤던 여자를 유심히 살폈다.
시선이 느껴졌던 걸까?
여자가 뒤를 돌아봤고, 지훈과 눈을 마주쳤다.
‘맞네, 썅년.’
여자가 걸음 속도를 한층 더 올렸기에, 바로 수그렸던 몸을 튕기며 튀어 나갔다.
타타타타타 - !
10초도 안 돼서 잡았다.
현재 민첩 능력치는 D.
이능을 쓰지 않아도 빠른 속도인데, 거기다가 가속까지 쓰면 이미 시속 80km는 나왔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중국어를 외쳤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죄다 몰렸지만 무시했다.
중국의 문화 특성상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신고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공안이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시달릴 걸 우려하기 때문이었다.
짝!
찌이익!
좋게 끝내려고 했거늘, 저항이 너무 심했다.
이에 따귀를 때리고는 입고 있던 잠바를 강제로 벗겼다. 벗기려 하던 와중에 여자가 도망가려 해서 잠바가 찢어졌다.
잠바 주머니를 뒤졌으나 지갑으로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Give me wallet, you fucking bitch. (지갑 내놔 쌍년아.)”
여자가 잡아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가볍게 명치에 한 방 꽂아줬다.
뻐억 -
“꺼억, 꺽!”
언어는 달라도 고통은 똑같은지, 여자가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었다. 폐가 벌렁거려서 숨을 쉬기 힘든 모양이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민우가 와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마 저 녀석 눈으로 보기에는 갑자기 달려가서 사람 패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네 지갑 찾는다, 이 새끼야.”
질문에 대답하며 여자의 뒤로 돌아가서는, 등을 발로 밀어버렸다.
뻑 소리가 나며 여자가 바닥에 엎어졌다.
“거 그러게 왜 쓸 대 없이 반항해서 매를 버나.”
이후 뒷주머니를 뒤졌다.
없다.
앞주머니를 뒤지자 여자가 들고 다닌 다기엔 어울리지 않는 갈색 지갑이 하나 튀어나왔다.
펼쳐보니 민우의 주민등록증이 보였다.
툭.
민우에게 던져주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이게 왜…….”
“러시아에서 당하고 또 당하냐? 정신 좀 차리자.”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칼콘이나 가벡이야 전투 종족인지라 함부로 소지품에 손댔다가는 말 그대로 ‘손모가지 날아갈 각오’를 해야 했다.
지훈은 걷는 것부터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나니 좀도둑들은 자연스럽게 목표로 삼지 않을 테고…….
그럼 남는 건 민우 하나였다. 어딘가 태평한 모습이 헌터라기보다는 학생처럼 보이고, 걸음걸이와 눈에는 경계 한 조각 묻어나지 않았다.
뒷골목 사람 아니고서야, 좀도둑들이 맘먹고 노리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민우와 함께 차로 돌아가고 있자니 뒤에서 남자 하나가 거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남자친구 내지는 저 여자에게 상납을 받는 양아치 정도로 보였다.
“What. (뭐.)”
양아치는 계속해서 중국어로 뭐라 뭐라 고함쳤다.
눈만 움직여 녀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경계 따위 없는 허세 가득한 자세.
싸움에 익숙해 보이지는 않는 행동거지.
총이나 칼을 휴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꺼내기까지 시간이 걸려 보였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로우킥을 달렸다.
뻑 소리와 함께 앞으로 휘청거리는 녀석에게, 로우킥 날렸던 힘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백스핀 블로를 꽂아줬다.
정확하게 관자놀이에 꽂혔다.
쿵.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남자.
그 남자가 끝이 아니었는지 휴게소 주차장 주변에서 남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 식칼이나 나이프 같은 걸 들고 있었다.
각성자도 몇 명 섞여 있었는지, 아티펙트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아마 동료가 당하는 걸 보고 보복하려는 심보겠지.
뭐 그래 봐야 전부 다 피라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 귀찮게 진짜…….’
얼마 전에 엄청나게 큰 전투를 치른 터라 될 수 있으면 그냥 편하게 넘어가고 싶었는데, 어째 벌레 꼬이듯 사람이 계속 불어났다.
“어, 어떡해요 형님……. 저 장비도 다 놓고 왔는데…….”
지훈이야 저딴 칼 따위 몇 방이나 맞아도 문제없었으나, 민우는 아니었다. 장비가 없는 이상 그냥 전투 몇 번 경험한 민간인으로 봐야 옳았다.
칼에 맞는 순간 최소 중상, 심하면 사망이었다.
