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이 쫓아오다. -->
정글의 주인은 미칠 노릇이었다.
잃어버린 제 새끼와 부재중이었던 안식처를 작살을 내놓은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도 함부로 작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워워워!”
- 내 아이를 내놔, 아이를 내놔!
혹여 제 새끼가 저 차 어딘가에 들어있을까, 공격에 휩쓸려 죽어버리진 않을까 겁이 난 까닭이었다.
SUV가 시속 80km로 달려나갔다.
비포장도로와 구불구불하게 형성된 정글 도로.
원래대로라면 얼마 못 가 나무에 들이박아야 했지만, 지훈의 숙련 된 운전 솜씨와 집중 이능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지훈은 눈을 굴리며 룸미러와 앞유리를 번갈아 봤다.
‘아직도 쫓아오고 있다!’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칼날 정글 외부까지 약 2시간이면 나갈 수 있는 거리. 다행히 기름은 충분했다.
속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엑셀에 얹은 발에 힘을 꾹 줬다. 엔진 울음소리가 들리며 주변 나무들이 순식간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일반인이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트릭 드라이빙!
각성자도 웬만큼 운전에 자신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지 않았을 기행이지만, 지금은 그딴 거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는 순간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쿵, 쿵, 쿵, 쿵.
“그워워워워!”
- 빠르게 움직이는 쇳덩이를 막아라! 저 쇳덩이가 밖으로 나간다면, 이 정글 안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 버리겠다!
순간 머릿속으로 불길한 말이 울렸다.
누군가가 두개골을 열고 뇌에 언어를 직접 때려 박는 것 같은 찌릿한 두통이 동반됐다.
‘씨발… 이게 뭔….’
순간 연속된 위험에 홍궈 꼴이 나는 게 아닐까 싶어 옆에 있던 민우에게 물었다.
“나만 들렸냐?”
“으아아아악! 네!?”
“나만 들렸냐고, 새끼야!”
정신 못 차리고 비명만 지르는 민우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제야 녀석은 질문받은 걸 깨닫고는 급히 대답했다.
“저도 들었어요. 저도… 어, 어! 형님 앞에!”
다행히 미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안도감도 잠시. 주행 방향으로 뭔가 일렁거리더니 2M 남짓 되는 인영이 불쑥 나타났다.
칵톨레므였다.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 만큼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려던 발을 멈칫거렸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앞에는 칵톨레므가 있었고, 뒤에는 죽음이 있었다.
둘 중 뭐가 더 무서울까?
당연히 대답할 것도 없었다.
“꽉 잡아, 새끼들아!”
브레이크 주변을 서성이던 발을 다시 엑셀로 가져갔다.
부우으으으룽!
있는 힘껏 밟아, 쥐어짜듯 속도를 올린다.
들이받기로 결심한 순간, 속도 1km가 중요했다.
어중간하게 박았다간 천장 혹은 옆면에 매달리거나, 바퀴에 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 씨발! 니미 좆같은 인생!”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뱉어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마지막으로 안전한 임무를 한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도 않았다.
불평도 잠시.
콰직!
텅 - 쿵, 더렁컹!
칵톨레므의 정강이에 앞범퍼가 부딪친 걸 시작으로,
앞유리에 빨려들듯 충돌,
이후 밀어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붕 떴다가,
중력에 따라 다시 천장에 충돌,
정신을 잃고 뒤로 떨어져 나갔다.
앞유리를 바라보자 숨이 터질 것처럼 밀려왔다.
“허억, 허억…!”
충돌 직전의 아주 짧은 시간. 칼톨레므가 손을 뻗어 운전석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앞유리는 충돌에 의한 균열과 동시에, 칵톨레므 손톱이 긁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30cm.
사무용 자 하나 거리.
딱 그만큼만 왼쪽으로 왔다면 정확하게 목에 틀어박혔다.
‘미치겠네, 진짜!’
칵톨레므를 확인하기 위해 룸미러를 훑었다.
녀석은 바닥에 쓰러져 꾸물거렸으나, 얼마 후 쫓아온 정글 주인의 발에 짓밟혀 버렸다.
비명도, 고기 터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절대적인 무게와 힘으로 짓누르는 쿵! 소리만 났을 뿐이다.
