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이능을 결정하다 -->
대충 슥 훑었는데도 순식간에 4시간이 지나갔다.
‘환장하겠네.’
결재할 서류는 가득한 데 머리는 안 돌아가서, 툭 건들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고민 끝에 잠시 쉬기로 마음먹었다.
풀썩.
세워뒀던 상체를 침대에 눕혔다.
‘딱히 좋은 게 보이질 않는다.’
이름, 설명만 봐서는 딱히 ‘이거다!’ 하는 녀석은 없었다.
가속처럼 좋아 보이는 이능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지훈과는 궁합이 잘 맞지를 않았다.
근력 강화?
참으로 매력적인 이능으로, 강화계의 꽃이었지만 주로 원거리 전투를 하는 지훈에게 있어서는 있으나 마나였다.
천리안?
원하는 곳을 볼 수 있는 능력이었지만 거리가 문제였다. 찍는다면 F등급, 거기다 AMP 보너스로 E등급.
빈토레즈 기준 지훈의 사거리는 최대 500m에 저격총을 들 경우 거의 800m까지 늘어난다.
만약 찍었는데 거리가 짧다면 낭패였다.
다중 초점?
변이계로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게 해주는 이능이었다. 보통 정조준 시 양 눈의 초점이 맞지 않음은 물론 기타 애로가 있긴 했지만…….
‘겨우 그딴 거 때문에 이능을 낭비한다고? 개소리지.’
아까웠다. 차라리 비싼 값 주고 보사에서 발명한 다초점 렌즈를 끼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피인화(皮鱗化)?
변이계 이능으로 살갗에 비늘이 돋아나게 하는 이능이었다.
저항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훌륭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무껍질, 돌 피부 마법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엔 저항이 부족한 게 아니라, 충격 때문에 내장이 흔들리는 게 더 문제였다.
‘나무껍질이랑 돌 피부도 움직임을 방해해서 잘 쓰지도 않는다. 이능까지 투자할 필요는 없어.’
강철 내장?
설명 듣고 내장 충격을 완화하는 능력 싶었거늘, 안타깝게도 독 및 질병에 면역력을 올려주는 이능이었다.
독 판별하거나, 미식헌터 아니고서야 전혀 쓸모없는 이능이라고 봐야 옳았다.
불꽃 투사, 급속 냉각, 염력 및 기타 발현계 이능.
총 + 발현계 이능 조합으로 두 공격을 한꺼번에 하는 건 매력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한 손으로 총을 다뤄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소총을 한 손으로 쏘면 명중률이 개판이고, 권총은 탄두 문제로 파괴력은 물론 급탄수도 못마땅했다.
랭크 잔뜩 올려서 이능만으로 공격이 가능하면 모를까, 저등급 랭크에선 그냥 총으로 쏴 죽이는 게 빨랐다.
‘그러고 보면 흑인 새끼가 발현계 이능력자였지.’
그냥 이능력자도 아니고, 단순 이능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을 태워 죽였다.
순간적인 파괴력 자체는 IED(급조폭발물)보다 약했지만, 중요한 건 시전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순식간에 사람 머리만 한 푸른 불꽃이 날아오니,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잿더미가 된다.
‘그 정도면 랭크가 몇일까.’
대충 B등급 정도 되면 저 정도 위력이 나올 것 같았다.
매우 강력한 이능이었으나, 이상하게 탐이 나지는 않았다.
도리어 불꽃 투사보다는 총알을 막는 이능이 좋아 보였다.
‘분명 총을 쐈을 때만 딱 맞춰서 반응했다.’
수준을 봤을 때 방어형 이능과 공격형 이능 둘 다 고등급이었다. 그렇다는 뜻은 다른 강화, 변이계 이능이 없다는 뜻.
‘어떻게 한 거지?’
절대로 총알을 직접 보고 작동한 능력은 아니었다.
혹여 예측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총알이 맞을 부위만 정확하게 0.5초 정도만 딱 작동시킨다?
한 번 이면 모를까, 연속 사격도 전부 막아냈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자동으로 켜졌다는 건데……. 도대체 뭐지?’
