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21화 (121/173)

<-- 살기 위해서라면 악당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

죽음을 마주 보고 있는데 유쾌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특히 당장에라도 자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화나고 굶주린 짐승 앞에 있을 때는 더더욱.

- 내 아이를 돌려줘. 그럼 너희들에게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죽음을 선사해 주겠다.

고통스러운 죽음과 편안한 죽음.

처음부터 생존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던 것 같은 말투였다.

그 모습에서 유아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다른 짐승들을 먹이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은 포식자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흐이이익! 히힉. 내가 말했잖아, 우리는 다 죽을 거야. 도망? 전부 다 헛짓거리라고. 그 동굴에 가만히 있었다면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걸!”

홍궈가 실성해서 헛소리를 짖어댔다.

정글의 주인은 그런 홍궈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

- 그래, 네놈.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다. 분명 내 아이를 잡아간 인간들의 우두머리였지.

목소리에서 당장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농도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홍궈는 그 모습에 오줌을 지렸다.

“히히히, 히익… 히히히히….”

돈에 미쳐 선을 넘은 자의 최후였다.

- 당장 내 아이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으면, 한 놈씩 산채로 찢어 죽여주마.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인이 민우를 집어 들었다.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단순히 쥔 것뿐인데도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느껴졌겠지.

“사, 살려주세요! 으아아!”

민우가 금방이라도 눈을 까뒤집을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에 정신이 혼미했던 지훈이 정신을 차렸다.

‘자칫 잘못하면 민우가 죽는다!’

생각해야 했다.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을, 저 압도적인 생명체와 거래할 방법을 말이다!

꾸욱, 꾸욱.

- 끼애애.

그 순간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운전, 충돌, 전복 등의 격한 움직임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꼭 제 어미를 닮아 강인한 듯싶었다.

지훈은 순식간에 백팩을 앞으로 맸다. 이미 빈토레즈는 차가 전복되며 떨어져 나갔기에 걸릴 것도 없었다.

지퍼를 열었다.

지직 소리와 함께 새끼 짐승이 고개를 내밀었다.

“끼에 -”

큰 눈동자에 날개 마냥 쭉 펴진 귀, 보는 이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애처로운 울음소리.

평상시라면 당장 집에서 키우고 싶을 정도였지만, 현재 이 상황에선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짐승, 사람, 이종족.

너나 할 것 없이 숨을 죽이고 정글의 주인을 지켜봤다.

“끼이이잉….”

주인이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포식자의 단단한 가죽과 날카로운 손톱 뒤에 숨겨진 모성애였다.

- 내 아이… 내 아이가 거기에 있었구나! 아가야 이리 온, 어서 어미에게 오렴. 이제 집에 가자. 나쁜 사람들은 이제 모두 죽었단다.

마치 영화 속 평화로운 모자 상봉장면 같았다.

모두 숨죽인 체 정글의 주인이 제 새끼에게 손을 뻗는 걸 지켜봤다.

곧 있으면 강제로 떨어졌던 새끼와 어미가 만나고, 정글을 떠들썩 흔들었던 전대미문의 사건은 종결되겠지.

그리고 그 사건에 중심에 있던 인간들은…

죽는다.

지훈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정글 주인의 손이 새끼에게 닿기보다 앞서 글록을 꺼냈다.

이후 왼손으로 새끼의 목을 부여잡고 오른손으로는 녀석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눴다.

움찔!

정글 주인의 눈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스쳤다.

당황스러움과 공포였다.

- 지, 지금 뭐하는 거야! 그만둬!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무시하고 슬라이드를 당겼다.

글록에 장전된 게 일반탄이라도 상관없었다.

아직 덜 여문 가죽은 쉽게 뚫릴 게 분명했고, 혹여 뚫리지 않는다고 해도 두부를 뒤흔들어 뇌를 박살내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영화 찍고 앉아있네, 빌어먹을 짐승 새끼가!”

영화 같은 모자 상봉?

그딴 거 알게 뭔가.

당장 내 모가지 날아가게 생겼는데, ‘어이구 드리겠습니다.’ 하고 마지막 교섭 카드를 넘기는 건 머저리도 안 할 병신 짓이었다.

악당에 가까운 더러운 협잡질이었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있어, 지훈은 그저 제삼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원치 않게 휩쓸려버린 피해자였다.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지훈이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방식이었다.

“더 다가오면 죽인다.”

- 그깟 장난감으로 내 새끼를 죽일 수 있다고 보는가?

정글의 주인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섣불리 다가오지는 않았다. 기저에 불확신이 깔린 행동이었다.

