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에서 계속>
6권
<-- 다시 장 씨에게 -->
기절.
플러그가 뽑힌 가전제품 마냥 의식이 끊기는 것.
보통 사람은 살면서 다섯 번도 겪기 힘든 일이었지만, 지훈에게는 아니었다. 기록하진 않았지만, 근 반년 사이에만 다섯 번은 넘게 기절을 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게 기쁠까?
개뿔. 절대 그럴 리 없었다.
☆ ☆ ☆
희끄무레한 빛이 느껴졌다.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형광등 빛이었다.
“으…….”
눈을 뜨고 둘러보니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환자가 보였다.
응급실인 모양이다.
느긋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점검했다.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잘린 곳 없고, 가슴 통증도 전혀 없었다. 지극히 정상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오른팔에 바늘이 꽂혀있다는 것 정도?
비닐 안에 누런 액체를 보니 영양제인 모양이다.
‘다행히 이능 부작용은 없나 보군.’
슬쩍 왼손에 낀 반지를 쳐다봤다.
이능을 증폭하는 금속, AMP. 가공 문제로 소량만 사용했음에도 부작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만약 AMP 없던 시절 이런 움직임을 했다면?
지금쯤 가슴 통증 때문에 골골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몸이 찌뿌둥했기에 바늘을 조심해서 기지개를 켰다.
“끄으-”
시원함을 목소리로 표시하고 있자니 왼쪽 가림막이 홱 열리며 칼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콘도 별다른 부상이 없었기에 영양제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한지 마파두부를 퍼먹는 모습에서 식탐이 묻어났다.
“일어났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민우랑 가벡은?”
“뼈 부러진 곳 치료하는 곳으로 갔어. 마법사 불렀던데?”
- 우드드득!
뼈가 부러졌다는 소리에 머릿속으로 정글의 주인이 민우를 장난감마냥 으스러뜨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뼈가 작살났으니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회복 시간도 길어질 걸 우려해서 그냥 마법사를 부른 모양.
이번에 번 돈 대부분이 치료비로 나갈 테지만, 민우에게 있어서는 지출보다는 고통이 더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시간이 지나니 민우와 가벡이 기브스를 차고 돌아왔다.
“마법 치료받았다면서. 그건 뭔데?”
“모르겠어요. WRO 쪽 사람이 부작용이랑 마법 오염 운운하면서, 강제로 채우던데요?”
가벡은 영 불편한지 기브스를 이빨로 잘근거렸다.
그 모습이 치료용 머리 고깔을 쓴 개처럼 보였다.
“수치다. 뼈 따위 가만히 있어도 붙거늘, 뭐 한다고 이딴 족쇄를 채우는지 모르겠군.”
일행의 치료가 끝났기에, 맞던 수액을 그냥 뽑아버렸다.
몸에 이상 없었기에 굳이 맞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서 밥을 먹고 있자니 민우가 물었다.
“이제 뭐 하나요? 바로 한국 개척지 가나요?”
평소 같았다면 빠른 정산을 위해 그렇게 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장 씨에게 맡겨놓은 AMP를 찾으러 가야 했다.
“아니. 내가 볼일이 하나 있어서 조금 더 체류할 거야. 다들 관광 할 거면 하고, 집 가고 싶으면 해산해도 된다.”
옛날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다.
누군가가 사고를 치면 뒷수습은 누가 할까?
경찰? 아니다. 바로 내가 해야 된다.
‘애 엄마도 아니고, 젠장.’
이런 이유로 예전에는 대형 사고라도 칠까 싶어 7살배기 애 가둬 키우듯 개인행동을 자제시켰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각자 본인 앞가림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가벡은 인간 세계에 살기 위해선 조금 더 적응이 필요해 보였으나 민우가 동행하니 안심할 수 있으리라.
“숙소는 지금 잡아놓은 호텔 쓸 거니까, 외박이나 긴 시간 동안 외출할 거면 메모랑 돌아오는 시간 남겨 놔라. 안 남기면 버리고 간다.”
신신당부하고는 식사를 마쳤다.
헌팅 끝나고 하는 뒤풀이 같은 느낌이었기에 다들 위장이 터질 때까지 밀어 넣었지만, 지훈은 적당히 조절했다.