“그워! 끄워어어어!”
- 쇳덩이를 멈추는 녀석에게도 내 보호를 약속하겠다! 누구든 상관없다, 목숨을 걸고 막아라!
정글의 주인이 다시 한 번 포효했다. 그걸 신호로 저 앞쪽에 사슴 한 머리가 튀어나왔다.
보통 사슴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차에 치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고개를 숙여 큼지막한 뿔을 차 쪽으로 향했다.
명백한 적대감과 함께 막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런 미친!’
사슴은 칵톨레므와 달리 충돌 시 위험했다!
몸무게의 80% 이상이 다리 위에 쏠려있기 때문에, 뒤로 넘어가지 않고 앞으로 튕겨 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 육중한 육체가 차 앞면을 그대로 우악스럽게 잡아먹어 버릴 테고, 그 과정에서…
뾰족한 뿔이 정확하게 조수석과 운전석에 꽂힌다.
그냥 사슴도 아니고 칼날 정글에 사는 사슴이었다.
뿔 역시 최소 F등급. 그딴 육중한 물건이 시속 80km 속도로 꽂힌다?
손톱만 한 탄두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일 게 분명하다.
“씨발, 저거 쏴!”
민우가 창밖으로 권총을 내밀고 사격했다
탕! 탕!
권총 사격에 능숙하지 않은 까닭에 세 발 다 빗나갔다.
결국 민우는 명중률을 높이려고 상체를 창밖으로 내밀었으나, 치명적인 실수였다.
스거거거걱!
“끄아아아아!”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끌어당겼다.
오른쪽 어깨부터 가슴까지 피가 새어 나왔다.
칼날초에 긁힌 거였다.
그냥 걸을 때는 옅게 베이는 정도로 끝났지만, 시속 80km로 달릴 때는 얘기가 달랐다.
그나마 방탄복이 대신 찢어져 줘서 망정이지, 맨몸이었다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이 됐을 터.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전혀 안심되질 않았다.
사슴은 여전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를 돌려 옆면으로 들이박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잠시.
가벡이 뒷 자석으로 몸을 쑤셔 넣더니, 이내 안전띠를 로프 삼아 그대로 차 밖으로 몸을 던졌다.
쿵!
차 오른편에서 약한 충격도 잠시.
가벡이 95식 소총을 그대로 휘두르며 갈겼다.
녀석의 손을 따라 사선으로 총알의 비가 쏟아진다!
타타타타타타타타 -
타타타타타타타탕 !
마치 채찍처럼 땅을 긁고 지나가는 탄두!
이내 그중 몇 발이 사슴의 몸에 명중했다!
퍼벅 소리와 함께 사슴이 휘청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뿔 역시 하늘을 향했고…
그 순간 있는 힘껏 가속했다.
“바쁘니까, 꺼져 이 새끼야!”
쿵!
와장창!
충격 때문에 앞유리가 깨져나갔다.
다행히 뿔에 찔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약 10km나 갔을까?
코뿔소 비슷해 보이는 짐승 2마리가 길을 막고 있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도 못 뚫는다.
딱 봐도 1T은 그냥 나가 보이는 코뿔소가 2마리였다.
소총으로 뚫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거니와, 폭탄이나 유탄발사기를 써도 날려버릴 수 없는 놈들이었다.
충돌하기 싫으면 멈춰야 했다.
‘하지만 멈추면 죽잖아, 씨발! 나보고 어쩌라고!’
쿵, 쿵, 쿵, 쿵.
뒤에선 죽음이 모든 걸 박살 내 버릴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
멈추는 순간 저 우악스러운 발에 짓밟혀서 전부 터져버리겠지. 그럴 바에는…
‘부딪친다. 차라리 그쪽이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
“안전띠 매. 안 매면 죽는다!”
안전띠 매라는 말에 차 안이 아수라장이 됐다.
칼콘과 홍궈, 민우는 재빨리 안전띠를 맸지만… 가벡은…
“이거 왜 이래!”
로프로 사용했을 때 박살 났는지, 띠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씨….”
삐걱, 삐걱, 삐걱!
안전띠를 아무리 세게 당기거나 집어넣어 봐도, 띠는 축 늘어져서는 고정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가벡은 어쩔 수 없이 늘어진 안전띠를 제 몸에 칭칭 감았다.