“쏴 보면 알겠지.”

만약 글록이 안 먹힌다 해도 가속 발동하고 업을 짊어지는 자로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다.

- 꼭 그렇게 고통을 자처해야겠나? 나는 너희에게 자비로운 죽음을 약속했다.

“이러든 저러든 뒤지는 건 똑같잖아. 자비로운 죽음 같은 소리 하네. 좆이나 까 잡숴.”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독한 모욕에 정글의 주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제 새끼를 위해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 마지막 경고다. 내 아이를 놔 줘. 그렇지 않으면 이 인간을 죽여버리겠다.

꽈악.

“으아아아!”

정글 주인의 손에 잡혀있던 민우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민우가 죽어버릴까 봐 손에 힘이 풀렸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삐끗하면 다 뒤진다.’

만약 민우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안다면, 정글의 주인 역시 민우를 인질 삼아 위협하기 시작할 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민우가 일행에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했으며, 최악의 경우 차선책 역시 고려해야 했다.

‘민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속이 미친 듯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모두가 죽을 상황 속.

일행 중 누군가가 희생해 나머지가 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역할이 지훈에게 떨어진다면?

지훈은 기꺼이 본인을 희생해 일행을 살릴 거였다.

그리고 물론 그 논리는 남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죽여. 그깟 놈 죽여봐야 내가 눈이나 깜짝할 것 같던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

진짜 죽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겠지.

하지만 정글의 주인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포식자로 살며 오로지 적을 잡아먹기만 했던 입장이었던지라, 이런 교섭에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그 자식 내려놔.”

정글의 주인이 망설였다.

재촉이 필요해 보였다.

글록으로 새끼를 후려쳤다.

빠악!

“끼에에에엑!”

새끼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토해냈고, 정글 주인은 그 모습이 충격을 받은 듯 신음을 내뱉었다.

- 아, 안 돼! 네 말을 들으마! 제발 그러지 마!

정글 주인이 유리조각 다루듯, 조심스럽게 민우를 땅에 내려놨다.

“으아아아… 악!”

민우는 양팔이 부러진 듯 누워서 꿈틀거렸고, 칼콘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민우를 질질 끌어왔다.

저쪽이 마지막 카드를 버림으로써, 교섭이 일행 쪽에게 월등히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잘 들어, 이 빌어먹을 짐승 새끼야.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우리가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 네가 뭐든 네 새끼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든 상관없다.”

안전하게 돌아갈 갈 수만 있다면 이딴 물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넘겨줄 수 있었다.

- 그 말을 지킬 수 있나?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의심의 말에 행동으로 대답했다.

허공에 대고 글록을 발사했다.

타앙 하는 날카로운 총성이 고요와 함께 정글 주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이건 약속이 아니라 통보다. 네 새끼 목숨가지고 장난질 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이후 어느새 정신을 차린 가벡에게 눈짓해, 뒤쪽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비록 왼팔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으나, 오른손 하나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침묵이 일행을 무겁게 짓눌렀다.

살짝이라도 두드리면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

정글의 주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길을 열어라, 저 녀석들을 보내줘.

일행을 둘러쌓고 있던 짐승들이 길을 터줬다.

그뿐만 아니라 칼톨레므 한 마리가 앞장서서 걷기 좋게끔 칼날초까지 정리했다.

일행을 위한 건 아니었다.

혹여라도 제 새끼가 칼날초에 긁혀 상처라도 날까 싶은 염려와 일 초라도 빨리 제 새끼를 다시 품에 안고 싶은 모성애 때문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녀석이 지금은 앞장서서 길을 뚫어주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지훈은 새끼 머리에 총을 겨눈 체 뒷걸음질 쳤고,

가벡은 지훈과 등을 맞대고 길을 안내했으며,

칼콘은 부상당한 민우를 질질 끌었고,

민우는 질질 끌려갔다.

약 3시간쯤 걸었을까?

앞에서 사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 러시아어 모두 섞인 소리였는데, 큰 소리를 내는 거로 보아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태로 정글 주인을 저기까지 끌고 갔다간, 겁먹은 인간들의 사격을 시작으로 피바람이 불 게 분명했다.

“넌 여기서 멈춰라.”

- 싫다. 나는 너를 믿을 수 없다.

곤란했다.

사실 정글 주인을 끌고 가봐야, 인질로 새끼를 잡고 있으니 일행은 안전했으나… 저 멀리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인간들은 아니었다.

딱 봐도 대규모 인원.