식사 후 관광 가는 민우와 가벡을 뒤로하고, 칼콘과 지훈은 다시 뒷골목을 찾았다.
장 씨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지훈은 글록 한 자루만 챙긴 가벼운 옷차림이었지만, 반면 칼콘은 갑옷에 사슬 그리고 95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몸에 넣는다고 했으니 전신마취를 할 수도 있다.’
마취 중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장 씨 성격을 보니 그런 짓 할 인간으로는 안 보였지만, 원래 뒷골목 일은 과하게 준비해도 모자란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무장한 오크를 경호원으로 대동했기 때문이었을까?
길 가다 마주친 사람마다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괜한 사건에 휘말릴까 걱정하는 듯 보였다.
적당히 약도를 보고 따라다가 머리가 쥐가 날 무렵…….
우측 골목에서 앳된 목소리가 큰 소리를 냈다.
중국어를 몰랐기에 뭔 일인가 살펴보니…….
“……. ……. ……. ……!”
갓 열 살쯤 된 꼬마가 관광객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Don't kill me! (죽이지 마!)”
백인이었는데, 러시아 개척지 사람이었는지 굉장히 뚝뚝 끊기는 악센트였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말을 걸었다.
“Hey. (야.)”
꼬마가 이쪽을 쳐다봤다.
“come here, fucking kid. (좆같은 새끼야, 이리 와 봐.)”
아이가 인상을 팍 쓰더니, 꺼지라는 듯 손부채질을 했다.
영어는 몰라도 ‘fucking’이 욕이라는 건 아는 모양이다.
‘새끼 봐라? 어린놈이 어디 겁도 없이.’
총이 사람 죽이는 무서운 물건이라는 건 알지만, 그 총으로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뚜벅, 뚜벅.
아이가 경고했지만 무시했다.
몇 발자국 다가가니 ‘탕!’ 하고 총소리가 울렸다.
얼굴에 맞으면 위험했기에 가볍게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다가갔다.
탕, 탕, 탕, 탕, 탕!
6연발 리볼버에 있던 총알이 죄다 떨어졌다.
“is it all, motherfucker? (다 쐈냐, 씹새야?)”
도망가려는 아이에게 빠르게 도약한 뒤, 달리려던 녀석의 발목을 차버렸다.
뻑, 부웅!
역동적으로 빙글 돌더니 쓰러진다.
엎어진 놈을 제대로 눕게 둘려놓은 후, 따귀를 때렸다.
애가 콧물 눈물 질질 짜며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될 수 있으면 애는 안 때리는 편이었지만, 세상만사에는 항상 예외가 있을 때도 있는 법.
사람이 아니라, 머지않아 사람 잡아먹는 괴물 될 새끼는 미리미리 쥐어박아서 사람으로 돌려놔야 했다.
짝, 짝, 짝!
적당히 정신 차리게끔 만 때리고는 눈을 마주쳤다.
“Hey. (야.)”
“Yes, Yes! (네, 네!)”
약도를 건네주며 짧게 말했다.
“Guide me. (안내해)”
가이드라는 말은 알아들었는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였다.
“Thank you, sir. You save my ass! (감사합니다!)”
애를 일으켜주고 있으니, 러시아 관광객이 와서 인사했다.
딱히 구해 주려던 게 아니라 안내꾼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던 터라 깔끔하게 대응했다.
“Fuck off, nerd. (꺼져, 병신아.)”
- 이블 포인트가 1 감소했습니다.
거칠게 대했어도 구한 건 구했다는 걸까?
이블 포인트가 감소했다.
빙빙 도는 것 같은 기분도 잠시.
꼬마가 함정으로 유인하나 싶어 반쯤 죽여 놓으려는 찰나 장 씨의 공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MES가 자리를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키가 2M는 될 법한 거대한 모습에, 언제 봐도 저게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래 봐야 싸우면 내가 이긴다.’
저걸 만드는 데 쓰일 재료를 생각한다면, 장급 등급은 보나 마나 E등급 이하다. 좋아봐야 D등급이겠지.
OTN탄은 막아도 업을 짊어지는 자는 절대 못 막는다.