“부딪친다! 준비해!”
현재 시속 약 100km.
코뿔소가 충돌 직전에 고개를 쳐들었다.
콰직!
차 앞부분이 들림과 동시에, 앞으로 나가던 속도의 관성을 이기지 못해 차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원심력에 의해 몇 배나 가중된 중력이 모두를 후려쳤다!
빙글
콰아아앙!
지지지지지직 - 쿠웅.
전복된 차가 바닥을 쓸다 나무에 부딪혔다.
☆ ☆ ☆
위이이이이이이잉 -
충격과 함께 엄청난 굉음에 오감이 고장이라도 난 듯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눈앞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희미하고, 귀에는 따가운 이명만 계속됐으며, 통각은 찢어지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끄어어어….”
반쯤 걸레가 된 감각이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고 소리쳤다.
‘도, 동료는…?’
칼콘과 흥궈는 괜찮았지만, 민우는 어지러운지 신음을 내뱉고 있었고, 가벡은 반응이 없었다.
‘죽었나?’
만약 죽었다면 어쩔 수 없었다.
슬퍼할 여유도 없이 안전띠를 맨손으로 찢어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천장으로 떨어졌다.
“꺽!”
잠깐 숨을 몰아쉬며 진정한 뒤, 밖으로 기어 나왔다.
주변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기에, 바로 반대편으로 이동해 민우를 끌어내려 줬다.
“으… 머리가… 머리가 아파요.”
두부에 출혈이 있긴 했지만, 생명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다음으로 가벡을 끄집어냈다. 팔이 기괴하게 비틀어져 있었지만, 일단 외관상으로는 숨이 붙어있는 듯했다.
이후 둘을 질질 끌어 차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후, 바닥에 주저앉았다.
“끄어어… 억….”
시야가 여전히 흐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마가 끈적해서 훑어보니 피가 묻어나왔다.
충격과 동시에 핸들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았다.
‘빨리 회복해야 한다….’
- 신체를 재생합니다. 신진대사 가속됩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끼이이익 - 퍽!
뒤이어 칼콘과 홍궈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이익! 아, 안돼!”
“허, 헉… 어째서….”
이후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애써 눈을 떠봤지만, 여전히 흐릿하게 보일 뿐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칼콘과 홍궈의 실루엣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정신 차려야 한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 해!’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를 믹서기에 넣고 돌리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 강렬한 고통이 늘어져 있던 감각들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흐릿했던 시야는 또렷해지고, 이명이 있던 귀는 얌전해지며, 고통을 부르짖던 통각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개의 붉은 달이 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달이 아니었다. 높디높은 나무로 하늘 대부분이 가려진 정글에 달이 뜰 수 있을 리 없었다.
‘눈…? 저게 눈이라고?’
정글의 주인이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절대적인 포식자는 무슨 이유에서든지 일행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주변에는 동물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길을 막아놨다.
사슴, 곰, 소, 멧돼지, 칵톨레므.
평상시라면 서로 생존경쟁을 해야 했거늘, 지금은 오로지 주인이 내뿜는 절대적인 공포에 굴복해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커다란 붉은 눈동자가 지훈을 내려다봤다.
온몸이 보이지 않는 칼날에 꿰뚫리는 것 같은 기분.
공포에 짓눌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마 홍궈가 저 모습을 보고 맛이 가 버린 거겠지.
오들오들.
온몸이 떨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공포에 짓눌려 있기도 잠시.
정글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르르르….”
- 네 녀석에게서 내 아이의 냄새가 난다.
머릿속에 울리는 말을 듣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새끼. 그래, 새끼 때문에 우리를 살려둔 거다!’
애초에 저 덩치에 민첩해 보이는 동작으로 시속 100km 남짓한 차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아마 본인이 힘 조절을 잘못했다가는 새끼채로 짓눌리거나, 정보를 얻어야 할 인간들이 몰살당할 수 있었기에 하지 않은 것뿐이겠지.
애초에 저 녀석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얘기였다.
허탈함과 함께, 이제 곧 죽을 거라는 생각도 잠시.
등 뒤에 있던 가방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의 새끼였다.