사상자만 50명이 넘게 나올 게 분명했다.

“좋다, 그럼 내가 선물을 하나 주지.”

조용히 듣고 있는 정글 주인에게, 옆에서 히히거리고 있던 홍궈를 발로 차서 밀어버렸다.

철푸덕.

홍궈는 안면으로 낙법을 치고는, 흙범벅 된 얼굴을 들었다.

그런 홍궈를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내려다봤다.

“아… 아?”

홍궈의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스친다.

반면 정글의 주인은 이쪽을 쳐다본다.

- 무슨 의미지?

“그 녀석이 일의 원흉이다. 네가 좋을 대로 해라.”

홍궈가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구걸했지만 무시했다.

- 동족을 버려도 상관없다는 건가?

“인두겁 쓰고 있다고 전부 다 인간은 아니지.”

새끼를 인질로 잡았다는 미안함에서 온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홍궈 때문에 쓸 대 없는 일에 휘말렸다는 짜증과 도를 넘은 인간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약속하지. 네 새끼는 어느 정도 안전한 지점에서 내려놓겠다. 원한다면 감시를 붙여도 좋다.”

- 난 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인간.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할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있던 칵톨레므 몇 마리가 흐릿해지더니 자취를 감췄다.

얼핏 눈에만 보였던 녀석만 5마리. 시야 밖에 있던 녀석들까지 합친다면, 거의 10마리가 달라붙었다는 얘기였다.

아마 얕은수를 쓰는 순간 동시에 달려드리라.

얕게 그르렁거리는 주인을 뒤로하고, 일행은 느린 속도로 이탈했다. 사람 소리가 들린 방향이었다.

약 30분 정도 이동하자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We are Rescuers. If you are humanoid, Show yourself! (저희는 구조대입니다. 만약 휴머노이드라면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이에 매고 있던 백팩을 빠르게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약 10M 쯤 뒤에서 바로 칵톨레므가 나타나더니, 재빨리 가방을 들고는 다시 사라졌다.

그 모습이 가방만 공중에 뜬 것 같아 기묘했다.

이후 별다른 공격 조짐이 없었기에 사람 쪽에 대답했다.

“Don't shoot! We have wounded! (쏘지 마, 부상자가 있다!)”

말이 끝나자마자 눈꺼풀을 뚫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일행에게 향했다.

눈을 가린 채 천천히 전진하자, 하얀색 배경에 붉은 심장이 그려진 보호복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WRO(World Rescue Organization, 우로, 국제 구조 기구)의 표식이었다.

“Who is wounded!? (부상자는 누구입니까!?)”

칼콘이 양손을 흔들자, WRO측의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살펴보더니, 들것을 요청했다.

이후 일행은 장갑차에 탑승했다.

중국 개척지 행이었다.

덜컹, 덜컹, 덜컹…

오로지 보호만을 위해 만든 물건인지라, 승차감이 굉장히 불편했지만… 피로에 물든 몸은 그나마도 엄청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더럽게 힘드네.’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몸이 녹아드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정산]

획득.

D등급 폐품 4개, C등급 폐품 2개. (약 4,500만 원)

칵톨레므 손, 발톱 40개(5X8, 약 2억 원)

기타 판매 가능한 폐품 (5,000만 원.)

활력초 (1,000만 원)

총 3억500만 원.

지출.

중국 개척지, 렌트 등 모든 이동비 (약 900만 원)

렌트카 손실에 따른 배상 (보험비 포함 1,100만 원)

식량 및 미끼 구입비 (550만 원)

동작 감지 터렛 (300만 원)

기타 잡비 (50만 원)

총 2,900만 원

총액.

2억7,600만 원 획득.

4인 분배 시 1인당 6,900만 원 획득.

[결과]

[지훈]

- 장비 손상 : 빈토레즈 분실.

- 부상 : 가벼운 피로, 심장 통증(재생됨)

- 능력 : 민첩 +1, 이블 포인트 +1, 티어 +2.

[칼콘]

- 장비 손상 : 없음.

- 부상 : 없음.

- 능력 : 근력 +1, 티어 + 2, 이블 포인트 + 2

[민우]

- 장비 손상 : MP5 분실.

- 부상 : 양팔 골절, 근육 파손.

- 능력 : 이능 +2, 근력 +1, 민첩 +1, 저항 +1

[가벡]

- 장비 손상 : 가벼운 갑옷 손상.

- 부상 : 얕은 자상 여러 개, 왼팔 골절.

- 능력 : 근력 + 1 저항 + 1, 티어업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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