강화계, 발현계를 죄다 뒤져봐도 저런 이능은 없었다.
실상은 이랬다.
위기대비 : 불꽃 방패
해당 이능은 단일 능력이 아니라 다른 능력 두 개를 섞은 이능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정확하게는 위기대비라는 자동 발동형 발현계 이능에, 파이로가 가진 불꽃 관련 이능을 섞어 만들어진 이능이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파이로만 가진 능력이었으니, 단순 이름 검색만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이능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지훈 역시 위기대비에서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 위기대비 (발현계 능력)
- 위기 시 자동으로 발동되는 이능입니다. 다른 이능과 섞어 쓸 수 있습니다.
약 1분~5분 정도만 생각해 보면 ‘어라?’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훈은 각 이능에서 10초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훑어봐야 할 이능이 이만 개가 훌쩍 넘는데, 하나하나 곱씹으며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보호 쪽인가 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후……. 복잡하네.”
한숨만 푹푹 나왔다.
뭘 결정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결국 머리 식히기 위해서 눈 좀 감고 있다가 잠들었다.
…….
“……. 재밌……. 식물원이랑……. 관 크기가……. ……. 컸어.”
드문드문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이 깼다.
뭔 일인가 보니 민우가 손에 가시 없는 선인장이 심어진 화분을 들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식물원과 박물관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굉장히 건전한 취미, 관광 활동이었으나 가벡은 재미가 없었는지 입을 다문 채로 입에 만두만 밀어 넣었다.
“박물관에 재밌는 거 많디?”
“네. 중국 개척지 역사랑 이주 과정 등 재밌던데요.”
이럴 때 보면 확실히 뒷골목과 위험천만한 헌팅과는 거리가 먼 책상쟁이에 어울리는 민우였다.
“맞다. 중국에 유명한 헌터 중에 천청운 있잖아요. 그 사람 얼마 전에 죽어서 그런가 이능이랑 장비 공개됐던데요?”
솔깃한 정보였던지라 귀를 기울였다.
보통 유명한 헌터 및 고등급 각성자의 경우 그 이능 내용을 대외비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만능 이능은 없던 지라 이능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면 파훼법을 연구하거나 암살이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은 예로 지훈 같은 경우는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전투력을 낼 수 있지만, 얼마 못 가 탈진했다.
까닭에 많은 숫자를 동원하거나 기관총 같은 대용량 지원화기 두, 세정으로 제압사격 드르르륵 긁으며 장기전을 유도하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유명한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효율 높은 이능을 알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옳았다.
반면 이번 천청운 같은 경우 얼마 전에 사망해 버렸고, 같은 이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정보를 공개해 버린 것!
본디 이능이란 각성 제어가 가능한 지훈을 제외하면, 모두 ‘무작위’로 결정된다. 정보가 있어도 흉내 낼 수 없었다.
그러니 중국 측은 ‘우리가 이렇게 강한 이능력자를 가지고 있었다.’ 라는 대외홍보 및 정치적 이용이겠지만, 그딴 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고 참고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 ☆ ☆
다음 날 지훈은 박물관으로 향해 천청운의 정보를 살폈다.
번역 및 설명을 위한 MP3 같은 물건을 귀에 끼자 자연스러운 한국어와 함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천청운은 중국의 국가 지정 헌터로서…….
쓸모없는 내용은 대충 흘린 뒤 중요 정보에만 집중했다. 설명 들어가며 메모장에 빠른 속도로 휘갈기기도 잠시.
이런저런 내용이 많았으나, 종합해 보면 대충 이랬다.
[정보]
이름 : 천청운.
종족 : 인간.
등급 : A등급 7티어 (!)
근력 : D 등급 (29)
민첩 : B 등급 (47)
저항 : C 등급 (36)
마력 : D 등급 (21)
이능 : A 등급 (51) (!!)
신체 변이 : 강화 수술, 임플란트 삽입. 자연 변이 없음.