힘 조절 잘해서 베어내면 두부처럼 잘릴 게 분명했다.
이번에도 조선족의 안내를 받아 장 씨에게 도착했다.
깡, 깡, 깡!
모루에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올려놓고 때리길 잠시.
장 씨가 지훈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반가운 손님을 봤다기보다는, 좋은 재료를 발견한 장인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이름 모를 광기가 느껴지는 건 왤까?
“그래, 어떻게 몸 성히 잘 지냈나?”
“뒤질 뻔한 거 빼면 그냥저냥.”
“그래. 안에 금속 박을 건데 몸 다치면 안 되지. 크힉.”
“뭐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서로 핥아주는 건 그만하고, 금속 어딨소?”
장 씨는 ‘재미가 없는 놈이군.’ 하며 불평하면서도, 손은 분주하게 AMP를 꺼내왔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공했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완벽하게 빗나갔다.
AMP는 실타래처럼 쇠막대기에 돌돌 말려있었다.
얼마나 정성 들여 가공했는지 실처럼 얇았다.
“저거 모양이 왜 저래?”
몸에 넣을 건데 도대체 왜 저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접촉면을 최대한 넓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거랑 저거랑 무슨 상관인데?”
장 씨가 씨익 웃었다.
“왜긴, 저렇게 집어넣어야 접촉면이 제일 넓거든.”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씨발. 그걸 누가 모르나. 저따위로 가공하면 도대체 어떻게 몸 안에 집어넣는데?”
작은 금속 막대로 만들어도 집어넣기 어려운 마당에, 실처럼 만든 금속 덩이를 어떻게 몸속에 넣는단 말인가?
“넣을 수 있으니까 만들었지.”
“좆 까는 소리 하네. 넣을 수야 있겠지. 근데 그만한 실력 좋은 의사를 도대체 어디서 찾으라고?”
양지쪽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정체 모를 금속을 ‘예, 알겠습니다.’ 하고 넙죽 넣어 줄 리 없었다.
당연히 음지쪽 무면허, 혹은 면허 정지된 의사를 찾아야 하는데 십중팔구 돌팔이인 놈들이었다.
하수구에서 흑요석 찾기만큼 어렵겠지.
얼굴을 쓸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실력 좋다고 해서 믿고 있었는데, 이딴 병신 짓을 저지를지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됐고, AMP하고 선금 줬던 거 내놔.”
여차하면 다 뒤집어엎을 기세로 말했다.
사람 여럿 죽여 본 경험이 있는 짙은 살기가 흘렀으나, 장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쪽이 솜씨 좋은 암살자라면, 저쪽은 광기 들린 대장장이였다. 아마 장 씨도 실험 명목으로 사람 여럿 죽였으리라.
“자네, 저 문 앞에 있는 MES 누가 조립했을 것 같나?”
“알 거 없고. 선금 줬던 거나 내놔, 새끼야.”
“내가 했다.”
본인이 했다는 말에 살짝 놀랐다.
MES는 단순 기계공학만 잘한다고 해서 조립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뇌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기계로 된 사지에 연결해야 했기에 기계공학은 물론 생물학적 지식 외에도 해부학적 지식까지 필요했다.
보통 팀으로 이뤄서 제작하는 MES를 혼자 만들었다?
엄청난 솜씨라고 봐야 옳았다.
그 솜씨를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을 갈아 넣었겠지만, 어쨌든 그거야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장 씨가 아주 조심스럽게 누런색 바늘을 하나 꺼냈다.
누런색을 띠는 금속은 많았지만, 색깔별로 자주 쓰이는 금속들이 몇 개 있었다.
붉은색을 띠는 OTN, F등급. (오스테 나이트)
푸른색을 띠는 VGC, D등급. (벤젼스)
누런색을 띠는 MN, B등급. (메가 나이트)
초록색을 띠는 CN, A등급. (크릴 나이트)
곧 손에 들고 있는 금속이 바로 MN이라는 소리였다.
운 좋게 저항만 잔뜩 오른 극소수의 각성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피부를 뚫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내가 아주 예쁘게 넣어줄 수 있지.”
직접 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실 모양으로 넣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지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