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미친 줄 알았는데 심하게 미친놈. -->
끼긱, 끼긱, 끼긱.
장 씨가 MN로 만든 바늘에 AMP 실을 끼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 미친놈한테 맡겨도 괜찮을까?’
원래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한들, 실제로 그 일이 닥치면 생각이 덜컥 멈춰버리는 법이었다.
“프히힉, 히힉……. 아, 기분 좋다.”
장 씨는 손으로 AMP를 비비며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지막으로 남았던 신뢰도가 바닥을 뚫고 맨틀까지 뚝 떨어졌다.
저런 미친놈한테 몸을 맡기는 게 잘하는 짓일까?
일어나면 팔, 다리 다 잘려있고 밖에 있는 MES처럼 기계의수가 달려있는 건 아닐까?
AMP 실을 바라봤다.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얼핏 봐도 100M는 넘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환장하겠네.’
순간 제대로 된 의사를 찾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뒀다.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곧 아쵸프무자와 만나게 될 텐데,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키워놔야만 했다. 괜히 어영부영 시간만 버렸다가는 FS유적 때처럼 큰 고생을 할 수도 있었다.
FS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김중배 일행, 만드라고라와 포미시드.
겐포 부족, 페커리, 차원 여행자,
FS 기계와 최상위 관리자 그리고 정글의 주인.
전부 다 위험천만한 상대.
그럼에도 지훈은 당당히 살아 돌아왔다.
‘이번에도 잘 되겠지.’
만약 이번 일이 위험했다면, 이런 가벼운 불안보다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쾌함이나 피부가 아릴 정도로 날카로운 분위기를 먼저 읽었을 터였다.
지훈의 감은 이번 일이 안전하다고 외쳤다.
- 칼콘, 여차 싶으면 죄다 쏴 죽여. 나는 그 안에 있는 탄환으론 안 죽으니까, 마음 놓고 갈겨도 된다.
- 응, 알겠어.
칼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안전장치까지 확인됐으니 이제 거리낄 것 없었다.
“언제 시작할 거지?”
장 씨는 실을 길게 늘어뜨리고는 펜치로 끝을 매듭지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이후 어딘가에 전화하더니 10분쯤 지나자 웬 서양인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설명에 따르면 마취의라고 했다.
“이 사람?”
“그래.”
이후 마취의는 지훈에게 한국어로 온갖 능력치 등급과 몸무게 그리고 마취 이력을 물어봤다.
아마 수면마취에 필요한 적정량을 찾는 과정 같았다.
“재생 변이 있으니까 참고하쇼. 수술하다가 살 붙어버릴 수도 있거든.”
대답을 모두 끝내자 이동식 침대가 하나 나타났다.
비닐을 씌워놓은 상태였는데, 비닐 아래로 채 지워지지 않은 희미한 붉은 자국이 인상적인 침대였다.
전라로 비닐 위에 앉으니 등 뒤가 차가웠다.
도마 위 생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기다리니 마취의가 마취용 의료기기를 지훈의 얼굴에 씌우려고 했다.
“잠깐.”
마취의는 대답 없이 손을 거뒀다.
“이봐 장 씨.”
“프히힉, 왜?”
광기가 넘쳐흐르는 장 씨였다.
“잘합시다. 내 몸에 이상이 생기면, 당신도 당신 주변 사람들도 내일을 볼 수 없을 거요.”
턱짓으로 칼콘을 가리키자, 장 씨가 칼콘을 바라봤다.
탕!
위협사격이 한 발.
아파트 중앙에 있던 화단 흙이 퍽 하고 튀었다.
“잘 나가네.”
장 씨는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내 취미생활이니 걱정하지 마. 난 내 작품을 사랑한다고.”
일그러진 광기이자, 그릇된 사랑이었지만 취미에 대한 열정 하나는 인정해도 될 것 같았다.
아마 그렇다면 믿고 눈을 감아도 되겠지.
마취용 의료기기가 얼굴에 다가왔다.
“속으로 열부터 하나까지 세세요.”
열.
아홉.
여덟.
보통 사람은 7이 되기 전에 기절하지만, 각성자인 탓에 효과가 잘 들지 않았다.
눈 멀쩡히 뜨고 마취의를 쳐다보며 계속 숫자를 셌다.
일곱.
여섯.
다섯.