이능력 :
마력 부여 (B등급) (마력계) : 원하는 물건에 본인의 마력을 주입합니다. 한계 수치는 본인의 마력 등급까지이며, 등급이 오를수록 효율이 증가합니다.
주문 주입 (C등급) (마력계) : 마력이 깃든 물건에 주문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등급이 올라감에 따라 효율이 향상됩니다.
고속 영창 (B등급) (마력계) : 마법 영창 속도가 증가하지만, 마나 소모가 증가합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영창 속도와 마나 효율 둘 다 높아집니다.
…….
‘뭐야, 얘 왜 마력계 이능만 가득해?’
설명에 따르면 천청운은 최전방에서 종횡무진하던 뛰어난 군인이자, 전사였다. 만약 마법사였다면 후방 혹은 분대 지원 역할을 해야 했다.
마법사의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주문 영창 및 유지를 위한 집중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였다면 마력 랭크가 저렇게 낮을 리가 없다.’
혹여 재수가 없어서 티어업 보너스가 전투 능력치에 전부 쏠렸다고 한들, 경험으로 최소 C등급은 찍혀야 한다.
한 마디로 절대 순정 마법사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놓친 부분이 있었던 걸까?
설명을 다시 들었지만 분명 마법사라는 얘기는 없었다.
뭔가 중요한 퍼즐 조각이 뭉텅 째로 없는 기분이었지만,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기에 포기했다.
‘썼던 장비를 살펴보자.’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총을 들었다면 총꾼, 스태프라면 마법사였다.
- 천청운의 장비는 간단했습니다. 무기는 중국군 제식 소총은 95식 소총을 사용했고, 탄환은 OTN탄을 사용했습니다. 그 외 방어구는 금강(중국의 방어구 업체) 제품을 사용했고, 장신구는 마력을 늘려주는 물건을 사용했습니다.
‘총꾼이네.’
총이야 제 손맛에 맞는 놈 쓰는 거니 그렇다 치지만, 탄환이 OTN이었다.
‘A등급 헌터라면 국가 임무 때문에 거대 몬스터 사냥 외에도 요인 암살 등에 쓰일텐데……. OTN탄?’
마법과 총.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살짝 머리를 굴리길 잠시.
‘설마……. 탄환에 마법을 부여해서 쏜 건가?’
정답이었다.
최근 아이덴티티 - HG 합작으로 총기 내에 마석을 넣어 어떤 탄환이든 마법을 불어넣는 기술이 개발되긴 했다.
문제는 한 정당 가격이 탱크 저리 가라는 물론, 유지비용(마석 재충전)도 눈 튀어나오게 비쌌으며, 생산 당시에 입력해 놓은 주문밖에 주입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자체로도 엄청난 기술이긴 했지만…….
만약 원하는 마법을 즉석 해서 주입 할 수 있다면?
발마다 다른 마법을 넣어서 발포한다면?
그 범용성은 가히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소총을 유탄발사기처럼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저격총 따귀 때릴 정도의 파괴력, 대전차 무기를 휴대할 필요도 없다.
천청운 같은 경우 미리 탄환에 마력을 부여해 놓은 뒤, 신전에서 고용 영창과 주문 주입 이능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갖가지 탄환을 사용했다.
과연 저런 능력을 갖췄으니 딱히 지원 분대의 도움 없이도 홀로 수많은 전장을 제패함은 물론, 가는 곳마다 아군에게 승리를 안겨줄 전장의 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딴 이능이 무작위로 나왔다고?’
어이가 없을 수준의 확률이었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각성 제어를 할 수 있는 사람, 아니 물건은 권능의 반지밖에 없거니와 그 소유주는 김지훈 혼자였다.
‘과연 엄청난 인구의 힘이로군.’
현재 중국의 인구는 전쟁 때문에 조금 줄어서 11억.
그중 저런 행운아 하나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행운이 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권능의 반지를 매만졌다. 이쪽은 11억 분의 1보다 훨씬 훌륭한 반지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저 능력 좋아 보이는군.’
지훈이 씩 미소를 지었다.