“싸울 수 있겠냐?”
“카, 칼 든 사람한테 맨손으로 덤비라고요?”
애초에 비전투 인원인데 뭘 기대하겠는가.
“몸 말고서 바닥에 엎드려 있어.”
왼손으로 민우의 어깨를 누르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거무튀튀한 쇠뭉치, 글록을 꺼냈다.
멈칫!
동네 양아치들인 걸까?
총을 보고는 굉장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지훈은 여유롭게 글록에 소음기까지 꼈다.
‘사람한테도 한번 쏴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현재 글록 안에 들어있는 탄환은 총 8발.
위부터 순서대로 빛 3개, 불꽃 3개.
나머지 2개는 위압감과 신진대사를 집어넣은 상태였다.
“杀!”
도망가려나 싶었거늘, 어느 한 남자의 외침을 시작으로 양아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양아치들 너머로 가벡과 칼콘이 달려오는 게 보였지만, 어차피 도착할 때쯤이면 양아치들이 반으로 죽어 있을 게 분명했다.
‘이능 발동, 집중.’
빠르게 눈만 굴려 상대를 훑었다.
총 여섯이었다.
‘마지막 놈이 세 발 맞으면 되겠네.’
계산을 끝내고는 바로 가속 이능을 발동했다.
우으으으으응!
AMP 반지와 더불어 양손이 반응했다.
이능이 올랐기 때문일까?
상대방은 더더욱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지훈의 몸은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게 느껴졌다.
‘시간이 왜곡된 세상 속에서 나 혼자만 정상으로 움직이는 기분이군.’
잡생각은 그만하기로 마음먹고는, 가장 가까운 양아치에게 시선을 옮겼다.
후 - 우 - 우 - 욱.
날카롭게 칼을 휘두르는 상태였지만, 집중과 가속 이능의 효과로 인해 하품 한 번 하고 피해도 될 정도로 느려 보였다.
퓨 - 욱!
글록이 불을 뿜음과 함께 굵은 빛 덩어리가 날아갔다.
마치 예광탄, 아니 그보다는 흰색 레이저에 가까워 보였다.
‘이렇게 나가는 건가. 착탄 지점에서 빛이 터지거나, 거기서부터 밝게 빛날 줄 알았는데 의외군.’
아군과 떨어진 상태에서 본인의 위치를 알리기 위한 용도면 모를까, 이대로 실전에 쓰기에는 무리가 많아 보였다.
“꺼 - 어 - 어 - 억!”
길게 늘어진 비명을 지르는 양아치를 무시하고는, 바로 다음으로 달려오는 두 녀석에게 발포했다.
맞아도 치명적이지 않은 허벅지가 목표였다.
마치 SF영화 속 함선이 내뿜는 고열 레이저 같은 빛 탄환이 순식간에 두 녀석을 무력화시켰다.
다음으로는 불꽃 탄환 차례였다.
폭발 탄환과 달리 단순 불꽃을 일으키는 마법이었기에, 근접사격을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퓨 - 욱!
이번에는 탄환에 아예 불이 붙은 채로 나갔다.
선명한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탄환은 그대로 네 번째 양아치의 어깨에 적중……!
프스스스스!
박힌 상태에서도 계속 불을 내뿜어 피격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동반한 고통을 안겨줬다.
“끄아아아아!”
아마 안에 들어있는 마력 정도라면, 탄두가 녹아서 상처 주변에 눌어붙을 때까지 계속 타오를 터.
‘한 방만 맞아도 치명상이겠군.’
내버려 두면 중금속 중독으로 서서히 병들고, 제거하기 위해선 금속이 눌어붙은 생살을 전부 잘라내야 했다.
안타깝게도 살에 박힌 순간 상처에 화상을 입히기 때문에 출혈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상대방에게 지독한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는 쓸 만한 탄환이었다.
‘굳이 사람한테 안 쏘고 인화성 물질에 쏴도 된다.’
현재 가지고 있는 마법으로도 이 정도 결과라니?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마 다른 마법을 배워 이것저것 적용해 보면 훨씬 더 훌륭한 화력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나머지 탄환은 기타 양아치들에게 쏴버렸다. 상처 하나 나지 않은 시시한 승리였다.
‘위압감이랑 신진대사 감소는 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군.’
맞는 녀석이 그 마법에 걸리는 건지, 아니면 탄환 자체에 그 마법이 걸려서 발포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실험이 더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무탄이나 빈백 탄환을 가지고 실험하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