아무래도 마취약이라는 게 잘못 쓰면 내장기능(심장 포함)까지 멈춰버리는 약이다 보니 투여량을 적게 잡았나 보다.
넷.
셋.
둘.
그리고 하나.
‘이 새끼 이거 돌팔이 아니야?’
짜증이 나서 일어서려는 찰나…….
…….
…….
…….
눈을 떴다.
“어?”
천장에 커다란 선풍기가 보였다.
이게 뭔가 싶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양손이 쓰라렸다.
날카로운 통증에 신음을 내고 있으니 칼콘이 반응했다.
“일어났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칼콘은 덤덤하게 설명했다.
인간의 고급 의료기술, 특히 수술은 처음 본 듯싶었지만, 어차피 폭력과 죽음의 세계에 익숙한 녀석이었다.
비위가 상하기엔 너무 일상적으로 자주 봤던 피와 내장이었겠지.
“피 수혈하면서 칼로 팔 가르더니, 바늘로 금속 실을 뀄어. 보니까 빙 두르면서 꿰던데?”
팔을 움직여봤다.
고통과 함께 몸속에 이물질이 있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조금 뻑뻑한 게 피부 안에 가시가 돋은 것 같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하나 세심히 움직여 봤고, 주먹도 쥐어봤다.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움직였다.
‘기우였나.’
광기 서릴 만큼 좋아했던 분야인지라, 솜씨도 그만큼 일품이었던 모양이었다.
앉아서 팔이 재생되길 기다리고 있자니 열려있던 문 너머로 장 씨가 나타났다.
“이야, 벌써 일어났어?”
“아아. 어쩌다 보니.”
장 씨는 만족스러운 작품 보듯 지훈을 슥 훑었다.
꼭 품평하는 것 같았다.
딱 ‘너는 A급이야. 아주 만족스러워!’ 하는 기분이랄까?
‘기분 나쁘군.’
솜씨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좋았으나, 불쾌한 감정까지는 지울 수는 없었다.
그냥 화제를 돌려버렸다.
“어떻게 넣은 거지?”
“역시,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찍어놨지.”
장 씨는 연식 있어 보이는 디지털카메라를 꺼내더니 피와 살 그리고 근육이 가득한 사진을 보여줬다.
스너프 필름 저리 가라 싶을 정도였다.
“아, 씨발! 누가 이런 고어 보고 싶데?”
“젊은 놈이 이 정도로 꺅꺅대기는. 네 팔이야.”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확인을 위해 살펴봤다.
피부 위에 그대로 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미친 새끼가…….’
재생 변이가 있다는 말에 그냥 피부를 죄다 벗겨내고 그 안에다가 박음질(?)한 것.
“자 이번엔 동영상으로 보자.”
장 씨가 동영상을 재생했다.
- 프히히히힉, 히히힉! 이거 봐! 정말 예쁘지 않아!?
- 장 씨, 일하는 중에는 자제해요. 소름 끼쳐요.
- 있잖아, 드미트리. 나 정말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이렇게 잘라도, 잘라도 계속해서 살이 돋아난다고! 정말 아름답지 않니!? 프히히힉! 힉!
‘좀 미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제대로 미친놈일세.’
카메라에는 수술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었다.
드문드문 짜증나는 광기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대충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피부 안쪽으로 어떻게 잘 넣은 모양이군.’
대충 감은 잡았지만, 나중에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제대로 파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깐 카메라 좀 보고 싶은데.”
“여기.”
슬쩍 사진을 보는 척하다가 삭제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지훈의 사진들이 사라져버렸다.
장 씨는 그걸 보고는 충격 받은 듯 얼어붙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원본을 왜 지워!”
버럭 화를 냈으나 달려들지는 않았다.
원본 운운하는 걸 보니 백업이 있는 모양이다.
가서 백업파일까지 지울까 했지만 그만뒀다.
아무리 미친놈이지만 실력 좋은 대장장이였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봐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기에, 척을 졌다가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겠다 싶기 때문이었다.
“수술하느라 수고했고, 그래서 대금은 얼만데?”
돈이 엄청나게 깨질 것 같아 속이 적잖이 쓰려 왔다.
장 씨가 손을 쫙 펼쳤다.
“오천? 아무리 수술이라지만 팔 두 개 가지고 너무 비싸게 부르는 것 같은데 말이지.”