이능 포인트를 어디다 쓸지 결정된 순간이었다.
마법 수련 및 마력 능력치도 신경을 써야 했기에 손이 갈 부분이 많겠지만,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들인 노력으로 싸구려 석탄을 넣어도 결과물로 다이아몬드가 나오는 미친 효율. 그거 하나로 충분했다.
‘이제 저 이능은 내 것이다.’
AMP, 장 씨 그리고 칼날 정글.
유쾌한 일 따윈 하나도 없었던 중국 개척지를 뒤로했다.
벤츠에 오르고 있으니 불평불만이 이어졌다.
“아……. 또 타요?”
“이제 그만 탔으면 좋겠군.”
“싫으면 걸어가, 새끼들아.”
고개를 초고속으로 흔드는 민우와 가벡이었다.
부르르르루 -
유료 주차장에서 벤츠를 찾아 엑셀을 밟았다.
개척지 중앙 대로를 탈 때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보이는 게 많아 지루하진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속도로에 들어가자마자 얘기가 달라졌다.
보이는 거라곤 유리 격벽 너머로 쭉 펼쳐진 지평선과 차 하나 없는 심심한 도로가 다였다. 시속 200km를 밟는다는 흥분감도 스치듯 끝났고 머지않아 지루함이 밀려왔다.
‘라디오나 들을까.’
중국어 방송 사이를 헤집어 한국 방송을 찾았다.
뉴스였는지 딱딱하고 사무적인 앵커 목소리가 들렸다.
- 칼날 정글 사건이 터진 지 삼일. 중국 측은 이번 사건의 사상자가 200명을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중 한국인은 확인된 사망자가 3명, 실종자가 15명이라 밝혔습니다.
‘쯧……. 하필 나와도 저딴 뉴스가 나오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주파수를 돌렸으나, 안타깝게도 다른 한국어 방송은 하나도 잡히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뉴스를 듣기로 했다.
- 이에 중국 정부는 칼날 정글 주변에 출입 금지를 선포하고, 폭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한국 측은 방사능 낙진을 우려해 핵미사일 발사 자제를 촉구했지만, 중국 측은 아직 정확한 성명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여럿 죽어 나갈 때부터 사단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기어이 정부가 나서는 모양이었다.
제아무리 칼날 정글의 주인이 강력하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단일 개체’로써 따졌을 때 얘기였다.
거대 단체 혹은 정부까지 넣고 비교하면 그저 ‘조금 까다로운 몬스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전술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들 제공권 확보 후 성층권에서 폭격만 잔뜩 해도 사살할 수 있었다.
‘쯧.’
순간 정글의 주인이 새끼와 다시 만난 순간이 떠올랐으나 떨쳐버렸다.
씁쓸하다고 한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잘 봐줘도 정글의 주인이 몇 백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
저 사실에다가 ‘제어 불가능한’과 ‘수백이 넘는’ 그리고 ‘내버려 둬도 큰 이득이 되지 않는’ 접두사가 붙는 순간 그 생명은 끝이 났다고 봐야 옳았다.
“죽겠네요.”
민우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왜, 불쌍하냐?”
“아뇨. 저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버려 두기엔 너무 위험한 생명체였다구요.”
사람과 사람도 서로 죽고 죽이는 세계였다.
어찌 한낱 말하는 짐승 따위를 동정하겠는가?
이후 딱히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저녁쯤에 칼콘과 교대한 뒤 수첩을 꺼냈다.
새로운 이능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중국 개척지에서 새로운 이능을 완벽하게 처리한 뒤 귀환하는 게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었다.
‘곧 아쵸프무자가 찾아온다. 그 전에 처리해 놔야 해.’
괜히 중국 개척지에서 시간 까먹었다가 곤란한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천청운의 이능을 적어놓은 메모를 확인하고는 반지를 통해 비슷한 이능을 찾았다.
박물관 설명이랑 단어 몇 가지가 다르긴 했지만 분명 같은 이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마력 부여 (마력계) : 대상을 주문 매개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생명체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대상에 마나 회로가 없을 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나가 서서히 증발합니다.
사용자의 마나가 고갈됐음에도 계속 시도할 시 마나 오염 및 마나 증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주문 주입 : 주문 매개체가 될 수 있는 물건에 주문 방아쇠(스펠 트리거)를 넣습니다.
스크롤 및 기타 마법 물품에 각인 된 마법은 이식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만 가능합니다.
참으로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설명이었다.
꼭 전공서적 읽는 느낌이랄까?
강화계나 변이계 같은 경우 굉장히 직관적으로 설명되어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력계만 가면 설명이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제작자가 마법사인지라 무의식적으로 ‘읽는 사람도 이 정도는 알겠지.’ 하며 만든 모양이었다.
저런 정보들을 하나당 1~3초 정도로 슥 훑고 지나갔으니 당연히 찾을 수도, 비틀어 생각할 수도 없었다.
‘더 불편하게 만들어 놨네.’
그나마 검색 기능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없으면 일일이 넘기며 찾을 뻔했다.
‘이능 포인트 사용. 마력 부여와 주문 주입 획득.’
- 새로운 이능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력부여, 주문 주입.
바로 정보 창을 열어서 이능을 확인했다.
[정보]
이능 : C 등급 (15+15)
이능력 - 집중 E(+1) 등급, 가속 D(+1) 등급, 마력 부여 E(+1) 등급, 주문 주입 E(+1) 등급.
정확했다.
이제 시험을 해볼 차례였다.
반사적으로 빈토레즈를 찾았다.
굳이 총이나 탄환에 할 것 없이 다른 물건에 해도 됐지만, 아무래도 총탄류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뒀나 싶은 것도 잠시.
‘빌어먹을…….’
정글 주인에게서 도망칠 때 차에 두고 나왔다.
속이 적잖이 쓰려왔다.
가격이 비싸거나, 구하기 힘들거나, 성능이 월등하거나 하지는 않은 총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랜 시간 애용했던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개척지 가면 총도 새로 하나 사야겠군.’
쩝 소리를 내곤 D등급 폐품, 베레타를 집었다.
이탈리아 총기회사인 베레타의 제품으로, 정확한 모델명은 베레타 92S였다. 미국군의 제식 권총으로 세계적으로 잘 돌아다니며, 유명하기도 한 총이었다.
착 -
탄창을 뽑아 안에 있는 탄종을 살펴봤다.
탄두가 빨간 것을 보니 OTN으로 보였다. 아마 민우가 MP5에 있던 탄환을 뽑아다 넣은 거겠지.
마력 부여를 위해 탄환을 일일이 뽑았다. 몇 발 쏜 까닭에 채 10발도 들어있지 않았다. 실전에서는 총기 위에 바로 부여해서 쏴야 했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방금 이능을 배웠는데 그런 걸 하는 건 신생아가 옹알이도 안 하고 걸어 다니는 꼴이었다.
‘이능 발동. 마력 부여.’
정확한 사용법은 몰랐다. 단지 오른손에 9mm OTN탄을 올려놓고 이능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후우웅 -
마치 혈관 안에 미풍이라도 불고 있는 듯한 기분.
마력이 빠져나가고 있는 신호였다.
최대 마력량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기에 적당히 5초 정도 쥐고 있다가 뗐다.
‘된 건가?’
슬쩍 마력 감지 안경을 꺼내 썼다.
탄환을 보니 주변에 옅은 푸른 안개가 껴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소량이었지만 일단은 성공이라는 뜻이었다.
‘됐군.’
이후 총알 9발에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약 1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지막 3발 째부터는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마력을 주입했을 때는 혈관에 미풍이 부는 느낌이었지만, 마지막 3발부터는 시리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마력이 다 떨어진 건가?’
가볍게 불꽃 마법을 시전했다가 풀었다.
불이 희미하게 일렁이긴 했지만, 일단은 시전 된 걸 봤을 때 바닥이 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부족해지면 혈관이 시리군. 주의해야겠어.’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효율이 좋지 않았다.