치료 마법이 나타나면서 경쟁에 밀려 길바닥에 나앉은 의사 많았다. 특히 뒷골목 면허정지 의사라면 오천은 개뿔 그 반 가격으로도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오백. 재밌었으니까 특별히 공짜로 해주지. 딱 금속 가공 비용만 내놔.”
크히히히힉 하는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공짜로 해주겠다는 데 나쁠 것 없었다.
장 씨의 공방을 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민우와 가벡은 관광 중인지 메모가 남아 있었다.
- 중국 개척지에 좋은 박물관 있다고 해서 다녀올게요.
어차피 오늘은 쉬기로 마음먹었기에 침대에 누웠다.
마취가 점점 풀리기 시작하며 고통이 느껴졌다.
찌릿하고 전기가 올라오는 듯한 기분.
다행히 간지럽다거나 몸속이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없는 걸 봤을 때 중금속 중독은 없는 듯했다.
마취의가 챙겨 준 진통제를 한 알 삼켰다.
‘이제 뭐 하지?’
편한 맘으로 TV나 볼까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어 방송은 잡히질 않았다. 딱 하나 잡히는 게 있긴 했지만…….
- 대 개척시대! 당신의 이주를 기다립니다, 서울개척지.
- 지구가 아닌 새로운 땅, 세드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지를 홍보하는 국영방송이었다.
‘새로운 인생은 개뿔. 시궁창에 안 처박히면 다행이지.’
재미는 무슨,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만 지껄였기에 TV를 꺼버렸다.
드르렁 - 드르렁…….
옆 침대에서 칼콘이 자는 걸 보고 잠이나 잘까 싶었지만, 아려오는 통증 외에도 수술 동안 잠들어 있던 까닭에 잠이 오질 않았다.
‘능력치나 확인해 보자.’
오래간만에 정보 창을 열어봤다.
우응 -
종족 : 인간
이블 포인트 : 59 (-1)
성향 : 뉴트럴(중립)
성향 보너스 : 회색 인간
등급 : B 등급 4티어
미사용 이능 포인트 (2)
보너스 포인트 (2)
근력 : D 등급 (23)
민첩 : D 등급 (21)
저항 : D 등급 (24)
마력 : E 등급 (16)
이능 : C 등급 (15+15) (!)
잠재 : S 등급 (?)
신체 변이 - 약한 재생, 화염 속성, 날카로운 감각
이능력 - 집중 E(+1)등급, 가속 D(+1)등급
정보를 보자마자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능 능력치 보너스만 15점!
저번 실험용 장갑을 찼을 때 7점밖에 오르지 않은 걸 생각했을 때, 2배도 넘는 수치였다.
‘AMP 반지 끼고 나서부터 꼈을 때 부작용이 좀 덜었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좋겠군.’
그렇게 된다면 능력 강화는 물론, 부작용 감소에 따라 지속시간도 길어질 터였다.
반면 이능을 제외한 다른 능력치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D등급 이상으로 올라간 터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행동이 아니면 자연적으로는 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무게 200kg 치고 데드리프트나 해볼까.’
근데 운동할 시간은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 포인트는 민첩에 투자하는 게 좋겠군.’
- 반영되었습니다. 민첩 D등급 (21) = > (23)
포인트를 투자하고 나니 남아있는 이능 포인트가 보였다.
‘저건 어떡하지?’
처음 가속을 얻었을 때는 너무 좋아서 다른 걸 볼 것도 없이 선택했지만, 지금은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있는 이능을 죄다 살펴봤는데…….
‘강화계만 쳐도 이능이 약 2,000종류. 변이계는 종류가 10,000개가 넘어간다.’
그 외에도 발현계는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할 만큼 많았고, 마력계는 그것보다 배는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다.
아무리 머릿속에 정보가 바로바로 들어온다고 해도, 전부 정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람 뇌는 기계가 아니었다. 컴퓨터가 연산해도 시간 꽤 걸릴 정보를 사람이 직접 정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이번 기회에 바로 찍자.’
최근 연달아 위험을 느끼며 이능이 절실해졌다.
사실 속 편하게 기존에 있던 이능의 랭크를 올리는 것도 좋았지만, 능력보다는 부작용 감소 쪽으로 이어졌기에 효율성이 좋지 않았다.
결심을 굳히고는 이능들을 빠른 속도로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