겨우 총알 9발인데 마력이 바닥난다?
게다가 아직 주문은 주입하지도 않았다.
‘마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데.’
혀를 차고는 마나 회복을 위해 쉬기로 결정했다.
탄환은 주머니에 넣어 보관할 생각으로 고개를 내리자…….
반짝, 반짝.
옷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옷에도 마나가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이런 썅……. 그러면 그렇지.’
몸에 닿고 있는 모든 물체에 마나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째야 싶은 생각도 잠시.
설명대로라면 시간에 따라 마력이 증발한다고 했다.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 ☆
저녁때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중국 개척지 측에서 만든 휴게소였는데, 작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엄청나게 컸다.
‘상주 인원만 1,000명은 되겠네.’
인원이 많은 만큼 2M짜리 보호 격벽도 마련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중국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각자 접혀있던 근육을 풀며 시간을 보냈다. 가벡과 칼콘은 팔씨름을 민우는 사과를 씹으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나는 주변 공터에서 뭐 좀 하고 있을 테니까, 각자 알아서 놀고 있어.”
어차피 물가에 내놓은 애도 아니고,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휴게소 격벽 밖으로 걸어 나가자 경비로 보이는 사람이 뜯어말렸다. 이에 각성자 등록증을 보여주니 해결됐다.
이후 휴게소와 한 200M 떨어진 후 품에서 글록을 꺼내 소음기를 끼워 넣었다.
끼릭, 끼릭, 끼릭.
다음으로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분홍색 케이스(시연이 준 거였다)에 곱게 들어있는 마법 감지 안경을 꼈다.
알이 둥근 안경을 쓰자 지훈의 사나운 인상이 조금 둥글게 변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걸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탄환을 꺼내 살펴봤다.
프스스…….
총알 주변에는 여전히 푸른 오라가 일렁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소리라도 나는 것 같았다,
‘좋아, 마나는 여전하다.’
다음으로는 체내에 남은 마나를 가늠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약 5시간 정도 내리 쉬었으니 마법 몇 번 부릴 정도는 될 게 분명했다.
‘이능 발동, 주문 주입.’
오른손에 총알을 쥐고 있었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마법을 부려야만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뭘 써볼까.’
일단 알고 있는 마법들을 점검했다.
불꽃 (ilutulestik.)
나무껍질 (Koor puu)
빛 (valgus)
돌 피부 (Seat nahka).
여태까지 썼던 마법은 다음과 같았다.
위압감과 신진대사 감소도 있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에 제외했다.
전투 중에 사용한다면 그나마 사용 가능해 보이는 마법은 빛이나 불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험을 해봐야 했기에, 안전한 나무껍질을 먼저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능 발동, 주문 주입.’
“나무껍질 (Koor puu)”
한 손으로 수인을 만들려니 영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래서 천청운 능력에 고속영창이 있었구나 싶기도 잠시.
우응 -
AMP 반지와 양손이 작게 진동하는 착각과 함께 총알에 흐르던 마나가 오들오들 떨렸다.
뭔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탄두 주변에 이상한 회로 및 글자 같은 게 적혀있었다.
어디선가 봤던 것들.
바로 폭발 탄환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었다.
완벽하게 똑같은 형태는 아니었지만, 분명 비슷한 원리일 터. 아마 착탄과 함께 마법이 발동되는 것 같았다.
‘글자가 파랗다. 혹시 마력으로만 보이는 건가?’
확인을 위해 안경을 벗자 회로와 글자가 전부 사라졌다.
지훈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이후 총알을 글록에 장전, 한 번 발포해 봤다.
푝!
퍽!
총알이 차갑게 굳은 맨바닥에 박힌다.
상태를 확인해보기 위해 맨손으로 땅을 팠다.
삽 같은 도구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삽보다 손이 더 단단한데 뭘 신경 쓴단 말인가.
퍼석.
깊게 박혀있는 걸 끄집어내서 살펴보니, 탄두가 나무껍질 파편마냥 갈색을 띠고 있었다. 마력이 전부 고갈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되는 모양이었다.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